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을 모르는 당신, “메멘토 모리!” [조수연의 그래픽저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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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융을 모르는 당신, “메멘토 모리!” [조수연의 그래픽저널]
  • 조수연 편집위원(공정한금융투자연구소장)
  • 승인 2023.05.02 09:5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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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러스트=조수연 편집위원
/일러스트=조수연 편집위원

“너 자신을 알라”(Know thyself). 오랫동안 소크라테스의 잠언으로 알려진 말이다. 사실은 기원전 7세기 고대 그리스 칠현(七賢) 중 하나인 탈레스가 한 말인데, 필자는 마흔을 넘어서야 알았다. 그리스인이 후세에 본보기가 될 말을 한마디 해달라고 하자 탈레스는 ‘너 자신을 알라’는 뜻의 ‘그노티 세아우톤(Gnothi Seauton)’이라고 했다. 탈레스는 현대 최첨단 금융 도구인 옵션을 활용해 돈을 벌어들인 현자로도 기록되고 있다. 그리스인은 탈레스의 말을 델포이 신전 박공(경사진 지붕 삼각형 벽면) 널에 새겼다고 한다.

그림1(샌 그레고리오 모자이크 모사)
그림1(샌 그레고리오 모자이크 모사)

한편 로마 샌 그레고리오에서 발굴된 ‘메멘토 모리’(Memento mori, 죽음을 기억하라)를 상징하는 모자이크에는 죽어가는 사람 그림과 함께 ‘너 자신을 알라’라는 말이 새겨져 있는데, 이 사진을 보고 소름 돋는 충격을 받았다. 이 두 가지 말에 얽힌 철학적 의미와 역사에 관해서 더 이상의 해설은 장광설이 필요하고, 필자에게 주제넘은 짓이니 생략하자. 뜬금없이 이 말들을 글 머리에 들이댄 것은, 이와 관련해 너무나 중요한 데도 많은 사람이 인지하지 못하는 이슈가 한국 금융에 벌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다름 아닌 금융소비자의 정체성과 권익에 관한 것이다.

많은 기대를 안고 제정했으나 정작 그 법의 주인공은 잘 알지 못하고 ‘객’(客)이 행세를 하는 법이 ‘금융소비자보호에관한법률’(금소법)일 것이다. 2020년 3월 금소법 국회 통과 이전에는 물론이고, 그 이후에도 금융소비자는 금융산업과 금융당국의 실험 대상이라는 생각을 필자는 지우기(물론 금융당국은 동의하지 않겠지만) 어렵다. 금소법 전체적인 체계가 금융소비자 보호를 위한 금융산업의 의무와 규제 사항에 집중하고 있다. 그러나 금융 현장에서 30여 년 동안 금융감독과 금융산업 행태를 지켜봤던 필자는 이 법의 목적이 혹시 다른 데 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의혹이 든다. 이런 의혹이 드는 이유는 2008년 금융위기 이후 등장한 금융소비자 보호라는 피할 수 없는 국제적 추세에서 금융소비자 보호에 익숙하지 않은(혹은 찬성하지 않는) 금융산업을 금융당국이 오랜 정책 파트너로서 분명 보호할 필요가 있었을 것이라는 배경 때문이다.

자료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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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소법의 여러 복잡한 배경은 논란거리가 분명하니 차치하고 법에 담긴 ‘금융소비자’ 이슈에 집중해보자. 금소법이 금융산업에 강화한 의무 또는 규제를 한마디로 요약하면 ‘고객 알기’(Know Your Customer), 영어 약자로는 KYC룰이라고 할 수 있다. 금융산업의 근간이 금융상품을 소비하는 고객이니 KYC룰은 금융산업판 ‘너 자신을 알라’로 해석할 수 있겠다. 이에 관해서는 금소법 제17조(적합성의 원칙)와 제18조(적정성의 원칙)에 자세히 규정하고 있다. 두 조항은 같은 규제이지만 17조는 금융상품판매업자가 판매를 권유할 때, 18조는 금융소비자가 자발적으로 금융상품 가입을 자발적으로 희망할 때 적용한다. 이 법 규정에 따라 금융상품판매업자가 고객에 관해 파악할 내용은 금융소비자의 연령, 위험에 대한 태도, 재무 목적, 재산 상황, 금융상품 소비 경험과 이해도, 위험에 대한 태도 등이다. 눈치 빠른 분은 알아채겠지만, 금융상품판매업자가 고객에 관해 알아야 하는 내용 중 중요 부분은 금융소비자의 개인정보, 그것도 가까운 사이에도 밝히기 꺼리는 것이다. 그래서 금융회사가 KYC룰을 지키기 위해서는 금융소비자가 프라이버시를 포기하는 적극적 협력이 없이는 사실상 불가능하다. 주민등록 내용 외에는 사실과 다른 내용을 기재해도 증빙서류 제출을 강제하지 않는 한 금융상품판매업자가 진위를 확인할 방법은 없다.

자료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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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가 2020년 금소법 통과 때부터 반복해서 강조해온 것은 금소법 제7조와 제8조에 명시한 금융소비자의 권리와 책무다. 7조에는 2020년 이전에는 존재하지 않았던 금융소비자의 권리가 광범위하게 규정되어있다. 금소법은 금융상품판매업자로부터 보호받고, 정책에 의견을 반영하며, 적절한 피해보상을 받을 권리는 물론 교육받을 권리도 금융소비자 권리로 규정했다. 그러나 반전은 8조에 있다. 금융소비자는 금융시장의 주체임을 스스로 잘 알고 금융상품을 올바르게 선택해야 하며, 무엇보다 7조의 기본적 권리를 정당하게 행사할 책무가 있음을 규정했다. 8조에 따르면 권리 행사가 책무로 바뀌며 금융소비자는 금융상품판매업자의 적합성 원칙을 파악하는데 협력하지 않으면 권리를 보호받을 수 없는 것이 금소법의 구조다. 게다가 금융소비자는 스스로 권익을 지키기 위해 지식과 정보를 습득하는 노력을 게을리하면 권리를 보호받을 수 없다. 금융소비자는 자료1의 투자 성향 파악에 적극적으로 협조해야 하며 금융상품이 아무리 복잡해도 금융상품에 숨겨진 회사의 이익을 스스로 파악해야 할 책무가 있다. 무엇보다 금융상품판매업자의 요구에 따라 기대이익, 기대손실을 알아야 하고 위험도 파악해야 하며 투자론에서 확률로 구성한 자신의 정체를 파악하고 밝혀야 한다. 이것이 현재 한국 금융소비자가 처한 법적 현실이다.

그러나 투자자 성향 파악이 쉽지 않은 것은 모든 것을 알고 판단하는 합리적 인간을 전제로 하는 분산투자 이론이 배경이기 때문이다. 분산투자 이론은 자신의 경제학적 효용 체계를 정밀하게 파악하는 금융소비자가 금융시장에 존재하는 수많은 투자 기회 중에 최적의 선택을 해야 하며 이를 기반으로 금융시장은 균형(안정) 상태가 된다는 이론이다. 그러나 과학적으로 자기 투자 성향을 파악하는 금융소비자가 얼마나 있을까? 필자가 알기에 자신의 투자 성향 파악은(또한 효용과 선호의 과학적 근거와 측정에 대한 이의도 많다) 경제나 금융 전문가도 쉽지 않을 만큼 많은 사전 공부가 필요하다. 그러나 과거나 지금이나 현장 금융교육은 부실하다. 대부분 금융교육은 금융산업의(또는 교육사업자의) 이해가 얽혀 비체계적이고 산발적이며 단순 사고 예방에 치우쳐 있다. 금융 현장에 근무한 필자의 경험에 비추어 보면 금융교육을 부실하게 하는 금융산업 이해 중 하나는 수익성 높은 복잡한 금융상품을 팔기 위해서는 금융소비자가 금융을 잘 모르는 편이 편할 수도 있다는 점이다.

금융산업의 이해가 금융소비자의 정보 격차를 초래하는 구조적인 측면이 있지만, 다른 한편 수많은 금융 사기, 사고의 원인 상당 부분은 금융소비자가 자발적으로 만드는 정보 격차, 즉 무관심에 따른 금융 이해력 부족에 있다고 필자는 생각한다. 21세기 현대인에게 금융은 생활의 필수 서비스라고 할 수 있다. 또한 우리는 금융소비자의 권리는 물론 책무를 창조한 법체계에서 살고 있다. 그런데도 금융 이해력이 부족한 것을 당연하게 여기는 풍조는 여전하다. 아직도 ‘난 금융을 몰라도 돼’라고 생각하는 독자들에게 ‘메멘토 모리’를 외치고 싶다. 금융을 모르는 자는 곧 닥칠 죽음에 가까운 부의 몰락을 각오해야 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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