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차전지 핵심 소재인 리튬·니켈보다 귀하신 몸 ‘이것’ [오인경의 그·말·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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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차전지 핵심 소재인 리튬·니켈보다 귀하신 몸 ‘이것’ [오인경의 그·말·이]
  • 오인경 후마니타스 이코노미스트
  • 승인 2023.12.05 10: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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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금의 지배 (상)

인류 역사에 가장 큰 영향력을 행사한 금속은 무엇일까. 오랜 세월 동안 숱한 전쟁터에서 무기의 재료로 쓰였던 청동도 아니고 철도 아니다. 전기 자동차의 핵심인 2차 전지를 만드는 데 핵심 소재로 귀한 대접을 받는 리튬이나 니켈은 더더욱 아니다. 금이다. 황금은 고대로부터 권력과 부의 상징이었다. 절대왕권의 상징인 파라오의 무덤에서 출토된 황금 마스크만 떠올려봐도 황금의 힘을 아주 쉽게 짐작할 수 있다.​

/사진=이미지투데이
/사진=이미지투데이

금의 원소기호는 Au. 황금빛 새벽을 몰고 오는 여신 오로라에서 유래했다. 고대 이집트의 파라오들이 묻혀 있던 '왕가의 계곡' 근처에는 '멤논의 거상'이라 불리는 거대한 석상이 아직도 남아 있는데, 새벽마다 그 석상에서 이상한 소리가 나서 그리스 여행객들이 붙여준 이름이라고 한다. 새벽의 여신 오로라의 아들 멤논은 에티오피아 왕으로, 숙부인 프리아모스 왕을 돕기 위해 뒤늦게 트로이아 전쟁에 참전했으나 아킬레우스와 일대일로 용감하게 맞붙어 싸우다가 전사하고 말았다. 여신 오로라는 아들인 멤논의 죽음을 슬퍼하며 아직도 새벽마다 이슬 같은 눈물을 흘린다고 한다. 금의 원소기호 속에는 이처럼 아름답고도 슬픈 에피소드가 숨어 있지만, 황금에 얽힌 고대의 온갖 신화들과 파란만장한 인간사들에 비하면 그저 소박하게만 들린다.

멤논의 거상. /사진=이미지투데이
멤논의 거상. /사진=이미지투데이

흑해 동부 연안의 도시 콜키스(현재 조지아령)는 오래전부터 전해오는 황금 양모피 사건으로 유명한 곳이다. 원래 황금 양은 전령의 신 헤르메스가 그리스의 보이오티아 땅에서 계모에게 학대를 받던 프릭소스와 헬레 남매로 하여금 그곳을 탈출하도록 도와주기 위해 보내준 신의 선물이었다. 황금 양털에 날개까지 달린 그 양에 올라탄 남매는 그리스 땅에서 무려 1600km를 날아 흑해 연안의 콜키스 땅으로 건너갔다. 도중에 프릭소스의 누이는 헬레스폰투스('헬레의 바다'라는 뜻, 지금의 다르다넬스) 해협에서 그만 떨어져 죽고, 프릭소스는 끝까지 살아남아 콜키스 땅에 도착한 뒤 황금 양을 죽여 제우스 신에게 제사를 올리고 황금 양털은 그곳의 지배자인 아이에테스 왕에게 바쳤다.​

흑해 연안의 콜키스. /출처=구글 지도
흑해 연안의 콜키스. /출처=구글 지도

​한편 그리스의 이올코스라는 도시에서는 준수한 외모에 빛나는 청년 이아손이 당대의 영웅호걸들을 모조리 수소문한 끝에 50명을 선발하여 콜키스의 황금 양모피를 찾으러 나섰다. 그 유명한 고대의 모험이 이름하여 '아르고호 원정대'였다. 원래 이올코스는 이아손의 아버지가 다스리던 나라였는데, 왕이 늙자 이복동생 펠리아스가 형을 내쫓고 왕위를 차지했다. 어린 이아손은 그때부터 산속에 숨어 살면서 온갖 무예를 배운 끝에 되돌아와 숙부를 찾아간다. 잃어버린 왕좌를 되찾기 위해서였다. 두 사람의 담판에서 교활한 펠리아스가 한 가지 꾀를 낸다. 콜키스로 가서 황금 양모피와 프릭소스의 유골을 수습해 오면 왕위를 물려주겠다는 것이었다. 그게 원래는 원산지가 그리스였으니 조상의 국보급 문화재를 되찾는 셈이기도 하고, 한 나라를 다스릴 만한 용기와 재능을 확인할 기회라고도 덧붙였다. 영웅은 숙부의 제안을 흔쾌히 받아들인다. 이렇게 해서 당대의 영웅호걸들이 이올코스 항구에 집결하는데 그중에는 천하장사 헤라클레스도 있었고 수금을 잘 타는 명가수 오르페우스도 있었고 아킬레우스의 아버지 펠레우스도 끼어 있었다. 그런 인물들이 원정대의 팀원이었으니 대장 이아손의 위상이 얼마만큼 대단했을지 짐작할 만하다. ​

아르고 호. /사진=픽사베이
아르고 호. /사진=픽사베이

렘노스섬을 거쳐 다르다넬스 해협의 무시무시한 쉼플레가데스(충돌하는 바위)를 극적으로 통과한 끝에 콜키스에 도착한 일행은 거기서도 온갖 난관들에 부딪히지만, 콜키스의 공주 메데이아의 결정적인 도움으로 마침내 황금 양모피를 손에 넣고 귀환한다. 이아손에 반해 아버지와 조국을 배반한 콜키스의 공주는 이아손과 함께 아르고호에 올랐고, 왕위를 내주지 않는 펠리아스를 속임수를 써서 죽인다. 그 때문에 이올코스에서 추방되어 코린토스로 옮겨 간 이아손과 메데이아는 두 아들을 낳고 몇 년은 행복하게 살았다. 그러나 야심가 이아손이 그곳 코린토스를 다스리던 왕의 딸에 반해 새 장가를 들기로 하자 메데이아는 끔찍한 복수로 보답한다. 황금천으로 눈부신 드레스를 만들어 독을 흠뻑 바른 후 곧 신부가 될 이아손의 약혼녀에게 선물한 것이다. 메데이아는 약혼녀를 죽인 것도 모자라 자신이 낳은 두 아들마저 제 손으로 죽이고 용이 끄는 수레를 타고 아테네로 도망친다. 고대 그리스 비극 시인 에우리피데스는 이처럼 막장으로 치닫는 메데이아를 보고만 있을 수 없었는지 비극 작품 <메데이아>를 남겼다. 그 비극 시는 곧 어머니의 손에 의해 죽게 될 두 아들을 키우는 '유모'의 독백으로 시작된다.​

이아손과 메데이아. /출처=로마국립박물관
이아손과 메데이아. /출처=로마국립박물관
에우리피데스. /사진=위키백과
에우리피데스. /사진=위키백과

차라리 아르고 호가 검푸른 쉼플레가데스 바위들
사이를 지나 콜키스인들의 나라로 달려가지 않았더라면,
그리고 펠리온 산의 골짜기에서 전나무가 도끼에
넘어져 펠리아스를 위해 황금 양모피를 찾으러 간
가장 뛰어난 전사들의 팔을 위해 노를 마련해 주지
않았더라면! 그랬더라면 우리 메데이아 마님께서는
이아손 님에게 사랑에 눈이 멀어 이올코스 땅의
성채를 찾아가시지도 않았을 테고, 펠리아스의
딸들을 설득하여 그들의 아버지를 죽이게 하시지도
않았을 것이며, 지금 이곳 코린토스 땅에서
남편과 자식들과 함께 사시지도 않겠지요.……

-에우리피데스 <메데이아> 중에서

신화를 연구하는 학자들은 황금 양털과 아르고호 원정대 이야기를 콜키스 지방의 금과 연결해서 주로 해석하고 있다고 한다. 오늘날의 조지아 서부에 위치한 이 지역은 예로부터 금 산지로 유명했다고 한다. 강물에서 사금을 캘 때 고대인들은 양털 뭉치를 물속에 넣어 금가루를 골라냈는데, 사금이 달라붙은 양털 뭉치의 모습이야말로 황금 양모피였다. 전해 내려오는 이야기에 따르면 주로 그리스의 테살리아 지방 사람들이 콜키스 지역으로 가서 금을 캤다고도 하고 두 지역 사이에 금 무역이 활발했다고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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