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전 검토 없이 핵심 사항 포함된 문서 일괄 처리
설계 도면 외부 검토 지시… ‘설계 유출’ 우려 고조
향응 의혹에 공공지원자 책임론까지… ‘감시 기능’ 실종
서울 성동구 성수전략정비구역 제1지구(이하 성수1지구) 재개발사업의 시공사 선정 절차를 둘러싸고 공정성 논란이 일고 있다. 조합 집행부가 내놓은 입찰 지침 곳곳에 상식 밖의 조항들이 포함되면서, 특정 건설사에 유리한 방향으로 짜인 것 아니냐는 의혹까지 제기되고 있다.
조합은 오는 19일 대의원회를 거쳐 21일 입찰공고를 낼 예정이며, 시공사 선정 총회는 11월 29일로 계획돼 있다. 빠른 일정에 맞춰 연내 시공사 선정까지 마무리하겠다는 방침이지만, 시작부터 공정성에 대한 의심이 짙어지고 있다.
논란의 중심에는 지난 5일 열린 이사회가 있다. 조합은 이날 시공사 선정을 위한 100페이지가 넘는 입찰지침서를 별다른 사전 검토 없이 불과 몇 시간 만에 통과시켰다. 해당 지침서에는 ‘공사비 예정가격 산출’, ‘설계도면 작성’, ‘물량내역서’, ‘공동주택 성능 요구서’, ‘입찰 방식 결정’ 등 사업의 핵심이 되는 요소들이 대거 포함돼 있었다.
그러나 이처럼 방대한 분량의 중대한 문서를 사전 공유 없이 당일 회의에서 일괄 처리한 것은 ‘도무지 납득할 수 없다’라는 반응을 낳고 있다. 일반적으로 도시정비사업에서는 이사회 이전 간담회나 협력업체 설명회를 통해 이사들이 조건을 충분히 검토하고, 외부 전문가 의견을 수렴하는 것이 관례다.
더욱이 성수1지구처럼 입지와 규모 모두 민감한 사업지는 조건 하나하나가 수천억원 단위로 직결되는 만큼 더욱 신중한 접근이 필요하다. 그럼에도 조합은 이 모든 절차를 생략한 채 입찰 지침을 ‘속전속결’로 통과시켰고, 그 배경을 두고 의혹은 더욱 커지고 있다.
특히 지침 내용 중 일부 조항은 업계 상식으로도 납득하기 어렵다는 평가다. 건설사들이 제출한 설계안 가운데 일조권과 조망권 관련 시뮬레이션 자료를 조합이 지정한 외부 업체에 사전 검토받도록 한 조항이 대표적인 사례다. 수개월 동안 비밀리에 준비된 핵심 설계 자료를, 입찰 마감 전에 제3자에게 제출하라는 요구 자체가 이례적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정비사업에서는 입찰 제안서를 밀봉해 접수하고, 마감 이후 일괄 개봉하는 방식이 원칙이다. 그러나 성수1지구의 경우, 조합이 입찰 마감 이전부터 외부 검토를 요구하면서 설계 도면 유출 가능성을 스스로 열어둔 셈이라는 비판이 제기된다.
더욱이 일조권과 조망권 시뮬레이션에는 동(棟) 배치, 층수, 평면 등 건설사 고유의 설계 전략이 포함될 수밖에 없어, 자칫 경쟁사에 주요 정보가 흘러갈 수 있다는 우려가 크다. 한 건설업계 관계자는 “기밀 자료가 입찰 전에 외부로 넘어가면 설계 전략이 고스란히 노출된다”라며 “이러한 구조에서는 공정한 경쟁 자체가 무의미해질 수 있다”라고 말했다.
입찰 지침을 둘러싼 논란은 최근 불거진 특정 건설사의 향응 의혹과 맞물리며 더욱 격화하고 있는 모양새다. 지난달, 성수1지구 조합장과 임원들이 해당 건설사 임직원들과 고급 한우 음식점에서 식사 자리를 가졌다는 제보가 나오면서 파장이 일었다.
고발장에 따르면 조합장 A씨를 포함한 임원 8명은 비공개 이사회 간담회를 마친 직후, 해당 건설사가 준비한 차량을 이용해 서울 성동구의 식당으로 이동했다. 이 자리에는 해당 건설사의 도시정비 담당 상무와 팀장 등 핵심 임원들도 동석한 것으로 전해졌다. 사건은 국민신문고를 통해 접수됐고, 현재 경찰이 정식 수사에 착수한 상태다.
조합 측은 “향응이 아니었다”라며 부인하고 있지만, 입찰공고를 불과 몇 주 앞둔 시점에서 특정 건설사와 별도 자리를 가진 것만으로도 사업의 공정성에 심각한 타격을 줬다는 비판이 이어지고 있다.
더구나 해당 건설사는 2020년 한남3구역 재개발 과정에서도 외주 홍보직원을 통해 조합원들에게 고가 식사와 금품을 제공한 혐의로 검찰 수사를 받은 전력이 있다. 이런 과거 이력까지 더해지며, 조합원들의 시선은 더욱 싸늘해지고 있다.
성수1지구는 성동구 성수동1가 72-10번지 일대, 19만 4,398㎡ 규모의 재개발 구역으로, 한강변에 최고 65층, 약 3,000가구에 달하는 서울 동북권 최대 정비사업으로 꼽힌다. 현재 현대건설, GS건설, HDC현대산업개발 등 3개 건설사가 입찰 참여 의사를 밝힌 상태다.
이처럼 사업 규모와 경쟁은 뜨겁지만, 정작 조합 내부의 절차와 운영은 공정성을 의심받고 있다. 만약 입찰 지침의 편향성과 접대 의혹이 사실로 드러난다면, 시공사 선정은 처음부터 ‘기울어진 운동장’ 위에서 진행됐다는 비판을 피하기 어려울 것이다.
이를 감시해야 할 공공지원자의 책임도 도마 위에 오르고 있다. 서울시 ‘공공지원 시공자 선정 기준’ 제7조는 이사회가 의결한 선정계획안에 대하여 대의원회의 소집을 통지하기 전에 미리 공공지원자의 검토를 받도록 명시하고 있다. 그러나 현재까지 성동구청이 실질적인 견제 역할을 했다는 정황은 보이지 않는다.
조합원들 사이에서는 “공공관리자는 이름뿐이고, 실질적으로는 조합과 특정 건설사의 게임이 되고 있다”라는 비판도 나온다. 한 조합원은 “지금이라도 성동구청이 책임 있게 개입해 입찰 절차의 공정성을 바로잡아야 한다”라고 지적했다.


외부업체가 기밀을 요하는 대안설계등을 유출해서 상대 시공사에 알려질 가능성이 농후한 말도 안되는 독소조항 조합지침 항목이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