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ack to the Basic” 2024 대한민국 증시 [오인경의 그·말·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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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ack to the Basic” 2024 대한민국 증시 [오인경의 그·말·이]
  • 오인경 후마니타스 이코노미스트
  • 승인 2024.01.31 1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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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이미지투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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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증시에 모처럼 신선한 바람이 불어오는 듯하다. 만년 저평가된 기업들을 찾아내 제값을 받도록 해보자는 움직임이 정부 차원에서 적극적으로 모색되고 있기 때문이다. 이른바 ‘기업 밸류업 프로그램’으로 불리는 정책이 시동을 거는 모양새다. 한국 증시는 최근 들어 연일 사상 최고가를 경신하는 몇몇 선진국 증시 흐름과 너무나 동떨어진 답답한 흐름을 보이면서 우려스럽다는 반응들이 적지 않다. 더군다나 지난해 말부터 최근까지 다양한 ‘코리아 디스카운트 해소 대책’이 연이어 발표됐는데도 증시 반응은 냉소적일 만큼 무덤덤했다. 지난해 11월 전격적으로 시행된 공매도 금지 조치마저 없었더라면 과연 한국 증시는 어땠을까? 아마도 지금보다 훨씬 더 썰렁한 모습이지 않을까 하는 암울한 생각부터 앞선다.

언제부턴가 자고 일어나기만 하면 해외 증시는 연일 사상 최고치를 기록했다는 뉴스로 넘쳐난다. 이토록 우호적인 환경인데도 유독 한국 증시만 유난히 지지부진한 모습이다. 그 원인으로는 다양한 이유들을 내세울 수 있다. 높은 중국 경제 의존도와 중국 경기 침체에 따른 기업 실적 부진, 부동산 경기 급랭에 따른 부동산 PF 부실 심화 우려, 미국과 일본 등 선진 해외 증시로의 자금 이탈 지속, 고물가 및 고금리 환경에 따른 내국인의 투자 여력 감소, 2차전지 관련주를 비롯한 몇몇 테마주 위주로 급등락을 거듭하는 투기적인 증시 분위기, 지배 주주의 사익 추구는 용이한 반면 투자자 보호 장치는 극히 미흡한 열악한 투자 환경 등등.

/사진=이미지투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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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리 둘러봐도 그다지 긍정적인 요소들을 찾아보기 어려운 시기에 ‘저평가된 기업들을 제값으로 올려놓기’ 프로젝트가 정부 차원에서 진행되고 있다는 소식은 분명 반가운 소식이 아닐 수 없다. 한국 증시는 선진국 증시에 비해 현저히 낮은 가치 평가를 받고 있다. 시장 평균 PBR(주가순자산비율)만 비교해 봐도 금세 알 수 있다. 미국 증시는 4.6배, 일본 증시는 2.4배인데 비해 한국 증시는 불과 0.9배에 거래되는 실정이다. 증권시장에서 거래되는 기업의 가치가 장부가치보다 낮게 거래되는 이유 또한 가지각색이다. 대표적인 이유로 ‘주주 환원 정책’이 미흡한 걸 꼽을 수 있다. 구체적으로는 선진국 대비 턱없이 낮은 배당금 지급과 자사주 매입 소각이 부족한 점을 들 수 있다. 또한 대기업 오너들이 부담하는 과도한 상속세 때문에 굳이 저평가된 기업의 가치를 적정 수준 이상으로 끌어올리려는 노력을 회피한다는 점도 문제다. 유독 한국 증시에서 가치투자 또는 장기 투자가 뿌리를 내리지 못하는 이유 또한 이런 측면에서 찾을 수 있다.

우리나라 자본시장은 1992년 이전까지만 하더라도 외국인들이 직접 투자할 수 없었다. 자본시장 개방은 1992년 1월에서야 극히 제한적으로 허용되었다. 자본시장 개방 초기에 외국인들이 가장 적극적으로 사들인 종목들은 대부분 PER(주가수익비율)이 극히 낮은 기업들이었다. PER이 불과 2∼3배에 머물고, PBR 또한 0.1∼0.3배에 불과한 기업들이 거래량이 부족하다는 이유만으로 장기간 홀대를 받아오다가 외국인들이 사들이기 시작하자 놀라운 급등세를 이어갔다. 태광산업, 대한화섬, 백양(BYC), 한국타이어, 삼성화재 등등은 일명 귀족주로 변신했다. 이들 몇몇 극소수의 종목들이 소위 ‘저(低)PER 혁명’을 이끌었다.

/사진=이미지투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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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증시에서도 PER이나 ROE(자기자본수익률)과 같은 개념이 차츰 자리를 잡기 시작했다. 그 뒤를 이어 블루칩이라는 개념이 등장했고, 1996년 무렵부터는 자산주 개념이 등장하면서 국내 증시를 풍미하기 시작했다. PBR이 또 하나의 가치 척도로 인정받기 시작한 셈이었다. 한국 증시에서 ‘가치투자’를 표방하는 투자 문화가 싹트기 시작한 것도 그 무렵이었다. IMF 경제 위기를 겪고 난 뒤 닷컴 버블 광풍이 몰아치자, 가치투자는 잠시나마 조롱의 대상으로 전락한 적도 있었다. 그 후 몇몇 자산운용사들을 중심으로 우수한 투자 성과를 지속하면서 가치투자 방식의 명맥을 이어왔지만, 대략 2015년 이후부터 급격한 내리막길에 접어들었다. 디지털 혁명을 비롯, 바이오·엔터·게임·2차전지 관련주 등등 온갖 신성장 산업을 주도하는 성장주들이 마구 쏟아져 나오자, 구경제에 초점을 맞춰오던 가치주들의 인기는 금세 시들해지고 말았다. 많은 가치투자 전도사가 퇴장하기 시작했고, 가치투자 철학을 표방하던 몇몇 자산운용사들의 사세도 급격하게 쇠퇴하고 말았다. 어쩌면 이런 흐름 때문에 저(低)PBR로 대표되는 저평가 주식들이 지금껏 양산되는 결과를 빚었다고 해도 그리 틀린 말은 아닐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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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갖 테마주를 끊임없이 양산해 오던 국내 증시에서 저PBR 주식들이 새로운 테마처럼 각광받는 풍경은 몹시 생경하다. 왜냐하면 저PER이나 저PBR 주식들은 그 자체로 ‘저평가된 주식’임을 미리 인증받은 셈이나 마찬가지인데, 그런 카테고리에 묶인 주식들이 어찌 한때의 인기나 유행에 휘둘리는 테마주로 분류될 수 있단 말인가. 아무튼 정책 당국에서 모처럼 유의미한 증시 정책을 추진한다고 하니 기대를 갖고 지켜볼 일이다. ‘잃어버린 수십 년’을 극복하고 무려 34년 만에 신고가를 기록한 일본 증시에서도 이미 적잖은 성과를 보인 바 있다고 하니 정책 당국에서도 일본 정부의 밸류업 정책을 면밀히 살펴보고 벤치마킹하면 좋을 듯하다.(키움증권 자료에 따르면 일본 내 PBR 1배 미만 기업의 비중은 2022년 말 51%에서 지난해 44%로 감소했는데, 그 사이 니케이225의 PBR은 약 30% 상승했다)

/사진=이미지투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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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증시가 여타 선진국 대비 만년 저평가 상태를 벗어나지 못하는 이유는 여럿이다. 지난 한 해만 되돌아보더라도 연이어 터져 나온 대형 주가조작 범죄가 드러나면서 수많은 투자자가 거액의 손실을 봤다. 작전 세력 덕분에 주가가 급등한 틈을 타 대주주가 폭탄 매물을 쏟아붓는 파렴치한 행태까지도 생생히 목도했다, 제도상의 허점 때문에, 기관과 외국인 중심으로 자행된 불법적인 공매도 때문에 개인투자자들의 원성도 그칠 날이 없었다. 이제라도 ‘기업 밸류업 프로그램’을 통해 자사주 매입 소각과 배당 확대 등 주주 환원 정책을 획기적으로 강화하는 한편, 대주주의 지위를 악용한 사익 추구 행위를 원천적으로 차단하는 방안들도 적극 도입하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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