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증시는 블랙 프라이데이의 뜬금없는 충격을 이겨내며 조금씩이나마 우상향하는 방향으로 전진하고 있다. 6.3 조기 대선 이후 새로운 정부가 출범하면서 국내 증시는 전 세계 그 어떤 증시보다 상승률이 가팔랐지만, 지난달 정부에서 발표한 세제 개편안 하나만 살펴보더라도 한국 증시가 '대망의 5000포인트 시대'를 맞이하기 위해 거쳐야 할 난관들이 결코 간단치 않다는 사실을 새삼 일깨워 준 듯하다. 지난해 내내 그토록 소모적인 논쟁 끝에 겨우 전정됐던 '금투세 논란'이 코스피 3000포인트를 넘어서자마자 고스란히 재발했을 뿐만 아니라, 새로 출범한 이재명 정부의 핵심적인 정책과 공약마저도 '세수 확보'라는 코앞의 당면 과제 앞에는 근본적인 토대부터 뒤흔들릴 수 있다는 사실을 보여줬기 때문이다.
지난해 그토록 시끄러웠던 금투세 논란이 결국 진정된 까닭은 무엇인가. 아우토반처럼 마음껏 내달릴 수 있는 시원한 고속도로를 곁에 놔두고 굳이 결함투성이 비포장도로를 이용하겠다는 개미투자자들한테 높은 세율의 통행세를 부과하는 건 시기상조라는 주장이 강력한 공감대를 형성했기 때문이다. '빈대 잡으려다 초가삼간 다 태운다'는 속담 한 마디로 거의 모든 게 설명될 수 있는 문제였다. 한국 증시가 그만큼 기반이 취약하고 투자 환경이 선진국 증시에 비해 여러모로 열악하다는 걸 반증하는 사례이기도 했다.
한국 증시가 여느 해외 증시처럼 합리적인 시장이라면 굳이 금투세 도입을 유예할 까닭이 없다. 한국의 경제 규모나 기업들의 적정 가치에 비해 터무니없이 비정상적인 저평가 상태인 데도 불구하고 내외국인 할 것 없이 국장을 외면하는 까닭은 '만년 저평가 상태의 불합리한 주식시장'이 도무지 개선될 기미조차 찾아보기 힘들었기 때문이다. 지난해 연초부터 그렇게 떠들썩하게 추진했던 '기업 밸류업 정책'이 끝끝내 기업 자율에 맡긴다는 허망한 결론으로 마무리된 이후, 외국인 투자자들의 국장 탈출이 거세게 일어났던 사례만 보더라도 인과관계가 너무나 뚜렷하다.
그런 우여곡절을 겪은 뒤에 새롭게 출범한 정부가 코스피 5000포인트를 내세우며 상법 개정부터 전광석화처럼 해치운 건 한국 증시 재평가의 핵심 동력으로 작용했다. 주식시장에서 장난을 치면 패가망신한다는 대통령의 결기 가득 찬 언급도 거듭 반복됐다. 배당소득 분리 과세, 자사주 소각 의무화, 집중투표제 등 그동안 증시의 발목을 잡아왔던 각종 불합리한 제도들도 법 개정과 함께 빠르게 정착될 줄 알았다. 하필 바로 그 무렵에 정부에서 발표된 '세제 개편안'은 그야말로 국장 투자자들의 뒤통수를 세차게 후려치는 방망이질이나 다름없었다. 온갖 부조리와 불합리로 가득 찬 대한민국 증시를 확 뜯어고쳐 '코스피 5000 시대'를 활짝 열겠다는 정부가 한 치 앞도 내다보지 못하고 국장 투자자들의 호주머니부터 털어낼 궁리를 했다니, 그토록 어이없는 정책을 아무런 거리낌 없이 꺼내놓은 당국자들도 얄밉지만 지금까지도 원안 고수를 굽히지 않는 일부 입안자들의 무감각과 졸속이 더욱 한심스러울 뿐이다.
되돌아보면, 새로운 정부가 가장 높이 치켜든 깃발이 자본시장 정상화를 통한 '머니 무브'였다. 한국 경제의 가장 고질적인 병폐가 부동산으로 자금이 지나치게 쏠리면서 나타난 '부동산 불패 신화'였음을 감안하면 누구나 공감할 수 있는 옳은 정책방향임에 틀림없다. 서울의 부동산 가격이 치솟으면서 가계부채가 더욱 급증하고 자본시장이 비정상적으로 가라앉고 위축되면서 국내 자본이 점점 더 해외로 유출되고 있는 게 작금의 현실이다. 한국 증시는 전 세계적으로 가장 저평가된 반면 서울의 아파트 가격은 천정부지로 치솟은 게 정부의 부동산 세금 정책에서 비롯된 건 아닌지 심각하게 고민해 볼 때가 되었다. 왜 자본시장에 자금을 공급하는 투자자들에게만 이토록 가혹하게 세금을 더 쥐어짜내지 못해 안달하고, 부동산 투자자들에게는 온갖 장기 보유 혜택을 아낌없이 베푸는가. 일찍이 애덤 스미스가 지적했듯이, 주택 가격은 아무리 오르더라도 거기서 무슨 새로운 국부가 창출되는 것도 아닌데?
주택에 지출된 재고는, 만일 주택이 소유자의 주거용이라면, 그 순간부터 자본의 기능을 상실하고 아무런 수입이나 이윤도 낳지 않는다. 주거용 가옥 그 자체는 거주자의 수입에 전혀 기여하지 못한다. 의류·가구가 그에게 유용한 것처럼 주택도 틀림없이 그에게 유용하지만, 그것은 지출의 일부이지 수입의 일부는 아니다. 만일 임차료를 지불하고 주택을 빌린다면, 주택 그 자체는 아무것도 생산하지 않기 때문에 임차인은 노동·자본·토지로부터 얻는 다른 수입에서 임차료를 지불해야 한다. 그러므로 주택이 그 소유자에게는 수입을 제공하고 따라서 그에게 자본으로 기능할지라도, 사회 전체에 대해서는 아무런 수입도 제공하지 않으며, 자본으로도 기능하지 않고, 따라서 주민 전체의 수입은 그것에 의해 조금도 증가하지 않는다. -애덤 스미 <국부론> 중에서
세제를 담당하는 정책당국자들이 심각한 세수 부족 때문에 법인세도 올리고, 증권거래세도 얼마쯤 올리는 건 나라 살림 형편상 이해하지 못할 바는 아니다. 그러나 이번 세제 개편안에서 국장 투자자들에게만 너무 가혹하게 세금을 거둬들이겠다는 의지를 노골적으로 드러낸 점은 너무 아쉽다. 특히 '대주주 요건 10억원으로 하향'은 세수 확대 효과조차도 의심스러울 뿐만 아니라 정책방향성 측면에서도 철회되어야 마땅하다. 또한 한국 증시 특유의 만성적인 저 배당과 배당 소득에 대한 고율 종합과세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분리과세 요건뿐 아니라 세율까지도 과감하게 더 낮출 필요가 있다. 분리 과세하는 배당세율이 낮을수록 배당이 확대되고, 배당이 늘어날수록 세수도 함께 늘어날 개연성이 충분하기 때문이다.
이번에 세제 개편안을 입안한 당국자들은 이번 사례로부터 커다란 교훈을 얻었기를 바란다. 이번 세제 개편안을 접한 수많은 투자자들이 새로 출범한 정부에 대해 실망을 넘어 분노를 느낀다고 말한다.
'노여움 anger'은 친절함의 대가로 사기를 당하는 경우를 막아 준다. 착취 행위가 발견되면 당사자는 그 불쾌한 행동을 불공정한 것으로 분류하고 분노와 도덕적 공격의 욕구-관계를 단절함으로써, 그리고 때때로 사기꾼에게 고통을 줌으로써 벌을 주고 싶은 욕구-를 느낀다. 많은 심리학자들이 노여움에는 도덕적 의미가 있다고 말한다. 거의 모든 노여움이 정당한 노여움, 즉 의분이라는 것이다. 격노한 사람은 자신이 손해를 입었고, 그래서 부당함을 시정해야 한다고 느낀다. - 스티븐 핑커 <마음은 어떻게 작동하는가> 중에서
애덤 스미스는 경제학자이자 도덕철학 교수이자 국세청장을 지낸 인물이다. 그가 <국부론>에서 강조한 ‘조세 일반에 관한 네 가지 원칙’ 가운데 한 가지는 이렇다. "각 개인이 납부해야 하는 조세는 반드시 확정적이어야 하고 자의적이어서는 안 된다." 개인투자자들은 대통령이 바뀔 때마다 '대주주 요건'이 바뀌는 사실 자체를 못마땅해한다. 마침 어제 열린 고위 당정대 협의에서도 '대주주 양도세 기준'에 대해 명쾌한 결론을 내리지 못한 모양이다. 시간을 좀 더 끌어봐야 별로 달라지는 건 없어 보인다. 아무쪼록 이번 개편안이 국내 증시 발전에 도움이 되는 방향으로 마무리되길 바랄 뿐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