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자경제] 코로나19에 더 뜨거운 ‘명품열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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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자경제] 코로나19에 더 뜨거운 ‘명품열풍’
  • 이광희 기자
  • 승인 2020.03.09 15: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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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자경제] 각주구검(刻舟求劍). 강물에 빠뜨린 칼을 뱃전에 새겨 찾는다는 어리석고 융통성이 없음을 뜻하는 사자성어입니다. 경제는 타이밍입니다. 각주구검의 어리석음을 되풀이하지 않게 경제 이슈마다 네 글자로 짚어봅니다.

나폴레옹으로부터 왕관을 수여받는 조제핀. /사진=위키피디아
나폴레옹으로부터 왕관을 수여받는 조제핀. /사진=위키피디아

“그대는 나의 영혼을 빼앗아갔소. 당신은 내가 생각하는 단 하나의 대상이오.”

1796년 오늘(3월 9일). 여섯살 연하의 볼품없는 군인 나폴레옹의 청혼을 마지못해 허락한 여인이 있었습니다. 마리 조제프 로즈 타셰 드 라 파제리, ‘조제핀’으로 더 잘 알려진 여인입니다. 낭비벽이 심했던 그녀의 사치는 8년 뒤 황후가 되면서 정점을 치닫습니다. 그리고 14년 뒤 결국 쫓겨난 그녀에게는 드레스 900벌, 장갑 1000켤레, 구두 500켤레가 남았습니다.

‘명품소비(名品消費)’. 세계적으로 유명하고 가격이 아주 비싼 상표의 제품을 백화점이나 상점에서 사는 일을 말합니다. 코로나19 확산으로 경기침체와 소비감소 우려 속에서도 명품소비는 두자릿수 증가율을 기록한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롯데·신세계·현대 백화점에 따르면 올해 1~2월 명품 매출이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각각 16.7, 16.4, 15.3% 늘었습니다.

반면 이들 롯데·신세계·현대 백화점의 같은 기간 전체 매출은 각각 22, 15.8, 12.1% 줄어든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이 같은 소비 양극화를 반영하듯 국내 최대 유통업체인 롯데쇼핑은 지난달 200곳의 오프라인 점포를 줄인다고 밝혔습니다. 지금 오프라인 유통업계에서는 ‘코로나19보다 소비 양극화가 더 무섭다’라는 말이 공공연하게 돌고 있습니다.

사진은 기사내용과 무관. /사진=픽사베이
사진은 기사내용과 무관. /사진=픽사베이

소비 양극화는 ‘호갱’으로 대변되는 글로벌 명품 브랜드들의 한국 고가정책을 부채질하고 있습니다. 2017년 프랑스 금융그룹 BNP파리바가 발표한 보고서에 따르면, 주요 명품 브랜드 국제 평균가격을 1로 봤을 때 한국은 1.14로 중국 다음으로 비쌌습니다. 여기에 대해 전문가들은 ‘베블런 효과’를 가리킵니다.

베블런 효과는 제품 가격이 비쌀수록 수요가 증가하는 사회 현상을 뜻합니다. 소비자의 허영심을 자극하기 위해 유독 한국에서만 일년에 수차례 가격을 올린다는 것입니다. 국내 최대 명품 커뮤니티에는 “가격이 올라도 제품을 사고 싶을 때 살 수 있었으면 좋겠다”라는 글들이 많이 보입니다.

이처럼 명품 소비가 증가하고 있는 우리나라와 달리 중국에서는 의미 있는 설문조사 결과가 나왔습니다. 지난달 26일 미국의 시장 조사 업체인 ‘루더 핀 아시아’는 중국 부자의 10%가량이 올해 명품 소비를 줄이겠다고 응답했다고 밝혔습니다. 이는 1년 전보다 4%p 높아진 것으로 지난해 12월 코로나19가 확산하기 이전에 설문조사한 내용입니다.

지난해 4분기 분위별 가구당 월평균 소득.(단위 천원, %)
지난해 4분기 분위별 가구당 월평균 소득.(단위 천원, %)
1, 5분위 소득증감률 추이. /자료=통계청
1, 5분위 소득증감률 추이. /자료=통계청

이 같은 소식에 누리꾼들은 지나친 사치소비를 경계하는 목소리를 쏟아내고 있습니다.

“나라경제 어렵다는데 저들은 잘나가” “이런 상황에 마스크 쓰고 명품을 들고 다니고 싶을까. 돈 있으면 써야겠지만 감염되는 걸 조금이라도 방지하기 위해 참아도 될 것을” “사람이 명품이 되어야지” “물가 상승의 조력자들” “좋다하니까 사는 거고 명품이라니까 따라서 사는 거고 ... 없는 사람은 결국 허영심에 가랑이 찢어질 것”.

소비 진작을 위해 필요하다는 목소리도 많습니다.

“자기 돈으로 사겠다는데, 도대체 뭐가 문제냐?” “살 사람은 사는 거지. 그럼 다 같이 소비 안하고 살면 다 손가락 빨고 죽는 거야” “소비를 해야 경제가 돌아가는데” “그래 니들이라도 써야지 내가 먹고 산다” “모 이리 남일에 관심들이 많냐? 명품을 사던 각자 일들이나 하고 살자”.

명품소비에 사용된 돈이 정당한 자금인지 조사할 필요성도 제기합니다.

“정부가 할 일은 명품을 사는 걸 주목하지 말고 명품 사는 사람들 중 올바르게 벌어들이지 못한 돈으로 명품에 소비하는 것을 철저하게 감시하고 색출해주길 바랍니다” “저 사람들 부정 수급자 있는지 조사해봐라”.

코로나19 피해 현황. /자료=질병관리본부
코로나19 피해 현황. /자료=질병관리본부

통계청이 지난달 20일 내놓은 ‘2019년 4분기 소득부문 가계동향 조사’를 보면 전체 가구당 월평균 소득은 477만2000원으로 전년 같은 기간보다 3.6% 늘었습니다. 그러나 분위별로 따져 보면 하위 20%의 월평균 소득은 132만4000원, 상위 20%는 945만9000원으로 여전히 격차가 컸습니다. 자영업자 등이 속한 사업소득도 월 89만1000원으로 2.2% 쪼그라들었습니다.

지난주 루이비통코리아는 코로나19를 비웃기라도 하듯 제품 가격을 3~4% 올렸다고 합니다. 초가삼간 섬돌에 덩그러니 놓인 ‘조제핀의 구두’가 아닌 건강한 나라경제를 바라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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