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묘한 덩어리’ 인간의 뇌 [김범준의 세상물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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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묘한 덩어리’ 인간의 뇌 [김범준의 세상물정]
  • 김범준 편집위원(성균관대 교수)
  • 승인 2025.06.25 1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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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이비드 J. 린든의 ‘우연한 마음’
/사진=이미지투데이
/사진=이미지투데이

손바닥이 위를 향하도록 두 손을 모아 앞으로 가지런히 펼쳐 보라. 나의 뇌는 그 위에 올라가는 그리 크지 않은 1.4kg 정도의 말랑말랑한 덩어리다. 이 작은 곳에 나의 감정과 이성, 내가 이해하고 기억하고 느낀 모든 것이 담겨 있다. 아인슈타인의 특수상대성이론에 대한 나의 이해, 돌아가신 부모님과의 소중한 추억, 지금도 생생한 첫딸이 태어날 때의 기쁨, 모두 이 안에 있다. 인간의 뇌가 우주에서 가장 경이롭다는 말에 고개를 끄덕이지 않을 도리가 없다. <우연한 마음>의 저자 데이비드 J. 린든은 조금 다른 결의 얘기를 들려준다. 인간의 뇌는 최적의 설계가 결코 아니며, 기나긴 진화의 역사에서 임시변통 해결책들이 되는 대로 쌓여 이루어진 기묘한 덩어리라고 주장한다. 1925년형 포드 자동차 모델 T를 주고는 원래의 설계에서 어떤 것도 제거하지 말고 기존 구조에 부품을 더해서 새 차를 만들라고 했을 때 만들어지게 될 기묘한 자동차 같은 것이 인간의 뇌라고 말한다. 진화는 공학자가 아니라 땜장이다.

가게에서 아이스크림콘을 주문하면 동그랗게 뭉친 아이스크림 몇 국자를 콘에 올릴지 점원이 묻는다. 우리 인간의 뇌는 세 국자 아이스크림콘을 닮았다. 가장 먼저 퍼 올린 첫 번째 국자에는 심박, 호흡, 체온 등 기초적인 신체 기능을 제어하는 뇌간, 몸을 움직이는 것을 조절하는 소뇌, 시각과 청각 등의 원시 중추가 있는 중뇌가 들어 있다. 가장 안쪽에 있는 이곳은 개구리와 별반 다르지 않다.

첫 번째 국자 위에 얹어진 두 번째 국자에는 생쥐와 크게 다르지 않은 변연계가 담겨 있다. 변연계에는 아몬드와 비슷하게 생긴 편도체가 있어서 두려움과 공격성 같은 감정을 관장한다. 손원평 작가의 멋진 소설 <아몬드>의 주인공이 감정을 잘 느끼지 못하는 것도 바로 편도체의 문제다. 변연계에는 바다 동물 해마의 모습을 닮았다고 해서 마찬가지로 해마라 불리는 부위도 있지만 실제 모습은 양의 두 뿔을 더 닮았다. 해마는 사실과 사건에 대한 기억을 처리하고 저장하는 중요한 역할을 한다. 해마 주위에 저장되었던 기억은 시간이 지나면서 장기 기억으로 전환되어 뇌 피질의 여러 영역에 분산되어 저장된다. 해마와 그 주변 뇌 부위가 제거된 환자는 수십 분 정도의 단기 기억은 가능하지만, 이를 장기 기억으로 전환하는 능력을 잃어버린다. 잠깐 시간이 지나면 기억이 사라지는 주인공이 등장하는 영화 <메멘토>와 <내 머릿속 지우개>를 떠올릴 수 있다.

우리 인간의 뇌를 다른 동물과 명확히 구별 짓는 것은 개구리의 뇌(첫 번째 국자)에 생쥐의 뇌(두 번째 국자)가 얹어진 다음에 올라간 세 번째 국자다. 우리 뇌의 꼭대기와 앞부분에 있는 뇌의 전두피질에서 의식적인 자각과 논리적인 사고가 이루어진다. 우리 각자의 성격을 특징지어서 당신과 나를 다른 사람으로 만드는 것도 바로 이곳이다. 폭발 사고로 쇠 파이프가 전두피질을 관통한 큰 부상을 입은 사람이 있다. 이 사람은 오래전의 장기 기억은 온전하게 가지고 있지만, 하루아침에 완전히 다른 성격을 가진 사람이 되었다는 사례가 있다. 진화의 과정을 되짚어 보면 우리 인간을 다른 동물과 구분 짓는 것은 감정이 아니라 이성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감정을 담당하는 변연계는 진화의 역사에서 이성을 담당하는 전두피질보다 훨씬 더 이른 시기에 등장했기 때문이다. 우리는 간혹 인간의 감정에 과도한 의미를 두지만, 중요한 정보에 밑줄을 쳐서 더 잘 기억하도록 하는 것이 감정의 주요 기능이다.

이미 가지고 있던 부위를 크게 바꾸지 않고 그 위에 새로운 고위 기능을 담당하는 부위가 얹어지는 방식으로 출현한 인간의 뇌를 보여주는 흥미로운 사례가 책에 소개되어 있다. 바로 ‘맹시’라는 현상이다. 망막을 통해 들어온 시각 정보는 뇌의 중앙 부분에 있는 시상을 거쳐서 뒤통수 쪽에 있는 1차 시각 피질로 전달되고 이후에 ‘어디’와 ‘무엇’으로 나뉘는 두 경로를 따라 정보가 처리된다. 시각 피질 손상을 입은 사람에게 물체를 보여주면 눈과 망막에는 아무런 문제가 없어도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다고 답한다. 하지만, 이 환자에게 어림짐작으로라도 손을 뻗어 앞에 놓인 사물을 잡아보라고 하면 우연보다 높은 확률로 성공한다. 중뇌에 들어있는 파충류 시절의 원시 시각중추가 여전히 작동하고 있어서 가능한 맹시 현상이다. 보지 못해도 보는 맹시 현상이 가능한 이유는 우리 뇌에 두 개의 시각중추가 있기 때문이다. 우리 인간의 뇌에는 이처럼 진화의 역사가 유물처럼 남긴 부위들이 여전히 포함되어 있다. 뇌는 바닥부터 체계적으로 만들어진 공학자의 최적 설계가 아니다. 과거를 바꾸지 않고 필요에 따라 새로운 기능을 담당하는 부분들이 되는대로 쌓아 올려진 임시변통이다.

뇌가 최적 설계가 아니라는 것은 뇌를 구성하는 부품인 신경세포(뉴런)의 작동에서도 볼 수 있다. 신경세포는 축삭이라는 긴 가지를 통해 세포 안팎 전압차의 스파이크 펄스의 형태로 정보를 송출한다. 축삭 말단은 시냅스라고 불리는 아주 좁은 틈을 통해서 다른 신경세포의 수상돌기에 연결된다. 스파이크 전압 정보로 축삭 말단에 있는 작은 주머니 안에 들어있는 신경전달물질이 방출되면, 이 물질은 좁은 시냅스 틈을 가로질러 확산해 수상돌기 쪽에 있는 신경전달물질 수용체에 결합해서 이곳의 이온 채널을 연다. 양의 전하를 가진 나트륨과 칼륨 이온은 각각의 채널을 통해 빠르고 느리게 신경세포 내부로 유입되는데 이 과정을 통해 내부의 전압이 높아지면 수상돌기 쪽 신경세포도 스파이크를 생성해 자신의 축삭을 통해 정보를 내보낸다. 이처럼 전기회로를 빼닮은 신경세포의 미시적 작동 방식을 수식으로 표현해 멋지게 구현한 것이 1963년 노벨상을 받은 호지킨-헉슬리의 신경세포 모형이다. 처음 컴퓨터 프로그램으로 이 모형을 구현해 보고 강한 인상을 받았다. 프로그램을 작성하고 실행해서 신경세포 스파이크의 모습을 화면에서 보고 있는 바로 이 순간, 내 뇌의 신경세포가 화면에 보이는 스파이크를 만들어 내고 있다는 느낌이 묘하게 감동적이었다. 내 뇌 안의 스파이크가 스파이크의 수학 모형을 프로그램으로 구현했고 그 결과인 화면의 스파이크를 내 뇌가 스파이크의 형태로 인식하고 있다는 깨달음이었다. 기나긴 진화의 역사를 거치고 나서 이제 드디어 인간은 우리 뇌의 미시적 작동 방식을 이해하고 설명할 수 있게 되었다.

전기적인 방식으로 정보를 처리하는 것은 우리 뇌 안 신경세포나 컴퓨터 CPU나 그리 다르지 않지만, 신경세포는 우리가 이용하는 전자 장치와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비효율적이다. 먼저, 이온 채널의 열리고 닫힘으로 구현되는 뇌의 정보처리에서 신경세포는 1초에 기껏 1천 개의 스파이크를 만들어 내지만 컴퓨터 CPU는 초당 100억번의 계산을 수행할 수 있다. 게다가 뇌 안에서 정보가 전달되는 속도는 기껏 시속 160km에 불과해 우리가 사용하는 전자 장치의 정보 전달 속도에 견줄 수 없을 정도로 느리다. 다른 문제도 있다. 축삭을 통해 스파이크가 전달되어도 축삭 말단에서 신경전달물질이 방출될 확률은 30%에 불과하다. 기껏 힘들게 정보를 보냈는데 정보를 받은 신경세포가 이를 나 몰라라 무시할 확률이 70%라는 얘기다. 이처럼 빈약하고 형편없고 불확실하게 작동하는 부품으로 구성되어 있는데도 우리 뇌가 그처럼 훌륭하게 작동하고 있다는 것은 정말 놀라운 일이다.

공학자라면 결코 사용할 리 없는 허접한 부품으로 이루어진 우리 뇌가 전체로서는 놀라운 방식으로 작동할 수 있는 이유가 있다. 우리 뇌는 천억 개나 되는 신경세포가 무려 500조개의 시냅스로 연결된 방대한 병렬식 연결 구조를 이용한다는 사실이다. 약 10조개의 조절 가능한 연결망 가중치를 이용하는 최근의 생성형 인공지능도 마찬가지로 방대한 병렬식 연결 구조를 이용해 놀라운 결과를 보여 주지만 엄청난 전기에너지를 소비한다. 인간은 매일 세끼 밥 먹는 것만으로 이보다 더 큰 연결망의 작동을 유지하고 있는 셈이다. 인간의 뇌는 구성요소의 측면에서는 너무나도 비효율적이지만 에너지 소비의 측면에서는 인간의 공학적 설계를 훌쩍 뛰어넘는 효율성을 보여준다. 우리 뇌는 비효율적이어서 오히려 경이롭다.

이렇게나 방대한 신경세포의 세세한 세부 연결에 관련된 정보는 결코 유전자에 모두 담길 수 없다. 딱 302개의 신경세포를 가지고 있는 예쁜 꼬마선충은 1만9000개의 유전자 중 9000개의 유전자를 이용해서 신경세포 사이의 연결을 만들어 낸다. 인간의 유전자는 인간 뇌의 복잡한 구조를 생각하면 턱도 없이 작은 2만 3천 개에 불과하다. 물론 이중 무려 70%가 뇌에서 발현되는 것으로부터 뇌의 엄청난 생물학적 중요성을 떠올릴 수는 있다. 하지만, 이렇게 적은 수의 유전자로 500조개 시냅스 연결의 세부 배선을 속속들이 만들어 내는 것은 단연코 불가능하다. 결국 우리 뇌의 세부 배선을 유전자가 만들어 낼 리가 없다. 발생 과정과 출생 이후의 경험이 뇌의 세부 배선을 만들어 낸다. 유전체가 진화의 이야기가 기록된 책이라면 뇌의 배선은 개인의 경험이 기록된 책이라고 저자가 말하는 이유다.

/출처=시스테마
/출처=시스테마

<우연한 마음>에서 저자는 우리 인간의 독특한 특징인 긴 유년기, 고도의 기억력, 장기적 애착 관계, 자면서 꾸는 꿈, 종교적 충동조차도 기이하게 진화한 뇌 구조의 한계에서 비롯된다고 주장한다. 큰 뇌를 가진 아이는 엄마의 산도를 통과할 수 없어서, 인간은 진화의 과정에서 작은 머리를 가진 아기를 낳고 이후 빠르게 뇌를 성장시키는 전략을 택했다. 인간 유아의 연약함은 부모의 돌봄이 필요한 긴 유년기를 만들었고, 이 과정에서 부모 사이의 긴밀한 애착 관계가 중요해졌다. 인간 여성의 배란 은폐도 아빠를 곁에 머물게 해서 아이의 육아를 공동으로 책임지게 하는 진화가 택한 효과적인 해결책이다. 모든 인간 집단이 보여주는 종교적 사고의 충동도 우리 뇌가 정보를 처리하는 방식에서 비롯된다는 것이 저자의 주장이다. 우리의 좌뇌는 주어진 정보를 통합해 그럴듯한 서사 구조를 만들어 내는데 탁월해서 대부분의 종교적 서사는 동정녀의 출산처럼 자연적으로 가능한 추론을 인지적 비약과 결합한 형태를 보여준다. 종교와 과학의 관계에 대한 저자의 주장도 새겨들을 가치가 있다. 저자는 종교적 신앙을 가지면서도 진화생물학을 포함한 과학적 세계관을 받아들일 수 있으며, 또한 우리는 양심적이고 도덕적인 무신론자가 될 수도 있다고 말한다.

책의 제목 <우연한 마음>은 긴 진화의 과정에서 임시변통 해결책들이 우연히 쌓여 우리 인간의 마음이 출현했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인간의 뇌는 너무나도 비효율적으로 작동하지만, 인간의 마음과 의식은 실로 경이롭다. <코스모스>에서 칼 세이건도 비슷한 이야기를 들려준다. 우리 인간의 뇌는 아주 작은 공간 안에 담긴 놀랍도록 거대한 세계다.

*책을 읽고 함께 이야기 나눌 주제

1. 우주에서 가장 경이로운 것이 우리 인간의 뇌라는 이야기 들어보셨죠? 한편, 저자는 사람의 뇌가 진화의 과정에서 임시변통 해결책들이 되는대로 쌓여 이루어진 기묘한 덩어리라고 주장합니다. 두 주장은 서로 모순되는 것인가요?

2. 왜 동물만 뇌를 가질까요? 뇌는 많은 에너지를 소비해서 유지하기에는 너무나도 비싼 신체 기관입니다. 그런데도 왜 우리 인간은 큰 뇌를 가지게 되었을까요?

3. 뇌는 뇌간, 소뇌, 중뇌, 시상, 시상하부, 변연계, 편도체, 해마, 피질 등의 구조를 가집니다. 지금 이 문장을 읽고, 이해하고, 말로 설명할 때 여러분의 뇌에서 일어나는 일련의 과정을 뇌의 구조와 연관 지어 설명해 보세요.

4. 시각 정보가 망막에서 시각피질을 거쳐서 뇌에서 처리되는 경로는 ‘어디 경로’와 ‘무엇 경로’가 있습니다. 올리버 색스의 <아내를 모자로 착각한 남자>, 테드 창의 단편 <외모 지상주의에 대한 소고: 다큐멘터리>, 대상을 보면서도 아무런 감정을 느끼지 못하는 카그라스 증후군을 뇌의 정보처리 방식에 근거해 설명해 보세요.

5. 우리는 사랑과 같은 인간의 감정에 큰 가치를 부여합니다. 하지만 우리 인간의 뇌가 다른 동물과 두드러지게 다른 부분은 감정을 담당하는 영역이 아니라 이성적 판단과 논리적 추론을 담당하는 전두엽 피질이라고 할 수 있어요. 이성보다 감정을 더 중시하는 우리의 관점은 왜 발생하는 것일까요?

6. 간혹 전생의 기억을 주장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전생의 기억을 가능하게 하는 뇌의 메커니즘을 상상할 수 있을까요?

7. 자다가 ‘가위눌림’ 경험하신 적 있으신가요? 이 현상을 수면과 꿈에 대한 책의 내용으로 설명해 보세요.

8. 저자의 주장처럼 종교와 과학은 평화롭게 공존할 수 있을까요? 공존이 필요할까요? 공존이 가능하려면 종교와 과학은 상대를 어떤 방식으로 바라봐야 할까요?

9. SF 소설을 읽는 독자는 주어진 세계관의 설정 안에서 ‘불신의 유예’를 통해 소설에 몰입합니다. SF, 꿈, 그리고 종교에서 일어나는 ‘불신의 유예’를 비교해 주세요.

10. 현대의 AI는 주로 인공 신경망의 형태로 구현됩니다. 인공 신경망과 인간 뇌는 어떤 면에서 비슷한가요? 미래의 AI도 여전히 인간의 뇌를 닮을까요? 방대한 학습과 기억, 그리고 논리적 추론이 거대한 연결망과 학습을 통한 미세 배선 조정이 아닌 다른 방식으로도 구현될 수 있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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