내 스스로 투자를 망치는 ‘원초적 본능’ 세 가지 [조수연의 그래픽저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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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스스로 투자를 망치는 ‘원초적 본능’ 세 가지 [조수연의 그래픽저널]
  • 조수연 편집위원(공정한금융투자연구소장)
  • 승인 2023.12.11 10: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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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러스트=조수연 편집위원
/일러스트=조수연 편집위원

올해 3월 말 기준 무려 9조1000억달러의 고객 관리자산(AUM) 규모를 자랑하는 세계 최대 자산운용 회사 ‘블랙록’(BlockRock). 블랙록의 iShares ETF 가입자는 4000만명에 이르고, 미국 은퇴자 3500만명이 블랙록 서비스를 받고 있다. 1988년 펀드 전업회사로 금융시장에 발을 들여놓은 필자는 펀드 자산관리 산업에 관심이 많다. 공교롭게 같은 해에 창업한 블랙록은 30여년 만에 세계 정상의 펀드 전문 회사가 되었는데, 무엇보다 끊임없이 고객에게 공개하는 투자 방법론에 특별한 관심이 끌린다. 과학적 투자론을 공부하고 고객 보호에 전력투구해 본 경험이 있는 금융상담사라면 블랙록 홈페이지에서 자산관리의 새로운 세계를 만나게 될 것으로 믿는다. 자산관리 세계 1위 기업 블랙록은 국내 대다수 금융 회사가 보이는 행태처럼 사모펀드 등으로 치사하게 고객 뒤통수를 치는 것이 아니라, 적극적으로 지식과 경험을 고객에게 공유하며 변동성이 커진 현대 금융시장에서 공생과 동반 성장을 추구한다. 고단수의 진정한 마케팅이다. 1등은 남다른 이유가 있다.

국내에서는 이러한 금융·투자의 원리에 관한 정보는 공급과 수요 모두에서 무시하는 경향이 있다. 양측 모두 그런 지식 학습은 노력과 비용이 들며, 당장 돈이 되지 않는다는 생각에서다. 대부분 금융 회사는 금융 소비자의 상품 회전수(turn-over)와 높은 판매수수료(또는 보수)를 목적으로 영업활동을 하고, 금융 소비자도 보통 단기적 기대 이익이 높아야 움직인다. 이러한 금융산업의 공급과 수요 환경은 초단기 몰빵투자를 종용한다. 그러나 블랙록의 생각은 다르다(다르다기보다는 국내 금융산업이 외면하는 투자 원리에 충실하다는 설명이 맞을 것이다). 필자가 금융 관련 글을 쓰기 시작한 이유도 블랙록의 생각과 같아서다. 이런 관점에서 블랙록의 ETF 브랜드인 iShares의 홈페이지에서 소개하는 유익한 투자 조언을 소개한다. 지난번 칼럼에서 ‘투자자의 20가지 공통 실수’를 소개했는데, 그 후속편으로 생각해도 좋겠다.

최근 <월스트리트저널>은 저명 투자가인 Mellody Hobson과 John W Rogers Jr의 칼럼을 게재했다. 그들은 올해 주식시장에서 찾을 수 있는 교훈은 ‘투자 함정에 빠지지 말라’(Don’t fall for these investing traps)고 경고했다. 2023년 증시는 단기 금리에 대한 불확실성이 좌지우지했는데, 좀 더 자세히 들여다보면 월가는 현실(reality)보다 인식(perception)에 지배당했다고 지적했다. 미국 주식시장은 경제지표가 드러내는 현실이 아닌 그 변화가 연준 금리 정책에 미칠 영향에 관한 기대에 과민 반응했다. 이를 내다보듯이 블랙록은 올해 초에 투자를 망치는 원초적 본능으로 세 가지 인지적 오류를 제시하고, 이를 피해야 한다는 보고서를 공개했었다. 블랙록의 주장은 행동경제학이 발견한 인간의 불합리한 행태와 경향(bias)을 금융시장에 접목한 것으로 볼 수 있다.

투자를 망치는 첫 번째 인지 오류는 ‘성과 추종’(performance chasing)이다. 금융 소비자는 금융 상품 안내장에서 ‘과거의 수익률이 미래 수익률을 보장하지 않는다’라는 경고 문구를 쉽게 볼 수 있는데, 이것은 성과 추종이라는 인지 오류를 방지하기 위한 제도적 장치이다. 사람들은 최근 벤치마크(투자성과 측정을 위해 사전에 설정하는 기준)를 초과하는 성과를 보였던 금융 상품을 선택하는 경향(bias)이 있다. 그들은 미래에도 이 성과가 지속하리라 믿는 경향이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성과 추종 경향으로 투자자는 지나치게 단기적 시장 뉴스에 반응하고 장기적 시장추세를 무시한다. 그러나 이러한 경향은 실증적으로 투자자에 불리하다. 블랙록 자체 조사에 따르면 2017년 6월 기준 상위 4분의 1 이상의 투자 성과를 보인 펀드 549개 가운데, 다음 4년 동안 같은 성과를 보인 펀드 비율은 3%에 불과했다.

투자를 실패하게 하는 두 번째 인지 오류는 ‘사후 과잉 확신 편향’(hindsight bias)이다. 사람들은 결과가 확인된 과거의 사건을 예측할 수 있었다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다소 어려운 개념의 이러한 인지 오류는 사람의 공통적 현상으로 금융시장에서 군집행동(herding)을 유발한다. ‘이미 알고 있었다’라는 착각은 어떤 강한 주가 상승기 이후에 투자할 때 월가 뉴스에 자주 등장하는 FOMO(fear of missing out)라는 현상을 유발하는데, 이 때문에 많은 투자자가 묻지마 투자에 편승하기도 한다. 결국 사후 과잉 확신과 FOMO를 배경으로 성과 추종은 금융시장에서 기승을 부린다.

자료 1. /출처=블랙록
자료 1. /출처=블랙록

블랙록은 자료 1에서 위 두 가지 인지 오류에 따른 단기 투자 결과가 바람직하지 않았다는 것을 보여준다. 자료 1의 실선은 1992년 미국 S&P500에 100달러를 투자했을 때 누적 투자 성과를 보여주는데, 2020년에는 약 1500달러까지 불어났다. 실선 주변에 표시한 녹색 원은 주식 펀드의 자금 유입이며, 원 크기가 클수록 유입 규모가 컸다는 것을 표시한다. 또한 검은 원은 채권 펀드의 자금 유입이다. 이 그림에서 주목할 것은 금융시장의 주요 사건 발생 시점에 위험 자산을 대표하는 주식 펀드와 안전 자산을 대표하는 채권 펀드로 자금이 유입하는 양태다.

잘 알다시피 2000년 전후 닷컴 버블이 터지며 주가가 폭락한다. 그러나 주가 폭락 직전인 주가 상승세가 지속하리라는 편향이 작용하며, 1999년에 주식형 펀드에 채권형 펀드의 31배에 달하는 자금이 대거 유입했다. 이들은 이후 큰 손실 보았을 것이 불 보듯 뻔하다. 그러나 2008년 미국 금융위기로 주가가 폭락한 직후인 2009년에는 반대로 채권형 펀드에 주식형 펀드의 6배 이상 자금이 몰렸다. 직전 주가 폭락세가 지속하리라는 공포가 작용한 것이다. 하지만 2009년 이후 미국 주가는 급반등하며 시장의 기대는 처참하게 무너졌다. 이러한 현상은 코로나19 대 유행병이 발생한 2020년에도 반복했다. 즉 자료 2는 직전 시장 성과가 계속된다는 믿음과 단기적 시장 이변에 과민 반응하여 성과 추종하면 투자 결과는 바람직하지 않다는 것을 설명한다.

마지막으로 투자를 실패로 몰아가는 인지 오류는 ‘손실 회피’(loss aversion)이다. 인류는 오랫동안 맹수의 습격 등 실질적인 위협(danger)을 방어하도록 길들여 있는데, 손실 회피는 인류가 문명 발전에 맞춰 진화하지 못한 잔재다. 전통적 분산 투자론의 바탕인 효용이론에서 합리적 인간은 위험(risk)을 회피하고 효용을 극대화하기 위해 행동하며, 이를 배경으로 자산 시장의 균형 가격을 설명한다. 그러나 사람은 확률적 개념인 위험보다 현실적 손실에 민감하다. 또 같은 크기의 이익보다 손실에 더 아파한다는 것이 행동경제학의 발견인 손실 회피 이론이다. 이러한 손실 회피 경향은 투자자가 시장 변동에 과민 반응하도록 하며, 특히 시장 동요기에는 ‘단기’를 더욱 중시하게 하는 원인이기도 하다. 여러 가지로 사람의 본능은 장기 투자를 어렵게 한다. 그러나 블랙록은 금융시장의 역사적 기록에서 장기보다 단기 투자의 결과가 좋지 않았다.

자료 2. /출처=블랙록
자료 2. /출처=블랙록

즉, 1919년부터 2021년까지 미국 주식시장은 시점 이동에 따라 포함 기간의 데이터를 조정하는 rolling 기준으로 20년 수익은 모두 음의 수익이 없었고, 1972년 이래 S&P500 또한 rolling 기준으로 12년 이상 기간의 수익도 음의 수익이 없었다. 장기 투자에도 손실이 없었다는 것이다. 자료 2는 1989년 말에서 2021년 말까지 rolling 기준으로 S&P500 수익이 3개월 미국 국채 수익을 초과하는 기간별 비율이다. 자료 2에 따르면 측정 기간이 길어질수록 초과 수익을 본 비중이 높아지는데, 10년 측정 기간에서는 수익을 초과하는 비중이 88%였다.

블랙록의 분석에 따르면 역사적 자료는 장기 투자가 유리하다는 근거로 차고 넘치는데, 인간의 본능인 성과 추종 성향, 사후 과잉 확신 편향, 손실 회피 성향이 장기 투자를 어렵게 한다는 것이다. 지난 칼럼에서 소개한 CFA의 투자자 공통 실수 20가지도 결국 블랙록과 같은 주장인데, 투자자는 자기만의 투자 목표와 계획을 먼저 세우고 이에 맞춰 장기적인 투자를 추구해야 생애 자산관리에 성공할 확률이 크다는 것이다. 여기에 금융 소비자가 스스로 유혹을 이기고 장기 투자를 하기는 쉽지 않으니, 그들은 이를 자문할 공정한 전문가가 필요하다는 점도 강조한다. 그러나 아쉽게도 한국 금융산업에서는 공정한 금융자문가를 찾는 것은 현재 불가능하다. 어쩔 수 없이 금융 소비자 스스로 해결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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