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송 중 엘시티 시행사에 ‘2391억 합의금’ 요구한 포스코이앤씨 [마포나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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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송 중 엘시티 시행사에 ‘2391억 합의금’ 요구한 포스코이앤씨 [마포나루]
  • 서중달 기자
  • 승인 2023.05.23 09:2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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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송 중 공사비 1500억 회수… 포스코이앤씨 무리수 왜?
“추가공사비 2400억 더 달라” 시행사에 ‘뒷북 소송’ 압박
엘시티PFV “부도 위기 몰린 상황서 불리한 합의서에 동의”
담보대출금 지출 때마다 포스코이앤씨에 동일 금액 지급
추가공사비 원인 싸고 “설계변경 때문” vs “협의 없었다”
부산의 랜드마크로 자리잡은 ‘엘시티’ 전경. /사진=엘시티PFV
부산의 랜드마크로 자리잡은 ‘엘시티’ 전경. /사진=엘시티PFV

부산의 랜드마크 ‘엘시티’가 완공 3년 6개월을 넘긴 지금도 풍파에 휘청거리고 있습니다. 착공도 하기 전부터 각종 특혜와 비리 의혹으로 몸살을 앓았고, 시공 중이던 2018년엔 커튼월 작업대 추락사고로 현장 근로자 4명이 목숨을 잃어 시공사와 당시 현장소장 등이 최근 형사처벌 확정판결을 받았습니다. 준공 1개월여를 남겨두고는 태풍 ‘콩레이’가 불어닥치며 유리창 100여장이 깨져 주변에 막대한 피해를 주기도 했습니다.

그런 우여곡절 끝에 완공된 엘시티가 뒤늦게 시공사 포스코이앤씨(옛 포스코건설)와 시행사인 엘시티PFV 사이 추가공사비 문제로 소송과 줄다리기에 시달리고 있다는 소식이 전해져 눈살을 찌푸리게 합니다. 포스코이앤씨는 준공 7개월이 지난 시점에 시행사를 상대로 추가공사비 2391억원을 더 지급하라는 소송을 제기했습니다. 엘시티PFV 측은 포스코이앤씨가 당시 부도 위기에 몰린 시행사의 약점을 이용해 일방적으로 불리한 합의서를 쓰도록 하고 1심 판결이 나오기도 전에 1500억원을 가져갔다며 억울함을 호소하고 있습니다.

엘시티 전경. /사진=엘시티PFV
엘시티 전경. /사진=엘시티PFV

포스코이앤씨는 엘시티PFV를 상대로 2020년 6월 공사비 2391억원을 더 달라며 서울중앙지방법원에 ‘공사대금 등 청구의 소’를 제기했습니다. 당초 2015년 1조4730억원에 공사 도급계약을 체결했는데 이후 설계 변경으로 추가 비용이 발생했다며 준공 전 양사가 합의한 추가지급액 388억원 외에 2391억원을 더 내놓으라고 소송을 낸 것입니다. 포스코이앤씨가 추가로 요구한 금액은 당초 계약금액 대비 20%에 달하는 엄청난 규모입니다.

이를 둘러싼 양사의 입장은 확연히 갈립니다. 포스코이앤씨는 “실시설계도면(CD)이 바뀌면서 당초 계약에는 넣지 않았던 추가 공사를 실시했다”며 “시행사가 제시한 CD는 완성도가 50% 수준밖에 안돼 100% 완성단계로 가는 설계 변경에 따른 공사비가 추가로 발생했다”고 밝혔습니다.

하지만 엘시티PFV 측은 “설계 변경과 추가 공사 시행 여부는 시행사와 사전 합의가 필요한 사항인데 포스코이앤씨가 납득할 만한 설명이나 내역서 제출도 없이 추가공사를 진행했다는 주장을 펴면서 결국 소송까지 걸었다”며 “시공 중 근로자 4명이 사망하는 추락사고를 유발했고, 태풍 콩레이 상륙 당시 현장 관리 소홀로 유리창 100여장이 깨지는 등 인근에 막대한 피해를 입혀 70여일간 공사중지 명령을 받게 된 시공사의 책임을 시행사에 전가한 의혹이 있다”고 맞서고 있습니다. 시행사는 포스코이앤씨가 책임준공과 총액도급계약을 약속하고도 100% 완성된 CD를 받지 못해 추가 공사가 필요했다고 뒤늦게 주장하는 건 억지라고 반박합니다. 요구한 금액도 터무니없다는 주장입니다. 준공 4개월 전 추가공사비가 1000억원 대로 추정됐는데 준공 7개월이 지나 제기한 소송에서 청구금액을 3배 가까이로 부풀려 요구한 근거를 찾을 수 없다며 의혹을 제기합니다.

업계에선 이런 소송은 통상 공사 실투입비를 청구하기 마련인데 포스코이앤씨가 어떻게 2000억원이 넘는 공사비를 시행사와 사전 협의 없이 선투입할 수 있었는지 의아한 시선으로 바라봅니다. 이 문제는 양측이 제출한 자료를 근거로 법원이 시비를 가려줄 일이지만, 정작 눈여겨볼 대목은 업계 관례를 비춰볼 때 포스코이앤씨의 추가공사비 회수 방법이 지극히 이례적이라는 사실입니다. 소송이 진행된 전후 사정을 살펴보면 새로운 합의서에 서명할 수밖에 없는 시행사의 절박한 사정을 이용한 것 아니겠냐는 합리적 의심을 거두기 어렵습니다.

소송 제기 전후로 엘시티PFV는 불어난 미처리 결손금 등 자금난으로 부도 위기에 몰려 있었습니다. 아파트 분양대금 등으로 2조6000억원이 들어왔지만 2020년 3월 만기 도래한 프로젝트 파이낸싱(PF) 대출금 1조7800억원을 갚고 대행수수료와 세금, 금융비용 등을 정산하고 난 뒤엔 자본잠식 상태에 빠져 미분양 상가와 호텔 등을 담보로 4400억원을 추가 대출해야 할 다급한 상황이었습니다. 자금난을 벗어나기 위해서는 담보신탁의 1순위 수익권자인 시공사의 최초 신탁계약 해지 동의가 필수였는데, 그 약한 고리를 포스코이앤씨가 치고 들어와 합의서 체결에 동의할 수밖에 없었다는 것이 시행사 측의 하소연입니다.

포스코이앤씨와 엘시티PFV가 2020년 12월 4일 맺은 ‘해운대 엘시티 복합개발사업 추가사업비 및 추가공사비 지급 관련 합의서’. /자료=엘시티PFV
포스코이앤씨와 엘시티PFV가 2020년 12월 4일 맺은 ‘해운대 엘시티 복합개발사업 추가사업비 및 추가공사비 지급 관련 합의서’. /자료=엘시티PFV

포스코이앤씨의 동의 없이는 다른 금융기관에서 신규 담보대출을 받을 수 없었고 대출을 받더라도 포스코이앤씨가 동의하지 않으면 자금 인출이 불가능한 상황이었다는 것입니다. 결국 추가공사비 청구 소송이 진행 중이던 2020년 12월 4일 양사는 별도의 합의서를 작성했습니다.

포스코이앤씨는 대출 동의 조건으로 △시행사의 모든 수익과 담보대출금을 재원으로 시행사가 사업비를 지출할 때마다 동일한 금액을 소송 중인 추가공사비 명목으로 지급하고 △담보대출 지연으로 인해 발생한 공사비와 확정공사비 지연이자 전액을 시공사에게 지급하며 △향후 추가공사비 소송 결과에 따라 회수한 금액 중 일부를 반환하더라도 지연이자는 받지 말라는 조항을 달았습니다.

엘시티PFV가 세금으로 1억원을 지출하더라도 포스코이앤씨에 똑같이 1억원을 줘야 하며, 청구한 추가공사비 전액을 받을 때까지 줄곧 이 조항을 적용해야 한다는 내용입니다. 이를 빌미로 합의서 체결 이후 포스코이앤씨는 엘시티PFV가 사업비를 지출하면 그 액수와 같은 금액을 또박또박 챙기고 있습니다. 최초 추가공사비 338억원 외에 지난 2년여간 포스코이앤씨가 받아간 돈은 1500억원에 달합니다.

합의서에 불리한 조항이 많았음에도 엘시티PFV는 도산 위기를 벗어나고자 울며 겨자 먹기 식으로 포스코이앤씨가 제시한 합의서에 도장을 찍고 4400억원 규모의 추가 담보대출을 받게 됐다고 합니다. 합의서 체결로 급한 불부터 끈 뒤 소송에서 이기면 비용을 돌려받는 것이 최선이라 생각했다는 겁니다.

이에 대해 포스코이앤씨는 자금 재조달 시 각자 지급이 필요한 공사비와 사업비를 조달하는 방법에 대해 양사가 적법한 절차에 따라 협의를 거쳐 합의서를 체결했다는 입장입니다. 2020년 12월 4일 엘시티PFV가 동의하고 작성한 ‘추가공사비 및 추가도급공사비 지급 관련 합의서’에 따른 것으로 시행사의 어려운 상황을 고려해 합의서를 작성한 것인데 이제 와서 딴 소리를 한다는 것입니다.

반면 엘시티PFV는 “대출을 못 받으면 부도가 나고 소송도 언제 끝날지 모르는 절박한 상황에서 포스코이앤씨의 비상식적인 요구를 들어줄 수밖에 없었다”며 “시행사의 자금난을 이용해 포스코이앤씨가 자사의 이익만 추구한 것 아니겠냐”고 하소연하고 있습니다.

필자의 법률자문 요청에 응한 건설 전문 법조인은 “추가공사비 소송을 제기한 상태에서 새로운 합의서를 통해 돈을 회수한다는 것 자체가 매우 이례적”이라며 “시행사의 이해에 반하는 행위가 이뤄졌을 정황이 있었음을 짐작할 수 있다”고 답했습니다.

업계에서는 소송 중인 공사비 재원 확보가 목적이었다면 일정 금액을 에스크로(매수인과 매도인을 대신해 이해관계가 전혀 없는 3자가 법률 서류와 자금을 처리하고 당사자들이 일정 조건을 충족할 경우 해당 서류나 자금을 전달하는 절차)하면 되는데 포스코이앤씨가 무리수를 둔 것 같다는 의견이 나옵니다.

/그래픽=뉴스웰
/그래픽=뉴스웰

엘시티PFV는 아직도 자금난에 허덕이고 있습니다. 미지급금, 용역대금, 세금 등 1500억원 이상의 추가사업비가 필요한데 이는 포스코이앤씨가 합의서에 따라 이미 챙겨간 추가공사비 만큼의 금액입니다. 포스코이앤씨에 지급해야 할 추가공사비는 아직도 900억원이 남아있습니다. 지출할 때마다 똑같은 금액을 포스코이앤씨에 줘야 하기 때문에 실제로 2400억원의 추가사업비가 필요하다는 얘기가 됩니다. 소송 결과가 나오기 전까지 이 상황을 이어가야 합니다. 엘시티PFV가 소송에서 이겨 일부 자금을 회수하더라도 그때까지는 막대한 손실과 고통을 감당할 수밖에 없는 처지인 것입니다. 국민기업이자 국내 5위 규모의 대기업집단인 포스코그룹 대형건설사가 궁박한 상황에 몰린 협력자를 몰아세워 자사에 극단적으로 유리한 조건을 밀어붙였다는 비판에서 자유로울 수 있을지 의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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