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풋옵션’ 발목 잡힌 교보생명 신창재, 경영권 넘어가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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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풋옵션’ 발목 잡힌 교보생명 신창재, 경영권 넘어가나
  • 김인수 기자
  • 승인 2021.03.19 10: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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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약서에 ‘FMV와 매입 당시 투자자가 지급한 가격 중 높은 가격으로 산정한다’ 명시
업계선 “과도하게 FMV를 부풀렸다 하더라도 계약 취소할 만한 법적 근거는 아니다”
신 회장 승소해도 1조 투자금 환불, 패소하면 2조 풋옵션에 이자까지 떠안아야할 지경
사진=교보생명
사진=교보생명

신창재 교보생명 회장이 IPO(기업공개)를 제때 하지 못하면서 재무적투자자(FI)인 어피너티 컨소시엄과 맺은 ‘풋옵션’(정해진 가격에 특정 대상을 팔 수 있는 권리)에 발목이 잡혀 경영권마저 흔들릴 위기에 놓이게 됐습니다.

풋옵션 문제로 신 회장과 FI의 분쟁이 국제중재법정으로 이어진 가운데 패소할 경우 2조원이 넘는 풋옵션 행사가격에 지연이자까지 지불해야 합니다. 문제는 승소를 하더라도 계약본질을 위배하지 않았기 때문에 신창재 회장이 적어도 1조원이 넘는 FI의 투자원금을 배상해야 합니다.

하지만 신 회장이 가진 자산 중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는 교보생명 지분(33.7%)으로 주식담보대출을 받는다고 해도 현재로선 1조원 이상의 재원을 마련하기 어려울 것으로 보입니다. 때문에 국제분쟁에서 승패를 떠나 신창재 회장의 경영권이 위태로울 수 있다는 게 업계의 분석입니다.

신창재 회장과 어피너티는 수년간 교보생명의 풋옵션 가격 산정을 두고 첨예한 갈등을 빚어왔는데요. 국제분쟁 시발점은 2012년으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사모펀드인 어피너티에쿼티파트너스를 포함한 IMM PE·베어링 PE·싱가포르투자청 등 FI는 2012년 6월 신 회장이 2015년 9월까지 IPO를 하지 않을 시 풋옵션 행사를 할 수 있는 주주간 계약을 체결합니다. FI는 그해 9월 대우인터내셔널이 보유한 교보생명 지분 24%를 주당 24만5000원, 총 1조2054억원에 사들였습니다. 지분은 어피너티 9.05%, IMM PE 5.23%, 베어링 PE 5.23%, 싱가포르투자청 4.5% 등입니다.

하지만 약속한 기간 내에 IPO가 이뤄지지 않자 어피너티는 투자금 회수를 위해 2018년 10월 1주당 40만9000원(총 2조122억원)에 풋옵션을 행사합니다. 그러자 신창재 회장은 어피너티의 가격산정이 터무니없다며 주당 20만원 안팎이 적당하다고 맞섭니다.

약 8000억원의 가격 차이에 갈등이 일자 어피너티는 딜로이트안진 평가보고서를 근거로 2019년 3월 국제상업회의소(ICC)에 국재중재를 신청한 것입니다. 이에 신창재 회장 측은 풋옵션의 공정시장가치(FMV)를 산출할 때 딜로이트안진회계법인이 평가 기준일을 고의로 FI에 유리하게끔 적용했다며 지난해 4월 이들을 검찰에 고발하면서 양사 간의 갈등은 법적 분쟁까지 확대됐습니다.

검찰은 올해 초 안진 소속 회계사 3명과 어피너티 소속 법인 관계자를 공인회계사법 위반 혐의로 불구속 기소했습니다.

어피너티도 물러서지 않고 2019년 신 회장의 배당금(약 850억원)과 지난해 신 회장의 자택 및 급여 가압류 조치에 이어, 지난달에는 FI가 신 회장 소유 주식에 대해서도 가압류하겠다며 신 회장 자택과 서울 광화문 교보생명 본사를 방문하기까지 했습니다.

이들이 이처럼 갈 때까지 가는 상황을 연출하고 있는 배경에는 ICC로부터 유리한 판결이 나올 것이라는 판단 때문으로 보입니다.

신 회장 측은 검찰이 FI와 안진회계법인의 공모에 대해 유죄로 판단하고 기소한 만큼 안진의 평가보고서에 대한 신뢰성을 잃게 만들었다는 이유에서입니다.

반면 어피너티는 검찰이 제출된 증거자료를 보고 기소를 했더라도 ICC에서 전혀 모르는 새로운 증거에 입각한 것이 아니므로 중재에 영향을 미칠 수 없다는 입장입니다.

어피너티 측은 공식입장문에서 “어피너티 컨소시엄은 국민연금과 싱가포르투자청 등 국내외 연기금의 투자금 회수를 위해 책임감을 갖고 중재에 임하고 있다”며 “계약에 근거한 합법적인 풋옵션 행사가 이행돼 올바른 본보기가 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해 중재재판에 임할 것”이라고 밝혔습니다.

신창재 회장 측에 걸림돌은 계약서상 FI가 풋옵션을 행사할 경우 평기기관이 산정한 FMV와 주식 매입 당시 투자자가 지급한 가격 중 비교해 높은 가격을 매수가격으로 산정한다고 명시돼 있다는 것입니다. 안진회계법인이 과도하게 FMV를 부풀렸다고 하더라도, 계약을 취소할 만한 법적 근거는 아니라는데 업계의 분석입니다.

특히 계약의 취소 사유에 해당하는 명백한 결격 요건이나 하자가 없기 때문에 ICC가 어피너티 측의 손을 들어줄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는 상황입니다.

결국 신 회장이 ICC 중재재판에 승소하더라도 FI에게 최소 투자금(1조2054억원)은 돌려줘야 할 것으로 보입니다. 패소할 경우에는 2조원이 넘는 풋옵션 행사 규모에 그간 발생한 지연이자까지 떠안아야 합니다. 이럴 경우 신 회장이 소유하고 있는 지분마저 매각해야 할 위기에 처하면서 신 회장의 경영권이 흔들릴 수 있다는 분석이 나옵니다.

신창재 회장으로서는 ICC 재판 승패 여부를 떠나 경영권에 큰 타격이 예상됩니다.

한편 ICC는 지난해 10월 1차 청문에 이어 이달 15~19일 2차 중재재판 청문회를 열고 있습니다. ICC 판정은 청문 이후 최종 결정이 나오기까지 통상 6개월 정도 소요되기 때문에 오는 9월쯤 중재재판 결론이 날 것으로 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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