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가 발전하면 대통령 덕, 침체해도 대통령 탓일까 [김범준의 세상물정]
상태바
경제가 발전하면 대통령 덕, 침체해도 대통령 탓일까 [김범준의 세상물정]
  • 김범준 편집위원(성균관대 교수)
  • 승인 2025.07.18 09:35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한스 로슬링의 ‘팩트풀니스’] 악당을 찾지 말고 원인을, 영웅을 찾지 말고 시스템에 주목해야
현대 사회와 경제는 정말 복잡하게 얽혀 있는 시스템이어서 아무리 큰 권력을 가진 대통령이어도 한 사람의 영향은 그리 결정적이지 않다. 1970년대 빠른 경제 발전이 당시의 대통령 덕이라고 하는 것은 비난 본능이 ‘덕분 본능’의 꼴로 다르게 표현된 것일 뿐이다. /사진=이미지투데이
현대 사회와 경제는 정말 복잡하게 얽혀 있는 시스템이어서 아무리 큰 권력을 가진 대통령이어도 한 사람의 영향은 그리 결정적이지 않다. 1970년대 빠른 경제 발전이 당시의 대통령 덕이라고 하는 것은 비난 본능이 ‘덕분 본능’의 꼴로 다르게 표현된 것일 뿐이다. /사진=이미지투데이

1번 문제. 오늘날 세계 모든 저소득 국가에서 초등학교를 나온 여성의 비율은?
A. 20%   B. 40%   C. 60%

2번 문제. 세계 인구의 다수는 어디에 살까?
A. 저소득 국가   B. 중간 소득 국가   C. 고소득 국가

3번 문제. 지난 20년간 세계 인구에서 극빈층 비율은 어떻게 바뀌었을까?
A. 거의 2배로 늘었다.   B. 거의 같다.   C. 거의 절반으로 줄었다.

한스 로슬링의 책 <팩트풀니스>의 머리말에 있는 13개 문제 중 처음 세 문제다. 문제의 답도 책에 나온다. 독자도 한번 답을 생각해 보고 책의 정답을 가지고 채점해 보기를. 13개 문제 중 내가 정답을 맞힌 문제는 딱 하나였다. 명색이 현실 데이터에 관심 많은 통계물리학자인 내가 받은, 100점 만점에 10점에도 못 미치는 형편없는 점수다. 전혀 글을 이해하지 못하는 침팬지가 각 문제에 A, B, C, 셋 중 하나를 아무거나 답으로 찍어도 13개 문제의 3분의 1인 평균 네 문제는 맞힐 수 있다. 우리가 살아가는 현실 세상에 대한 내 지식은 침팬지보다 못하다. 내 오답은 한 방향으로 편향된 것도 알 수 있었다. 나는 세상을 실제 현실보다 더 어둡게 본다. <팩트풀니스>에 따르면 나만 그런 것이 아니다. 전 세계 많은 이가 학력, 직업, 국적, 종교에 무관하게 형편없이 낮은 점수를 받는다. 우리 대부분은 세상이 많이 나아졌는데도 이를 전혀 눈치채지 못하며 살아가고 있는 셈이다.

<팩트풀니스>의 저자 한스 로슬링은 통계학을 전공한 과학자이자 의학을 전공한 의사로서 스웨덴 국경없는 의사회를 공동 설립한 이다. 저자는 아들 부부와 함께 갭마인더(Gapminder) 재단을 창설해서 실제 현실의 통계 데이터를 가지고 사실에 충실한 세상의 참모습을 알려주려 죽는 날까지 오랜 기간 노력했다. 이 책 출판 전에도 한스 로슬링은 학계뿐 아니라 일반인에게도 ‘물방울 도표’(bubble chart)라는 정보 시각화 도구로 널리 알려진 사람이다. 갭마인더재단의 홈페이지를 방문하면 여러 멋진 물방울 도표를 직접 그려볼 수 있다. GDP와 기대수명을 각각 가로축과 세로축으로 한 이차원 평면 위에서 각 나라를 표시하는 물방울이 시간이 지나면서 어떻게 움직이는지를 한번 살펴보기를 바란다. 많은 나라가 우상향의 직선을 따라 이동한다. 기대수명은 소득수준과 강한 상관관계가 있다는 것을 직관적으로 보여주는 멋진 시각 자료다. 코로나19가 한창 기승을 부리던 몇 년 전, 나도 당시 대학원생 조원국 군과 함께 전 세계 코로나 확진자 수를 물방울 도표의 방식으로 그려보기도 했다.

팩트풀니스(factfulness)는 한스 로슬링이 만든 새로운 단어다. 우리말로는 ‘사실충실성’으로 옮긴다. 사실에 충실한 시각으로 세상을 보는 구체적이고 생생한 경험과 조언이 책에 잘 담겨있다. 책의 11개 장은 저자의 의미 있는 생생한 경험담으로 시작해서 어떻게 해야 세상을 올바른 시각으로 보고 이해할 수 있는지에 대한 명쾌한 요약으로 마친다. 저자의 구체적인 삶의 경험과 일반적인 통찰이 함께 어우러진 멋진 책이다. 11번째인 마지막 장 ‘사실충실성 실천하기’를 제외한 10개 장의 제목은 하나같이 ‘~본능’이다. 이성적이고 비판적인 사고를 위해 우리가 힘써 노력하지 않으면 피하기 어려운 우리 인간의 여러 인지 본능을 소개한다.

간극 본능은 우리가 세상을 이것 아니면 저것으로 나눠 있지도 않은 간극을 보려 하는 본능이다. 세상은 더 이상 개발도상국과 선진국으로 딱 잘라 나뉘지 않고 가난한 사람과 부자로 나뉘지도 않는다는 것을 데이터로 명쾌히 보여준다. 세상 모든 것은 사실 연속인데 우리가 자꾸 없는 간극을 상상해 세상을 모 아니면 도의 흑백으로 나눠 바라보는 것이 간극 본능이다. 어느 정도의 범주화는 세상에 대한 사고를 진행하기 위해 꼭 필요한 일이기는 하다. 저자는 우리가 사고를 진행하기 위해 어쩔 수 없이 그룹으로 나눠 사고해야 한다면 둘이 아니라 넷으로 나눠 보자는 멋진 절충안을 제시한다. 소득을 기준으로 사람들을 저소득과 고소득으로 딱 둘로 나눌 때 생기는 인지 오류를 피하려 소득수준을 둘이 아인 네 단계로 나누는 방법이다.

저자의 4단계 구분법에서는 한 단계 높아질 때마다 소득이 4배로 늘어난다. 1단계의 사람이 하루에 1~2달러의 수입으로 살아간다면 4단계에 있는 사람은 이보다 32배가 큰 32달러 이상의 수입이 있다. 독자도 한번 다음 달부터 월급이 이번 달의 네 배가 된다고 상상해 보라. 십중팔구 삶의 질이 정말 크게 달라질 것이 분명하다. 두 단계의 차이를 덧셈이 아니라 곱셈으로 계산하는 저자의 단계 구분법에 고개가 끄덕여진다. 각 단계의 사람들이 어떤 모습으로 살고 있는지, 여러 생생한 삶의 모습을 담은 사진을 1단계, 2단계, 3단계, 4단계로 뻗어있는 1차원의 가상 도로 위에 표시한 것이 ‘달러 스트리트’다. 종교가 다르고 국적이 달라도 같은 단계에 있는 사람들의 삶의 모습은 놀랍게도 비슷하다는 것을 생생히 보여준다. GDP가 아주 낮은 나라의 4단계 삶의 모습은 우리나라의 4단계 삶의 모습과 정말 비슷해서 달러 스트리트의 사진만으로는 어느 나라에서 찍은 사진인지 거의 구별할 수 없다. 달러 스트리트는 저개발 국가에도 다양한 소득수준의 사람이 살고 있어서, 저개발 국가의 삶을 선진국과 명확히 구별하는 간극은 없다는 것을 잘 보여준다.

좋은 것보다 나쁜 것에 주목하는 것이 부정 본능이다. 세상이 과거보다 훨씬 좋아졌는데도 우리가 더 나아진 세상의 모습을 보지 못하게 하는 본능이다. 바로, 머리말의 문제에서 형편없는 점수를 받은 내 얘기다. 저자는 스스로를 낙천주의자가 아니라 ‘가능성 옹호론자’라고 선언한다. 세상은 물론 여전히 나쁘지만 계속 나아지고 있다는 관점이다. 물리학의 개념으로 말하자면, 속도가 여전히 느리지만 그래도 빨라지고 있을 수 있다는 얘기다. 이미 충분히 좋아졌다는 주장이 아니라는 것이 중요하다. 맞다. 여전히 나쁘다. 하지만 과거와 비교해 많이 나아졌고, 이는 지금까지의 우리 모두의 노력이 효과가 있었다는 얘기다. 아직 바꿀 것이 많지만 앞으로 더 나아질 것이라는 희망을 품고 계속 노력하자. 저자가 얘기하는 가능성 옹호론자의 관점이다.

운명 본능은 “그 나라 사람들은 안 변해”처럼 정해진 운명이 있어서 바뀔 수 없다고 생각하는 본능이다. 삶의 모습이나 출산율이나 어린아이 사망률이나, 과거의 유럽은 현재의 아프리카를 빼닮았다는 것을 저자는 명확히 보여준다. 유럽이 발전했다면 아프리카라고 발전 못 할 이유가 없다. 결코 헤어날 수 없는 아프리카의 정해진 운명이라는 것은 없다는 얘기다. 사람들의 사고 방식과 문화도 느리지만 꾸준히 변한다고 말하면서 저자는 한국과 일본 남성이 주장하는 안타까운 ‘아시아의 가치’ 이야기를 들려준다. 결혼한 여성에게 육아와 시부모 봉양을 떠맡기는. 지금도 여전히 큰 힘을 발휘하는 소위 ‘미풍양속’ 얘기다. 저자가 홍콩에서 만난 한 전문직 미혼 여성은 아이가 있는 행복한 미래를 가끔 상상하지만, “남편을 상상하면 참을 수 없다”라고 저자에게 말한다. 이런 전통문화는 우리가 지켜야 할 ‘미풍양속’이 전혀 아니며, 사실 지금도 꾸준히 조금씩 사라지고 있는 이상한 문화다. 오래전 가족 단위 농업사회에서나 어느 정도 의미 있었던 전통 사회의 가치일 뿐이다. 우리나라의 낮은 출산율 문제를 해결하려면 우리가 애써 바꿔야 할, 지금은 사라져야 할 구시대의 가치다. 운명은 없다. 얼마든지 우리가 바꿀 수 있는 가치다.

/김영사
/김영사

책에서 소개한 여러 본능 중 우리나라 사람들이 꼭 귀 기울여 주었으면 하는 것이 ‘비난 본능’이다. 저자는 졸다가 사고를 일으킨 항공기 기장의 예를 들려준다. 항공기 사고가 발생했을 때, 꾸벅 존 기장을 처벌하고는 마치 문제를 해결한 것처럼, 사고 처리를 마무리한다면 미래의 유사한 사고를 막을 수 없다. 물론 처벌도 필요할 수 있지만, 왜 기장이 운항 중에 꾸벅 졸 수밖에 없었는지, 혹시 운항 스케줄이 너무 빡빡해서 충분한 휴식을 취할 시간이 없었던 것은 아닌지, 시스템에 대한 고민과 촘촘한 규제가 더 중요하다. 우리나라의 여러 사고에서 나도 간혹 느낀 일이다. 큰 화재로 안타까운 인명사고가 났을 때, 책임자 처벌에서 멈추고 시스템의 해결 방법을 고민하지 않는다면 다음의 사고를 막기 어렵다. 비난 본능의 다른 사례도 많다. 우리나라에서는 경제가 발전하면 대통령 덕이고, 경제가 침체하면 대통령 탓이라고 생각하는 이들이 많다. 현대 사회와 경제는 정말 복잡하게 얽혀 있는 시스템이어서 아무리 큰 권력을 가진 대통령이어도 한 사람의 영향은 그리 결정적이지 않다. 1970년대 빠른 경제 발전이 당시의 대통령 덕이라고 하는 것은 비난 본능이 ‘덕분 본능’의 꼴로 다르게 표현된 것일 뿐이다. 악당을 찾지 말고 원인을 찾자. 영웅을 찾지 말고 시스템에 주목하자.

나는 이 책의 한 줄 요약으로 “세상을 이해하고 바꾸고 싶다면 수치를 보되, 수치만을 보지는 마라”는 저자의 문장을 꼽는다. 수치와 데이터가 없다면 우리는 세상을 이해할 수 없다. 하지만 수치와 통계만으로는 세상을 제대로 이해해 바꿀 수도 없다. 통계학자로서의 저자는 수치의 중요성을 이야기하고, 의사로서의 저자는 수치로는 포착될 수 없는 개개인의 구체적 삶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사실 둘 다 필요하다. 질병에 대해 어떤 치료법을 택할지는 이전 데이터와 수치가 합리적 판단의 근거가 되어야 한다. 하지만 치료 가능성이 30%라고 해서 치료를 받은 눈앞의 아이 한 명이 30%만 살 수는 없다. 세상의 문제를 이해하고 해결하려면 냉정한 숫자는 꼭 필요한 일이다. 하지만 숫자가 다가 아니다. 숫자 못지않게 중요한 것은 숨 쉬며 하루하루를 살아가는 각자의 구체적 삶이다. 바람의 풍속을 수치로 알아내 대비하는 것도 물론 중요하지만, 동시에 우리에게는 “잎새에 이는 바람에도 괴로워하는 마음”이 필요하다.

*책을 읽고 함께 이야기 나눌 주제

1. 머리말의 13개 질문에서 몇 점 받으셨나요? 정답을 보고 깜짝 놀란 문제는 어떤 것이었나요?

2. 본인의 낮은 점수가 부끄러우신가요? 낮은 점수가 정말로 우리가 세상을 실제보다 어둡게 보기 때문일까요? 어쩌면 우리가 좋은 쪽과 나쁜 쪽의 차이를 돋보기처럼 확대해 보기 때문일 수도 있지 않을까요?

3. 여러분의 어려서의 경험과 지금의 상황을 비교해서 우리 사회에서 많이 달라진 것이 어떤 것이 있는지 말해보세요.

4. 저자가 얘기하는 간극 본능과 일반화 본능으로 살필 수 있는 우리 사회의 그릇된 인식의 예를 들려주세요.

5. 공포 본능에 대한 이야기도 재밌습니다. 저자는 공포와 위험은 다르다는 것을 강조합니다. 여러분은 이 책을 읽고 나서 더 이상 두렵지 않게 된 것이 있나요?

6. 이 책을 읽고 여러분이 새로 알게 된 가장 놀라운 통계적 사실은 어떤 것인가요?

7. 이 책이 출판된 것은 2018년입니다. 저자의 주장 중 현재 시점에서 동의하기 어려운 것이 있을까요?

 


관련기사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주요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