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번가 참패’ SK스퀘어 박정호, ‘최태원 서든데스’ 첫 희생양? [마포나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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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번가 참패’ SK스퀘어 박정호, ‘최태원 서든데스’ 첫 희생양? [마포나루]
  • 서중달 기자
  • 승인 2023.12.01 14:1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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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회사 11번가 콜옵션 포기로 시장 신뢰 ‘뚝’… FI 투자금 회수도 차질
동반매도 요구권 통해 강제매각 땐 SK스퀘어 한 푼도 못 건질 수도
11번가 기업가치도 절반 이상 추락… SK 연말인사 결과에 촉각
박정호 SK스퀘어 부회장이 올해 2월 스페인 바르셀로나에서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SK쉴더스 지분 매각 소식과 함께 향후 비전을 발표하고 있다. /사진=SK스퀘어
박정호 SK스퀘어 부회장이 올해 2월 스페인 바르셀로나에서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SK쉴더스 지분 매각 소식과 함께 향후 비전을 발표하고 있다. /사진=SK스퀘어

SK그룹이 이르면 7일쯤 연말 정기 임원인사를 단행할 것으로 전망되는 가운데, 박정호 SK스퀘어 부회장의 유임 여부에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최태원 회장이 화두로 던진 ‘서든 데스’로 이번 인사의 변화 폭이 예년보다 클 것으로 관측되는 데다, 박 부회장이 치적으로 내세웠던 11번가 사업 실패에 대한 책임론이 불거지고 있어서다.

SK스퀘어는 지난달 29일 이사회를 열고 이커머스 자회사 ‘11번가’의 콜옵션(우선매수청구권)을 포기하기로 의결했다. SK스퀘어가 5년 전 11번가를 인수할 당시 재무적투자자(FI)로 참여한 국민연금, 새마을금고, 사모펀드 H&Q코리아 등이 보유한 18.18%(원금 5000억원)에 대해 콜옵션을 행사하지 않기로 한 것이다.

콜옵션을 행사하려면 SK스퀘어가 FI로부터 원금 5000억원에 연 3.5%의 이자를 붙여 되사줘야 하는데, 기업가치가 인수 당시보다 절반 이상 하락한 11번가를 구하기 위해 무리하게 자금수혈을 한다는 비난을 회피하기 위한 계산인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SK라는 대기업의 인지도와 상환능력을 믿고 투자한 FI에 대한 신뢰를 지키지 못했다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SK스퀘어가 콜옵션을 포기함에 따라 FI는 동반매도요구권(드래그얼롱)을 통해 SK스퀘어가 가진 11번가 지분 80.26%까지 포함해 제3자에게 매각을 추진하거나, 11번가의 IPO 기한을 연장해주는 방안을 선택할 수 있다. 하지만 FI들은 최대한 빨리 투자금 회수를 원하는 것으로 알려져 강제매각 수순을 밟을 가능성도 크다. 그런데 최근 이커머스 업황이 워낙 좋지 않아 원매자를 찾기 힘들기 때문에 헐값 매각을 강행할 경우 매각대금에서 FI가 먼저 투자금을 회수하게 되면 최악의 경우 SK스퀘어는 한 푼도 건지지 못 할 수 있다.

SK스퀘어는 2018년 11번가의 5년 내 기업공개를 조건으로 국민연금에서 3500억, H&Q에서 1000억, 새마을금고에서 500억원을 투자받았다. IPO 기한은 올해 9월까지였다. 조건을 이행하지 못할 경우, 원금에 연이율 3.5%의 이자를 더해 5500억원에 FI의 지분을 되사는 콜옵션 조항을 넣었다. 또 콜옵션을 포기할 경우엔 SK스퀘어의 지분까지 제3자에게 통째로 매각할 수 있는 동반매도청구권도 부여했다.

11번가 홈페이지
11번가 홈페이지

11번가는 5년 전 FI로부터 투자받을 당시 2조7000억원의 기업가치를 인정받았지만, 최근 결렬된 큐텐과의 지분매각 협상에서 거론된 기업가치는 1조원에 불과해 3분의 1 수준으로 떨어졌다. 쿠팡의 독주와 이커머스 시장의 업황 악화로 11번가를 포함한 대형 이커머스 기업들이 적자를 보고 있는 상황이 지속되고 있어서다.

11번가는 지난해 한국투자증권 등을 주관사로 선정하며 IPO를 추진했지만, 유동성 악화 영향으로 지체되다 올해 9월까지였던 기한 내 상장에 실패했다. 고금리 등 여파로 시장이 얼어붙은 영향이 컸다. 결국 SK스퀘어는 11번가 매각으로 전략을 선회해 싱가포르 이커머스 큐텐과 지분 매각협상을 했지만, 이 마저도 이견이 커 결국 불발로 끝났다.

이런 상황에서 SK스퀘어가 콜옵션을 포기함에 따라 11번가 매각의 주체가 FI로 넘어가게 돼 악역을 떠넘긴 것 아니냐는 분석도 제기되고 있다. SK스퀘어가 FI와의 신뢰를 깨뜨린 당사자이면서 FI가 투자금을 회수하려고 강제로 11번가 매각을 추진한다는 명분을 내세워 부담을 덜기 위한 전략이 아니냐는 의심이다. 시장에선 FI가 강제 매각에 나서려면 SK스퀘어의 협조가 절대적인데다, 되레 투자금 회수에 장기간이 소요되고 법적 다툼의 소지가 있어 쉽게 접근하지 못할 것으로 보고 있다. 또 FI가 동반매도요구권을 갖게 된 만큼 이전과 다른 조건에서 다시 매각 협상을 추진할 가능성도 점치고 있다.

어쨌든 SK스퀘어가 콜옵션을 포기함으로써 국민연금 등 FI는 투자금 회수 시점이 늦어지는 등 손실이 불가피한 상황으로 몰렸다. 결국 자본시장에서 ‘SK’와 ‘투자전문회사’를 내건 SK스퀘어의 신의가 깎이게 된 것이다. 또 박 부회장의 대표적 치적으로 평가받던 11번가 인수가 실패작으로 귀결되며 그의 책임론이 불거지게 됐다. SK그룹의 연말 임원인사에서 박 부회장의 거취가 주목받는 이유이다.

박 부회장은 SK스퀘어 출범 초기부터 2025년까지 SK스퀘어의 기업가치를 75조원으로 끌어올리겠다고 공언한 바 있다. 올해 초 스페인 MWC 2023에 참석해서도 “2025년 순자산가치(NAV) 75조원 목표를 수정하지 않겠다”며 자신감을 내비쳤다. 박 부회장은 그러나 11번가 IPO 실패에 이은 지분매각 협상 결렬, 콜옵션 포기에 이르기까지 기업가치 훼손은 물론 그룹에 대한 시장의 신뢰를 떨어뜨리는 결과를 맞이하고 있다.

최태원 회장이 지난달 SK 최고경영자 세미나에서 “급격한 대내외 환경 변화로 빠르게, 확실히 변화하지 않으면 생존할 수 없다”며 2016년 그룹 확대경영회의에서 처음 제기한 ‘서든 데스(돌연사)’ 화두를 다시 꺼내 들었다. SK그룹은 그해 연말 인사에서 대폭적인 인사를 단행한 바 있어 올해도 큰 폭의 인사가 이뤄질 것으로 예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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