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식 봉사’로 신년을 맞다 [최준영의 낮은 곳의 인문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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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식 봉사’로 신년을 맞다 [최준영의 낮은 곳의 인문학]
  • 최준영 책고집 대표
  • 승인 2024.01.24 15: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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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인문공동체 책고집의 첫 행보는 성남 안나의집에서 노숙인과 독거 어르신들에게 배식봉사를 하는 것이었다. 지난 연말 안나의집 김하종 신부님이 책고집 5주년 행사에서 특별강연을 해주신 것에 대한 답례 성격이었다. 회원과 회원 자녀들이 소정의 후원금을 내면서 봉사 참여 의지를 밝혀왔다.

안나의집과는 오래전 인연을 맺었다. 첫 인연은 필자의 안나의집 인문학 강연이었고, 작년에 진행한 '우리가치 인문동행' 덕분에 더욱 돈독해졌다. 책고집은 문화체육관광부 산하 문화예술위원회가 주최한 ‘우리가치인문동행’사업의 노숙인 강좌를 전담해 전국의 12개 기관에서 총 102회의 강좌를 진행했다. 안나의집에서는 여는 강의와 마무리 강의는 필자가 맡았고, 그 외 다양한 분들이 참여했다. 강태운 미술평론가를 필두로 임경희 그림책작가, 하남석 시립대 교수, 김홍표 아주대 교수, 조영학 번역가, 김찬호 성공회대 교수, 안선형 소통전문강사, 이강서 전 전남대 교수가 참여해 밀도 높은 강좌를 진행했다. 연말 김하종 신부님의 책고집 5주년 특강은 그에 대한 답례의 성격이었다.

김하종 신부님의 책고집 특강은 여러모로 의미가 컸다. 벽안의 신부가 낯선 땅에 와서 30여 년을 한결같이 가난한 이들을 위해 고군분투한 것은, 그 자체로 감동이었다. 강의 역시 그의 삶처럼 분명한 메시지가 담긴 명강의였다. 특히 인상적이었던 건 신부님이 그동안 만난 사람들에게서 수도 없이 들었다는 ‘~~면'에 대한 이야기다. 신부님이 후원을 요청하면 사람들 대부분이 '~~면'으로 화답하더라는 것이었다. “이번 일만 끝내면 돕겠습니다” “돈 벌면 후원하겠습니다” “나중에 시간 나면 봉사하겠습니다” 등등. 그에 대한 신부님의 답변은 명료했다. “1000원이 있다면 1000원을 후원하면 되고, 1시간이 있다면 1시간 봉사하면 됩니다.”

신부님 강의에 감동했던 책고집 회원들은 연초 배식 봉사의 의지로 화답하고 나섰다. 그렇게 후원금이 답지했고, 배식 활동 신청자가 모였다. 지난 18일 책고집 회원과 회원의 자녀 13명이 성남 안나의집에 모였다. 평소 500여명이 배식소를 찾는다고 들었는데 그날은 평소보다 더 일찍, 더 많은 분이 배식소를 찾아 입구에서부터 근처 공원까지 길게 줄을 섰다.

1월 18일, 오후 1시 안나의집 지하 식당으로 내려가 앞치마와 장갑, 위생모, 마스크로 무장한 뒤 신부님과 직원, 봉사자가 다 함께 주방 앞에 서서 결의를 다지며 다 함께 기도를 드리는 것으로 활동에 돌입했다. 10여명의 봉사자가 먼저 와 있었고, 이후로도 계속해서 자원봉사자가 도착했다. 단체 봉사의 경우 미리 일정을 잡아야 하지만 혼자 혹은 둘 정도일 경우 아무 때나 와도 된다는 걸 알게 되었다. 그렇게 50여명의 봉사자가 모여 ‘딱 봐도 베테랑’인 주방장의 지시에 따라 역할을 배정받은 뒤 일사불란하게 움직였다.

첫 과제는 빵과 과일을 분류하는 일이었고, 뒤이어 삶은 달걀 껍데기 까는 일, 양념장에 들어갈 고추 파 당근 등의 재료를 잘게 써는 일, 밑반찬 만드는 일 등이 계속해서 주어졌다. 중고교 학생들인 회원 자녀 4명은 난생처음 해보는 일이었을 텐데도 진지하게 조심스럽게, 고도의 집중력을 발휘하며 일에 매진했다.

오후 3시 배식을 위한 모든 준비가 완료되었다. 바깥엔 이미 긴 줄이 서 있었다. 배식 시작은 3시 40분, 그 사이 잠깐의 휴식과 봉사자 식사 시간이 주어졌다. 점심도 아니고 저녁도 아닌 어정쩡한 시간이었지만 땀 흘린 뒤에 먹는 밥맛은 그야말로 꿀맛이었다.

전체 배식을 책임지는 중책을 책고집이 맡았다. 주방장의 전폭적인 신뢰였고, 단체 봉사팀에 대한 배려였다. 밥을 배식해야 할 사람은 특별히 힘 좀 쓰는 사람으로 배치했다. 국 담담은 국물과 건더기를 적절하게 안배하는 균형감이 있어야 하고, 반찬 배식 역시 적절한 양을 조절해야 한다는 주의가 있었다. 설거지 담당은 손이 빨라야 했다. 끝없이 퇴식구에 도착하는 식판을 깨끗이 씻어서 다시 사용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특히 국그릇이 부족해 조속히 씻어서 순환시켜야 한다는 긴박한 정보도 입수했다.

3시 40분, 부담과 긴장, 난데없는 설렘이 교차하는 가운데 배식이 시작되었다. 놀라움의 연속이었다. 밥을 고봉으로 떠줘도 더 올려달라는 요구가 빗발쳤다. 특식이었던 감자탕은 순식간에 바닥을 드러냈다. 다섯 명이 매달린 설거지 담당은 힘에 부쳐서 수시로 국그릇이 모자란다는 아우성을 들어야 했다. 주방 바깥에 있는 봉사자들은 식판을 든 어르신들을 자리로 안내하거나 퇴식구로 들어오는 식판의 정리를 도왔다.

해도 해도 줄이 끊이지 않았다. 느낌으로는 1000여명이 식사를 한 것 같았는데 집계된 걸 보니 총 605명이다. 평소보다 100여명이 더 오셨고, 그 어느 날보다 맛나게 드셨다는 얘기를 주방장으로부터 들었다. 단 5분도 쉬지 못하고 3시간 동안 사투를 벌인 회원 자녀들 중 1명이 문득 질문했다.

“저분들은 왜 여기서 식사하시는 거예요?”

뭐라 답해야 할지 몰랐다. 하나 마나 한 대답을 했다.

“나름 다 사정이 있으실 거야.”

순간 뭉클했고, 돌연 숙연해졌다.

그렇게 근 3시간 동안의 진땀 배식을 마쳤다. 설거지를 담당했던 회원 자녀에게 소감을 물으니 힘들었지만, 즐거웠다는 대답이 나왔고, 덧붙여 “다음번엔 절대 설거지 담당은 하지 않겠다”라는 말로 좌중을 웃게 했다. 어디 설거지뿐이겠는가. 600여명에게 고봉밥을 퍼준 이들은 팔뚝에 알통이 배겼다고 했고, 김치를 배식한 분은 손끝이 얼어 감각이 무뎌졌다고 했다. 감자탕과 묵무침 등 반찬을 교대 한번 없이 묵묵하게 배식해 준 분들의 노고도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정량 배식에 애를 먹은 건 역시 국을 배식하는 일이었습니다. 건더기 없이 국물만 퍼주면 욕을 먹기 십상이어서 배식 내내 긴장하지 않을 수 없었다고 한다.

회원 대부분의 표정이 밝았다. 힘들었지만 힘들었다고 말하지 않았다. 특히 자녀들과 함께 봉사에 참여한 한 회원은 “여러분이 칭찬해 줘서 아이들의 자존감과 효능감이 올라갔고, 아이들이 또 가고 싶어한다”라는 말을 전해 왔다.

안나의집 배식봉사를 정례화하자는 이야기가 나왔다. 매달 하는 건 힘들더라도 2개월 혹은 3개월에 한 번씩 정기적으로 하면 좋을 것 같다는 의견에 대부분 고개를 끄덕였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 날은 어두웠지만 마음은 편안했고 기분은 날아갈 것 같았다. 인문공동체 책고집의 신년 첫 행사는 그렇게 마무리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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