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협금융의 강호동 중앙회장 ‘환영 이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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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협금융의 강호동 중앙회장 ‘환영 이벤트’
  • 조수연 편집위원(공정한금융투자연구소장)
  • 승인 2024.04.02 13: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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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기만성(大器晩成). 지난달 11일, 조합원 206만명의 초거대 조직 농협중앙회의 수장으로 취임한 강호동 회장의 인생 역정을 보며 들었던 생각이다. 최근 농협중앙회장 선거는 17년 만에 조합장 직선으로 치러졌는데 2차 결선 투표에서 1245표 중 781표, 62.7%의 지지를 받아 강호동 시대가 문을 열었다. 1963년 경남 합천에서 출생해 크지 않은 지역 농협인 율곡농협에 입사한 25세 청년 조합원 강호동은 19년 후 율곡농협 조합장으로 선출되고, 37년 만에 중앙회장이라는 농협 최고봉에 올랐다. 학벌이 절반 이상 먹어 준다는 한국 사회에서 대학교를 중퇴한(2009년에 세무회계 학사를 따지만) 강 회장의 스펙을 고려하면 그야말로 ‘개천에서 용 났다’라는 속담이 제격이라는 생각이다.

자료 1. /출처=농협
자료 1. /출처=농협

강호동 중앙회장의 위치가 얼마나 대단한지는 농협의 규모를 보면 알 수 있다. 농협은 상호금융 조직을 포함한 농협중앙회와 1111개 지역 농·축협, 농협경제지주, 농협금융지주로 구성한다. 농협경제지주는 15개 계열사가 있으며 농협금융지주는 11개 계열사와 1372개의 국내외 지점을 거느리고 있다. 또한 지난해 말 자산규모는 농협중앙회 166조3000억원, 농협금융 532조5000억원으로 총 718조8000억원에 이른다. 이러한 방대한 조직의 통제권을 중앙회가 가지고 있으니, 그 수장의 권력은 실로 막강하다고 할 수 있다. 이른바 ‘농민 대통령’이라는 권좌에 지역 농협에 입사한 조합원이 오른 것이다.

그러나 호사다마(好事多魔)라고 했던가. 강호동 회장의 취임을 농협 조직은 거친 방식으로 축하했다. 강 회장은 취임과 동시에 NH투자증권 CEO 선임 과정에서 자신의 의견이 거부당하는 수모를 감내해야만 했다. 강 회장은 전 농협중앙회 부회장을 그 자리에 추천했으나, 농협금융은 이를 거부한 것으로 전해졌다. NH투자증권 임원후보추천위원회는 내부 출신인 IB사업부 부사장을 CEO로 최종 낙점한 뒤 지난달 27일 주주총회 의결을 통해 선임했다. 이 과정에서 NH투자증권의 독립성은 확보했으나 중앙회와 농협금융은 불편한 관계가 되고 말았다.

이 상황을 놓고 세간의 평가는 나뉘고 있다. 한편에서는 ‘금산 분리 원칙’을 내세워 중앙회가 ‘NH투자증권은 물론 농협금융 인사에 간섭하면 안 된다’라는 주장을 하고 있다. 2012년 신용사업(금융)과 경제사업(비금융)으로 농협을 분리한 취지대로 금융 부분의 독립성을 보장해야 한다는 것이다. 사실 농협금융 계열사 CEO와 임원 대부분이 농협금융지주 100% 지분을 가진 중앙회 출신들로 채워지는 등 농협금융은 중앙회의 실질적 지배를 받고 있었다. 그래서 이번 NH투자증권 CEO 인사는 이례적이며, 중앙회로서는 받아들이기 어려웠다는 평가다. 그러나 지난달 7일부터 금융감독원이 지배구조 문제를 들먹이며 농협금융지주와 농협은행의 수시감사에 착수하고, 이복현 금감원장도 금산 분리 원칙을 강조하자 농협중앙회는 더 이상 강수를 두기 어려워졌다. 윤석열 대통령과 밀접한 관계인 이석준 농협금융지주 회장은 일단 형식적으로는 인사 독립성을 찾았지만, 신임 회장을 맞은 중앙회와는 대립하는 모양새가 됐다.

NH투자증권 CEO 인사에 대한 다른 시각은 농협에 편입되기를 꺼리는 NH투자증권의 정서와 실력 행사를 원인으로 본다. NH투자증권은 2012년 당시 임종룡 농협금융지주 회장이 우리투자증권을 인수한 결과물인데, 인수 당시 엘리트 증권회사로 콧대가 높았던 우리투자증권이 농협을 낮춰보고 인수를 거부하자 임 전 회장이 인수 추진을 위해 독립경영을 보장한 것이 김원규 전 대표와 정영채 전 대표에 이어 오늘까지도 농협중앙회는 물론 농협금융지주의 경영 참여도 배제하는 기업 문화의 화근이 됐다는 것이다. 농협금융지주도 외부에서 NH투자증권 CEO를 영입하려 했으나 결국 NH투자증권의 거부에 물먹은 꼴이 됐다. 윤병운 신임 NH투자증권 사장은 정영채 전 사장의 오른팔로, 내부 인사임에도 NH투자증권 노조가 거부한 인사로 알려진다. 결국 복잡 미묘한 상황에서 윤병운 사장은 어부지리했고, 정영채 전 사장이 최후 승자라는 금융투자업계 평가가 나오고 있다. 강호동 회장은 NH투자증권이 오랜 기간 자율 경영을 했으나 라임, 옵티머스 펀드 사태 등 불공정 거래를 상습적으로 해왔다며 농협 울타리로 들어와야 한다고 주장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러한 와중에 금감원 특별사법경찰은 상장 후 급락한 파두 사태와 관련해 불공정 거래 의혹으로 지난달 19일 두 번째로 NH투자증권을 압수 수색했다.

자료 2. /출처=농협은행
자료 2. /출처=농협은행

그러나 NH투자증권 사태보다 더 심각하게 강호동 회장의 체면을 구긴 농협의 ‘환영 이벤트’가 있었다. 강 회장 취임 직전인 지난달 5일, 농협은행은 약 109억원의 업무상 배임이 있었다고 공시해 신임 회장의 취임 환영 분위기에 찬물을 끼얹었다. 지난해 11월 10일까지 4년 8개월 동안 일어난 사건이었는데, 공시 시점이 공교롭게 NH투자증권 CEO 인사 문제로 농협중앙회와 농협금융 사이에 불편함이 증폭하는 한 가운데였다. 금융사고 감독 책임이 있는 이석용 농협은행장은 직전 농협중앙회 기획조정본부장이었다. 더 재미있는 것은 금융사고 공시 이후 중앙회의 직접 관리 책임이 있는 경기도 한 지역 농협에서 100억원대 대출 사고가 있었고, 석 달 넘게 경찰이 수사 중이라는 보도가 나왔다. 지역 농협의 상호금융에서 동일인 50억원 대출 한도를 무력화하려고 유령법인에 쪼개기 대출했다는 혐의가 알려진 것이다. 이 같은 금융사고 발생일이 신임 회장 취임 전이기는 하지만, 지역 농협 쪼개기 대출 사건은 강 회장의 민감한 약점을 부각할 수 있다는 점에서 주목된다.

자료 3. /출처=서울행정법원
자료 3. /출처=서울행정법원

강 회장은 율곡농협 조합장 재임 시절인 2020년 10월, 동일인에게 수십억원의 한도 초과 대출을 해준 사실이 금감원에 적발돼 직무 정지 3개월의 행정처분을 받았다. 중앙회장 선거를 앞둔 당시 강 조합장은 금융위원회를 상대로 직무 정지 처분 취소 청구 소송을 제기했으나 서울행정법원은 기각했다. 금감원이 징계 요청한 혐의가 명백하다는 것을 입증한 판결이었는데, 강 조합장은 농협중앙회 정관의 임원 자격 관련 조항을 적극 해석해 중앙회장 선거에 출마할 수 있었다.

다만 그의 위반 사항은 상호금융 대표이사의 임원 결격사유에는 해당하므로 앞으로 중앙회장 직무 범위에 소속한 상호금융 부문 의사결정이나 감독을 어떻게 처리할지 관심거리다. 무엇보다 자신의 위반 사항과 동일한 사건의 처벌이나, 더 나아가 위법한 고객에 피해 주는 업무 행위 등에 대한 내부통제에 최고 의사 결정권자로 참여할 때, 중앙회나 조합원 구성원, 농협 고객이 공감할지도 문제다. 위반자가 위반자를 처벌하는 것이 조직 문화와 고객 정서에 부정적일 것은 명약관화하기 때문이다. 특히 지역 농협 초과 대출 보도의 노출 시점이 강 회장 취임에 맞춰진 점은 공교롭다. 강호동 회장의 앞길이 순탄하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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