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늑대사냥’, 잔인함 아래에서 [영화와 경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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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늑대사냥’, 잔인함 아래에서 [영화와 경제]
  • 김경훈 칼럼니스트
  • 승인 2023.06.05 1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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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늑대사냥’의 한 장면. /사진=TCO㈜더콘텐츠온
영화 ‘늑대사냥’의 한 장면. /사진=TCO㈜더콘텐츠온

교련 수업이 고등학교 교과과정에 떡하니 자리 잡고 있던 시절, 소풍 대신 개구리복을 입고 행군을 가야만 했다. 은근슬쩍 수통에 담아갔던 ‘캡틴큐’ 한 병이나 달짝지근한 ‘진로’ 포도주 한 병이 유일하게 숨 쉴 틈이었고, 선생님들도 눈감아 주는 듯했다.

여름이면 플라스틱 소총 위에 철모를 걸어놓고 느티나무 아래에서 월남전 참전용사였던 교련 선생님의 무용담을 듣곤 했다. 우리 군이 월남에서 얼마나 용감했고 잔인했었는지.

태평양 적도 주변의 열대우림 지대는 일제에 징용되어 끌려갔거나, 미군의 연합군으로 파병되었거나, 사실상 가해자로서의 기억이 안개처럼 흐릿하다. 하지만 3차 세계대전은 결국 이곳에서 시작될 것이다.

연쇄적으로 대만해협, 한반도, 일본열도, 캄차카반도로 번져나갈 수도 있지만, 그전에 인류는 대륙간탄도탄(ICBM)이나 극초음속 미사일을 앞에 두고 심각한 성찰을 해야 한다. 아마도 유럽은 방관자적 입장에서 미국 본토가 전쟁터가 되는 것을 염두에 두고 움직일 것이다.

때마침, 키신저는 남중국해에 문제가 있다는 점을 인정하면서도 공해의 자유 원칙을 통해 해결할 방법을 찾아볼 수 있지만, 대만과 관련해서는 풀 수 없는 문제라고 단언하며 시간만이 이를 해결할 수 있다고 강조한다.

그는 또한 중국이 세계지배가 아닌 안보를 추구하지만, 아시아에서는 지배세력이 되기를 원하고 있다며 일본이 이에 대응해 대량 살상 무기를 자체 개발할 것이고, 이러한 상황이 발생하는 데는 짧게는 3년, 길게는 7년이 걸릴 것으로 내다봤다.

결국, 동아시아·태평양 지역에서의 군비경쟁은 핵과 미사일(잠수함 포함)로 귀결되는 것이다. 전투기와 항모는 단지 핵미사일 발사 이전의 전투, 치킨게임의 자동차 경적에 불과하다.

이 과정에서 미군의 압도적 군사력은 달러 지배력처럼 서서히 약해질 것이다. 중국을 견제하기 위해 동맹국의 군사력 강화를 용인하는 것이 오히려 미국의 영향력 감소를 가져올 것이고, 이 지점에서 미국 공화당은 기회를 잡을 것이다.

영화 <늑대사냥>의 벌크선이 마닐라에서 부산까지 실어날라야 하는 것이 잔인하고 극악무도한 범죄자만이 아닌 것은, 법 밑에 꿈틀거리는 야수의 본능처럼 법 위에 군림하는 기득권의 욕망 또한 유구하기 때문이다.

잔혹한 폭력의 향연이 윽박지르듯 벌어지다가 갑자기 폭력의 방향이 바뀐다. 2차 세계대전 기간 야만적인 생체실험을 자행했던 독일과 일본의 파시스트적 흔적은 지워지지 않는다. 아무 때나 아무 곳에서나 나타나 되묻는다. 신이여, 저들은 자신이 무슨 짓을 저질렀는지 알게 될 수 있을까요?

약하디 약한 인간의 몸을 금강불괴로 만들어 탄생시킨 살인 병기는 범죄자들을 인정 없이 내려찍는다. 스탠리 큐브릭의 <시계태엽 오렌지>처럼 동정심의 역류가 일기도 하지만, 돌이켜 보면 속 쓰릴 뿐이다.

죽음충동이 쾌락법칙 안에 수렴될 만큼 인간 생명은 물화하지 않는다. 인간 신체에 대한 직접적인 훼손이, 죽음을 찰나의 아름다움으로 묘사하거나 죽음을 가벼이 언급하는 것에 대한 반동으로도 읽히지 않는다.

그렇다 하더라도 잔인함 아래 억눌려 있는 미학적 밸런스는 깨뜨려지지 않는다. 생체실험용으로 쓰였던 시체 더미가 돼지 사육장에 먹이로 버려지는 모습에선 수년간 구제역으로 도살되기도 전에 생매장당했던 가축들의 울음소리가 떠오르기 때문이다.

인간과 자연의 공존이 가까워졌다고 우쭐해 할 때 합리성이라는 도그마는 점점 더 도구화되었고, 자본주의 경제 시스템은 패닉(공황)에서 벗어난 듯 보이지만 여전히 소비위축과 신용경색은 진행되고 있다.

자연의 역습이 사실은 생태계의 복원을 가져오는 방향으로 작동하고 경제 공황이 사실상 시장실패에 대응하는 자본주의 경제 시스템의 자기조정 능력이라는 관점은 주기적으로 반복된 현상 속에서 자동으로 형성된다.

때때로 공황은 역성혁명, 부르주아혁명, 프롤레타리아혁명 등과 함께 다가와 격차를 타파하기도 하지만, 그 징후나 주기에 적응한 정보혁명 이후의 자본가들에게는 자산을 증폭시키는 기회가 되기도 한다.

따라서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루스벨트가 아닌 후버 전 대통령에 가까워 보이는 지금, 우리는 사회안전망을 확충하고 국제분쟁에 휘말리지 않게 지정학적 리스크를 회피하는 데 역량을 집중해야 한다. 다시 한번 공동체의 이름을 걸고 천지신명의 가호가 있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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