옵티머스 제재심 앞둔 예탁결제원, ‘무인 보관함’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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옵티머스 제재심 앞둔 예탁결제원, ‘무인 보관함’일까
  • 이광희 기자
  • 승인 2021.02.15 10: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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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감원, 금융위와 달리 ‘기관경고’ 중징계 예고… ‘다자 배상’으로 분쟁 조정 가능성도

“무인 보관함 물품 목록에는 가방 2개가 들어가 있다고 돼 있다. 그러나 나중에 알고 보니 폭발물이 있었다. 폭발물을 가져온 손님은 특별해서 제도적으로 보안 검사, 세관 검사를 안 한다. 그래서 이들은 자기네 책임이 없다고 한다. 이제 와서 ‘누가 이 물건을 받았어?’라고 하더니 무인 보관함 관리자한테 왜 제대로 감시를 못 했느냐고 한다.”

이명호 한국예탁결제원 사장이 지난 8일 온라인 기자간담회에서 올해 주요 추진 사업 등을 설명하고 있다. /사진=한국예탁결제원
이명호 한국예탁결제원 사장이 지난 8일 온라인 기자간담회에서 올해 주요 추진 사업 등을 설명하고 있다. /사진=한국예탁결제원

지난해 10월 20일, 국회 정무위원회 국정감사에서 여야 의원들은 석 달여 전 자신을 ‘무인 보관함 관리자’에 비유한 공공기관의 사장을 꾸짖습니다. 대규모 펀드 환매 중단 사태를 빚은 자산운용 사무관리회사의 ‘무책임’을 질타한 것입니다. 기타공공기관으로 분류되는 회사의 사장은 같은 해 1월 29일 금융위원회로부터 내려앉은 ‘낙하산’입니다.

옵티머스자산운용 펀드 환매 중단 사태에 책임이 있는 금융회사와 기관 등에 대한 제재 수위를 논의하는 제재심의위원회가 사흘 앞으로 다가왔습니다. 감독당국은 올해 1분기 안으로 이들에 대한 제재를 마무리하겠다는 입장이지만 무더기 소송전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전망도 나옵니다. 사태의 책임론을 두고 금융감독원과 금융위원회가 이견을 보이고 있기 때문입니다.

금감원은 오는 18일 옵티머스 펀드 최대 판매사인 NH투자증권을 비롯해 수탁은행인 하나은행과 사무관리회사인 한국예탁결제원에 대한 제재심사를 갖습니다. 특히 예탁결제원의 경우 단순한 사무관리회사여서 펀드 사태의 책임이 없다는 금융위와 달리, 금감원은 중징계인 ‘기관경고’를 예고한 바 있어 제재심 결과에 관심이 모이고 있습니다.

금감원은 오는 18일 옵티머스 펀드 최대 판매사인 NH투자증권을 비롯해 수탁은행인 하나은행과 사무관리회사인 한국예탁결제원에 대한 제재심사를 갖는다. 사진은 옵티머스자산운용.
금감원은 오는 18일 옵티머스 펀드 최대 판매사인 NH투자증권을 비롯해 수탁은행인 하나은행과 사무관리회사인 한국예탁결제원에 대한 제재심사를 갖는다. 사진은 옵티머스자산운용.

옵티머스 펀드의 사무관리회사인 예탁결제원은 편입 자산과 관련한 증빙자료를 보관하고 기준가격을 산출하는 등 각종 펀드 관련 업무를 지원하는 일을 맡습니다. 하지만 예탁결제원은 부실 가능성이 높은 사모사채의 이름을 ‘공공기관 매출채권’으로 바꿔 달라는 옵티머스자산운용의 요청을 그대로 들어줘 피해를 키웠다는 지적을 받고 있습니다.

이에 대해 예탁결제원은 “옵티머스 펀드 관련 자산 검증 의무가 없다”라고 주장해왔으며, 금융위도 지난달 25일 예탁원의 주장에 힘을 실어주는 취지의 법령 해석을 내놓았습니다. “일반사무관리회사가 투자신탁의 기준가격 산정 등 업무를 위탁 수행하는 경우에는 자본시장법상 일반사무관리회사 관련 규정이 적용되지 않는다”라는 유권해석이 그것입니다.

반면 금융투자업계에서는 예탁결제원의 간단한 확인 절차만 이뤄졌어도 옵티머스의 대규모 사기행각은 불가능했을 것이라는 의견이 지배적입니다. 사모사채 인수계약서를 보내면서 공공기관 매출채권으로 기재해달라는 요청이 일반적인 상황으로 볼 수 없기 때문입니다. 금감원이 제재심을 앞두고 예탁결제원에 기관경고와 관련 직원 감봉 조치를 통보한 이유입니다.

옵티머스 펀드 환매 중단 사태와 관련한 금융감독원의 제재심의위원회 결과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사진은 윤석헌 금감원장. /자료사진=금융감독원
옵티머스 펀드 환매 중단 사태와 관련한 금융감독원의 제재심의위원회 결과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사진은 윤석헌 금감원장. /자료사진=금융감독원

한편 금감원이 예탁결제원에게까지 옵티머스 사태에 대한 책임을 물으면서 ‘다자 배상안’이 옵티머스 사태의 분쟁조정 방식으로 채택될 가능성이 커졌습니다. 다자 배상은 옵티머스 펀드 판매사인 NH투자증권뿐만 아니라 사무관리회사 예탁결제원과 수탁사인 하나은행이 함께 투자자에게 손해를 공동 배상하는 방식입니다.

다자 배상안이 떠오르는 데 대해 금융투자업계는 금감원이 수천억원의 옵티머스 펀드 피해액을 판매사인 NH투자증권에게만 배상하도록 하는 것에 부담을 느꼈기 때문이라는 시각입니다. 여기에 올해 1분기에 진행되는 옵티머스 펀드 분쟁조정위원회에서 이 같은 방식을 선택지로 고려하기 위한 포석이라는 해석입니다.

금감원 분쟁조정위원회는 그동안 여러 금융사가 책임이 있는 경우에도 판매사에 손해 배상액을 먼저 부담하게 한 뒤 다른 금융사에 구상권을 청구했습니다. 하지만 이번의 경우 NH투자증권이 자산운용사의 사기 행각을 몰랐던 피해자라고 주장하고, 환매자금을 임의 조정한 하나은행과 편입 자산 검증에 소홀했던 예탁결제원에도 책임 소재가 있다는 시각이 존재합니다.

따라서 18일 제재심 결과에 따라 다자 배상안이 고려될 가능성이 커졌습니다. 예탁결제원의 귀책사유가 인정되면 배상 책임을 물을 명분이 생기기 때문입니다. 금감원 관계자는 “예탁결제원에도 귀책사유가 있다는 결론이 나오면 다자 배상안도 여러 선택지 중 하나로 고려할 예정”이라고 말한 것으로 전해졌습니다.

사모펀드 투명성 개선 지원 사업. /자료=한국예탁결제원
사모펀드 투명성 개선 지원 사업. /자료=한국예탁결제원
한국예탁결제원 서울 지사. /사진=한국예탁결제원
한국예탁결제원 서울 지사. /사진=한국예탁결제원

“회사의 수행 업무와 관련해 감당할 일이고 정당한 부분이라면 주저하지 않고 부담을 지려고 하고 있다”. 낙하산 논란 속에 취임 한 돌을 넘긴 이명호 예탁결제원 사장이 옵티머스 사태와 관련해 지난 8일 기자회견에서 밝힌 입장입니다. 이 사장의 자칭 ‘무인 보관함 관리자’ 발언이 나온 지난해 7월 8일, 한 누리꾼의 반응이 메아리가 되지 않길 바라봅니다.

“본인들이 무인 보관함밖에 안될 거면 없애버려야 되는 게 맞는 거 아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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