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전에 함께 합 맞췄던 세력에 막대한 차익 남기며 지분 절반 매도
CB 발행해 지피씨알 투자자 지분 교환… 지피씨알도 무자본 인수
지난달 6연속 상한가를 기록하며 주목을 끈 코스피 상장기업 하이트론씨스템즈가 최근 불안한 주가 흐름을 보이고 있는 가운데, 하이트론이 무자본 M&A 전문가를 중심으로 한 세력들의 타깃(?)이 된 게 아니냐는 의심이 나오고 있다. 또 호재로 띄운 신약 개발 기업 지피씨알 인수도 하이트론이 CB(전환사채)를 발행해 지피씨알 지분과 맞교환하는 방식의 다소 생소한 인수 수법을 활용해 관심을 끌고 있다.
◆무자본으로 최대주주 차지한 유수=하이트론이 신약 개발 등의 사업 다각화에 나선 것은 지난 7월 유앤디(한국명 유철우) 대표가 선임된 뒤부터다. 유 대표는 지난해 회생절차를 밟던 하이트론의 제3자 배정 유상증자에 참여해 최대주주가 됐다. 자신이 대표로 있는 유수가 50억원을 납입해 1000만주(지분 36.22%)의 신주를 배정받았다. 자금은 상상인저축은행 등에 주식 전부를 담보로 50억원을 빌렸다. 이자율 12%에 담보유지비율 160%로 매우 높은 금리가 적용되는 조건인데, 상상인은 유 대표의 여러 기업 인수과정에 자금창구 역할을 많이 해왔다. 하이트론이 지난 15일 타법인 지분취득 자금 명목으로 윈앤리치에 발행한 26회차 CB 100억원도 당일 상상인에 넘긴 것으로 공시됐다.
하이트론은 지난달 45억원 규모의 제3자 배정 유상증자를 결정했다고 공시했다. 주당 831원에 541만주가 넘는 신주를 신동승 지피씨알 대표에게 발행한다는 내용이다. 납입 일자는 내년 4월 30일. 신 대표가 이날 자금을 납입하면 하이트론의 최대주주가 된다고 밝혔다. 하지만 지피씨알의 우회상장 의심이 불거진 것에 대한 부담 탓인지 유상증자 대상자가 위드윈투자조합74호로 바뀌더니 최근 로얄파인즈파트너스로 변경됐다. 로얄파인즈는 유앤디 대표가 지분 100%를 보유하고 있는 곳이다.
이날 하이트론의 최대주주인 유수는 500만주를 투자조합인 골든로드와 리드유니온에 250만주씩 주당 2000원, 총 100억원에 매각한다고 알렸다. 유앤디 대표는 50억원에 1000만주를 인수해 이 가운데 500만주를 100억원에 팔아 50억원을 남기고도 여전히 500만주를 보유하게 됐다. 엄청난 차익을 남긴 셈이다. 이들 투자조합엔 유 대표와 수차례 합을 맞춰온 인물들이 대거 포함돼 있어 눈길을 끌었다. 업계 관계자들은 이들이 관여한 종목 중에 주가가 급등락하다가 좋지 못한 결말을 맞은 사례가 적지 않았다고 우려를 나타냈다.
골든로드와 리드유니온은 리딩HT신기술사업투자조합1호가 우리네트워크에 넘긴 하이트론 지분 584만9969주 가운데 각각 225만주를 주당 915원에 인수함으로써 이들이 보유한 하이트론 주식은 각각 475만주가 되면서 나란히 2대주주로 됐다. 하이트론의 경영권에도 개입하거나 막대한 차익실현이 가능해졌다.
◆하이트론, CB와 지피씨알 주주들 지분 맞교환 방식으로 지피씨알 인수=하이트론은 지난달 표적항암제 신약 개발 기업인 지피씨알을 인수한다고 알렸다. 지난해 회생절차를 거칠 정도로 재무구조가 허약한 기업이었지만, 신약 개발이라는 호재를 띄우자 주가가 급등하며 880원대에 머물렀던 주가가 6연상 이후 지난달 23일엔 장중 5640원을 찍기도 했다.
하이트론은 당초 신동승 지피씨알 대표를 대상으로 한 제3자 배정 유상증자에 이어 수차례에 걸친 CB 발행을 결정했다. 언뜻 공시 제목만 보면 자금조달이 탄력을 받는 것으로 보일 수 있지만, 따져보면 자금 조달 목적이 모두 타법인 증권 취득으로 명시돼 있다. 또 실제로 자금이 들어온 CB는 지난 15일 윈앤리치가 발행 당일 인수해 상상인에 넘긴 100억원과 지난달 위드인투자조합72호가 인수한 CB 100억원이다. 모두 타법인증권 취득목적으로 공시다. 나머지 CB들은 납입 기일이 대부분 내년 3월과 4월이다. 납입시점 1~2개월 전에 공시하는 게 일반적인데, 6개월 이상 차이를 두고 있어 예사롭지 않다. 업계에선 이를 자금조달 뉴스를 미리 알려 주가를 띄우기 위한 의도가 깔렸을 것이라고 의심한다.
하이트론이 27~29회차로 발행하는 CB 대금은 현금이 아닌 지피씨알 투자자들의 지분으로 맞교환된다. 이로 인해 엘비넥스트유니콘펀드 등 지피씨알 주요 투자자들을 대상으로 340억원 규모로 발행되는 29회차 CB는 당초 납입 기일이 지난달 30일에서 계속 미뤄지다 최근 12월 26일로 변경됐다. 현금흐름할인법을 적용하면서 취득가격 산정에 양측이 의견 차이를 겪는 듯하다.
신동승 지피씨알 대표 등이 보유한 지분 19%가량도 하이트론 CB 162억원으로 대체된다. 이 CB는 납입기일이 내년 3월 31일이다.
내년 4월 예정인 45억원 규모 제3자 배정 유상증자의 상대가 신동승 지피씨알 대표에서 로얄파인즈파트너스로 바뀌면서 최대주주는 유앤디 대표가 떠안을 가능성이 높다. 유 대표는 하이트론에 50억원을 투입해 주식 절반을 100억원에 처분했기 때문에 차입금 50억원을 빼고 남은 돈으로 유증 자금을 납입해도 1000만주(기존 주식 500만주+신주 541만주)가 넘는 하이트론 주식을 보유하게 된다. 사실상 투입자금 하나도 없이 하이트론과 지피씨알 두 기업을 인수해 지배하는 마법을 부린 것이다.
당초 하이트론은 23일 주주총회를 열고 신동승 지피씨알 대표를 사내이사로 선임하고 일부 정관을 변경, 생명공학 기법을 이용한 신약 연구개발 사업 등을 추가할 예정이었으나 12월 5일로 연기한다고 22일 공시했다.
업계 관계자는 “하이트론이 지피씨알 신약개발 재료로 주가를 끌어올림으로써 향후 차익을 노릴 가능성이 크다”며 “관건은 자금 조달인데 현재로선 신약 개발을 위한 자금 지원 계획 등은 안 보여 일반 투자자 입장에선 접근에 신중을 기해야 할 것”이라고 당부했다.
주주 토론방에는 “죽어가던 하이트론이 동충하초처럼 투기세력들의 먹잇감이 된 것 같다”며 경종을 울리는 댓글도 눈에 띈다.
하이트론 주가는 최근 4000원대 중반에서 횡보하다 지난 21일 품에자산운용이 보유한 CB 3000만주 가운데 1800만주를 장외매도했다는 공시 이후 3000원대로 꺾인 상태에서 내리막을 타고 있다. 골든로드 등 대주주가 보유하고 있는 주식도 차익실현에 나설 경우 주가 급변동 가능성이 크다.
한편 유 대표는 이미 IB업계에서 무자본 M&A 전문가로 웬만큼 알려진 인물이다. 유 대표는 호주 그리피스대학교 회계학과를 졸합한 뒤 PKF컨설팅 시니어 회계사, 호주 CYS 밸런서즈 회계법인, 밸런서즈 대표 등을 역임했다. 코스닥 상장사에는 2016년 3월 통신장비업체 CS의 각자 대표이사로 있었던 사실도 확인된다.
유수는 2020년 설립돼 경영 컨설팅과 투자 지원이 주요 사업으로 유 대표가 지분 100%를 보유하고 있다. 지난해 3월 상호를 웰밸런스에서 유수로 변경했다. 유 대표는 주로 관계사들과 함께 전환사채 등의 메자닌에 투자하고 있다. 유 대표는 손권씨와 지분 50%씩 보유한 멘델스리미티드투자조합을 통해 지난해 에이치앤비디자인(현 퀀텀온)의 제3자 배정 유상증자에 참여, 60억원을 납입하고 최대주주에 오르기도 했다. 현재 의료기기 업체 메딕션의 지분 32.3%를 보유한 최대주주이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