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통령 표창 받은 펄어비스, ‘당일 해고’의 진실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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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통령 표창 받은 펄어비스, ‘당일 해고’의 진실은?
  • 김인수 기자
  • 승인 2020.03.19 14:0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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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원 평균근속연수 1.7년, 엔씨소프트의 3분의 1… 직원 4명 중 1명은 계약직
“오전에 당일해고 통보, 오후에 책상 사라지는 마법 같은 회사… 우린 부속품”
사측 “사실 아니다”… 정의당 류호정 “회사 측 말 믿을 수 없어… 증명할 것”
블라인드에 올라온 글. /사진=류호정 정의당 비례대표 후보 블로그
블라인드에 올라온 글. /사진=류호정 정의당 비례대표 후보 블로그

“진짜 어려운 환경에서 일해 본 사람들은 ‘헝그리 정신’이란 말을 좋아하지 않습니다.”

“계약직으로 뽑고 계약 연장을 한다던가 하는 식으로 사람 피 말리다가 하루 아침에 자르는게 일상.”

앞은 김대일 펄어비스 이사회 의장이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한 말이고, 뒤는 직장인 익명커뮤니티 '블라인드'에 올라온 글입니다.

잘 다니던 직장인이 하루아침에 해고되면 속된 표현으로 배가 고플(헝그리·Hungry)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나 블라인드 글이 사실이라면 ‘헝그리 정신’을 좋아하지 않는다는 김대일 의장의 말은 실제와 다른 것이 됩니다. 한마디로 ‘표리부동’(表裏不同)입니다.

PC온라인 대규모 다중사용자 역할수행게임(MMORPG) ‘검은사막’으로 유명한 게임사 펄어비스가 최근 개발담당 직원들을 당일 권고사직 시킨다는 주장이 나와 논란이 되고 있습니다.

온라인 커뮤니티 블라인드에 ‘악덕기업 펄어비스’라는 글이 올라오면서 정치권에서도 개입을 예고해 파문이 커질 전망입니다.

다음은 펄어비스 직원이 블라인드에 올린 글의 내용입니다.

“요즘 시대에 구멍가게 수준의 기업도 아니고 당일해고를 밥 먹듯이 함. 계약직으로 뽑고 계약 연장을 한다던가 하는 식으로 사람 피 말리다가 하루아침에 자르는게 일상. 어제 회의한 동료가 다음날 없고 같은 팀 사우도 동료가 퇴사한걸 모르는 회사. 드디어 오늘 게임라운지에 글 터짐. 한 두 명이 아닌 팀 단위로 여러 곳이 당일 해고당한 듯. 예전부터 오전에 당일해고 통보받고 오후에 책상이 사라지는 마법 같은 회사라 소문이 자자함.”

“여기 써진 내용은 모두 사실이다. 주변에 오전에 출근하고 오후에 퇴사당한 사람 열명 넘게 봤고, 심지어 계약도 파견도 아닌 정규에 팀장급, 서비스 초기멤버 등등 그냥 자르는거에 임계선이 없는 회사다. 오지마라 나도 하루하루 불안에 떨며 살고 있다.”

“우린 그저 부속품입니다. 우리가 잘려나가면 다른 이들이 채워가겠죠……그 사람 진짜 당선돼서 우리회사가 직원대우를 어찌하고 있는지 그거라도 파주면 좋겠어요.”

여기서 지칭하는 그 사람은 정의당 비례대표 후보로 이름을 올린 류호정씨를 말합니다. 류호정 후보는 “펄어비스라는 게임 개발사에 대한 제보를 받았다”며 펄어비스의 이번 '권고사직' 건에 개입할 뜻을 밝혔습니다.

류 후보가 이 같은 내용에 대해 펄어비스 측에 문의하자 “대량의 권고사직은 없었으며 프로젝트는 잘 돌아가고 있다. 그런 일이 있었다면 노동부에 신고가 있지 않았겠느냐”라는 답이 돌아왔습니다. 하지만 그는 “그대로 믿을 수는 없다”며 “문제의 해결책을 찾으려면 더 많은 제보가 필요하다. 여러분과 함께 증명하겠다”고 했습니다.

한편 블라인드에 올라온 펄어비스에 대한 강력한 항의 글 일부가 삭제되고 있다는 폭로도 나왔는데요. 여기에 프로젝트가 중단됐다는 말도 나오는 실정입니다.

한 누리꾼은 “소식에 따르면 프로젝트가 사실상 엎어졌다고 하며, 도깨비를 포함한 기타 프로젝트들도 잠정 중단으로 인해 개발자들이 무더기로 권고사직 및 당일 해고 통보를 받았다는 것이 주된 내용”이라고 알렸습니다. 그러면서 “당사자들 입장에선 개발 실패에 대한 책임을 말단 실무자들에게 지우겠다는 것과 다를 게 없는 의미인 것”이라고 비판도 곁들였습니다.

프로젝트가 중단됐다는 말에 대해 펄어비스 측은 “사실이 아니며 신작 개발은 차질 없이 개발 중”이라고 해명했습니다. 또 '하루아침 권고사직'에 대해서도 “사실이 아니다”면서 “일부 권고사직은 발생할 수 있다”며 묘한 뉘앙스를 남겼습니다.

김대일 의장은 언론 인터뷰에서 “연봉이 높더라도 아주 뛰어난 직원 위주로 채용하자”라고 밝힐 정도로 영입인재에 돈을 아끼지 않는 것으로 정평이 나 있는데요. 하지만 블라인드에 올라온 글이 일부라도 사실이라면 직원을 ‘부속품’ 취급하는 것은 아닌지 의구심이 듭니다.

/사진=펄어비스 홈페이지
/사진=펄어비스 홈페이지

실제로 펄어비스 직원들의 고용 안정성은 열악한 것으로 드러났습니다. 계약직이 많고 직원 평균근속연수도 1년이 조금 넘는 등 주요 게임사 중 꼴찌인 것으로 확인됐습니다.

금융감독원 전자공시시스템에 따르면 최근 2년간(2017~2018년) 전체 직원 중 기간제근로자(계약직)는 22.8%에서 30.9%로 늘었습니다. 2019년 3분기에도 전체 직원 697명 중 183명(26.3%)이 계약직 직원이었습니다.

반면 엔씨소프트는 2016년(2017년 공시가 안됨) 6.0%에서 2018년에는 4.3%로 감소합니다. 2019년 3분기에는 3684명 중 117명이 계약직으로, 3.2%로 더욱 줄었습니다.

넷마블은 2018년 781명 중 15명이 계약직으로, 비율로는 1.9%에 불과했고, 2019년 3분기에는 816명 중 25명(3.1%)으로, 계약직이 좀 늘긴 했지만 펄어비스에 비하면 8.5분의 1 수준입니다.

펄어비스 직원들의 평균근속연수는 2019년 3분기 기준 펄어비스 1.7년으로 채 2년이 안됐습니다. 반면 엔씨소프트는 5.3년, 넷마블은 4.2년으로 펄어비스에 비해 3배 정도 길게 근무했습니다.

펄어비스는 다른 게임사에 비해 계약직이 많고 근무연수도 짧습니다. 블라인드에 올라온 글을 보니 이해가 가는군요.

펄어비스는 지난해 연말 정부 세종컨벤션센터에서 열린 ‘2019 일자리창출 유공 정부포상 시상식’에서 대통령 표창을 수상한 기업입니다.

당시 장지선 펄어비스 경영지원부실장은 “임직원에게 더 나은 근로 환경을 제공하기 위해 노력해왔고 매년 고용 있는 성장을 실현했다”며 “앞으로도 양질의 일자리 창출에 힘써 기업의 사회적 책임을 다하도록 노력하겠다”고 약속한 바 있습니다.

그런데 하루아침에 권고사직은 어떻게 설명이 되는지요? 물론 사측은 사실과 다르다고 해명했지만 블라인드에서 “펄어비스 사우님들 우리도 가만있지 맙시다. 여기 익명에서라도 당한거 얘기 합시다”라고 밝히고 있어 강한 의혹이 생기고 있습니다.

펄어비스는 ‘어둠 속에서 빛나는 진주’를 뜻합니다. 직원은 한번 쓰고 버리는 부속품이 아니라는 것을 잊지 않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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