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자경제] 널뛰는 전기요금과 ‘조령모개(朝令暮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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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자경제] 널뛰는 전기요금과 ‘조령모개(朝令暮改)’
  • 이광희 기자
  • 승인 2019.12.31 14:0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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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자경제] 각주구검(刻舟求劍). 강물에 빠뜨린 칼을 뱃전에 새겨 찾는다는 어리석고 융통성이 없음을 뜻하는 사자성어입니다. 경제는 타이밍입니다. 각주구검의 어리석음을 되풀이하지 않게 경제 이슈마다 네 글자로 짚어봅니다.

“백성이 홍수와 가뭄을 당했는데도 갑자기 세금을 거두고 부역에 동원하는데, 그 시기가 제대로 정해지지 않으면 ‘아침에 명령을 내리고 저녁에 고치는(조령모개·朝令暮改)’ 결과를 가져오게 됩니다.”

중국 한나라 때 경제에 밝았던 관료 ‘조착’은 곡식을 귀하게 여겨야 한다는 상소문(논귀속소·論貴粟疏)을 올립니다. 당시는 북방 기마민족 흉노의 침입으로 추수기만 되면 곡식 약탈이 빈번하던 때였습니다.

이러한 조착의 상소는 농민들에게 큰 환영을 받았지만 귀족과 중신들로부터는 미움과 분노를 사게 됩니다. 결국 조착은 억울한 누명을 쓰고 죽임을 당하게 됩니다.

‘조령모개(朝令暮改)’. 아침에 명령을 내리고 저녁에 다시 바꾼다는 뜻으로, 법령의 개정이 너무 잦아 믿을 수가 없음을 이르는 네 글자입니다. 한국전력공사가 오늘(31일)로 일몰을 맞는 주택용 절전과 전기자동차 충전 할인 특례를 종료하거나 단계적으로 없애기로 했습니다.

/이미지=한국전력공사
/이미지=한국전력공사

한전은 전날 올해 마지막 이사회를 열고 ‘기본공급약관 시행세칙 개정안’을 통과했습니다. 당장 내일부터 전기요금 특례제도가 폐지돼 약 182만가구가 할인 혜택(지난해 기준 총 288억원)을 받지 못하게 됩니다.

이 소식을 전해들은 누리꾼들은 스스로 회사를 살리려는 의지도 없이 요금 인상에 기대는 방만 경영을 질타하고 나섰습니다.

“한전 적자인데 서민한테 떠넘기고 직원들 성과급 보너스는 몇백프로씩 가져가는 건 도둑 아닌가?” “6년 전에 땅 판 돈으로 직원들 주주들 돈잔치하고, 9조를 나눠가지고 이제 와서 적자라고 징징징” “다른 기업들은 어려우면 구조조정 등 자구책을 내놓는데 저 기업은 어렵다 하면 전기요금 올린다네요” “적자경영 하는 놈들! 니들 성과급 없애고, 니들 월급을 줄여라”.

지난 여름 서울과 아프리카를 조합한 ‘서프리카’라는 말이 유행했습니다. 당시 이런 기사가 나옵니다.

‘올해부터 새로 개편된 누진제가 적용되는데 약 1600만가구가 월평균 1만원 안팎의 할인 혜택을 볼 것으로 예상된다. 그러나 당장 올 여름 할인받는다고 마냥 좋아할 일은 못된다. 이번 한전의 전기요금 개편안을 잘 들여다보면 여름철 요금을 깎아주는 대신 기존의 할인 제도를 없애거나 축소하는 안이 같이 들어있기 때문이다. 상대적으로 전기를 적게 쓰는 겨울에는 요금을 올리겠다는 것이다. 인상 시기는 내년 총선 이후인 6월로 예고했다.’

6개월 전 이 기사를 보고 마냥 좋아한 서민들은 없었을 것입니다. 그들에게 있어 냉·난방은 먹을 것만큼이나 생존의 최소 조건이었을 테니까요.

아침에 명령 내리고 저녁에 고치는 ‘한나절’조차도 하루하루의 삶이 고단한 서민들에게는 아마 1년보다 더 긴 시간일지 모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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