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잔인한 금융 설계하고 정당화’ 모피아의 놀라운 자백 [조수연의 그래픽저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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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잔인한 금융 설계하고 정당화’ 모피아의 놀라운 자백 [조수연의 그래픽저널]
  • 조수연 편집위원(뉴스웰경제연구소장)
  • 승인 2026.05.08 10: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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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명 대통령 지적에 김용범 정책실장 반성… 은행 공정성 개선 요원, 서민금융 확장에 그칠 듯
‘잔인한 금융’을 지적하는 이재명 대통령과 김용범 정책실장. /일러스트=조수연 편집위원
‘잔인한 금융’을 지적하는 이재명 대통령과 김용범 정책실장. /일러스트=조수연 편집위원

최근 이재명 대통령실의 정책을 총괄하는 인사의 실명 SNS 글이 화제를 불러일으키고 있다. 바로 김용범 정책실장이 올린 <금융의 구조 시리즈를 시작하며>라는 제목의 글이다. 김용범 실장은 세 차례에 걸쳐 작심한 듯 현재 대한민국 금융에 대해 비판을 쏟아냈다.

그의 글은 금융 관련 공무원 출신 인사를 뜻하는 (이 평가를 그가 원하든 그렇지 않든) 모피아(MOFIA)의 손에서 나오기에는 다소 뜻밖이어서 놀라움을 더한다. 김용범 실장은 재정경제부 은행제도과장, 금융위원회 금융정책국장, 금융위 부원장 겸 증권선물위원회 위원장(이때 삼성바이오로직스 회계 부정 사건과 관련하여 봐주기 논란으로 그의 교체를 요구하는 국회의원 연판장 사건도 있었다) 등을 거쳐 기획재정부 1차관으로 공무원 생활을 마무리했다. 사실상 대한민국 금융은 초대 금융위원장 겸 금융감독원장을 지낸 이헌재로 상징되는 모피아가 설계하고 작동해 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김 실장도 본인이 금융시스템 설계와 작동을 주도했다는 점을 인정하고 반성의 의미에서 금융의 왜곡된 구조를 비판하는 글을 올린다고 설명했다.

/출처=김용범 정책실장 페이스북 갈무리
/출처=김용범 정책실장 페이스북 갈무리

그가 올린 세 편의 글을 요약하면 이렇다. 김용범 실장은 이재명 대통령이 던진 하나의 질문으로부터 현재 금융에 대해 의문을 품기 시작했다. 이 대통령의 질문은 ‘잘 사는 사람(고신용자)은 낮은 금리 대출 등으로 여유 있게 돈을 쓰고, 절박한 처지인 사람은 비싼 금리의 돈을 쓸 수밖에 없는가?’였다. 그는 이 질문을 놓고 금융관료로 평생의 경험을 되새김했다. 그리고 고민 끝에 금리 적용 기준인 은행의 신용평가가 상환 가능성을 근거로 일률적으로(평균 기준으로) 사람을 점수로 환산하고 대출을 적용하니 신용과 대출이 양극화한다는 결론에 이른다. 또한 사람의 신용을 평가하는 은행의 위험 분류가 ‘공정하고 정교한가?’라고 되묻는다. 이어 사람에 대한 고위험과 고신용 등 평가에는 설계자 의도가 담겼다고 추론한다. 즉, 공정하지도 정교하지도 않은 금융 설계가 결국 금융 양극화를 가져올 수밖에 없었다는 것이다. 김 실장은 이러한 문제의식을 바탕으로 3편의 글에서 은행 산업의 구조 개선 방향을 제시했다. 은행은 ‘회피’를 합리적인 선택이라 믿는 구조와 낡은 신용평가 틀을 바꿔야 하고, 또한 서민금융기관의 역할을 재정리해야 한다고 했다.

필자는 김 실장의 글을 보며 동의하는 부분도 있고 의견을 달리하는 측면도 있다. 특히 혼란스러웠던 것은 처음에는 금융의 공정성을 들여다보다가 결론에서는 서민금융기관으로서의 역할 조정으로 논점이 옮겨갔다는 점이다. 즉, 은행의 공정하지 못하고 편협한 신용평가 기능이 잔인한 금융을 낳았으므로 신용평가를 재정비해서 은행의 서민금융 기능을 강화하자는 것인지, 그렇게 해도 은행의 서민금융 지원은 어려우니 서민금융기관 역할을 강화하자는 것인지 필자는 솔직히 이해하기 어려웠다.

김용범 실장이 공무원이 될 때 금융업에 입문한 필자가 30여년 고민해서 이해하는 은행 산업은 이렇다. 대한민국의 은행 대부분은 ‘영리활동’을 하는 ‘주식회사’이다. 먼저 ‘영업활동’을 들여다보자. 은행은 한국은행의 통제 아래에 ‘신용창조’ 기능을 이용한 이윤 극대화로 주주 이해를 충족하는 영업활동을 한다. 은행업은 최초 예금을 100원 받으면 이 가운데 지급준비금을 보관하고 나머지를 대출 운용하는 비즈니스모델을 가진다. 이런 구조에서 중앙은행이 5%의 지급준비율로 대출을 통제한다고 가정하면, 은행 산업군 내에서 서로 예금과 대출을 반복 운용하면서 100원의 예금은 약 20배인 2000원의 대출을 통해 국민경제에 통화를 공급하는 ‘신용창조’ 효과를 가진다. 예금-대출 신용창조를 통한 통화 공급이 국민경제에 막대한 영향을 미치므로 국가는 영업허가 등 은행을 엄격하게 통제한다.

김용범 정책실장. /일러스트=조수연 편집위원
김용범 정책실장. /일러스트=조수연 편집위원

이처럼 은행의 대출과 회수 과정에서 ‘잔인한 금융’이 탄생한다. 은행은 중앙은행이 의도하는 통화정책 목표를 구현하기 위해 대출을 현장에서 배분하는 시스템을 갖추는데, 대출을 배분하는 중요한 도구로 ‘신용평가’가 활용된다. ‘신용’이란 사전적으로 거래한 재화나 서비스의 대가를 ‘미래’ 만기에 치를 수 있음을 보여주는 능력, 즉 약속한 미래 지급 능력이다. 여기서 ‘미래’란 불확실하므로 과학적 ‘추정’의 영역이다. 과학적 추정은 변수의 과거 추세를 분석해서 그 추세의 특성이 미래에도 관성적으로 이어질 거라는 가정 아래 이루어진다. 또한 과학적 추정의 적용 근거는 ‘대수(大數)의 법칙’과 ‘평균 회귀 경향’을 전제로 한다. 즉, 사회적 현상이 평균 주변에 집중한다는 경향을 전제로 신용평가라는 사회 현상의 미래 추정이 가능하다. 아이작 뉴턴이 미분과 적분으로 자연 현상을 패턴화하여 달에 우주선을 보내듯이 신용평가의 평균적 경향을 패턴으로 사회적 현상에 적용하는 것은 과학적으로 타당하고 필요하다. 이 전제가 무너지면 신용평가는 중구난방으로 이루어지고 대출 기준 적용에 더 많은 폐단과 사회적 비용을 초래할 수 있다.

이러한 과학적 추정에는 미래에 영향을 줄 요인을 변수(變數)로 골라내는 작업이 아주 중요하다. 신용평가에 있어 법인의 경우에는 의무적으로 작성하거나 공시하는 회계자료를 기초로 다양한 변수를 확보할 수 있다. 또한 전문 신용평가기관이 법인 신용평가를 정기적으로 실시하고 정확한 방법론을 연구한다. 그러나 개인의 경우에는 사정이 다르다. 김용범 실장이 지적하듯이 개인은 하나하나가 다양한 인생 역정을 가지고 있으며 가치관도 달라 신용평가 변수를 표준화하는 데 어려움이 크다. 이러한 제약이 소득, 연령, 주택 등 보유 자산, 대출 원리금 상환이나 연체율 등 은행이 공개적으로 확보할 수 있는 소수 변수만으로 개인의 신용을 평가하도록 하는 환경을 만든다. 개인별로 인생과 가치관을 반영하여 서로 다른 기준으로 평가하는 것은 평가자가 철인(哲人)이 아닌 이상 더 큰 불평등 소지를 낳고, 수많은 변수를 수집하고 관리해야 하는 과정이 불가피하다. 이는 막대한 개인 신용평가의 비용 증가를 초래할 것이다. 또한 이것이 개인에게 유리한 금융 환경으로 작용할 것인지는 의문이다.

문제는 개인 상환 능력은 보유한 부와 소득, 자산에 크게 의존하는데, 개인 신용은 부자나 고소득자에 호의적이고 빈자나 저소득자에는 불리하다는 점이다. 또한 은행의 대출은 일부 상위층이 활발하게 경제활동을 할수록 그들에게 집중하고 저신용자는 기회가 더욱 사라진다. 이 부분이 ‘잔인한 금융’이다. 그러나 잔인한 금융이 불공정해 보이지만, 경제적 성장을 목표로 효율성을 높이는 길이라는 점에서 경제적으로 잔인한 금융은 ‘파레토 균형’을 이룬다. 자본주의 작동의 근본정신인 ‘합리성’에 철저하면 ‘경제적 균형’은 도덕성이나 공정성과는 전혀 섞이기 어렵다.

끝으로 유의할 것은 은행의 기업형태는 ‘주식회사’라는 점이다. 시중은행 주주는 대부분 외국인(4대 시중은행의 외국인 지분은 약 63%) , 기관투자자, 개인으로 구성된다. 이들 주주의 이익을 벗어난 영리활동 제한은 자본주의 원리에 어긋난다고 할 수 있다. 특히 최근 주식시장이 코스피 7000선을 떠받친 요소가 상법 개정의 주주 보호였다. 따라서 은행의 이윤 극대화를 제한하는 ‘서민금융 지원’은 은행 주주들의 이익을 침해할 수 있다. 특히 이 같은 이슈에는 외국인 주주가 더욱 민감할 것이다. 결국 정부가 모든 은행을 국유화하지 않는 이상, 이 대통령이 강조하고 김 실장이 반성한 ‘잔인한 금융’을 은행 스스로 제한하라고 하는 것은 은행을 자기부정에 빠지도록 하는 것임이 틀림없다.

결국 김용범 실장의 깊은 반성을 담았다는 ‘잔인한 금융론’은 금융의 토대를 이루는 근본 체계와 상충할 수 있다. 이런 측면에서 은행 시스템을 모피아가 설계하고 작동했다는 주장은 과장된 면이 있다. 은행 시스템은 서구에서 수백년 누적되고 발전한 과학적 금융 논리 체계들에 기반을 두고 있고, 각국은 표면적으로 금융시스템을 적절히 자국 사정에 맞춰 도입한 것에 불과하다. 일견 보기에 정의로운 생각을 가진 몇몇이 금융시스템을 고칠 수 있을 것으로 착각할 수 있지만, 잘못하면 엄청난 사회적 비용을 초래할 수 있다는 점을 이해해야 한다. 결국 ‘잔인한 금융론’은 서민금융기관 역할 확장에 치우칠 수밖에 없어 보인다. ‘태산명동 서일필’(泰山鳴動, 鼠一匹)이 될 개연성이 크다는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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