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자경제] 336억원 종이 쓰레기와 ‘무용지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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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자경제] 336억원 종이 쓰레기와 ‘무용지용’
  • 이광희 기자
  • 승인 2020.02.14 14: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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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자경제] 각주구검(刻舟求劍). 강물에 빠뜨린 칼을 뱃전에 새겨 찾는다는 어리석고 융통성이 없음을 뜻하는 사자성어입니다. 경제는 타이밍입니다. 각주구검의 어리석음을 되풀이하지 않게 경제 이슈마다 네 글자로 짚어봅니다.

현금 자동지급기 1979년 12월 신문광고. /출처=과학기술정보통신부 SNS
현금 자동지급기 1979년 12월 신문광고. /출처=과학기술정보통신부 SNS

“신기하네. 사람도 없는데 어떻게 저기서 정확하게 돈이 나오지?”

1979년 12월, 서울 명동의 한 은행 지점에서는 돈을 찾으려는 사람들이 기계 앞에서 장사진을 이뤘습니다. 너도나도 줄을 선 곳은 바로 현금 자동지급기(ATM·Automated Teller Machine) 앞입니다. 우리나라 최초의 ATM입니다.

당시 ATM은 현금인출만 가능했으며, 오직 전용 카드만을 이용하여 돈을 찾을 수 있도록 제작되었습니다. 하지만 ATM은 사람을 대체하며 점점 그 입지를 굳혀가더니 2015년에는 처리 건수 70억2000만건에 처리 금액도 347조원에 달했습니다.

이처럼 승승장구하던 ATM도 결제수단의 진화로 사람을 밀어냈던 자리를 다시 내어주고 있습니다. 14일 한국은행 지급결제 통계에 따르면 지난해 전국 ATM의 처리 건수는 약 56억5000만건으로 4년 전보다 20% 가량 감소했습니다. 처리 금액도 14% 줄어 298조원에 그쳤습니다.

온라인·모바일기기를 이용하는 고객이 늘자 은행들이 점포 축소와 함께 자동화기기를 대폭 줄였기 때문입니다. 한국은행은 수익을 내지 못하는 ATM이 많아져 은행들의 자동화기기 축소현상은 계속될 것으로 전망합니다.

IC카드 단말기. /사진=한국스마트카드
IC카드 단말기. /사진=한국스마트카드

점점 쓸모가 줄어들고 있는 ATM처럼 천덕꾸러기 신세가 된 것이 또 하나 있습니다. 바로 신용카드 종이 영수증입니다. 이 종이 영수증은 앞으로 소비자가 원할 때에만 발급할 수 있게 됩니다. 대부분 결제하자마자 현장에서 버려지는 실정을 반영해서입니다.

14일 여신금융협회에 따르면 새 부가가치세법 시행령이 지난 11일부터 시행됨에 따라 소비자는 카드 결제 후 단말기에서 영수증 출력 여부를 선택할 수 있게 됐습니다. 개정된 시행령은 휴대폰 문자나 모바일 앱 등 전자문서의 형태로도 영수증을 발급할 수 있도록 규정했습니다.

종이 영수증이 없어도 환불·교환에는 제약이 없습니다. 카드 결제에 사용했던 실물카드를 지참하고 승인번호·사용일시·금액 등의 정보만 확인하면 됩니다. 다만 할부거래는 별도 법에 따라 소비자 보호를 위해 이전과 동일하게 종이 영수증이 자동 출력됩니다.

국회와 기획재정부에 따르면 2018년 우리나라에서 카드 결제를 통해 발급된 종이 영수증은 연간 129억장, 발급 비용은 560억원에 달하며 이 가운데 60%는 현장에서 바로 버려지는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336억원이 손도 안 댄 채 휴지통으로 직행하는 것입니다.

신용+체크카드 승인금액. /자료=여신금융연구소
신용+체크카드 승인금액. /자료=여신금융연구소
카드별 평균 승인금액.(단위:원/건) /자료=여신금융연구소
카드별 평균 승인금액.(단위:원/건) /자료=여신금융연구소

한편 지난해 신용카드와 체크카드 구매액은 전년보다 5.7% 늘어 총 856조6000억원이었습니다. 전체카드 승인건수도 217억5000만건으로 9.7% 증가했습니다. 그러나 한번 긁을 때 얼마나 결제하는지 보여주는 평균승인금액은 3만9392원으로 3.7% 감소했습니다.

이 같은 소식이 알려지자 누리꾼들은 억울한 피해가 발생할지 걱정하고 있습니다.

“금액을 18000인데 180000으로 계산해 취소한 적이 있다. 영수증을 보고 이럴 경우도 어떻게 할지 가맹점에서 실수로 계산을 잘못할 경우 배상책임도 지어야 한다고 생각함! 다시 가서 실수를 지적했더니 그냥 미안하다고 하면서 귀찮은 표정이라 기분 상했음!” “세일 들어간 가격표시 보고 샀는데 계산은 예전 가격대로 계산하는 중소마트 있어 잘 봐야 된다. 계산 중 모니터를 소비자가 꼭 봐야 됨” “영수증 없애면 계산 틀렸다는 고객 더 많아질 텐데, 그땐 어떻게 감당하시려고?”.

부수적인 요구의 목소리도 나옵니다. “관공서에서 영수증 제출하라는 거 제발 없애라“.

새로운 제도의 시행에 따른 후폭풍도 걱정합니다. “아... 새로운 실업자들 양산되네요..ㅠㅠ” “영수증 프린터 업체도 끝났네”.

생활고를 반영하는 듯한 의미심장한 목소리도 있습니다. “카드가 사라져야 하는 세상에 영수증을 없애고 있구나”.

/자료사진=신한은행
/자료사진=신한은행

‘무용지용(無用之用)’. 쓸모없는 것의 쓸모라는 네 글자로 쓸모없다고 생각하는 것이 실은 쓸모가 있음을 뜻합니다. 이 사자성어가 유래한 <장자>의 인간세편에는 이런 말이 나옵니다. “사람은 모두 쓸모 있는 것의 쓸모만을 알고, 쓸모없는 것의 쓸모를 알지 못한다”.

쓸모 있는 것을 좇는 사람들로 ‘무용지물(無用之物)’이 늘고 있습니다. 쓸모 있는 기계들로 ‘무용지인(無用之人)’도 늘고 있습니다. 그러나 태어나서 쓸모없는 사람은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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