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몰아치는 파도’를 없애는 법 [김범준의 세상물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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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몰아치는 파도’를 없애는 법 [김범준의 세상물정]
  • 김범준 편집위원(성균관대 교수)
  • 승인 2023.11.28 15: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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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이미지투데이
/사진=이미지투데이

소음을 제거해주는 헤드폰이나 이어폰을 쓰는 사람들이 많다. 나도 비행기 탈 때 소음 제거 헤드폰을 챙겨가고는 한다. 헤드폰을 끼고 소음 제거 스위치를 켜는 순간 시끄러운 비행기 소음이 마법같이 사라진다. 소음 제거 헤드폰은 도대체 어떤 원리로 작동하는 것일까?

소리는 탁구공 같은 입자일까? 아니면 퐁당퐁당 돌멩이를 던진 호수 윗면에서 동그랗게 퍼져나가는 물결 같은 파동일까? 반대 방향으로 움직이는 두 탁구공이 도중에 서로 만나 충돌하면 경로가 급격히 변한다. 파동은 다르다. 다음에 호수에 돌을 던질 때는 하나가 아닌 두 개를 좀 떨어진 두 곳에 함께 던져보시라. 돌이 수면에 닿은 두 지점에서 시작한 두 파동은 둥글게 퍼져나가다 서로 만나지만, 잠깐의 만남 이후 두 파동은 만남을 쉬이 잊어 각각 제 갈 길을 이어가는 것을 볼 수 있다.

내가 당신의 목소리에 귀 기울일 때, 내 귀의 고막에 닿는 것이 크기가 있는 입자일리는 없다. 당신의 입에서 출발한 어떤 입자가 나를 향해 다가올 때 내 입에서도 당신을 향해 어떤 입자가 나아간다면, 둘 사이 어딘가에서 두 입자가 탁구공처럼 충돌해 경로가 달라지기 때문이다. 내가 낸 소리와 당신이 낸 소리는 공간 어딘가에서 스르륵 스쳐 지나쳐 각자의 귀에 도달한다. 나와 당신이 동시에 말해도 서로 상대의 얘기를 문제없이 들으며 대화가 물 흐르듯 부드럽게 진행될 수 있는 이유는 소리가 입자가 아니라 바로 파동이기 때문이다. “그렇지 않나요? 오버” 소리가 입자라면 둘이 순서를 번갈아 이야기할 수밖에.

탁구공 두 개가 만나면 그곳에서 탁구공은 2개가 된다. 그런데 진폭이 같은 두 파동이 공간의 한 점에서 만나면 그곳에서 더해진 두 파동의 합은 0이 될 수 있다. 1+1=2가 늘 성립하는 것이 입자라면, 파동은 1+1=0이 될 수도, 1+1=2가 될 수도 있다. 첫 번째 파동이 가장 높이 솟을 때 두 번째 파동은 가장 낮은 변위를 가지면 둘이 만나 0이 되고(1+1=0), 만나는 곳에서 두 파동 모두 가장 높은 변위를 가지면 둘이 만나 두 배로 커진다(1+1=2). 한 파동에 다른 파동을 더해서 0이 되면 우리는 두 파동이 상쇄간섭을 했다고 말한다. 소음제거 헤드폰이 바로 이 상쇄간섭을 이용한다. 외부의 소음과 정확히 반대로 뒤집힌 꼴로 진동하는 음파를 만들어 헤드폰 안 스피커로 틀어주어 두 파동을 소멸시킨다.

그림 1. 수로를 통과하는 파도. /이미지=Agnes Maurel
그림 1. 수로를 통과하는 파도. /이미지=Agnes Maurel

소음제거 헤드폰이 두 음파의 상쇄간섭을 이용하듯이, 진행하는 파도도 마찬가지로 상쇄간섭을 이용해 진폭을 크게 줄일 수는 없을까? 재밌는 논문이 최근 한 물리학 학술지에 출판되었다(DOI:10.1103/PhysRevLett.131.204002). 왼쪽에서 좁은 수로로 들어온 물결 파동은 균일한 수로에서는 그냥 오른쪽 끝까지 진행한다. 논문의 연구자들은 <그림 1>처럼 길이 1.4m, 폭 6cm, 그리고 깊이 5cm인 수로를 제작하고 가운데 부분에 움푹 파인 두 개의 사각형 구조를 추가했다. 수로에 놓인 두 사각형 부분의 크기를 적절히 조절하면 이 중간 부분을 통과한 파동의 진폭을 크게 줄일 수 있다는 것을 실험으로 보였고, 이론적인 수치 계산을 통해서도 그 결과를 확인했다. 가운데의 두 사각형 구조에서는 입사한 파도로 말미암아 새로운 파동이 이차적으로 만들어진다. 이렇게 발생한 파도가 왼쪽에서 진행한 파도와 정확히 뒤집힌 모습이 되도록 해서 두 파도가 서로 만나 소멸하도록 한 것이다. 실험 결과를 바탕으로 그린 <그림 2>를 보면 중간의 사각형 구조 왼쪽의 수로에는 파도가 높은 곳(노란색)과 낮은 곳(파란색)이 교차로 보이지만, 중간 부분을 통과한 이후에는 진폭이 크게 줄어든 것을 볼 수 있다. 왼쪽에서 들어온 파도가 중간의 구조에서 만들어진 이차 파도와 정확히 뒤집힌 모습이 되어 상쇄간섭하기 때문이다.

그림 2. 수로를 통과하는 파도의 상쇄간섭. /이미지=Agnes Maurel
그림 2. 수로를 통과하는 파도의 상쇄간섭. /이미지=Agnes Maurel

진행하는 물결파도 당연히 에너지를 가진다. 처음 들어온 파동의 에너지는 그럼 도대체 어디로 사라진 것일까? 물리학의 에너지 보존법칙은 어떤 경우에도 전체 에너지가 일정하게 유지된다는 것을 알려준다. 위 그림 중간 부분의 두 사각형을 보면 그곳에서 물결이 큰 진폭으로 움직이는 것을 볼 수 있다. 결국 파동이 운반하고 있던 에너지는 중간 부분의 두 사각형 구조에서 높은 에너지 밀도로 모인다. 이번의 연구가 해변의 파도를 줄일 뿐 아니라, 파도를 이용한 효율적인 에너지 변환 장치로도 쓰일 수 있다고 논문의 연구자들이 제안하는 이유다.

모든 파동은 서로 간섭한다. 오늘 소개한 연구는 파동의 간섭 현상을 현명하게 이용하면 입사해 들어오는 파도의 진폭을 크게 줄일 수 있다는 것을 알려준다. 비슷한 방식으로 지진파의 에너지를 상쇄간섭으로 줄이는 방법도 연구되고 있다. 물리학이 알아낸 파동의 간섭효과는 소음 제거 헤드폰에 이미 널리 쓰이고 있지만, 다른 현실의 문제에도 충분히 응용될 가능성이 있다. 어떻게 쓸지보다 알아내는 것에 더 큰 관심을 두는 것이 과학이지만, 그렇다고 과학이 쓰임에 눈감는 것은 아니다. 어쨌든 제대로 쓰려면 먼저 올바로 알아야 할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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