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증시가 불타오르고 있다. 1980년대 고도 성장기 이후부터 살펴보더라도 이번만큼 단기간에 폭발적으로 주가가 레벨업된 경우는 찾아볼 수 없다. 심지어 2020년 코로나19 팬데믹 사태 당시 급추락한 직후부터 동학 개미 투자 열풍이 절정에 이르렀을 당시에 기록했던 폭발적인 상승폭마저 단숨에 뛰어넘었다. 이번의 역사적인 대폭등은 지난해 4월 트럼프 발 관세 폭탄으로 코스피 지수가 2300포인트 아래로 추락한 적도 있었기 때문에 더더욱 놀라운 반전이다.
코스피 지수가 단기간에 숨가쁘게 5000포인트까지 치솟았음에도 불구하고 이번 증시 상승세가 언제 어디까지 지속될까에 대한 고민은 크지 않은 듯하다. 코스피 지수에 대한 투자자들의 민감도가 예전보다 현저히 감소했기 때문이며, 코스피가 수백 포인트를 오르더라도 정작 자신이 보유한 주식이 오르지 않으면 지수 등락 자체는 그다지 중요하지 않기 때문이다. 현재 한국 증시를 맨 앞에서 이끌고 있는 종목들은 반도체, 자동차, 조선, 방산, 원자력, 전력 인프라, 로봇 등 몇몇 핵심 업종들로 점점 좁혀지는 듯한 느낌도 없지 않다. 그러니 이들 업종에서 비켜나 있는 종목들은 상대적으로 낮은 수익률에 머물 수밖에 없다.
갈수록 심화하는 경기 양극화는 그룹별 시가총액 변화에서도 고스란히 드러난다. 시가총액의 변화만 살펴보면 지난 몇십 년 동안의 변화보다 최근 7~8개월 동안의 변화가 훨씬 더 크게 느껴질 정도다.
오늘날의 시대 변화를 주도하는 핵심 업종들을 보유한 그룹들(삼성, SK, 현대차, HD현대, 한화, 두산)은 시가총액이 무서운 속도로 불어난 반면, 전통적인 내수 의존형 사업구조를 지닌 그룹들(롯데, CJ, LS)은 이번 상승 랠리에서 철저히 소외된 채 고전을 면치 못하고 있다.
15대 주요 그룹의 시가총액은 지난 주말 기준으로 3151조원에 이르는데, 9년 전인 2016년 말 시가총액이 804조원에 불과했던 점에 비춰보면 약 3.9배에 이르는 성장세다. 또한 지난 9년 동안의 변화 가운데 가장 큰 변화는 삼성그룹의 비중이 줄어든 반면 SK그룹의 비중이 크게 늘어났다는 점이다. 최근 현대차그룹의 시가총액이 폭증했음에도 불구하고 SK그룹의 시가총액에 비하면 절반에도 미치지 못할 만큼 2, 3위 간의 격차가 크다.
이들 15대 그룹이 시장 전체 시가총액에서 차지하는 비중도 역대 최대로 올라섰다. 9년 전에 비해 시장 전체 시가총액은 3.1배 늘어난 반면, 15대 그룹의 합산 시가총액은 3.9배 늘어났기 때문이다. 15대 그룹 합산 시가총액은 2016년 무렵만 하더라도 53%대에 머물렀으나, 지난 주말 기준으로는 67.4%까지 치솟았다. 우리나라의 경제 구조가 여전히 반도체·자동차·조선 등 몇몇 핵심 업종 중심의 수출 대기업 의존형으로 점점 더 편중되는 흐름이 여기서도 고스란히 드러난다.
15대 주요 그룹별 성장률 측면에서도 크게 희비가 엇갈리는 모습이다. HD현대중공업, HD현대일렉트릭, HD한국조선해양 등을 보유한 HD현대그룹의 연평균 성장률은 무려 33.4%에 이른다. 두산에너빌리티와 두산, 두산로보틱스를 주축으로 하는 두산그룹과 한화에어로스페이스, 한화오션 등을 보유한 한화그룹의 연평균 성장률이 그 뒤를 따르고 있다.
승승장구하는 이들 그룹과는 정반대로 지난 9년 동안에 끔찍한 역성장을 한 그룹도 있다. 롯데, CJ, GS그룹이 대표적이다. 롯데그룹은 특히 2016년 사드 배치 사태 이후 한한령이 본격화하면서 직접적인 타격을 받은 영향이 컸다. CJ그룹도 올리브영을 제외하면 별반 내세울 만한 사업이 별로 없다. 한때 GS건설을 중심으로 탄탄한 성장세를 보이는 듯했던 GS그룹의 뚜렷한 퇴조도 눈에 띈다.
그룹별 시가총액 순위의 변동을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최상위권에서는 SK그룹이 현대차그룹을 멀찌감치 따돌리고 2위 자리를 확고하게 꿰찼다. HD현대, 한화, 두산그룹은 LG그룹을 위협할 만큼 무섭게 추격하면서 각각 5, 6, 7위 자리까지 올라섰다. 최근 10년 동안 가장 부진한 그룹에 속하는 롯데, GS, CJ그룹은 시가총액 순위 13, 14, 15위까지 내려앉았다. 이들 3대 그룹이 15대 그룹에서 차지하는 시가총액 비중도 전부 합산해 봐야 카카오 그룹에도 미치지 못할 만큼 초라해졌다. 이들 세 그룹의 합산 시가총액이 2016년 말 기준으로 7.0%에 이르렀던 점에 비춰보면 더더욱 끔찍한 추락이다.
이제부터는 그룹별, 종목별로 지난 9년 동안 시가총액이 얼마만큼 불어났는지를 보다 구체적으로 살펴볼 차례다. 15대 그룹의 시가총액은 증시가 급등하기 직전이었던 지난해 5월 말 이후에만 111.1% 불어났다. 반면에 15대 그룹을 제외한 나머지 상장사들의 시가총액은 해당 기간 동안 불과 26.1% 상승하는데 그쳤다. 시장 전체 시가총액 증가율이 80.2%에 달했던 점에 비춰봐도 매우 부진한 성과다.
지난 9년 동안에 시장 전체 시가총액이 3.9배 증가하는 동안 가장 돋보인 성장을 보인 세 그룹(HD현대, 두산, 한화)은 각각 11.6, 10.4, 8.9배에 이르는 시가총액 증가를 기록했다. 시장 평균을 밑도는 그룹이 절반 이상인 점에 비춰봐도 이들 세 그룹의 성장세는 단연 돋보인다.
15대 그룹에 속하는 종목들의 연평균 시가총액 증가율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연평균 성장률 톱10에 드는 최상위 종목들의 연평균 시가총액 증가율은 무려 44%를 뛰어넘는다. 지난 9년 동안에 시가총액이 30배 이상 불어난 종목도 네 종목에 이른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