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트위스터스’, 혁명 또는 혁신의 유통기간 [김경훈의 시네노믹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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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트위스터스’, 혁명 또는 혁신의 유통기간 [김경훈의 시네노믹스]
  • 김경훈 칼럼니스트
  • 승인 2024.09.05 13: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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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트위스터스’의 한 장면. /사진=워너브러더스코리아
영화 ‘트위스터스’의 한 장면. /사진=워너브러더스코리아

영화 <미나리>를 만든 정이삭 감독에게 연상되는 건 오스카의 위너임에도 잔뜩 움츠린 채 딸아이를 감싸안고 수줍게 인터뷰하던 모습이다. 그렇게 위축되고 방어적이던 그가 호기롭게 블록버스터 한편을 들고 나타났다. 그는 안전한 길을 갔지만, 그의 후크는 쉽게 드러나지 않았지만, 놓치지 않았던 것은 거창한 감정적 방류 없이도 죽음을 무릅쓰고 토네이도 앞에 맞서는 장면이었다.

패트릭 스웨이지가 <폭풍 속으로> 던져지기 전에 그에게 도전해 오던 찰나와 영원의 궤적 속에서 훼손된 것은 금력으로 환원되지 못한 권위이지만, 그 고조된 열기와 찡그린 미간은 기필코 누군가를 감염시키기에는 충분한 것이었다.

하지만 <트위스터스>의 케이트는 너무도 간단하게 담담히 토네이도 속으로 달려간다. 망설임이 없다는 것과 미련이 없다는 것은 다른 차원이지만, 혁명의 시작과 끝에서 맞닥뜨리는 수많은 탄식처럼 운명적이다. 혁명은 필연적으로 유통기간을 갖는다. 하지만 정이삭에게는 유효기간을 가진 신념들의 초기 과잉이 없다. 대신 죄의식이나 부채 의식이 지금 서 있는 세계의 붕괴를 두려워하지 않게 만든다.

소련이 무너졌을 때 중국이 아닌 이슬람 문명권을 다가오는 미국에 대한 가장 큰 위협으로 간주하게 만들던 이란의 회교 혁명은 그 기운이 다한 것일까? 이란 국민은 최근 지속적으로 지난 45년간의 회교 혁명이 직전 45년보다 자부심을 얻는 대신 경제적 궁핍함을 가져왔다고, 이란의 최고지도부가 무시할 수 없게 토로하고 있다.

더구나 이란은 트럼프가 폐기했던 오바마와의 핵 합의를 다시 꺼내 들고 해리스와 마주 앉을 수 있다는 미련을 버리지 못할 것이다. 마찬가지로 북한 또한 존 볼턴(트럼프 안보 보좌관)에게 놀아나며 핵 협상을 무위로 만들었던 트럼프를 미워도 다시 한번 손꼽아 기다릴 것이다. 핵을 지렛대 삼아 유일 군사 대국 미국과 공존을 모색하는 북한과 이란이, 미국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얼마나 몸을 사리고 있는지 알만한 일이다.

혁명의 열기나 국가주의의 고양, 혹은 기술혁신으로 인한 과학기술 혁명이 핵 분열하듯이 패러다임의 계통과 부문을 장악하지만, 45년 정도의 시간이 지나면 다른 물줄기를 향해 다른 광원을 향해 뻗어나간다. 돌이켜보면, 프랑스 대혁명 이후 쏟아져 나왔던 무수한 혁명과 쿠데타, 그리고 과학기술 혁명이 결국은 인간 욕망의 물줄기인 부르주아지 자본주의와 호흡을 같이 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심지어는 볼셰비키 혁명조차도 그 욕망의 환류와 굴레 안에 있었다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유럽이나 미국, 아시아의 공업 강국 등의 산업자본, 군산복합체, 그리고 정보혁명 이후 전 지구적 금융자본에 이르기까지 혁명과 혁신을 통해 자본주의를 꽃피운 나라들은, 모두 규모의 경제가 레버리지를 잃게 되는 순간을 맞이하게 된다. 달리 보면 공황과 장기 불황은 혁신의 유효기간이 끝날 때쯤 불현듯 손님처럼 찾아온다.

영화 ‘트위스터스’의 한 장면. /사진=워너브러더스코리아
영화 ‘트위스터스’의 한 장면. /사진=워너브러더스코리아

<트위스터스>의 케이트를 둘러싼 두 그룹은 사실 나름대로 정당성을 가지고 있다. 타일러는 자연재해에 노출된 인류의 오래된 방식대로 마치 영매나 사제처럼 토네이도와 교감할 수 있다는 듯이 굴지만 본색은 그들을 위로하는 것이다. 하비는 부동산 개발업자와 손잡고 토네이도가 휩쓸고 간 지역의 토지를 헐값에 사들이는 것처럼 보이지만 그의 속내는 트위스터스의 형성 메커니즘을 분석하는 것이다.

진정한 위로는 두려워하지 말라는 허세가 아니라 경외의 대상을 분석하여 실체를 드러내는 것이다. 마찬가지로 우리 앞에는 선진 자본주의 국가들의 산업주기에 따라 직면하게 되는 자본의 한계 효율성 약화, 누적된 재정적자와 인구통계학적 변화에 따른 잠재 성장력의 고갈 등에 따른 5등급 토네이도 같은 공황이 다가오고 있다. 명백하지만 입장에 따라 해석을 달리할 것이고 그에 따라 처방도 달라질 것이다.

미국은 케이트처럼 공황을 길들여 왔고, 중국은 한국 대신 미국식 모델을 따르려고 하겠지만 기획된 시장의 붕괴는 늘 예상 밖의 문제에 봉착하기 마련이고, 일본은 한국전과 월남전 등에서 주입된 산업 활력을 잊지 못하고 30년 경기침체에서 벗어나기 위해서 또 다른 동아시아 전쟁을 획책할 것이고, 유럽은 이미 미국의 디지털 식민지로 전락한 데 더해 중국과의 30년 교역에서 비교우위와 자신감을 완전히 상실했다.

그에 비해 우리가 직면한 ‘한국적 리스크’(idiosyncratic risk)는 5년 단임제 정부의 명줄을 시민사회나 대규모 기업집단 등 내부가 아닌, 주변의 노쇠한 강국들이 쥐고 있을 거라고 지레짐작하는 ‘김옥균 신드롬’에서 비롯된다.

10·26사태, 6월 항쟁, 97년 외환위기, 촛불시위 등에는 언뜻 외세의 그림자가 비치기도 하지만, 본질적으로 군부가 지닌 위세, 시민사회의 문화적 역량, 대기업들의 경쟁력 등이 충돌하며 변화를 일으켜 온 것이다. 외세를 끌어들이는 것 외에는 전혀 실력을 갖추지 못한 왕조 말기의 성긴 엘리트 의식 따위와는 비교할 수 없다.

그러니 부동산 포퓰리즘에만 기대지 말고 지난 70년간 전쟁의 폐허 위에 쌓아 올린 우리의 성취를 긍정하고, 우리가 이미 외환위기와 금융위기 또는 코로나19 팬데믹을 겪으며 갖추어 놓은 매뉴얼과 분석보고서를 우선 꺼내보아야 한다.

노동과 자본, 노동과 여가의 관계가 근본적으로 어떻게 변했는지 분석해서 감당이 가능한 고용의 상실을 파악하는 것을 전제로 하여, 세 번의 위기에서 채집한 외환보유액과 환율, 자산시장의 버블과 금리, 통화량과 인플레이션 등을 삼각 분석하여 입체적으로 조망해야 할 시점이다. 가을 아침 자동차 보닛에는 서리가 내리겠지만, 햇볕은 다시 보닛을 달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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