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늘 높은 줄 모르는 금값, ‘중앙은행’은 미리 알았다 [오인경의 그·말·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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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 높은 줄 모르는 금값, ‘중앙은행’은 미리 알았다 [오인경의 그·말·이]
  • 오인경 후마니타스 이코노미스트
  • 승인 2023.12.06 10:3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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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금의 지배 (하)

황금 손의 대명사로 통하는 소아시아 땅 프리기아의 왕 미다스는 디오니소스의 스승 실레노스를 보호해 준 보답으로 원하는 선물을 마음대로 고를 기회를 얻자, "내 몸에 닿는 것은 무엇이든 누런 황금이 되게 해주소서!"라고 신에게 간청했다. 디오니소스는 소원을 기꺼이 들어주며 더 나은 걸 구하지 않는 것을 안타까워했다. 탐욕스러운 미다스는 나뭇가지며 돌멩이며 건물 기둥들이 손을 대자 말자 황금으로 변하자 자신의 희망을 감당할 수 없을 지경이었다. 그가 기뻐하고 있을 때 하인들이 진수성찬을 내놓았는데 음식마저 황금으로 변해버리자 기겁을 하고 신에게 다시 달려가 없던 일로 해달라고 간청한다. 자비로운 디오니소스 신은 선물을 무효로 하며 강의 발원지에 이를 때까지 머리와 몸을 담가 죄를 씻어내도록 하라고 말한다. 명령대로 왕이 물속에 잠기자 사물을 황금으로 변하게 하는 힘이 사람의 몸에서 강물로 옮겨 가 물빛을 바꿔놓았다고 한다.

로마의 집정관이었던 크라수스는 포브스지가 2008년에 선정한 <역사상 가장 부유한 75인> 중에서 8위를 차지할 정도로 소문난 부자였다. 후세의 연구자들에 따르면 그의 재산 총액은 당시 로마 공화정의 연간 예산에 근접하는 수준이라고 한다. 그의 재산증식 수완은 정말 남달랐으나 군사적 업적은 자신의 경쟁자인 폼페이우스와 카이사르에 한참 미치지 못했다. 그는 시리아 총독으로 파견되어 파르티아 원정에 나섰으나, 유프라테스강 너머까지 무리하게 진격한 끝에 대패하고 아들과 함께 그곳에서 전사하고 말았다. 파르티아 왕은 당대 최고의 부자로 소문난 그의 목에 황금을 녹여 부어 죽임으로써 그의 탐욕을 조롱했다.

금은 놀라울 정도로 밀도가 높다. 1입방피트의 무게가 0.5톤이나 된다고 한다. 금 1온스가 있으면 길이가 80km나 되는 금사를 뽑을 수 있다. 원한다면 1온스의 금을 두드려서 100평방피트(9㎡)를 덮을 수 있는 얇은 판을 만들 수도 있다. 금의 밀도가 높다는 것은 아주 적은 양의 금도 큰 액수의 화폐 역할을 할 수 있음을 의미한다. 산화에 대한 강한 저항력, 보기 드물게 높은 밀도, 어떤 모양으로든 바뀔 수 있는 유연성, 이 단순한 천연의 특성들이 황금과의 로맨스를 설명해 주는 모든 것이다.​

/사진=이미지투데이
/사진=이미지투데이

금이 화폐로 통용되기 시작한 건 1252년 피렌체 공국 시절이었다고 한다. 이후 1816년 영국이 금본위제를 채택하면서 금은화폐 역사에 공식적으로 데뷔한다. 당시 파운드화는 세계 무역의 60%를 차지했다고 하니 금을 대신할 통화는 파운드화가 유일했던 셈이다. 제1차 세계대전을 치르면서 대규모 전쟁 비용을 마련하느라 돈을 너무 많이 찍어내자 영국은 1914년에 금본위제를 포기한다. 세계 통화질서는 1944년부터 브레턴우즈 체제로 전환된다. 달러가 전 세계의 기축통화가 된 것이다. 달러 중심의 금본위제도 오래 가지 못했다. 베트남 전쟁을 치르며 막대한 전비를 지출하자 금 태환 요구가 쇄도했고 막대한 부채와 재정적자를 감당할 수 없었던 닉슨 대통령은 1971년에 금 태환 정지를 선언했다. 마침내 금본위제도가 종말을 맞은 것이다. 이후 미국이 세계 경제의 패권을 차지하면서 달러는 글로벌 금융거래의 핵심 통화를 차지한다. 미국은 막대한 재정적자에도 달러를 찍어 갚으면 되는 나라다. 한때 글로벌 금융위기로 미 국채 가격이 폭락하고 달러 가치 폭락을 걱정하거나 위안화가 국제 결제통화로 급부상하던 때도 있었으나 달러의 위상은 여전히 견고하기만 하다.​

/사진=이미지투데이
/사진=이미지투데이

금값은 어떻게 움직일까. 기나긴 황금의 역사를 굽어보면 금은 언제나 최고의 안전자산이었다. 그렇다면 당연히 세상이 불안정하거나 위기일 때 금값이 올라간다. 미국 국채가격이나 달러 가치가 하락하거나 높은 물가 상승률이 지속될 때에도 금값은 고공행진하기 쉽다. 금은 대표적인 실물 자산이기 때문에 인플레이션 헤지 기능이 있기 때문이다. 금값이 마침내 사상 최고가를 경신했다. 금리 인하에 대한 기대감과 달러 가치 하락이 금값을 밀어 올리기 때문이다.

재산의 안전한 피난처로서 그리고 인플레이션에 대한 울타리로서 금에 대한 수요가 치솟자 1972년 초에 1온스당 46달러였던 런던 시장의 금값이 그 해 말에 64달러로 뛰었다. 1973년에는 금값이 100달러를 넘어섰고, 1974년부터 1977년 사이에는 금값의 변화폭이 130달러에서 180달러 사이를 유지했다. 1978년에 OPEC가 두 번째로 석유값을 올려 석유값이 배럴당 30달러가 되자 금값도 다시 한번 가파르게 치솟기 시작했다. 1978년이 끝나기 전에 금값은 1온스당 244달러를 기록했고, 1979년에는 이보다 2배나 오른 500달러가 되었다. …… 1968년의 35달러에서 1980년 1월의 절정기에 850달러에까지 이르렀던 금시장의 환상적인 활황은 금융 역사상 매우 보기 드문 일이었다. 이 기간 동안의 가격 변동폭을 살펴보면 12년 동안 금값이 매년 30%씩 오른 것이 되는데, 이는 1968년부터 1980년 사이의 인플레이션율 7.5%를 훨씬 뛰어넘는 것이다. 주식시장이 역사상 최고의 활황을 보였던 때조차 여기에 대면 빛을 잃는다. -피터 번스타인 <황금의 지배>

최근의 금 가격 추이. /그래픽=오인경
최근의 금 가격 추이. /그래픽=오인경

외신에 따르면 세계 각국의 중앙은행들은 13년 연속으로 금 보유량을 늘려왔다고 한다. 특히 우크라이나 전쟁이 장기화 국면에 접어들고 미국 연준의 공격적인 금리 인상이 이어지면서 지난해 연간 규모로는 1950년 이후 가장 많은 1136톤을 매입했다고 한다. 금은 각국 중앙은행이 대외 지불준비금 성격으로 비축하는 수요보다는 약 50% 전후의 보석용과 40% 전후의 투자용이 대부분을 차지하는데, 보석용 수요의 60%를 차지하는 중국과 인도의 경제성장률과 젊은 커플들의 결혼도 변수로 작용한다.

이 긴 역사의 가장 놀라운 점은 금이 역사의 주인공 대부분을 궁지로 몰아넣었다는 점이다. 역사 속에는 금을 끌어안은 채 물에 빠져 죽으면서 뒤늦게야 자신이 금을 소유한 것이 아니라 금이 자신을 소유했음을 깨달은 러스킨의 주인공과 같은 인물들이 자꾸만 등장했다. 미다스, 이아손, 크로이소스, 비잔틴의 황제들, 흑사병의 생존자들, 피사로와 그의 황제 카를 5세, …… 이들은 모두 금 때문에 바보가 되어 환상을 좇았던 사람들이었다. 그리고 이들 중 그 어느 누구도 자신이 원했던 결말을 맞이하지 못했다. -피터 번스타인 <황금의 지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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