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활인문학이여, 비상하라 [최준영의 낮은 곳의 인문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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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활인문학이여, 비상하라 [최준영의 낮은 곳의 인문학]
  • 최준영 책고집 대표
  • 승인 2023.11.27 08: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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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동자활 강의 모습.
성동자활 강의 모습.

올해 인문공동체 책고집에서는 프로젝트 두 개를 동시에 진행했다. 하나는 문화예술위원회가 주최한 ‘우리가치 인문동행’에 참여해 전국 12개 노숙인 시설(부산, 광주, 대전, 원주, 춘천, 성남, 수원, 서울)에서 강의한 것이었고, 다른 하나는 지역자활센터(성동자활, 관악자활)의 인문학 강좌를 직접 기획하거나 참여한 것이었다.

참여 강사가 40여 명이고, 강의 횟수는 무려 150회가 넘는다. 특히 노숙인 시설은 전국에 흩어져 있어서 강사들의 노고가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강사 대부분이 강좌의 취지에 공감하며 열정적으로 참여한 덕분에 두 가지 사업 모두 무리 없이 마무리했다.

오늘은 서울지역 자활센터 두 군데의 강좌를 이야기하려 한다. 결론적으로 말하면 올해는 자활인문학의 부활을 알린 해였다. 2006년 첫 자활인문학은 관악지역의 자활센터에서 개설한 관악인문대학이었고, 필자는 초기 멤버로 참여했다. 이후 서울과 지방의 여러 자활센터에서 속속 인문강좌를 개설하면서 이른바 저소득 주민을 위한 자활인문학이 구조화되는 듯했다. 그러나 정권이 바뀌면서 자활인문학의 진행에 어려움을 겪기 시작했다. 이른바 보수정권의 논리는 단순했다. 가난한 사람들에게 인문학 교육은 예산과 시간의 낭비라는 식이었다. 그렇게 사라져가던 자활인문학은 관악자활 등 몇몇 곳에서 겨우 명맥을 이어가고 있었는데 그마저도 코로나19의 철퇴를 맞으면서 중단되고 말았다. 그렇게 중단됐던 자활인문학이 올해 부활의 날갯짓을 하기 시작한 것이었다.

연초 성동지역자활센터의 실무자로부터 연락이 왔다. 한동안 중단됐던 주민들을 위한 인문학 강좌를 시작하려는데 강좌기획을 해달라는 것이었다. 기꺼이 수락했고, 곧바로 강좌 일정을 짜고 강사 섭외에 돌입했다. 애초 철학과 역사, 문학, 인문기초 등의 4과목을 각 과목 12강 씩 48강좌를 기획했지만, 공모 주최 측의 요구에 따라 각 과목 8강좌로 줄이면서 총 32강좌로 출발했다.

첫 강의(인문기초)는 내가 맡았고, 이어서 역사(박한용)와 철학(최성흠, 최훈), 문학(이수경, 이경란)을 2학기로 나누어 진행했다. 학기 사이에 강릉으로 수학여행을 다녀왔는데 바로 그 수학여행에서 자활인문학의 취지와 의미를 한마디로 요약한 수강생의 감동적인 소감이 나왔다.

“자활에서 만나는 사람들 다 미웠어요. 다들 ‘루저’로만 보였어요. 인문학 강좌에 참여하면서 뒤늦게 알게 되었어요. 내가 싫어한 건 나 자신이었다는 걸. 내가 루저였기 때문에 다른 사람도 다 루저로만 보였던 거죠.

이제 사람들 미워하지 않게 되었어요. 무엇보다 저 자신을 소중하게 여기기로 했어요. 매일매일 일터에 나와서 일을 한다는 게 얼마나 소중하고 감사한 일인지 알겠어요. 얼마나 잘 나가고, 얼마를 버느냐보다 아직 할 일이 있다는 것, 그게 중요하다는 걸 알고 있어요. 여러분, 사랑합니다.”

지난 20일, 32강을 무사히 마친 성동자활에서 인문대학 졸업식을 가졌다. 참여 강사들 대부분이 참석했고, 졸업증 혹은 수료증을 받게 된 주민들이 졸업가운과 사각모를 쓰고 행사에 참여했다. 모두 즐거운 표정이었고, 행복해 보였다. 축사에 나선 성동자활의 이선화 센터장은 “올해의 성과를 바탕으로 내년에도 반드시 인문강좌를 진행하겠다”라는 다짐을 내놓았다. 23년 우리들의 자활인문학은 이렇듯 행복하게 즐겁게 마무리됐다.

관악자활 강의 모습.
관악자활 강의 모습.

이어서 관악자활 이야기다. 앞서 언급했던 바대로 관악자활은 자활인문학의 효시와도 같은 기관이다. 2006년 관악인문대학을 설립한 데 이어 2016년 한동안 중단됐던 자활인문학을 재개한 유일한 자활센터였다. 뚝심 있게 진행되던 자활인문학이 중단된 건 코로나19 탓이었다. 3년간 중단됐던 인문강좌를 올해 다시 시작하겠다고 연락해 왔다. 2016년부터 2019년까지 관악자활의 인문강좌는 늘 필자가 기획했지만 올해는 자체적으로 기획했다. 보다 현실적이고 치밀한 기획일 거라 기대했고, 강좌의 이름을 ‘마음놀이터’라고 지었다는 말을 들으면서 내심 알찬 기획이라 생각했다.

역시 관악자활은 기대를 저버리지 않았다. 지난 6월 ‘마음놀이터’의 문이 열리자마자 필자는 첫 강사로 나섰다. 과목명은 문학이었지만 늘 그랬던 것처럼 내 강의의 핵심은 '소통'이었다. 사람과 사람의 소통이 곧 인문학이고, 인문학은 학문이기 이전에 우리 생활 속의 이야기를 길어 올리는 것이어야 한다는 게 지론이었기 때문이다. 그렇게 4주간의 소통인문학이 진행되었고, 이어서 생활법률 이야기와 등산을 통한 몸과 마음 정화시키기, 그림책을 매개로 삶의 이야기를 나누는 과정 등이 진행되었다.

지난 9일 수료식의 감동이 아직도 생생하게 기억된다. 강좌에 참여한 모든 분이 낙오 없이 수료증을 받게 되었고, 무엇보다 한결 밝고 맑아진 표정을 확인하는 시간이었다. 시작할 때와는 완연히 다른 생동감 있는 몸짓과 눈빛들을 보면서 일순 뭉클해지기도 했다.

'아, 그래서 마음놀이터였구나. 마음놀이터에서 다양한 마음들을 만나고, 다양한 방식으로 서로의 마음을 위로했구나.'

지치고 힘겨운 일상을, 으레 사는 게 그런 것이려니 하고 참다 보면 마음의 병을 얻게 된다. 지친 마음을 누군가에게 내보이기도 하고, 혹은 스스로 자신의 마음을 들여다보며 위로해주는 과정은 곧 삶의 동력을 얻기 위한 최소한의 노력일 수 있다. 관악자활의 마음놀이터는 알찬 자기 치유의 과정이면서 삶의 동력을 얻는 과정이었다.

올해 다시 시작된 자활인문학이 부디 내년에도 내후년에도 이어지길 바란다. 올해가 자활인문학이 부활한 해였다면, 내년은 자활인문학이 비상하는 한 해가 될 것이다. 인문공동체 책고집은 자활인문학의 비상을 위해 힘 닫는 대로 도울 것이며 늘 함께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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