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행복을 일상으로, Andando! [강태운의 빛과 그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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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행복을 일상으로, Andando! [강태운의 빛과 그림자]
  • 강태운 미술칼럼니스트
  • 승인 2023.11.23 10: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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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이 필 때 / In Bloom, Oil on canvas, 2022
꽃이 필 때 / In Bloom, Oil on canvas, 2022

뭐죠 이 느낌은? 겹겹이 세워 둔 방어선이 일거에 무너졌습니다. 영혼마저 털린 줄 알았는데 한 가지는 남겨 두었군요. 바로 행복입니다. 에바 알머슨은 행복한 이야기를 그리는 화가입니다. 그림 앞에 서면 도무지 행복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이 순간만큼은 모든 근심 걱정을 벗고서 나는 행복한 사람으로 다시 태어납니다.

계몽주의적 일방통행이 팽배한 현실에서 우리는 분석이라는 거울에 자신을 비췄습니다. 잔인한 거울은 자신을 해체하고 재구성하라고 합니다. 잘못을 저지른 아이 앞에서 부모의 훈계가 그렇습니다. 그 과정은 설득이라는 탈을 썼을 뿐 아이에게는 좌절일 수밖에 없습니다. 이런 경험은 관계 사이에 벽을 세우게 합니다. 그래서 우리의 만남은 내가 세운 벽과 당신이 세운 벽이 만나는 것입니다. 벽은 다름을 인정하지 않습니다. 벽을 낮춰 넘어서지 못하면, 벽과 벽 사이의 거리만큼 멀어지는 것이 우리의 만남입니다.

자기 변화를 끌어내지 못하는 만남은 나와 타인은 물론 새로운 무엇을 접할 때도 마찬가지입니다. 문학비평가 황현산은 사랑으로만 권태를 치료할 수 있을 때, 또는 사랑이 필요하다는 말까지 권태롭다는 말의 다른 표현일 때, 유일한 처방은 충격이라고 했습니다. 다만 반동 없는 길들여진 충격을 경계했습니다. 분석이라는 잣대로 해체되고 재구성되는 충격으로는 그 어떤 벽도 뛰어넘을 수 없습니다. 역사학자 유발 하라리는 인류가 충격 앞에서 공황에 빠지는 것은 오만이라고 했습니다. 공황은 상황을 정확히 안다는 우쭐한 느낌에 근거하는 것이니, 공황을 당혹으로 전환하는 것이 더 겸허한 자세라는 것이죠.

공황에 빠져 자신의 존재를 부정하는 것, 습관화되어 아무런 변화가 없는 것 모두 충격을 대하는 올바른 자세가 아닙니다. 아이의 손을 잡고 길을 걸으면 아이의 시선으로 세상을 바라보기 위해 잠시 숨 고르는 시간이 필요합니다. 왜곡된 인식은 우리의 시선이 바닥에서 멀어진 만큼 누적되었고, 그것을 바로잡는 짧은 충격의 순간에 우리는 겸손을 떠올립니다. 충격 앞에 겸손하다는 것은 바로 처음으로 돌아가는 것입니다. 마음에서 울리는 목소리를 억압하지 않고 자연의 소리 마냥 귀 기울였던 어린 아이처럼요. 처음은 시작의 의미도 있지만 아무런 편견이 없는 세상을 뜻합니다. 벽이 없는 세상으로 회귀입니다. 벽이 사라지면 정서가 공유됩니다.

이탈리아 시민경제학자 안토니오 제노베시는 인류의 특별함을 상호성에서 찾았습니다. 다른 사람의 행복 없이 우리의 행복은 없다고 했지요. 하지만 상호성은 벽 앞에서 좌절되고 진실한 관계로 이어지지 못합니다. 따뜻한 햇살처럼 웃는 얼굴의 에바 알머슨은 어떤 충격을 통해 우리의 공감 능력을 회복시켜 주었을까요?

한 뼘 넘게 양옆으로 벌어진 두 눈. 턱선이 없어 얼굴에서 흘러내리듯 빚어진 목. 머리에 수놓은 꽃은 길이 되어 꽃길만 걸으라고 말합니다. 자화상 속의 그는 상상 속에서나 볼 수 있는 얼굴입니다. 당혹스러운 충격. 하지만 기분 좋은 충격으로 만남 사이에 존재하던 벽이 죄다 허물어졌습니다. 방어선이 무너지고 무장이 해제되면 우리는 그를 따라 아무것도 존재하지 않았던 처음의 시간으로 돌아갑니다. 자신이 자신을 스스로 규정짓지 않았을 때는 그 어떤 상상도 가능했지요. 내 안에는 꽃이 있고, 이제 나는 아무 망설임 없이 행복하다고 말합니다.

해변에서 / At the beach, Oil on canvas, 2023
해변에서 / At the beach, Oil on canvas, 2023

다시 현실에 발을 딛고 서니 에바 알머슨의 행복한 시선이 마냥 부럽습니다. 에바 알머슨 역시 마음대로 되지 않는 삶, 설렘이 없는 삶에 힘들어했습니다. 좌절이 없는 희망은 그냥 꿈일 뿐이죠. 그래서 꿈꾸는 일이란 좌절과 희망을 함께 노래하는 것입니다. 에바 알머슨은 수많은 문제를 안고 분주히 뛰어다니는 자신과 우리를 위해 용기를 냈습니다. 그것은 행복 없이도 행복해지자는 다짐이었고, 자신을 포함한 주위의 고통을 헤아릴 수 있을 만큼 삶에 너그러워지는 일이었습니다. 그렇게 행복했던 일상을 자신만의 사랑스러운 스타일로 풀어냈습니다.

에바 알머슨은 세상의 벽을 일방적으로 허물려고 하지 않았습니다. 그것은 또 다른 폭력이자 좌절을 불러올 뿐이죠. 최소한 자기가 세운 벽은 문턱을 낮췄습니다. 행복한 얼굴에 주위가 환기됩니다. 다음은 우리 몫이죠. 이 행복을 일상으로, Andando!

※ <에바 알머슨 특별전 : 에바 알머슨, Andando>가 2024년 3월 24일까지 부산 문화 복합 생산 플랫폼 피아크 에서 진행됩니다. 이번 전시에는 유화, 드로잉, 도자기, 조각, 애니메이션 등 그동안 볼 수 없었던 에바 알머슨의 다양한 예술 기법과 형식을 만나 볼 수 있습니다. 부산 전시만을 위한 ‘부산’ 주제의 신작이 추가 구성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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