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자는 2000년 투자신탁회사에서 출발해 증권회사로 전환한 금융회사에서 30년 가까이 근무했다. 본점과 지점 생활을 통해 금융회사 행태를 조금은 안다. 과거 1990년대 무렵까지는 기업 회계 투명성이 다소 흐릿했던 때가 있었다. 기업의 접대비 총액 한도에 제한이 있었고 영업 현장에서는 마케팅 접대가 성행하여 회계상 접대비가 늘 부족했다. 이를 타개하기 위해 부족한 접대비 대신 광고선전비를 배정했고, 이를 판촉물이나 광고물을 분식회계 처리하는 것이 공공연했다.
이후 기업, 특히 금융회사는 선제적으로 접대비, 광고선전비 등 접대성 경비에 대한 준법감시를 강화하면서 이런 관행은 자취를 감췄다. 필자는 이것이 그저 옛날 얘기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이 같은 회계 부정을 오히려 ‘온고이지신’(溫故而知新)하는 금융회사가 있다는 기사를 보고 아연실색하지 않을 수 없었다.
지난달 국회 정무위원회는 국정감사에서 NH농협생명보험의 ‘보험 판촉물 관련 리베이트 의혹’을 집중 추궁했다. 앞서 농협생명은 지난해 12월 지역 농·축협의 마케팅 활성화를 위해 판매촉진용 물품으로 핸드크림 세트 10만개(총액 약 20억원)를 수의계약으로 발주했다. 통상 금융회사는 엄격한 계약업무 규정을 두고 적용한다. 당연히 이 정도 금액이라면 경쟁 입찰이 원칙인데, 수의계약을 적용한 것부터가 의혹이 생길 수밖에 없다.
농협생명은 아마 경쟁 입찰을 피하고자 농협하나로유통삼송센터와 납품 계약을 한 것으로 추정된다. 보통 계열사와 거래는 수의계약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실제 납품은 전남 완도군에 있는 피부관리숍에서 이뤄졌으며, 이곳은 농협생명 고위직인 3급 직원의 동생이 운영하는 업체로 알려졌다. 더군다나 해당 업체는 물품을 절반인 5만개만 납품했고, 나머지 물품 금액만큼 분식 거래한 것으로 드러났다. 필자가 본점에서 거액 판촉물품 계약을 담당했던 경험에 따르면, 이번 사건은 농협생명 내부 권력층의 지원이 있었거나 내부통제 시스템의 부실이 의심된다.
현재 농협생명의 대표 박병희는 해당 사건이 벌어진 지난해 말 상근 부사장이었다. 거액 물품 구매인 만큼 당시 박병희 부사장도 결제라인에 있었다. 박병희 대표에 대해서도 최소한 감독 책임을 물을 것이 불가피한데, 국감에서는 박 대표가 농협금융지주 내부감사 과정에서 ‘자금은 11층(농협중앙회 소재)에 갖다 줬다’라고 진술했다는 허영 더불어민주당 의원의 폭로가 있었다. 이에 대해 농협금융지주는 그러한 진술이 없었다고 해명했다. 최근 강호동 농협중앙회장의 사법 리스크가 중첩하고 있는 상황에서 박병희 대표의 진술 여부는 민감한 것임이 틀림없다.
박병희 대표의 직접 연루 여부와 관계없이 이번 농협생명의 부정회계 사건은 이미 멸종된 공룡시대에 이었던 불법 관행이 아직도 농협에서 버젓이, 그것도 본점에서 자행되고 있다는 점이 필자를 아연실색하게 한다. 혹시 모르니 농협중앙회뿐 아니라 농협금융지주 등 전체적인 감사가 필요할 것으로 보인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