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자경제] 각주구검(刻舟求劍). 강물에 빠뜨린 칼을 뱃전에 새겨 찾는다는 어리석고 융통성이 없음을 뜻하는 사자성어입니다. 경제는 타이밍입니다. 각주구검의 어리석음을 되풀이하지 않게 경제 이슈마다 네 글자로 짚어봅니다.
“일주일 안으로 그린벨트를 만드시오.”
1971년 1월 19일, 박정희정부는 새 도시계획법을 시행합니다. 이 법에 따라 6개월 안에 ‘도시개발계획선’을 설정해야 합니다. 보안을 유지하기 위해 몇 안 되는 학자들이 불려갑니다. 그리고 반년이 조금 지난 7월 30일. 서울시와 경기도 일원에 454㎢의 구획이 그려집니다. 모든 건축물의 신·증축이 제한되는 곳, ‘그린벨트’가 탄생한 것입니다.
“미래 세대를 위해 남겨놔야 할 보물.”
지난 8일 오후 고인이 된 박원순 시장은 이해찬 더불어민주당 대표와 만납니다. 이번 주 서울시가 발표하는 부동산대책과 관련, 당의 입장을 듣기 위해서입니다. 박 시장은 회동에 앞서 그린벨트 해제에 대해 분명한 어조로 말합니다. 2년 전 김현미 장관과 논쟁 때처럼 ‘사수 입장’에서 변한 건 없었습니다. “당대에 필요하다고 쓸 수 있는 게 아니다”.
홍남기 경제부총리가 어제(14일) “그린벨트를 풀어 주택공급 확대를 검토하겠다”라고 밝힌 지 12시간 만에 박선호 국토교통부 차관이 그린벨트 해제를 검토하지 않고 있다고 말했습니다. 박 차관은 오늘 오전 라디오에 출연해 “정부 차원에서 검토한 적 없다. 서울시와도 이 부분에 대해 협의가 시작되지 않았다”라고 밝혔습니다.
박 차관은 또 “그린벨트를 풀 수 있다, 풀릴 것 같다는 소문이 돈다. 정치적인 고려로 서울시 입장이 바뀌었다는 이야기도 나온다”라고 라디오 프로그램 진행자가 재차 묻자 “이미 훼손된 지역도 많지만, 미래 세대를 위해 남겨둬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라고 답했습니다. 일주일 전 박원순 시장과 같은 ‘미래 세대를 위해 남겨둬야’라는 표현을 썼습니다.
진행자가 “여당인 민주당에서도 그린벨트 해제를 요구하는 목소리가 나온다”라고 말하자 “이제까지 생각하지 않았던 모든 이슈를 테이블 위에 올려놓고 논의하는 건 가능하다”라고 말하면서도 “아직 그린벨트 관련 본격적인 논의는 착수되지 않았다”라고 덧붙였습니다. 이어 그린벨트 해제는 “신중하게 봐야 한다고 본다”라고 거듭 강조했습니다.
앞서 홍남기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어제 저녁 지상파 방송에 출연해 “주택 공급 대책의 하나로 그린벨트 해제를 검토하고 있다”라고 밝힌 바 있습니다. 오늘 부동산 관련 비공개 당정 협의를 마친 조응천 의원은 서울시 그린벨트 해제 방안에 대한 기자들의 질문에 “그런 것까지 포함해 주택 공급 방안에 대해서 범정부적으로 논의하게 된다”라고 말했습니다.
한편 ‘그린벨트’와 관련한 가장 최근 여론조사에서는 해제에 반대한다는 응답이 많았습니다. 여론조사기관 한국리서치가 2018년 10월 2~4일 전국 성인 남녀 1000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조사 결과, 그린벨트 해제를 통한 수도권 주택공급 확대에 대해 ‘대체로 반대’ 29.8%, ‘대체로 찬성’ 29%, ‘매우 반대’ 23.6%, ‘매우 찬성’ 13.1%로 나타났습니다.
이 보다 앞서 한국사회여론조사연구소가 같은 해 9월 21일 전국 성인 남녀 1008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여론조사에서는, 수도권 그린벨트 해제에 대해 ‘매우 찬성한다’ 11%, ‘찬성하는 편이다’ 32.4%, ‘반대하는 편이다’ 29.7%, ‘매우 반대한다’ 21.8%로 나타났습니다. 그린벨트 해제 반대 응답이 한국리서치 조사는 11.3%p, 한국사회여론조사연구소는 8.1%p 많았습니다.
이 같은 소식에 누리꾼들은 정부 부처 간 ‘엇박자’를 꼬집고 있습니다.
“경제부총리 공개발언을 국토부 차관이 뭉개는 클라쓰인가요?” “아직도 정부 부처 간에 업무소통과 조율이 안 되는데 무슨 부동산을 잡겠나” “뭔가 그냥 일 터지면 주먹구구식으로 막기 바쁘고 부처 간의 협업이 이루어진다는 느낌 없이 다 따로 노는 기분” “아침에 한 말이 저녁에 바뀌고 이사람이 한소리 하면 딴사람이 딴소리 하고. 그러면서 뭘 하겠다고?”.
그린벨트 해제 수순에 무게를 싣기도 합니다.
“민주당이 범인인가요 서울시장님 돌아가시자마자 그린벨트 해제 논의라니” “협의가 없었다는 거지 안하겠다는 얘기는 아닌 거 같은데” “서울전시장 죽자마자 바로 그린벨트 해제” “내가 삐딱한 건가.......... 국회의원들 정부고위직들 서울근교 그린벨트 땅 소유 하고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을 멈추지 못하겠어”.
집값 떨어질까 걱정하는 투기꾼들을 비웃으며 ‘해제 반대’ 목소리를 높이기도 합니다.
“투기꾼들 집값 떨어질까봐 벌벌 떨고 있네..ㅎㅎ” “그린벨트 풀어 주택을 건설하면 수도권 집중 그만큼 심화된다. 강남집값 더 상승한다. 그린벨트를 풀 게 아니라 지금이라도 수도권 분산을 강력하게 신속히 실시해라. 일본도 우리의 그린벨트 부러워한다. 국토부 말 들어라” “그린벨트 다 훼손되고 쬐끔 남아 명맥 유지 하는데 그나마 없애려하다니. 후손에게 물려줄 마지막 젖줄입니다. 훼손하지 말기 바랍니다” “그린벨트 해제해서 개발하면 좋아할 인간은 딱 2가지다. 그린벨트 땅 가지고 있거나 그 주위에 집땅 가지고 있어서 돈 버는 사람.... 그리고 투기꾼!! 절대 그린벨트 해제하면 안된다.... 돈이 더 들더라도 노후주택 사업하는 게 맞다”.
정부가 ‘임대차 3법’을 강화하겠다고 나서자 일주일 새 1억~2억원씩 뛰어오른 전세가 속출하고 있습니다. 집주인들의 매물 회수와 호가 높이기가 맞물리면서 강남뿐만 아니라 강북, 경기 남부까지 ‘10억원 전세’(전용 84㎡ 기준)가 확산하고 있습니다. 7억~8억원대 매물이 소진되면서 전세 실거래가가 9억원을 돌파하자 집주인들이 높여 부르기 시작한 것입니다.
“상위 20%의 인구가 80%의 부를 소유한다”. 1896년 이탈리아 경제학자는 ‘인류 역사는 소수 엘리트가 다수의 대중을 지배한다’라고 주장합니다. 그 논거로는 계층별 토지 소유 현황을 제시합니다. 오늘은 ‘80대20 법칙’의 빌프레도 파레토 탄생 172주년입니다. 두뇌의 20%가 문제의 80%를 푸는 게 아닌, 두뇌의 100%를 활용한 집값 해법을 바라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