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골든 실버’의 꿈 앗아간 DLF ③] 소비자 속 태우는 ‘불판’ 바꿔라
상태바
[‘골든 실버’의 꿈 앗아간 DLF ③] 소비자 속 태우는 ‘불판’ 바꿔라
  • 이광희 기자
  • 승인 2019.12.12 07:59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행복한 노후를 꿈꾸는 은퇴 이후 투자자들의 장밋빛 미래를 한순간에 앗아가는 일이 벌어졌습니다. 천문학적 원금손실을 초래한 ‘DLF(파생결합펀드) 사태’가 그것인데요. 금융감독원이 역대 최대 규모의 피해배상 권고안을 내놓았지만 후폭풍은 가늠할 수 없습니다. 이번 사태의 본질은 무엇인지, 근본적인 대책은 무엇인지 알아봤습니다.

[‘골든 실버’의 꿈 앗아간 DLF ③] 금소법, ‘불판’ 완전한 해결책 될까

파생결합펀드, 즉 DLF의 불완전판매로 인한 투자자들의 분노가 그치질 않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문제가 된 은행들은 어떻게 상품들을 팔았을까요.

먼저 우리은행 본점은 상품 출시 당시 내부 심의조직인 상품선정위원회 참석위원 의견을 임의기재해 상품 승인을 유도한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또한 상품선정위원 가운데 구두로 출시 반대의견을 표명한 위원을 상품 담당자와 친분 있는 직원으로 교체한 뒤 찬성의견을 받는가 하면, 평가표 작성을 거부한 위원에 대해선 찬성한 것으로 임의 기재하기도 했습니다.

PB 등 판매자 교육자료에서도 손실가능성을 제대로 고지하지 않았습니다. 계열회사 우리금융경영연구소가 지난 3월 27일 DLF 기초자산인 독일국채금리의 하락을 예측했음에도 우리은행 본점은 교육자료에 0.3% 내외 금리상승이 예상된다고 기재해놓고 5월까지 DLF를 팔았습니다. ‘원금 100% 손실 가능’, '위험등급 1등급‘ 등 위험성을 알리는 내용은 교육자료에서 쏙 빠졌습니다. PB들은 이 교육자료만 믿고 고객에게 DLF를 “원금손실 없는 안전한 상품”이라고 소개했습니다.

KEB하나은행도 상품 출시 단계에서부터 리스크 관리에 대해 손을 놨습니다. 우리은행이 참석위원을 바꾸거나 임의 찬성 의견을 기재하는 등 애쓰며 본점 입맛에 맞추려 했던 상품위원회를 하나은행 본점은 아예 열지도 않았습니다. 리스크 분석도 한 적이 없습니다.

투자자들 가운데엔 정기예금에 가입하러 갔다가 “안전하다”는 PB 제안에 DLF에 가입했다는 사람들이 다수입니다. 실제로 하나은행 본점은 DLF 가입 목표 고객을 ‘정기예금 선호고객’으로 선정하고, 이를 ‘DLF 세일즈 포인트’의 하나로 정리해 PB들에게 소개했습니다. 금감원에 따르면 하나은행 DLF 가입자의 59.6%는 통상 정기예금으로 노후자금을 운용하는 비중이 높은 65세 고령자였습니다.

이처럼 DLF 사태로 사모펀드에 대한 잇단 경고음이 울리면서 금융당국이 투자자 보호에 소홀했다는 비판도 커지고 있습니다. 공모펀드는 금융당국의 엄격한 규제를 받지만 사모펀드는 그렇지 않습니다. 최근 몇년 간 규제가 오히려 완화됐습니다.

지난 2015년 개인의 최소 투자금액을 5억원에서 1억원으로 낮추고 사모펀드 운용사의 자기자본 요건을 완화해서 진입 장벽을 낮췄습니다. 금융위원회는 지난해에도 사모펀드 투자자수 상한을 49인에서 100인 이하로 확대하는 등의 규제 완화안을 내놨습니다.

이런 규제 완화 등의 영향으로 지난 2009년 127조원이던 사모펀드 전체 투자액은 지난 6월 기준 461조원으로 4배 가까이 급증했습니다. 이처럼 사모펀드 덩치는 급격하게 커진 데 반해 소비자 보호는 미흡했다는 지적이 많습니다.

정부는 지난 2015년 사모펀드 관련 규제를 대폭 풀면서, 사모펀드 투자자들이 전문성을 갖췄다는 이유로 투자자 보호 장치 중 하나인 ’투자 적합성‘과 ‘적정성 원칙’을 의무조항에서 뺐습니다. 또한, 과장광고로 이어지기 쉬운 ‘투자광고’도 이때부터 허용됐습니다.

이번 DLF 사태의 중심에 있는 우리은행은 지난 2005년 ‘파워인컴펀드’라는 고위험 파생상품을 불완전판매 했었는데요. 2009년 금융위원회는 우리은행에 대해서는 ‘기관경고’를, 불완전판매 책임이 있는 직원들에겐 정직 3개월, 감봉 3개월의 조치를 취했습니다.

당국의 규제완화와 함께 이 같은 솜방망이 징계도 불완전판매를 부추겼다는 지적이 많습니다. 처벌 강화와 같은 재발 방지 보완책이 필요하다는 설명입니다. 이번 기회에 불완전 판매로 인한 피해를 막으려면 국회에 계류 중인 금융소비자보호법(이하 금소법)이 하루빨리 통과돼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습니다.

국회 정무위원회 전체회의를 통과한 금소법 제정안은 금융위원회 발의안을 중심으로 금융사의 영업행위에 대한 규제를 강화하고 소비자의 권리를 강화하는 내용을 담고 있습니다. 설명의무·불공정영업행위 금지·부당 권유행위 금지·광고 규제 등 판매행위 원칙을 전체 금융상품에 확대 적용한다는 내용입니다.

금소법은 향후 법제사법위원회 체계·자구 심사를 거쳐 본회의에 오르게 되지만 9부 능선은 넘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이에 따라 추후 법안 논의 일정을 통해 금소법 추진에 속도가 날 것으로 보입니다.

금소법이 제정되면 우선 향후 소비자 보호 정책과 교육을 체계적으로 추진할 수 있는 제도적 기반이 마련됩니다. 또한 금융상품과 판매행위를 기능과 유형별로 각각 재분류·체계화해 동일한 기능을 가진 금융상품 판매행위에 대해 동일한 규제를 할 수 있습니다.

다만 금소법이 국회 정무위원회 전체회의 통과로 기틀은 세워졌지만 알맹이가 빠졌다는 비판도 나오고 있습니다. 주요 쟁점인 징벌적 손해배상제도, 집단소송제도 등이 도입되지 않고 판매규제 6대 원칙 중 적합성·적정성 원칙이 징벌적 과징금 근거에서 제외됐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이번 금소법이 만족스럽진 않더라도, 일단 출발했다는 그 자체에 의미를 부여해야 한다는 시각도 있습니다. 금융권 관계자는 “핵심 조항들이 빠진 것에 대한 아쉬움의 목소리가 나올 수도 있지만 소비자 입장과 금융사들의 부담 등을 충분히 감안해 입법적인 판단이 이뤄진 것으로 생각된다”라고 말했습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주요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