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수하지 못한’ 은행의 역대급 실적잔치 [사자경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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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수하지 못한’ 은행의 역대급 실적잔치 [사자경제]
  • 이광희 기자
  • 승인 2022.01.11 13: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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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자경제] 각주구검(刻舟求劍). 강물에 빠뜨린 칼을 뱃전에 새겨 찾는다는 어리석고 융통성이 없음을 뜻하는 사자성어입니다. 경제는 타이밍입니다. 각주구검의 어리석음을 되풀이하지 않게 경제 이슈마다 네 글자로 짚어봅니다.

지난해 역대급 실적을 올린 시중은행들이 ‘역대급 보상’에 나섰다는 소식이 전해지자 누리꾼들의 불만이 쏟아지고 있다. 사진은 기사내용과 무관. /사진=뉴스웰DB
지난해 역대급 실적을 올린 시중은행들이 ‘역대급 보상’에 나섰다는 소식이 전해지자 누리꾼들의 불만이 쏟아지고 있다. 사진은 기사내용과 무관. /사진=뉴스웰DB

“국민 돈으로 예금이자는 마이너스, 대출이자는 따블 이상 받아먹으면서 성과급이라니?”

지난해 역대급 실적을 올린 금융회사들이 ‘역대급 보상’에 나섰다는 소식이 전해졌습니다. 11일 금융권에 따르면, KB국민·신한·하나·우리은행은 기본급의 300% 선에서 성과급을 지급하기로 했습니다. 손해보험사들도 연봉의 30%대 수준으로 얘기가 오가고 있습니다. 누리꾼들의 불만이 금융사에서 당국으로 옮겨갑니다. “금감원은 뭐하나? 서민들만 죽어나는구먼.”

금융사들이 역대급 실적잔치를 예고한 가운데, 금융소비자 보호는 오히려 뒷걸음질 친 것으로 나타났다. /자료=금융감독원
금융사들이 역대급 실적잔치를 예고한 가운데, 금융소비자 보호는 오히려 뒷걸음질 친 것으로 나타났다. /자료=금융감독원

‘실태평가’. 있는 그대로의 실제 상태를 보고, 그 가치나 수준 따위를 매기는 것을 일컫는 네 글자입니다. 금융사들이 역대급 실적잔치를 예고한 가운데, 금융소비자 보호는 오히려 뒷걸음질 친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지난해 26개 금융사의 금융소비자 보호 실태를 평가한 결과, 40%에 해당하는 10곳이 전년보다 평가등급이 떨어진 것입니다.

금융감독원이 최근 내놓은 <2021년도 금융소비자보호 실태평가>에 따르면, 평가대상 26개사 가운데 ‘우수’ 등급을 받은 회사는 하나도 없었습니다. 평가등급은 우수, 양호, 보통, 미흡, 취약 등 5단계로 매깁니다. 양호 등급 이상 금융사는 3개로 줄어든 반면, 보통 등급은 20개사로 늘었습니다. 사실상 낙제점인 미흡 등급은 한 곳이 줄어든 3개사였습니다.

금융소비자보호 실태평가 등급은 우수, 양호, 보통, 미흡, 취약 등 5단계로 매겨진다. /자료=금융감독원
금융소비자보호 실태평가 등급은 우수, 양호, 보통, 미흡, 취약 등 5단계로 매겨진다. /자료=금융감독원

업종별로 은행업권에서는 국민(양호)·부산(보통)·하나은행(보통)이 1등급씩 상승했습니다. 카카오뱅크와 경남은행은 전년과 똑같은 보통이었습니다. 생명보험업권에서는 삼성생명(보통)이 1등급 상승하고, DGB(미흡)·흥국생명(보통)은 1등급씩 떨어졌습니다. 동양(보통)·KDB생명(미흡) 및 메트라이프생명(보통)은 전년과 같은 등급이었습니다.

손해보험업권에서는 농협손보, 삼성화재, KB손보가 1등급씩 떨어져 보통 수준이었습니다. 한화손보는 보통을 유지했습니다. 신용카드·여신전문업권에서는 현대카드(양호)와 신한카드(보통)는 1등급씩 하락했습니다. 비신용카드·여신전문업권에서 처음 실태평가를 받은 현대캐피탈은 미흡 등급을 받았습니다.

증권업권에서는 키움(보통)과 유안타증권(보통)이 1등급씩 하락했고, 삼성(양호)과 한국투자증권(보통)은 전년과 같은 등급을 유지했습니다. 저축은행업권에서는 페퍼저축은행(보통)과 한국투자저축은행(보통)이 전년과 변함이 없었으며, SBI저축은행은 전년보다 1등급 떨어진 보통 수준이었습니다.

2021년도 금융소비자보호 실태평가 대상 26개사 가운데 ‘우수’ 등급을 받은 회사는 하나도 없었다. /자료=금융감독원
2021년도 금융소비자보호 실태평가 대상 26개사 가운데 ‘우수’ 등급을 받은 회사는 하나도 없었다. /자료=금융감독원

이번 금융소비자 보호 실태평가는 금융소비자보호에관한법률(금소법)이 시행된 이후 처음 이뤄졌습니다. 실태평가 대상도 3년에 한 번 바뀌는 것으로 변경, 2020년 71개사에서 지난해 26개사로 줄었습니다. 금소법 시행으로 예년보다 엄격한 평가가 매겨졌다고 해도, 금융사의 소비자 보호 의지가 부족하다는 게 드러났습니다.

금감원은 “종합등급 및 비계량평가 등급이 ‘미흡’인 금융사는 개선을 요구하고, 각 회사로부터 개선계획을 제출받아 이행 여부를 확인할 계획”이라고 밝혔습니다. 그러면서 “종합등급 ‘미흡’인 회사는 평가 주기와 관계없이 올해에도 실태평가를 실시하는 등 내부통제 체계 개선을 유도하겠다”라고 덧붙였습니다.

고승범 금융위원장(왼쪽)이 지난 6일 오전 서울 여의도 금융감독원을 방문해 정은보 금융감독원장과 신년 회동을 하며 인사를 나누고 있다. /사진=금융위원회
고승범 금융위원장(왼쪽)이 지난 6일 오전 서울 여의도 금융감독원을 방문해 정은보 금융감독원장과 신년 회동을 하며 인사를 나누고 있다. /사진=금융위원회

한편 금융소비자 보호 실태평가 발표일인 지난 6일, 고승범 금융위원장과 정은보 금융감독원장은 신년 만남을 가졌습니다. 행정고시 28회 동기인 두 사람은 이날 금융소비자와 취약계층 보호를 약속했습니다. 고 위원장은 “금감원이 금융 취약계층 보호에 전력할 수 있도록 지원할 것”이라며 “금융소비자 보호 등에서 빈틈없는 금융감독을 담당해줄 것”을 당부했습니다.

이에 정 원장은 “앞으로 법과 원칙에 기반해 사전·사후적 감독의 균형을 도모하면서 사전 예방적 소비자 보호에 중점을 두고 시장과 적극적으로 소통하겠다”라고 화답했습니다. 오늘(11일) 은행권에 따르면, KB국민·신한·하나·우리·NH농협 등 5대 시중은행의 요구불예금 잔액이 지난해 12월 말 기준 659조7362억원으로 한 달 사이에 9조9897억원 증가했습니다.

요구불예금이란 예금주가 지급을 원하면 언제든지 은행에서 찾을 수 있는 초단기 예금입니다. 수시로 입출금이 가능해 통상 주식, 가상화폐 등 투자 대기성 자금으로 나뉩니다. 대통령 선거와 미국의 금리 인상 등 예고된 시장 불확실성에 갈 곳 잃은 돈이 헤매고 있다는 방증입니다. 금융소비자 보호가 더욱 중요한 때입니다. 금융감독 당국의 약속이 지켜지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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