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시민 포스코의 ‘아름다운 변태’는 계속돼야 한다 [조수연의 그래픽저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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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업시민 포스코의 ‘아름다운 변태’는 계속돼야 한다 [조수연의 그래픽저널]
  • 조수연 편집위원(공정한금융투자연구소장)
  • 승인 2024.01.08 10: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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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러스트=조수연 편집위원
/일러스트=조수연 편집위원

‘변태’(metamorphosis)는 동물이 성장하는 과정에서 짧은 기간에 크게 형태를 바꿔서 성체가 되는 현상이라고 한다. 아마 많은 사람이 인상적으로 기억하는 대표적 변태의 사례가 매미일 것이다. 매미알은 1년 동안 나무껍질에 있다가 이후 알에서 깨어난 유충은 땅속으로 들어가 나무뿌리 수액을 먹으며, 약 15회 탈피 과정을 거친다. 이렇게 3~7년을 지내다가 지상으로 나와 비로소 성충 매미로 태어난다. 이렇듯 변태는 오랜 시간과 지난한 과정 끝에 이루어지므로 아름답다고 할 수 있겠다.

자료 1.
자료 1.

곤충 세계의 변태는 성공한 기업에서도 관찰할 수 있으며, 기업이 지속 성장을 위해 꼭 요구되는 과정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최근 포스코그룹을 보면 오랫동안 추구한 아름다운 변태 과정을 마칠 수 있을까 하는 안타까운 생각이 든다. 과거 ‘제철보국’(製鐵保國)으로 산업의 쌀, 철을 대한민국 경제에 공급하던 포항제철은 KT 전신인 한국통신처럼 기간산업을 담당하는 공기업으로 대다수 국민은 줄곧 인식했다. 이 태생의 한계는 포스코가 정경 유착이라는 굴레를 벗어나지 못하도록 작용했다. 초대 회장은 몸소 정치인이 되었고, 이후 포스코의 CEO는 정권 교체 때마다 관치와 낙하산이라는 평가 아래 단명 또는 중도 사퇴를 거듭하며 지배구조의 불확실성이 포스코의 가장 큰 단점이 되고 말았다. 그럼에도 항상 철 산업을 담당하는 ‘국민기업’이라는 이름과 노란 쇳물이 쏟아지는 용광로 사진을 배경으로 한 포스코의 이미지는 직원뿐 아니라 국민의 자부심이었기에, 포스코 스스로 바뀐다는 것은 엄두조차 내기 어려웠다.

자료 2.
자료 2.

물론 정경유착의 숙명을 벗어나려는 간헐적 변신 노력이 있었으나 ‘국민기업’ 배경은 2002년 100% 포스코 민영화 당시에도 거듭 발목을 잡았다. 그러나 지난해의 포스코그룹은 달라 보인다. 지난 5년 동안 지난한 땅속 변태 과정을 마쳤고, 지금 막 지상으로 올라온 매미의 변태를 연상시킨다. 포스코는 현재 공정위가 지정하는 2023년 재계 서열 5위로 공정자산총액 132조원, 계열회사 42개의 거대한 기업집단이다. 특히 지난 5년 동안 포스코그룹 시가총액은 무려 2.5배만큼 시장가치를 추가했다.

자료 3. /출처=하나증권
자료 3. /출처=하나증권

이러한 시장가치 성장에 이바지한 것은 바로 포스코의 변태 노력에 대한 평가라는 생각이다. 자료 3은 지주회사이면서 기존 포스코를 100% 소유한 포스코홀딩스의 기업가치를 평가한 최근 보고서다. 이를 통해 포스코그룹의 비즈니스모델을 엿볼 수 있는데, 포스코, 리튬과 니켈, 포스코퓨처엠, 포스코인터내셔널 등이 포스코그룹의 가치 성장을 이끄는 사업 및 회사들이다. 이들 비즈니스 부문의 성장성을 높게 평가하며, 하나증권은 지난 5일 48만원인 포스코홀딩스의 목표주가를 74만원으로 제시했다. 이 목표 수치는 지난해 7월 포스코그룹의 이차전지 사업을 설명하는 ‘이차전지 밸류데이’에 상향 제시한 목표주가를 새해에도 유지한 것이다. 또 포스코홀딩스 주가는 지난해 3월 지주사 출범 당시 28만원에서 지금은 48만원 수준으로 1.4배 도약했다. 시장 참여자도 포스코그룹이 성공적으로 변태할 것으로 평가하여 이미 가치에 반영하고 있는 것이다.

자료 4. /출처=포스코홀딩스
자료 4. /출처=포스코홀딩스

포스코그룹이 제시하는 성장 비전은 ‘인류의 지속 가능한 미래를 선도하는’ 기업이 되겠다는 것이다. 이를 위해 탄소 제로를 달성하는 비즈니스 구조를 만들어 친환경 미래 소재 대표기업으로 거듭나겠다는 비전이다. 즉, 포스코그룹은 과거 단순하게 쇳물 만드는 철강 기업에서 탈피를 시작했는데, 이러한 변화는 현 최정우 회장이 취임한 2018년 이후 본격 시작한 것으로 보인다. 그룹의 재무와 기획, 구조 조정, 감사 업무를 거치며 포스코그룹을 깊이 이해한 최 회장이다. 그는 2015년 전임 권오준 회장 아래에서 포스코그룹의 전면적 경영쇄신과 구조 조정을 단행해 오늘 포스코 변태의 초석을 놓았다. 이후 2018년 그룹 회장직에 전격적으로 올라 포스코그룹 변화를 일관성 있게 추진했다. 그룹 미래를 고민하던 기업 내부자가 마침 CEO를 맡자 자연스럽게 나타난 현상들이다. 결국 2015년부터 시작한 포스코 변화를 목표한 최정우 회장의 노력은 시작한 지 7년 만인 2022년에 이차전지 시대 도래의 기대가 높아지자, 시장 참여자로부터 폭발적으로 가치 인정을 받고 있다. 2022년 태풍 ‘힌남노’로 인해 포스코 철강 생산이 일시 중지하며 약 1조3000억원의 영업이익 피해가 있었으나, 그룹 차원에서 성공적인 사업 다각화에 힘입어 포스코퓨처엠이 매출 3조원을 넘기는 등 이차전지 사업 수익성이 상당 부분 태풍 손실을 만회했다는 평가다.

한편 최정우 회장의 강력한 변화 추진 과정 이면에는 논란과 반대도 많다. 최 회장은 먼저 군인 정신으로 세워진 굳건한 관제형 ‘국민기업’ 이미지를 벗기 위해 ESG 추세에 입각한 ‘기업 시민’이라는 경영이념을 표방했는데, ‘국민기업’을 흠모하는 이전 임직원 등의 반발이 만만치 않다. 아울러 포스코홀딩스 본점 주소를 서울에 둔 것을 놓고 포항 지역민과 갈등도 심상치 않다. 여기에 최 회장 취임 후 사망한 현장 노동자가 14명에 이르는 등 산업재해, 중대재해 다발 기업이라는 점도 ‘기업 시민’을 지향하는 포스코그룹에 큰 부담이다. 또한 지난해 3월 최 회장이 경영진과 함께 받은 100억원대의 스톡 그랜트도 논란의 중심에 있다.

무엇보다 최 회장은 2015년 이후 구조 조정 과정에서 불가피하게 내부의 적을 많이 만들었을 것이다. 또한 이전 정부 때 취임했다는 정치적 꼬리표가 본인의 정치적 성향과 달리 신정부 출범 이후 포스코그룹에 뚜렷한 부담으로 작용하고 있다. 포스코그룹의 친환경 기업으로의 변신은 이제 한 고개 넘은 단계인데, 포스코의 성공적 도약을 위해서는 정부와 정치권의 제도적 지원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그러나 신정부의 기후정책 기조는 이전 정부와 달리 축소 지향인 점에서 포스코그룹의 성장 전략과 마찰할 것은 불 보듯 뻔하다. 대선 경쟁 과정에서 새로운 대통령에게 큰 수치심을 안긴 ‘RE100’ 달성을 미래 비전으로 추구하는 포스코그룹이 결코 곱게 보일 리 없다. 재계 서열 5위 기업임에도 최 회장은 대통령이 참석하는 해외 순방이나 경제계 행사에 완벽하게 배척당했다. 정부 지원이 절대 필요한 상황에서 포스코그룹의 변태를 완성할 책무감에 최 회장은 노심초사했을 것이다.

자료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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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스코그룹은 지난해 3월 ‘신지배구조개선 TF를 발족’하고 지난달 19일 이사회에서 ‘포스코형 지배구조 개선안’을 의결했다. 그리고 이틀 뒤부터 CEO후보추천위(이하 후추위)를 가동했다. 최 회장은 지배구조 개선안에서 현임 회장의 ‘연임 우선 심사제’를 포기하고 여타 후보와 같은 입장에서 경쟁에 나서는 처지가 됐다. 그러나 여론은 포스코를 탈바꿈한 최 회장의 업적을 높게 평가하며, 연임에 유리하다는 분석이 지배적이었다. 내부 후보 추천을 앞두고 최 회장의 연임 의사가 확실하다는 언론 보도가 이어지는 가운데, 갑자기 포스코의 1대 주주인 국민연금 이사장이 공개적으로 포스코그룹 후추위의 절차가 ‘깜깜이’라며 제동을 걸었다. 후추위는 즉각 반발 성격의 보도자료를 냈으나, 어찌 된 일인지 하루 만에 전격적으로 최 회장 연임 심사 제외를 발표했다. 다만, 최 회장의 결단인지 후추위의 후보 자격에 관한 판단인지는 알려지지 않고 있다.

이번에도 소유분산 기업인 KT처럼 포스코의 지배구조 개선에 국민연금이 적극 나섰다. 방법도 같다. KT 이사회가 구현모 대표를 차기 CEO 최종 후보자로 선임하자 국민연금은 “후보 결정 과정이 투명하고 공정한 절차에 따라 이뤄지지 않았다”라며 공개 성명으로 지적했다. 구현모 전 대표는 연임을 포기하고 우여곡절 끝에 현 김영섭 대표가 취임했다. 특히 연임 포기에도 구 전 대표는 검찰 조사를 받고 있다. 어쨌든 정부 의지로 KT는 셀프 연임에서 벗어나 외부 전문 경영인을 맞이한 것이다. 정부는 이러한 지배구조 변화 수순을 포스코그룹에도 적용할 것으로 보이는데, 최근 KT에서 들려오는 소식은 국민연금이 개입한 지배구조 개선 결과가 꼭 바람직한지라는 우려를 키운다. KT는 새로운 지배구조 개선 이후 지난해 11월 법무실장 인사에 이어 올해 1월 인사에서 감사실장, 컴플라이언스 실장을 검사 출신으로 채웠다. KT의 사정 조직을 검사 출신이 모두 장악해 외부 전문 경영인을 지원하는 체제가 마련됐다. 하지만 혁신을 기대하던 KT 내부에서는 실망의 소리가 새어 나오고 있다. 이러한 KT와 같은 전철을 밟는다면 포스코그룹의 화려한 변태는 여기서 멈출 위기에 처할 것이다. 여러 논란에도 최정우 회장의 퇴장이 안타깝고 우려스러운 까닭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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