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주 양산’은 기후 위기 막을 수 있을까 [김범준의 세상물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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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주 양산’은 기후 위기 막을 수 있을까 [김범준의 세상물정]
  • 김범준 편집위원(성균관대 교수)
  • 승인 2024.04.01 08: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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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이미지투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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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년은 인류가 지구의 기상을 관측한 이후 가장 기온이 높은 해였다. 산업화 이전과 비교해서 평균기온이 1.48도 상승했다고 한다. 2015년 전 세계 195개국이 합의한 파리 기후협약에서 설정한 ‘1.5도’의 한계에 근접한 위험한 수치였다. 요즘의 암울한 전 세계적인 정치와 경제 상황을 생각하면, 기온 상승을 막기 위해 전 인류가 함께 힘을 모으기도 어려워 보여 걱정이다. 지금은 모든 인류가 함께 맞닥뜨린 기후 위기의 시대다.

1.5도로 설정한 첫 번째 마지노선이 무너진다고 해서 갑자기 그다음 날 인류가 멸망하지는 않는다. 하지만 더 큰 태풍 피해, 점점 더 심해지는 해수면 상승, 가뭄과 홍수 피해의 증가 등이 이어지고, 결국 지구의 기후가 비가역적으로 변하게 될 위험이 있다. 기후 위기를 막아내는 장기적으로 확실한 플랜 A는 인류가 배출하는 탄소를 적극적으로 줄이는 것이다. 하지만 어쩌면, 플랜 A가 실패하거나 달성까지 너무나도 긴 시간이 걸리는 상황에 대비하는 플랜 B, 플랜 C가 우리에게 필요할 수도 있다. 대기 중의 탄소를 대규모로 직접 포집하는 기술이나 인류의 영원한 꿈인 핵융합 발전 기술을 더 발전시키는 노력도 필요하다. 다른 제안도 있다. 태양에서 지구로 쏟아지는 에너지 자체를 줄이자는 아이디어다. 과거 대규모 화산 폭발로 대기 중에 살포된 다량의 먼지 입자가 태양 빛을 막아 지구의 온도가 내려갔던 것에서 착안해서 지구 대기의 상공에 태양 빛을 우주로 되돌려 반사하는 입자를 직접 살포하자는 제안이다. 지구 전체의 기후 시스템에 미치는 장기적인 영향의 불확실성이 커서 아무래도 섣불리 실행하기에는 곤란한 방안으로 보인다.

1989년에 처음 제안된 다른 아이디어도 있다. 뜨거운 햇볕이 쨍쨍 내리쬐는 여름날 우리가 양산을 받쳐 들어 더위를 피하듯이, 지구와 태양 사이에 커다란 가림막을 펼쳐서 먼 우주공간에서부터 지구로 쏟아지는 태양 에너지를 줄이는 방법이다. 지난해 출판된 한 논문(DOI:10.1073/pnas.2307434120)은 기존의 아이디어를 좀 더 개선한 방법을 제안했다. 논문에 따르면, 과거 지구의 소빙하기 때 지구 표면에 전달되는 태양 에너지가 약 0.24% 줄었고, 이로 말미암아 지구의 기온이 섭씨 0.5~0.6도 내려갔다. 개략적인 추정에 따르면 만약 지구에 쏟아지는 태양 에너지의 1~2%를 차단할 수 있다면 온실가스에 의한 기온 상승의 효과를 상쇄할 수 있다고 한다.

태양 빛을 우주에서 차단하는 가림막은 어느 위치에 두어야 좋을까? 천체로부터의 중력은 거리의 제곱에 반비례해서 줄어든다. 태양에서 지구를 잇는 선 위에 놓인 가상의 물체를 상상해 보자. 이 물체가 선 위에서 태양 쪽에 너무 가깝다면 태양으로 끌려가고, 지구에 상당히 가깝다면 지구 쪽으로 끌려가게 된다. 이 상상의 물체를 선 위에서 이리저리 옮기다 보면, 태양이 이 물체를 잡아끄는 중력과 지구가 이 물체를 잡아끄는 중력이 정확히 비기는 위치가 존재할 수밖에 없다. 물리학에서는 이 위치를 첫 번째 라그랑주 점 L1이라고 부른다. 먼저 물체를 정확히 L1에 두고, 태양과 지구를 잇는 선에 수직인 방향으로 물체가 조금 움직인 상황을 상상해 보자. 마치 팽팽한 곧은 활시위를 조금 잡아당긴 화살처럼 원래의 위치인 L1으로 물체가 되돌아온다는 것을 쉽게 이해할 수 있다. 이럴 때 물리학에서는 두 천체를 연결하는 선에 수직인 방향으로는 L1이 역학적으로 안정적인 평형위치라고 한다. 하지만, L1에 놓인 물체를 태양-지구 연결선을 따라 아주 조금이라도 태양 쪽으로 움직이면 태양이 잡아당기는 중력은 커지고 지구가 당기는 중력은 줄어 물체가 태양으로 끌려가게 된다. 마찬가지로 L1에 놓인 물체를 아주 조금 지구 쪽으로 움직이면 이번에는 거꾸로 물체가 지구를 향해서 L1으로부터 더 멀어지게 된다. 결국 L1은 지구와 태양을 잇는 직선 방향으로는 불안정한 평형위치이며, 그 수직 방향으로는 안정적인 평형위치라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우주에 태양 빛을 막는 가림막을 설치할 곳으로는 태양과 지구 사이에 놓여 태양 빛을 막을 수 있으면서도 역학적으로는 평형위치인 L1이 최적이다. 하지만 그곳에 둔 다음에는 가림막이 태양-지구 연결선의 불안정한 방향으로 움직이지 않도록 위치를 계속 조정하는 추가 장치가 필수적으로 요구된다.

위에서는 중력만 생각했지만, 사실 넓은 면적의 가림막에는 또 다른 중요한 힘도 작용한다. 빛알(광자)은 정지질량은 0이어도 에너지와 운동량을 가지고 있어서, 태양으로부터 쏟아지는 강한 빛은 가림막을 태양에서 먼 쪽으로 밀어내기 때문이다. 이 힘을 상쇄하기 위해서는 L1보다 좀 더 태양에 가까운 곳에 가림막을 설치해야 하며, 기존의 다른 연구에 따르면 가림막의 질량 혹은 단위 면적당 밀도가 어느 값 이상이어야 한다. 오늘 소개하는 논문에서 제안한 구조가 흥미롭다. 지구에서 우주로 쏘아 보낼 가림막 자체에는 밀도가 작은 물질을 이용하면서도 역학적 안정을 위해 가림막에 무거운 물체를 줄로 매달면 된다는 아이디어다. 게다가 무게 추와 비슷한 역할을 하는 이 물체는 지구에서 직접 가져가지 않고, 예를 들어 달에서 채취한 물질을 이용할 수도 있다.

어려서 얇은 비닐을 원 모양으로 오려내고 둘레를 따라 몇개의 실을 연결하고는 그 아래에 작은 군인 보병 모형을 묶어 매달아 공중으로 높이 던지면서 놀았던 기억이 있다. 상당히 높은 곳까지 올라간 다음 아래로 떨어지면서 비닐이 낙하산처럼 펼쳐지면 보병 모형이 천천히 땅으로 떨어지게 된다. 오늘 소개한 태양 가림막의 구조가 바로 이런 식이다. 가림막에 매단 물체는 마치 어려서 내가 가지고 놀던 비닐 낙하산에 매달린 보병 모형처럼 작동한다. 논문에서 제안한 가림막이 평형위치에 머물도록 조절하는 방법도 재밌다. 태양 빛으로 전기를 만들고는 모터를 이용해서 무거운 질량과 가림막 사이의 줄을 당기거나 늘려 거리를 조절하는 방식으로 태양과 지구 사이 가림막의 위치를 컨트롤하자는 아이디어다.

오늘 소개한 태양 가림막 아이디어에는 여전히 해결할 문제가 많다. 가장 중요한 문제는 바로 우주공간에서 여기저기 날아다니는 여러 작은 물체와의 충돌이다. 추산에 따르면 지구 표면적의 1% 정도의 가림막을 설치하는 상황을 가정하면 30분 정도마다 센티미터 정도 크기의 물체가 초속 수십 킬로미터의 속도로 가림막에 충돌하게 된다. 1년이면 무려 수만개의 구멍이 숭숭 가림막에 뚫리게 되니, 오랜 시간 태양 가림막을 사용할 수는 없다는 비판이 있다.

기후 위기의 궁극적인 해결은 우리 인간이 배출하는 탄소를 크게 줄일 때만 가능하다. 하지만, 만에 하나 탄소 감축이 필요한 정도보다 훨씬 느리게 진행된다면, 플랜 B, 플랜 C의 고민도 필요하다. 물론 오늘 소개한 논문에서 제안한 태양 양산이 필요 없는 미래를 우리 모두의 탄소 감축 노력으로 앞당기는 노력이 훨씬 더 중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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