형편이 좋은 시절에는 대체로 단점들이 눈에 들어오지 않는다. 주식시장이라고 다를 게 없다. 어떤 시인은 올라갈 때 못 본 꽃을 내려올 때 보았다고 멋지게 표현했지만, 주식시장에서 내리막길에 만나는 돌부리들은 숨겨진 꽃들과는 너무나 거리가 멀다. 대체로 외면하고 싶은 모습들만 잔뜩 널려 있는 듯한 느낌을 받기 때문이다.
주가가 신고가를 경신하는 동안에 꾸준히 축적된 공매도 잔액은 주가가 하락세로 돌변하면 무서운 힘을 발휘한다. 숏커버 위험에 내몰리면서 끝끝내 버틴 세력들은 이럴 때 한몫 단단히 챙긴다. 공매도 잔액은 한때 30조원을 넘어선 때도 있었지만, 어느새 22조원대로 크게 감소했다. 공매도 잔액이 최고치를 기록할 무렵의 공매도 평가손 합계는 10조원에 육박할 때도 있었다. 주가가 단기간에 급락하자 공매도 포지션의 평가손은 눈 녹듯 사라지고 어느새 수천억원의 흑자로 돌아섰다. 비쌀 때 탐욕스럽게 주식을 사들이던 사람들이 공포에 내몰려 헐값에 주식을 내던진 덕분이다.
공매도 잔액 변화 또한 증시 급변동에 못지않다. 지난해 3월 말까지만 하더라도 불과 5조7000억원대에 머물던 공매도 잔액이 1년여 만에 다섯 배 이상으로 급팽창했다. 코스피가 사상 최고치를 기록한 이후 급락세로 돌변하는 동안 공매도 잔액 또한 8조원에 가까운 숏커버가 진행됐다. 주가에 거품이 낄 때마다 렉카처럼 쏜살같이 달려드는 세력이 바로 공매도 세력임을 염두에 둘 필요가 있다.
공매도 잔액 상위 20개사에 쏠린 공매도 잔액만 하더라도 무려 10조8643억원에 이른다. 공매도 총 잔액의 48.4%가 이들 종목에 집중되어 있는 셈이다. 현대차, 한미반도체, LG에너지솔루션, HD현대중공업 등에 쏠린 공매도 잔액은 주가 반등을 억제하는 또 다른 걸림돌로 볼 수 있다.
공매도 평가이익이 크게 불어난 종목들은 대체로 주가가 급락한 경우가 많다. 임상실험에서 예상치 못한 소식이 들려오면 하락장세에서는 훨씬 더 가파른 하락세로 이어진다. 공매도 평가이익이 천억원을 초과하는 종목들은 대체로 제약·바이오(HLB, 펩트론, 알테오젠) 섹터와 2차 전지(LG에너지솔루션, 에코프로비엠, 에코프로, 엔켐) 업종에 집중되어 있다.
공매도로부터 거액의 평가이익을 거둬들이는 세력들은 주가에 거품이 낄 때마다 소리 없이 접근한다. 주가가 펀더멘털을 무시하고 급등할 때마다 공매도 규모를 더욱 늘리는 경우도 많다. 언젠가는 거품이 걷힐 때가 오리라는 걸 경험으로 터득했기 때문이다. 공매도 세력의 먹잇감이 되지 않으려면 '올라갈 때 못 본 걸림돌'을 주의 깊게 살필 필요가 있다.
현재 공매도 평가이익이 천억원을 넘어선 종목들의 주가 흐름과 공매도 잔액 변화를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공매도 잔액이 많다고 해서 천편일률적으로 주가 하락 위험성이 크다고 볼 수는 없다. 공매도 잔액이 부풀 대로 부풀어 오른 종목들 가운데 펀더멘털과 무관하게 공매도 공세에 시달린 종목들도 심심찮게 발견되기 때문이다. 기업의 가치에 비해 현저히 저평가된 종목이면서 동시에 공매도 잔고가 급팽창한 종목들은 언제든지 숏커버를 강요당할 위험이 있기 때문이다.
주가가 내리막길에 접어들면 남의 돈을 빌려 산 투자자들의 고통은 배가된다. 주가가 이번처럼 무섭게 폭등하면 주가 하락세도 그만큼 거칠기 마련이다. 산이 높으면 골이 깊다는 격언이 들어맞지 않는 하락장은 거의 없다. 이번처럼 주가가 급등하면 FOMO에 시달리는 투자자들은 결국 자제심을 잃고 투기장에 뛰어들기 마련이다. 상승 대열에 합류하는 시점이 늦을수록 수익에 대한 갈증은 더욱 심하다. 돈을 빨리 벌고 싶은 욕심이 결국 지렛대(레버리지)를 찾게 되고, 그 결과 신용 잔액은 무섭게 팽창한다.
상승장세에 급팽창한 신용잔고가 마침내 정점을 지나 청산되기 시작하면 그 속도는 가속화되기 쉽다. 신용 잔액이 저점에서 고점까지 1년 걸렸다면 신용 잔액 청산은 불과 서너 달이면 정리되기 때문이다. 주가 하락률이 고점 대비 20% 이상으로 커지면 신용 잔액 감소 폭은 40% 이상으로 확대되어 나타난다. 이번 상승장에서 코스피 하락률은 25.4%인데 비해 신용 잔액 감소율은 14.4%여서 상대적으로 완만한 편이다. 그러나 주가 하락세는 전염성이 강할 뿐 아니라 뒤늦게 잘못 뛰어든 투자자들의 옷자락을 좀처럼 놓아주지 않는다.
영국의 금융사가였던 에드워드 챈슬러는 『금융투기의 역사』라는 책을 통해 투기의 위험성을 경고한 것으로 유명하다. 그가 쓴 책의 제목 속에 나오는 낯선 영어 단어는 Hindmost다. Devil Take the Hindmost. 악마는 맨 뒤에 뛰어든 투자자들의 옷자락을 놓치는 법이 없다는 뜻이다. 『800년 금융 바보짓의 역사』라는 책의 제목에도 비슷한 경고가 담겨 있다. 이번엔 다르다는 말에 속아 넘어간 역사가 8세기 동안 이어져 왔다는 얘기다. 그 책의 원제목은 이렇다. 『 This Time Is Different: Eight Centuries of Financial Folly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