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컬처 다양한 요소 버무려 녹여낸 ‘종합 선물 세트’… 관련주 강력한 반등 모멘텀 기대
올여름 전 세계 사람들의 눈과 귀를 호강시킨 최고의 영화는 단연코 <케이팝 데몬 헌터스>다. 일명 케데헌으로 불리는 이 만화영화 한 편이 불러일으킨 회오리바람은 이미 거센 폭풍으로 변해 전 세계 문화산업계의 판도를 뒤흔들고 있다. OTT 플랫폼 넷플릭스에 공개된 지 불과 11주 만에 누적 시청자 수 2억6600만명을 뛰어넘었다. 부동의 넘버원 자리를 고수하던 오징어 게임 시리즈 1의 기록을 훌쩍 뛰어넘은 대기록이다. 이 만화영화에 담긴 K-Pop 주제곡들은 각국의 음원차트를 휩쓸면서 '영원히 깨지지 않을' 기록들을 매일 새롭게 고쳐 쓰고 있다. 한국이 21세기로 넘어온 직후부터 K로 시작하는 다양한 분야들(드라마, 영화, 팝, 푸드, 패션, 뷰티 등)에서 괄목할 만한 성과들을 거둬온 건 누구나 아는 사실이지만, 다소 엉뚱한 만화영화 분야에서 이토록 엄청난 작품이 탄생하리라고 예상한 사람은 일찍이 찾아보기 어려웠다. 그만큼 이 작품은 갑작스레 세상에 등장했고, 우리 앞에는 흥부네 박 터지듯 엄청난 선물로 다가왔다.
전 세계를 강타한 케데헌의 놀라운 인기몰이를 지켜보노라면 지구상에서 성서 다음으로 많은 언어로 번역된 소설 <돈키호테>와 닮았다는 생각마저 든다. 돈키호테의 작가 세르반테스는 불세출의 걸작인 <돈키호테>를 발표할 때까지만 하더라도 철저히 무명작가일 뿐이었다. 젊은 시절에 그는 저 유명한 레판토 해전에 참전하여 왼팔을 잃었고, 전쟁을 끝내고 귀국하는 도중에는 해적들에게 납치되어 무려 5년 동안 노예생활을 하는 등 파란만장한 세월을 보낸 끝에 60을 바라보는 나이에 처음 발표한 소설 한 편으로 단번에 세계 최고의 작가로 올라섰다. 케데헌을 만든 매기 강 감독 또한 무명 세월을 보내다가 이 작품 한 편으로 단숨에 세계적인 감독으로 올라섰다. 케데헌의 주제가 <골든>을 노래했을 뿐만 아니라 직접 작곡까지 했던 K-Pop 연습생 출신인 이재(EJAE)가 10년씩이나 무명 세월을 보낸 끝에 이번 작품으로 세계적인 명성을 얻은 이야기조차 서로 닮았다는 생각이 든다.
1605년에 발표된 <돈키호테> 1편이 어른 아이 구분할 것 없이 삽시간에 전 세계 모든 연령의 독자들로부터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고, 독자들의 열화와 같은 요청에 못 이겨 10년 후에 2편이 출간된 사정도 서로 닮았다. 케데헌에 매료된 전 세계 시청자들의 요청으로 벌써부터 속편에 대한 논의가 시작됐고, 케데헌의 후속 작품이 만들어질 가능성이 매우 유력하기 때문이다. 두 작품은 스토리 라인마저도 닮았다. 비록 주인공들의 힘은 미약하지만 악을 물리치고 세상을 구원할 수 있다는 신념으로 똘똘 뭉쳐 온갖 난관들을 헤쳐나간다는 점에서 그렇다. 케데헌의 주인공들은 노래 실력만큼은 케이팝 최고의 걸그룹이지만, 악령들을 물리치기 위한 무기라고 해봐야 수백 년 전에 쓰이던 고색창연한 칼이 전부다. 늙은 로시난테와 산초를 데리고 세상의 불의를 바로잡기 위해 길을 떠나는 돈키호테 역시 중세의 기사들이 착용했던 낡은 갑옷과 창이 가진 무기의 전부다.
스페인의 철학자 호세 오르테가 이 가세트는 <돈키호테> 2편이 출간되고 나서도 무려 300년쯤 지난 후에 '돈키호테'를 다시 한번 우리 앞에 재등장시킨다. 그는 돈키호테의 작가가 스페인에 끼친 심대한 영향을 설명하면서 다음과 같은 의미심장한 말을 남겼다.
오렌지의 겉면과 이면을 눈앞에 동시에 보여 달라고 요구하는 것이 가능할까?
오렌지는 둥그런 구체로서 겉면과 이면을 가지고 있다. 그런데 오렌지의 겉면과 이면을 눈앞에 동시에 보여 달라고 요구하는 것이 가능할까? 우리는 눈으로 오렌지의 한 부분을 본다. 그러나 이 과일의 전체 모습은 우리의 감각에 주어지지 않으며, 더 많은 부분이 우리의 시선으로부터 감추어져 있다.
따라서 사물이 자신을 드러내는 데 여러 가지 방법이 있다는 것을 말하기 위해 난해하고 형이상학적인 문제에 의존할 필요는 없다. 각각의 사물은 모두 나름의 질서 속에서 해명될 수 있다. 눈에 보이는 것만이 해명 가능한 것은 아니다. 우리 몸이 가지고 있는 3차원 역시 다른 두 차원과 마찬가지로 완벽하게 해명될 수 있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순전히 시각이라는 수동적 방법 외에 사물을 보는 방법이 없다면 그 사물 혹은 그것의 특질은 우리에게 존재하지 않을 것이다. - 호세 오르테가 이 가세트 <돈키호테 성찰> 중에서
케데헌이라는 애니메이션 한 편을 두고 세계적인 문학작품에 빗대는 건 너무 지나친 확대해석일 수 있다. 더군다나 케데헌은 제작 과정에서 한국 자본이 직접적으로 참여한 바도 없고, 지적재산권은 오롯이 미국 기업인 넷플릭스에게 귀속되어 있는 작품이다. 그런데도 케데헌의 대성공에 대해 한국에서 유난스러울 정도로 호들갑을 떠는 이유는 무엇인가. 케데헌이야말로 K-컬처를 구성하는 온갖 다양한 요소들을 한 작품에 고스란히 버무려 녹여낸 종합선물세트와도 같은 기념비적 작품이기 때문이다.
케데헌은 식상할 만큼 자주 반복해온 레토릭인 '가장 한국적인 것이 가장 세계적인 것'이라는 사실을 다시 한번 증명한 작품이다. 케데헌의 주요 배경이 된 경복궁, 남산, 낙산공원 성곽길, 북촌 한옥마을, 명동 등지가 어느새 서울 여행의 필수 코스로 떠올랐을 뿐만 아니라, 한국 고유의 음식들과 갓 쓰고 도포자락 휘날리는 저승사자들까지도 전 세계 시청자들로부터 엄청난 주목을 끌었기 때문이다. 케데헌의 가장 큰 성공 요소는 무엇보다도 작품의 스토리와 찰떡궁합을 이루는 멋진 음악과 춤사위들 덕분이다. 케데헌을 수십 번씩이나 반복 시청한 끝에 한국말 노래 가사까지 줄줄 따라 부르며 방방 뛰노는 아이들의 모습만 보더라도 K-Pop의 엄청난 영향력을 쉽게 체감할 수 있다.
올여름 전세계적인 신드롬을 일으킨 '케데헌 열풍'은 앞으로도 오랫동안 한국에 매우 긍정적인 영향을 지속적으로 미칠 가능성이 크다. SNS 플랫폼에서 매일 폭포수처럼 쏟아져 나오는 영상물들이 온통 케데헌으로 도배될 정도이니 그 영향력이 얼마만큼 오래도록 지속될지 함부로 가늠하기조차 어렵다. 스페인의 철학자가 돈키호테의 심대한 영향력을 온전히 설명할 방법을 찾지 못해 오렌지의 겉과 속을 한꺼번에 보여줄 방법이 없다고 비유적으로 지적한 그대로다. 한국이 세계적인 문화강국으로 우뚝 올라서는 데에는 실로 다양한 요인들이 작용하겠지만, 케데헌만큼 강렬한 힘으로 업, 업, 업시켜주는 작품도 찾아보기 어렵겠다는 생각이 든다.
K-컬처 관련주들은 일견 중국 소비 관련주들과 겹치는 종목들이 대부분이지만, 실상 둘 사이를 구분할 만한 뚜렷한 구분선은 존재하지 않는다. 중국 소비 관련주들은 본질적으로 '한류 문화 열풍'으로부터 시작됐으며 한류의 전세계적인 확산이 결국 K-컬처 붐으로 이어져왔기 때문이다. K-컬처에 대한 수요 또한 2016년 중국의 사드 배치 보복에 뒤이은 한한령이 지속되면서 중국에 대한 의존도가 크게 줄어든 대신 여타 동남아 국가들과 북미와 유럽시장으로 발 빠르게 시장을 다변화하는 모습을 보여왔다.
K-컬처 전반에 대한 최근의 흐름은 대략 이 정도로 그치고, K-컬처 관련주가 우리나라 증시에서 차지하는 비중부터 먼저 살펴보자. 이번 달 9일 기준으로 K-컬처 관련주의 시가총액은 약 117조원으로 전체 시가총액 3120조원 대비 3.8% 정도다. 화장품 업종이 K-컬처 관련주 전체의 절반을 차지할 정도로 업체 수도 많고 시가총액도 매우 크다. 여기에 K-Pop 산업을 주도하는 엔터테인먼트 업종까지 포함하면 K-컬처 관련주 전체 시가총액의 71.6%를 차지한다. 한한령과 중국인들의 국산품 애용 분위기에도 불구하고 전 세계로 확산 중인 K-뷰티의 영향력이 시가총액 구성비에서부터 확연히 드러난다. 한때나마 한류 열풍을 대표했던 면세점 업종 시가총액은 5.9%까지 급격히 축소된 모습이다.
K-컬처 관련주들의 시가총액 변화를 최근 5년에 걸쳐 시계열로 분석해 보면 다음과 같다. 2021년 말 이후 시가총액이 지속적으로 쪼그라들었던 흐름이 올해에 접어들면서 마침내 강한 반전을 맞고 있는 모습이 뚜렷하다.
업종별로 시가총액 변화의 기울기를 살펴봐도 화장품 업종의 회복 속도가 가파르다. 전년말 대비로는 36.8% 증가했다. 물론 화장품 업체들의 시가총액 증가 원인은 중국 시장보다 미국과 유럽 시장에서의 선전이 훨씬 더 크게 반영된 결과다. 화장품 업종보다 시가총액이 좀 더 가파르게 증가한 업종은 엔터테인먼트 업종이다. 전년말 대비 44.3% 증가했다. 블랙핑크를 비롯한 K-Pop 가수들의 해외 공연이 대성황을 이룬 데다가 군 복무를 끝마친 완전체 BTS에 대한 기대도 큰 데다 케데헌 열풍도 일부 가세한 영향이 반영된 것으로 보인다.
다음 글에서는 최근 우리나라를 방문하는 외국인들의 회복 추세를 구체적으로 살펴보고, K-컬처 관련 주들의 최근 주가 흐름을 간단히 분석해 보고자 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