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종희 날개 단’ KB금융그룹 더 높게 비상하려면… [조수연의 그래픽저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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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종희 날개 단’ KB금융그룹 더 높게 비상하려면… [조수연의 그래픽저널]
  • 조수연 편집위원(공정한금융투자연구소장)
  • 승인 2023.11.27 10: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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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러스트=조수연 편집위원
/일러스트=조수연 편집위원

‘도주공’(陶朱公). 중국인이 부자의 대명사로 사용하는 말로, 춘추시대 말기에 실존한 정치가이자 군사가, 상인이었던 범려(范蠡)라는 인물을 가리킨다. 평생 노블레스 오블리주를 실천하며 상업의 성인 또는 상업의 신으로 추앙받은 그는 ‘오월동주’(吳越同舟)라는 고사성어의 주인공인 월왕 구천을 도와 오나라를 무너뜨린 책사다. 그는 천하의 절반을 주겠다는 구천의 제안을 고사하고 단호히 은퇴했다. 이후 제나라에서 상업으로 천금을 모았으나 제나라 왕이 명성을 듣고 정치를 맡기려 하자 다시 ‘도’(陶)라는 지역으로 떠났다. 이곳에서 19년 동안 세 번의 천금을 모았으나 두 번은 가난한 친구와 친지에 나누었고, 나중에 나이가 들어서는 자손에 넘겼다. 이때 그가 남긴 고사성어가 ‘삼취삼산’(三聚三散)이다. 오늘날 현대인에게 부와 관련한 탐욕을 경계하는 말이 아닐 수 없다. 특히 은퇴 후에도 집착을 버리지 못한다는 소식이 들리는 전직 금융지주 회장에게 이 같은 범려의 얘기를 전하고 싶다.

자료 1. /출처=한국금융연구원
자료 1. /출처=한국금융연구원

윤석열정부가 신자유주의 경제를 신조(motto)로 등장했다는 것은 이제 대한민국 국민이면 누구나 알고 있다. 금융자본은 신자유주의 경제의 첨병이다. 그러나 정부는 은행 산업에 대해서 줄곧 신자유주의 경제 주장과 다소 상충하는 듯한 강경한 규제로 일관하고 있다. 윤석열 대통령은 은행을 공공재라고 정체성을 공개적으로 규정한 이후 최근에는 은행 앞에서 자영업자는 종노릇 하기 힘들며 은행 갑질이 심하다고 비판했다. 그러면서 은행 산업 독과점 구조를 완화하고 경쟁체제를 도입, 금융감독을 강화해야 한다고도 말했다. 이러한 정부 주장의 배경에는 코로나19 대유행병 이후 폭증한 은행 이자 이익이 있다. 한마디로 대한민국 국민 모두가 질병, 고물가, 고금리로 고통받던 기간과 은행이자 이익이 늘어난 기간이 일치했는데도, 은행은 성과급 잔치를 벌이고 이익의 사회 환원에는 인색했다는 것이 정부의 시각이다. 은행 산업은 억울하다고 주장하지만, 정치권마저도 금리 상승에 의한 은행 이자 이익 증가를 은행 경영 노력과 무관한 국민 부담으로 보며 ‘횡재세’를 도입해서라도 성과급 잔치에나 쓰이는 은행 이익을 사회에 강제 환원해야 한다고 입법을 추진하고 있다.

자료 2. /출처=KB금융지주 사업보고서
자료 2. /출처=KB금융지주 사업보고서

이런 가운데 금융지주 회장의 은퇴 후 전관예우가 여론의 관심을 모으고 있다. 내용에 따라 다시 한번 은행 산업의 이익, 성과급 잔치 등과 관련한 논란을 불러일으킬 수 있기 때문이다. 윤종규 전 회장은 2014년 5월 KB금융 임영록 회장과 이건호 국민은행장 사이의 주 전산 시스템을 놓고 벌인 경영권 분쟁 후 이들이 모두 중징계를 받고 물러난 틈을 타 천재일우의 기회로 KB금융지주 회장으로 같은 해 11월 등장했다. 사실 몇 차례 KB금융 내외를 전전하던 그에게는 그 자체가 엄청난 보상이었을 것이다. 윤 회장은 이후 약 9년 동안 KB금융그룹을 이끌었는데 성공적이었다는 평가가 지배적이다. 윤 회장은 지난 20일 퇴임식에서 고객과 주주, 임직원에 감사 인사를 표했다. 그런데 KB금융그룹의 상반기 사업보고서의 이사회 기록에는 윤종규 전 회장에 대한 특별한 은퇴 후 대우를 KB금융지주가 준비한다는 의구심을 갖게 하는 단서가 보인다.

자료 3. /출처=KB금융지주 사업보고서
자료 3. /출처=KB금융지주 사업보고서

KB금융지주가 공시한 반기사업보고서에 따르면 올해 3월 23일 이사회는 ‘이사 퇴직금 규정’을 제정했다. 하나금융그룹의 김승유 전 회장과 김정태 전 회장도 윤종규 전 회장처럼 모두 장기간 그룹 회장직을 역임했는데 둘 다 거액의 특별퇴직금을 받았다. 10년간 하나금융지주 회장으로 재직하다 지난해 임기를 마친 김정태 전 회장은 특별공로금 25억원에 퇴직금, 상여를 더 해 48억원을 받았다. 이 때문에 이번 ‘이사 퇴직금 규정’ 제정이 윤종규 회장에게 거액의 특별퇴직금을 챙겨주기 위한 준비 과정이라는 추측이 있다. 만일 그렇다면 9년 만에 물러나는 윤종규 전 회장은 현 대표이사가 취임 이전에 존재한 규정이 아니라 경영 지배력을 행사하는 동안 스스로 퇴임에 대비해 퇴임 직전에 퇴직금 특혜를 받을 수 있도록 규정을 마련했다는 의혹을 받을 수 있다. CEO가 최대 능력을 발휘하려면 다양한 보상이 있어야 한다는 의견이 있을 수 있으나, 후임 CEO가 아니라 이미 임기가 다한 CEO가 스스로에 혜택을 주는 것이 평가 보상 취지에 부합하는지 의문을 갖는 것은 당연한 일일 것이다.

윤종규 전 회장의 특별퇴직금 규모는 재임 기간이 근사하고 2022년 은퇴한 하나금융 김 전 회장 사례를 볼 때 최소 50억원으로 추정할 수 있다. 한편 자료 3에서 보는 것처럼 과거 공시자료를 추적하면 윤종규 전 회장은 2014년 11월 회장 취임 이후 2022년 사업연도까지 총 110억원, 연평균 14억7000만원의 적지 않은 보수를 받았다. 윤 회장의 평균 연보수는 고액으로 소문 난 KB국민은행 임직원의 2022년 기준 평균 연 소득 1억1369만원의 약 13배 수준이다. 그동안 임원 보수 기록을 보면 매년 평가보상위원회가 윤 전 회장에게 충분하게 보상한 것으로 보이는데, 거액의 특별공로금을 챙겨주는 게 적정한 것인지 이사회가 여론을 살펴 신중히 판단해야 할 것이다.

자료 4. /출처=KB금융지주 사업보고서
자료 4. /출처=KB금융지주 사업보고서

하나금융을 모범 사례로 생각한다면 KB금융지주의 윤 전 회장에 대한 전관예우는 특별퇴직금에서 그치지 않을 전망이다. 먼저 은퇴한 하나금융그룹 김정태 전 회장도 특별퇴직금은 물론 고문 계약을 맺고 그룹에 자문 활동을 하고 있어 이전에 고문을 둔 선례가 없던 KB금융그룹에 본보기를 제공한다. 한편 우리금융은 은퇴한 CEO를 최근 고문으로 추대했는데, 손태승 전 회장은 연봉 4억원에 업무추진비 1000만원, 이원덕 전 행장은 연봉 2억8000만원에 업무추진비 500만원을 제공하는 계약을 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에 따라 윤 전 회장의 예상 보수액은 손태승 전 회장 이상, 김정태 전 회장 수준이 될 것으로 추정할 수 있다. KB금융그룹 반기 사업보고서에는 이미 경영자문역 위촉에 대한 이사회 기록이 선례로 있어 윤 전 회장도 경영자문역으로 추대할 확률이 높다. 만일 윤 전 회장이 KB금융지주가 제시하는 예우 조건을 수락한다면, 내년 3월 정기주주총회 안건으로 올라갈 수 있다.

경영자문역은 일종의 ‘고문’으로 양종희 신임 회장을 비롯한 후배에게 그동안 축적한 경영 노하우를 전수하는 등 그룹 전반에 걸쳐 조언자 역할을 하는 자리라고 알려진다. 그러나 과연 KB를 비롯한 금융그룹에 이러한 전임 회장의 경영 자문이 실질적으로 필요할지 의문이다. 필자가 보기에 금융그룹을 구성하고 운영하는 조직은 고도의 전문 소양을 가진 인력 집단이다. 그룹 회장은 우월한 판단이나 아이디어 생성을 하는 것이 아니라 자기 경영 방침에 따라 조직 정점에서 의사 결정을 하는 사람이고, 원활한 의사결정을 지원하기 위해 회장은 인사권을 활용하여 사내에 친위 조직을 구축한다. 다른 한편으로는 회장이 가진 인사권 등을 동경하고 미래 성장을 꿈꾸는 금융그룹 조직원 집단은 회장의 선택을 받기 위해 노력하고 추종한다.

결국 임기가 끝난 전임 회장이 조직에 어떠한 형태로든지 영향을 미칠 관계를 유지하면 전임 회장과 그를 추종하는 집단은 신임 회장에겐 부담으로 남을 수밖에 없다. 이 때문에 결국 신임 회장은 조직을 장악하기 위해 서서히 전 회장 사람을 정리하는 인사 전략을 추진한다. 10년간 장기 집권한 김승유 전 회장 후임으로 등장한 김정태 전 회장이 하나금융그룹에서 지배력을 확보하는 인사 과정을 필자는 목격했다. 아무리 좋은 취지라 하더라도 윤종규 전 회장이 고문으로 남아 있는 한 그의 조직 내 존재는 양종희 신임 회장에게는 큰 부담으로 작용한다. 또한 이러한 금융그룹 회장의 내부 승계 행태는 관치금융에 빌미를 주는 것이기도 하다.

좀 낯설겠으나 이슬람의 한 분파인 수피즘(Sufism)의 격언이 KB금융그룹에 도움이 될 것 같다. ‘두 마리 새의 날개를 묶어 놓으면 날개가 네 개로 늘어나도 날 수 없다’라는 교훈이다. 윤종규 전 회장이 글머리에 소개한 범려의 지혜를 좇아, 후임 양종희 회장이 자유로운 날갯짓을 하며 더 멀리, 더 높이 KB금융그룹이 비행하도록 배려하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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