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증권의 ‘유령주식 반성문’과 공매도 [사자경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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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증권의 ‘유령주식 반성문’과 공매도 [사자경제]
  • 이광희 기자
  • 승인 2021.09.27 15: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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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자경제] 각주구검(刻舟求劍). 강물에 빠뜨린 칼을 뱃전에 새겨 찾는다는 어리석고 융통성이 없음을 뜻하는 사자성어입니다. 경제는 타이밍입니다. 각주구검의 어리석음을 되풀이하지 않게 경제 이슈마다 네 글자로 짚어봅니다.

2018년 4월 14일 삼성증권 ‘자성결의대회’에서 당시 구성훈 대표(앞줄 왼쪽 2번째)를 비롯한 임직원들이 사죄의 반성문을 쓰고 있다. /사진=삼성증권
2018년 4월 14일 삼성증권 ‘자성결의대회’에서 당시 구성훈 대표(앞줄 왼쪽 2번째)를 비롯한 임직원들이 사죄의 반성문을 쓰고 있다. /사진=삼성증권

“반성문 떼샷 후 삼성증권 뉴스가 사라졌다.”

2018년 4월 14일, 삼성증권 부서장급 이상 200여명은 카메라 셔터 소리와 함께 반성문을 써 내려갑니다. 여드레 전 배당오류 사태로 투자자들의 비난이 빗발치자 ‘자성 결의대회’를 연 것입니다. 결의 직후 삼성증권은 “각자의 잘못을 반성하고 도덕성을 재무장해야 한다는 데 뜻을 모았다”라고 밝힙니다. 이후 누리꾼들은 배당오류 기사가 보이지 않는다고 아우성칩니다.

‘유령주식’. 있지도 않은 주식을 유령에 빗대어 일컫는 네 글자입니다. 법원이 2018년 삼성증권의 배당오류, 이른바 ‘유령주식 사태’로 손해를 본 주식투자자들의 손을 들어줬습니다. 사태가 발생한 지 약 41개월 만에 주식투자 손해액의 절반을 삼성증권이 배상하라는 판결을 내린 것입니다. 이번 삼성증권의 배상 책임 인정으로 비슷한 소송도 이어질 것으로 보입니다.

27일 법조계와 금융투자업계에 따르면 서울중앙지방법원 민사37단독 장 찬 부장판사는 최근 투자자 3명이 삼성증권을 상대로 제기한 3건의 손해배상 청구 소송에서 원고 일부 승소 판결을 내렸습니다. 이대로 판결이 확정되면 삼성증권은 소송을 제기한 투자자들에게 1인당 약 2800만원에서 4900만원을 지급해야 합니다.

유령주식 사태는 2018년 4월 6일 삼성증권이 우리사주에 1주당 배당금 1000원을 할당했으나, 전산 입력 과정에서 현금 배당 대신 1000주를 배당하면서 촉발했습니다. 당시 증권관리팀장은 이를 알지 못한 채 주식 배당을 그대로 승인했고, 이때 배당된 약 28억1296만주가 ‘유령주식’이었습니다. 당시 삼성증권 발행주식 8900만주의 30배가 넘는 규모입니다.

삼성증권 주가 추이. 법원은 삼성증권 유령주식 사태와 관련해 2018년 4월 6일 당시 삼성증권 주가를 3만9650원으로 추정하고, 이를 기준으로 투자자들의 손해액을 산정했다. /자료=한국거래소
삼성증권 주가 추이. 법원은 삼성증권 유령주식 사태와 관련해 2018년 4월 6일 당시 삼성증권 주가를 3만9650원으로 추정하고, 이를 기준으로 투자자들의 손해액을 산정했다. /자료=한국거래소

삼성증권은 사건 발생 직후 매도를 금지한다고 공지하며 사태 수습에 나섰습니다. 하지만 유령주식을 배당받은 삼성증권 직원 일부가 31분간 1208만주를 매도하는 주문을 냈고, 이 가운데 502만주의 계약이 체결됐습니다. 배당사고로 주식매도가 쏟아지면서 당일 거래량은 40배 이상 치솟았고, 주가는 장 중 11.7%까지 폭락했습니다.

이 같은 유령주식 사태에 대해 재판부는 삼성증권에게 배상 책임이 있다고 봤습니다. 재판부는 “삼성증권은 우리사주 배당시스템의 내부통제제도를 갖추지 못해 배당오류 사고를 야기했고, 우발상황에 대한 위험관리 비상계획을 갖추지 않아 주가 폭락을 발생하게 했다”라고 판시했습니다.

다만 재판부는 일부 직원들이 착오로 입고된 주식을 매도한 행위까지 회사가 책임질 필요는 없다고 덧붙였습니다. 직원들이 오로지 사익을 추구하며 개인적으로 거래한 것으로 봤기 때문입니다. 삼성증권의 주가 하락이 주식을 매도한 직원들의 자본시장법(자본시장과 금융투자업에 관한 법률) 위반 등 범죄 행위로 발생했다는 것입니다.

재판부는 그러면서 “모든 손해를 삼성증권이 책임지는 것은 가혹하다”라며 삼성증권의 손해배상 책임을 50%로 제한했습니다. 이에 따라 삼성증권의 배당오류 사고가 없었을 경우 예상되는 2018년 4월 6일 당시 주가를 3만9650원으로 추정하고, 이를 기준으로 투자자들의 손해액을 산정했습니다.

한국거래소가 다음 달부터 증권사 등 회원사에 대한 중복제재 등을 금지하는 장치를 도입한다. /자료=한국거래소
한국거래소가 다음 달부터 증권사 등 회원사에 대한 중복제재 등을 금지하는 장치를 도입한다. /자료=한국거래소

이 같은 소식이 전해지자 누리꾼들은 삼성증권의 책임을 손해액의 절반으로 제한한 잣대가 불합리하다며 목소리를 높이고 있습니다. 아울러 현행 공매도와 시스템 미비에 대한 감독당국과 거래소의 책임도 있다고 지적합니다.

“회사의 잘못을 회사가 지는 게 가혹하다니 그럼 개인의 잘못도 정부가 같이 져야지” “뭔 말 같지도 않은 소리야. 그럼 이익 추구한 직원이 개인들 손해 물은 거 100% 물어라. 장난하나. 판사 아무나 하겠다” “삼성증권은 사기꾼 집단이다. 자신들이 잘못했으면 즉각 실수를 인정해야지 책임이 없다니 기가 막힌다”.

“왜 절반만 배상이지? 전액 배상해야지. 주식과 금액도 실시간 모니터링 안 되는 엉터리 시스템에 대해서는 증권거래소에서 책임져라” “금감원은 증권사의 유령주식을 가려낼 수는 있는지 정말 의심스럽다” “미국 빅테크를 본받아라. 주주 지켜주겠다고 자사주 매입하는 나라인데. 한국은 뒤통수나 치니” “큰 도적질이 통용되는 한국”.

“무차입 공매도가 가능한 시스템의 오류” “한국 시장에선 공매도 없애야 한다. 빌려서 파는 것도 아니고 없는 주식 만들어서 팔아버리는데 이게 공정거래냐?” “솔직히 자기주식 떨어지길 바라는 세력한테 이자 몇푼 받고 주식 빌려준다는 게 정상적으로 불가능하지”.

2018년 4월 6일부터 진행된 청와대 국민청원 ‘삼성증권 시스템 규제와 공매도 금지’에 24만2286명이 동의했다. 당시 최종구 금융위원장은 청원 답변에서 공매도 폐지 불가를 거듭 밝혔다. /사진=청와대 국민청원 누리집
2018년 4월 6일부터 진행된 청와대 국민청원 ‘삼성증권 시스템 규제와 공매도 금지’에 24만2286명이 동의했다. 당시 최종구 금융위원장은 청원 답변에서 공매도 폐지 불가를 거듭 밝혔다. /사진=청와대 국민청원 누리집

한편 삼성증권의 유령주식 사태로 폐지 요구가 들끓었던 증권사 공매도에 대한 중복제재가 사라집니다. 한국거래소는 다음 달부터 규제 서비스 대상자인 증권사와 선물사 등 금융투자 회원사에 적용하는 제재금 부과기준과 세부 절차를 공개합니다. 거래소는 이와 함께 동일 위반행위에 대한 이중 제재 금지 장치를 도입하기로 한 것입니다.

현재 거래소 회원사의 공매도 위반 등은 시장감시위원회 제재대상인 동시에 금융당국의 제재대상에 해당합니다. 그동안 회원사들이 사실상 중복제재를 받는다며 반발해 온 이유입니다. 이에 따라 앞으로는 동일 위반행위에 대해 금융당국(과징금)과 시장감시위원회(제재금)의 중복제재를 최소화할 수 있도록 근거 규정을 만든 것입니다.

“공매도 제도가 가지는 순기능이 있다”. 2018년 삼성증권 유령주식 사태가 터진 날, 청와대 국민청원에는 ‘삼성증권 시스템 규제와 공매도 금지’라는 글이 올라왔습니다. 24만2286명이 동의한 청원 답변에서 당시 최종구 금융위원장은 공매도 폐지 불가를 거듭 밝혔습니다. 그 뒤 자리를 이어받은 고승범 위원장은 공매도를 확대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입니다. 그때나 지금이나 개인투자자의 목소리는 한결같습니다.

“그놈의 순기능은 누굴 위한 겁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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