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류의 기원>은 미국 캘리포니아대학교 리버사이드 캠퍼스 인류학과 이상희 교수가 윤신영 기자와 함께 출판한 책이다. 국내에서 한글로 먼저 출판된 후 영어, 네덜란드어, 그리스어, 스페인어, 일본어, 중국어, 그리고 튀르키예어로 해외에서도 번역 출판된 멋진 책이다. 이상희 교수가 이어서 2023년 출판한 <인류의 진화>에는 흥미롭고 새로운 연구 결과가 추가되었고 한반도의 고인류에 대한 이야기도 잘 담겨있다. 두 책을 함께 읽기를 권한다.
우리는 호모 사피엔스(Homo sapiens)다. 이렇게 두 라틴어 단어를 이용해 표기하는 생명 종의 학명에서 앞의 단어가 속명, 뒤가 종명이어서 우리 현 인류가 속한 속(genus)이 호모, 종(species)은 사피엔스다. 약 300만년 전 살았던 오스트랄로피테쿠스 아파렌시스라는 종도 있다. 학명이 호모로 시작하지 않는 것에서 알 수 있듯이 우리는 호모 속이지만, 이 종은 오스트랄로피테쿠스 속에 속한다. 다만, 약 200만 년 전 살았던 호모 에렉투스는 호모로 시작하니 우리와 같은 속이지만 종은 다르다. 이처럼 고인류 생명 종의 학명만 유심히 봐도 우리와 얼마나 가까운지 짐작할 수 있다. 호모 에렉투스가 오스트랄로피테쿠스 아파렌시스보다 우리와 훨씬 가깝다.
고등학교 때 외워 지금도 기억하는 ‘종속과목강문계’를 따라 이어가면 우리는 사피엔스종–호모속–호미니드과–영장목-포유강-척삭동물문-동물계로 분류되는 종이다. 위의 7단계 분류에는 없지만 속과 과 사이에는 족(tribe)이라는 분류도 있고, 종보다 작은 것이 아종이듯이 족보다 작고 속보다 큰 분류로 아족(subtribe)도 있다. 인류의 기원에서 중요한 것이 호미닌 아족이다. 우리 현생 인류는 호모(속)이자 호미닌(아족)이고 또 호미니드(과)다. 오스트랄로피테쿠스 아파렌시스는 호모 속은 아니지만 우리와 마찬가지로 호미닌이자 호미니드다. 침팬지는 우리와 더 멀어서 호모 속도 아니고 호미닌도 아니지만, 우리처럼 호미니드다. 현재 우리 호모 사피엔스는 지구에 존재하는 유일한 호미닌 아족에 속한 종이다. 인류 진화의 역사를 거슬러 올라 호미닌이 처음 지구에 등장한 무렵이 인류의 기원이라고 말할 수 있는 이유다.
호모 사피엔스는 정말 독특한 종이다. 몸집에 비해 큰 두뇌, 다른 네 손가락에 닿는 엄지손가락, 털이 거의 없어 노출된 피부, 두발걷기 등, 밖에서 드러나는 생물학적 독특함뿐이 아니다. 우리가 아는 한, 불을 사용하고 구조적 언어를 구사하며 장례를 치르고 옷을 지어 입는 유일한 종이 호모 사피엔스다. 또 우리는 예술, 종교, 철학, 그리고 과학을 만들어낸 유일한 종이기도 하다.
호모 사피엔스가 보여주는 여러 독특한 특성 중 무엇에 주목하는지에 따라 인류의 기원에 대한 논의가 달라진다. 저자 이상희 교수는 큰 두뇌와 도구의 제작은 호미닌이 처음 등장한 후 한참의 시간이 지난 다음에 출현했다고 말한다. 400만~500만년 전 초기 호미닌의 두뇌 크기는 침팬지와 그리 다르지 않은 450cc 정도로 우리 호모 사피엔스의 3분의 1에 불과했다. 침팬지와 호미닌이 갈라진 다음인 400만 년 전 지구를 방문한 외계인을 상상해 보자. 이 외계인이 여러 호미니드를 보면서 뇌의 크기만을 기준으로 침팬지 계열과 우리로 이어진 인류 계열의 미래를 짐작하기는 어려웠을 것이 분명하다. 우리 쪽이나 침팬지 쪽이나 당시 뇌의 크기는 도긴개긴 그리 다르지 않았기 때문이다. 도구 사용과 큰 뇌 사이의 관계도 흥미롭다. 도구를 사용하려면 큰 두뇌가 필요했을 것으로 짐작할 수 있지만 그렇지 않다. 340만년 전 침팬지 크기의 두뇌를 가진 오스트랄로피테쿠스 가르히가 도구를 사용한 흔적이 발견되었다는 것으로 알 수 있다. 결국 큰 두뇌는 최초 인류의 기준이 될 수 없다. 게다가 인간이 아닌 동물 중에도 도구를 사용하는 동물이 많다. 가려운 부분을 능숙하게 막대를 이용해 긁는 암소 얘기가 바로 얼마 전 기사로 소개되기도 했다. 큰 두뇌와 도구의 사용이 인류의 진화에서 중요하지 않았다고 주장하는 것이 아니다. 인류의 진화 과정에서 두뇌의 크기는 꾸준히 늘어나는 추세를 보여주고 도구의 제작 기법도 명백한 발전을 보여준다. 큰 두뇌와 도구의 사용은 우리 선조의 전반적인 삶에 엄청난 영향을 미쳤다. 하지만 큰 두뇌와 도구의 사용을 최초의 인류를 다른 생명 종과 구별 짓는 독특한 특성으로 지목하기는 곤란하다는 것이 저자의 얘기다.
저자를 포함한 현대의 많은 인류학자가 최초 인류의 특성으로 주목하는 것이 바로 두발걷기(직립 보행)다. 늘 두발걷기를 하는 우리 인간과 두 발로도 네 발로도 걷는 침팬지는 골격 구조가 무척 다르다. 우리가 두 발로 걸어갈 때 몸무게가 양쪽 발에 균등하게 배분되는지, 아니면 거의 매 순간 한 발이 몸무게 전체를 지탱하는지 가만히 살펴보라. 우리는 사실 두 발이 아니라 한 발로 걷는다는 저자의 주장에 고개를 끄덕이게 된다. 이렇게 한 발로 몸을 지탱하면서 안정적으로 걸어가려면 몸 전체의 무게 중심이 좌우로 크게 움직이지 않아야 해서 골반의 폭이 좁아지고, 앞에서 본 두 넓적다리뼈가 V자 모습으로 안을 향해 기울어진 모습을 갖게 된다. 그리고 한발로 몸무게를 버텨야 해서 앞을 향한 튼튼한 엄지발가락이 등장하게 된다. 또 다른 직립 보행의 재밌는 증거가 머리뼈 아래와 척추가 연결되는 구멍인 대후두공의 위치다. 직립해 서 있는 인간의 옆모습을 물리학자 취향의 극단적 단순화로 어림하면 긴 막대기 위에 올려진 축구공의 모습이 된다. 막대기 위 축구공이 그나마 안정적으로 그곳에 있으려면 막대기 끝과 축구공이 맞닿는 위치가 위에서 내려다본 축구공의 한가운데와 겹쳐야 한다. 마찬가지다. 인류의 진화 과정에서 척추와 머리뼈가 만나는 대후두공의 위치는 머리뼈의 한가운데 쪽으로 이동했다. 안으로 휜 넓적다리뼈, 가운데를 향해 옮겨진 대후두공의 위치, 튼튼하고 큰 앞을 향한 엄지발가락 등의 여러 증거를 모아 초기 인류가 언제쯤 직립 보행을 시작했는지 알아낼 수 있다. 안을 향해 휜 넓적다리뼈를 기준으로 하면 약 700만 년 전 사헬란트로푸스 차덴시스가 이미 직립 보행을 한 것으로 보인다. 이보다 훨씬 명확한 두발걷기의 증거는 탄자니아에서 발견된 366만 년 전 오스트랄로피테쿠스의 발자국 화석이다. 뒤뚱거리지 않고 앞으로 뚜벅뚜벅 걸어간 길게 이어진 발자국에서 앞을 향한 튼튼한 엄지발가락 자국을 명확히 볼 수 있다. 440만 년 전으로 추정되는 아르디피테쿠스 라미두스의 화석도 정말 흥미롭다. 골반과 대후두공을 보면 직립 보행의 증거가 보이지만 옆으로 벌어질 수 있는 엄지발가락 뼈를 보면 나뭇가지를 발로 움켜잡을 수 있었다는 것도 알 수 있다. 숲이 초지로 바뀌기 전인데도 이미 직립 보행이 시작되었을 수 있다는 주장을 가능케 한 재밌는 화석이다.
초기 인류에서 상당히 일찍 등장한 두발걷기는 인류의 진화 과정에서 정말 엄청난 변화를 연쇄적으로 만들어냈다. 먼저, 두발걷기를 시작하며 좁아진 골반으로 말미암아 아기를 출산하는 과정에서 엄마가 목숨을 걸어야 할 정도의 위험을 부담해야 했다. 책에서 설명한 출산과 보행의 상충관계(트레이드오프)를 보면서 음식물이 기도를 막을 수도 있는 인간의 또 다른 독특함을 떠올렸다. 입으로 말하고 두 발로 걷는 것은 우리의 먼 선조가 목숨을 걸 정도로 중요한 일이었던 셈이다. 말하고 걷기 위해서 질식과 출산의 위험을 무릅쓴 이들이 우리 호모 사피엔스의 현재를 만들어냈다.
두발걷기로부터 이어진 좁아진 골반으로 출산이 위험해지자, 인류의 선조는 아이를 일찍 낳기 시작했다. 미성숙해서 연약한 상태로 태어난 아기는 엄마 혼자 양육하기 어려워 아빠의 적극적 육아 협조가 필요해졌다. 인간의 남성과 여성은 임신과 육아의 긴 과정에 함께 참여하는 장기적 관계를 맺게 되었고, 이를 위해 여성은 가임기를 은폐해 남성을 곁에 항상 머물게 했다. 결국 두발걷기에서 시작한 연쇄적인 과정으로부터 일부일처에 가까운 핵가족과 부부의 공동양육이라는 인간의 독특한 특성이 출현한 셈이다.
두발걷기는 또 다른 방향으로도 엄청난 변화를 만들었다. 침팬지의 네발 보행과 비교하면 인간의 두발걷기는 에너지 소비량이 25% 정도에 불과하다고 한다. 이처럼 에너지 효율적인 두발걷기로 인간은 먼 거리를 오랜 시간 달리는 것이 가능해졌다. 우리보다 빨리 달리는 동물은 많아도 우리처럼 오래 달리는 동물은 거의 없다. 마라톤 경기에서 볼 수 있듯이 우리 인간은 40km를 쉬지 않고 계속 달릴 수 있는 거의 유일한 동물이다. 인간의 엄청난 장거리 달리기 능력은 인간의 독특한 사냥법으로 이어졌다. 우리 선조는 사냥감이 지칠 때까지 쫓아가 사냥했다. 이러한 지구력 사냥법으로 체온이 상승하자, 긴 털을 없애고 피부 땀샘을 발달시켜 체온 상승을 해결한 이들이 인류의 조상이다. 긴 털이 없어져 밖으로 드러난 피부를 가지고는 추운 날씨에 적응하기 어려워졌다. 추위에 버티려 우리 인간은 옷을 지어 입기 시작했다. 두발걷기가 결국 우리가 입는 옷도 만들어낸 셈이다.
두발걷기는 두 팔을 자유롭게 만들어 도구의 제작과 사용에 도움을 주었다는 것도 중요하다. 더 나은 도구를 만들고 사용하는 과정에서 맞닿을 수 있는 엄지가 등장해 정교한 손동작이 가능해졌다. 도구의 발달은 동물성 먹을거리의 섭취량을 늘렸고, 이로 말미암아 늘어난 에너지로 또 더 큰 두뇌가 가능해졌다. 두뇌가 커지면서 복잡한 사회관계에 대한 정보를 처리할 수 있게 되었고, 인간은 다른 영장류에 비해 더 큰 규모의 집단을 이룰 수 있었다. 두발걷기가 만든 연쇄적인 변화를 생각하면 저자를 포함한 현대의 여러 인류학자가 초기 인류의 특성으로 먼저 두발걷기에 주목하는 것에 크게 고개를 끄덕이게 된다.
책을 읽다 감탄한 논리적이고 체계적인 연구 방법이 많다. 먼저, 동물 뼈에 남겨진 흔적이 포식자의 이빨 자국인지 아니면 석기의 사용 자국인지는 뼈에 남겨진 흔적의 단면 모습이 U자와 V자 중 무엇에 가까운지 보면 알 수 있다. 날카로운 돌날로 그은 뼈에는 U자형이 아닌 V자 단면의 흔적이 남기 때문이다. 바로 이 방법으로 340만 년 전의 오스트랄로피테쿠스 가르히가 석기를 사용했다는 것을 알아냈다. 호모 하빌리스와 호모 에렉투스가 석기를 사용한 방식의 차이를 알아낸 방법도 재밌다. 만약 남겨진 동물 뼈에서 다른 동물 이빨 자국 위에 석기 사용 흔적이 보인다면, 이 석기를 사용한 이들은 다른 맹수가 먹다 남긴 사체를 먹었다는 뜻이 되고, 만약 석기 자국 위에 다른 동물의 이빨 자국이 보이면 살아있는 동물을 사냥했다는 증거가 된다. 바로 이 방법을 통해서 올도완 석기를 사용한 호모 하빌리스는 다른 맹수가 먹다 남긴 동물 사체의 골수나 뇌를 먹었을 것으로, 아슐리안 석기를 사용한 호모 에렉투스는 직접 사냥한 동물을 먹었을 것으로 추론해 냈다. 크로아티아의 네안데르탈인 유적지에서 발견된 칼자국이 있는 젊은 여성과 아이 뼈 화석을 분석한 방법도 정말 흥미롭다. 미국 인디언 중에는 사망자 시신이 어느 정도 부패한 다음 뼈를 추려 장례를 다시 치르는 2차장의 풍습을 가진 이들이 있다. 부패한 조직을 떼어내기 위해 남겨진 칼자국은 뼈의 양쪽 끝부분에 주로 남겨지지만 먹기 위한 도축 과정에서는 그렇지 않다는 것으로부터, 네안데르탈인이 일상적으로 동종 포식을 했다고 할 수 없다는 결론이 얻어졌다. 네안데르탈인의 언어 사용에 대한 간접적 증거를 알아낸 방법도 정말 재밌다. 뼈가 붙은 고기를 이로 물고 돌날로 끊어내는 과정에서 이에 긁힌 자국이 남을 수 있다. 이 자국의 방향을 잘 분석하면 왼손과 오른손 중 어느 손에 석기를 들었는지를 추정할 수 있는데, 연구에 따르면 네안데르탈인도 우리처럼 오른손잡이가 더 많아서 오른손과 왼손잡이의 비율이 2대 1 정도였다고 한다. 언어는 주로 우리의 좌뇌에서 처리하는데 이로부터 만들어지는 뇌의 좌우 비대칭성으로 오른손잡이와 왼손잡이의 비율이 달라진다고 하면, 네안데르탈인도 언어를 사용했을 수 있다는 간접적인 추론이 가능하다. 저자가 진행한 연구에서 인류 집단 내에서 노년층과 청년층이 어떤 비율로 살아갔는지 밝힌 방법도 재밌다. 사랑니가 나기 시작한 시점을 청년으로 정의하고 청년기의 치아와 비교해 마모의 정도가 두 배에 이른 시점을 노년기로 정의한 저자는 이를 이용해 오랜 기간 노년/청년 비율이 어떻게 달라졌는지 알아냈다. 호모 사피엔스가 등장하면서 급격히 노년층의 비율이 늘어났다는 결론을 얻은 저자는 노년층이 늘어나면서 축적된 지식의 전수가 가능해지면서 인류의 문화와 예술이 꽃피고 시작했다는 얘기도 들려준다.
문과와 이과가 명확히 구별될 수 없고 무리해서 구분해서도 안 된다는 것이 내 평소의 신념이다. 책을 읽으면서 인류학이 문·이과를 나눌 수 없는 대표적인 학문이라고 생각했다. 이름만 들으면 ‘문과’ 학문처럼 보여도 인류학의 연구 방법은 정말 ‘이과’적이다. 오늘 소개한 이상희 교수의 책으로 인류의 기원과 진화를 연구하는 인류학의 매력에 흠뻑 빠져보시길 바란다.
*책을 읽고 함께 이야기 나눌 주제
1. 큰 두뇌, 도구의 사용, 두발걷기, 털 없는 피부 등 인간은 상당히 독특한 여러 특성을 보여줍니다. 이 중 인간다움의 명확한 증거로 두발걷기를 강조하는 이유는 무엇인가요?
2. 외계 행성에 지적 생명체가 있다면 우리 인간과 비교해서 어떤 유사성과 차이점이 있을까요?
3. 네안데르탈인은 우리와 같은 종일까요? 여러분의 생각을 들려주세요.
4. 네안데르탈인도 서로 도우며 살아갔어요. 이들의 이타성이 현재의 우리처럼 친족의 경계를 넘어설 수 있었을까요?
5. 인간이 아닌 동물 중에도 도구를 사용하는 예가 많이 있습니다. 인간의 도구 사용을 다른 동물과 비교해 보세요.
6. 우리 인간은 농경을 시작한 이후 더 빠르게 진화하고 있습니다. 인간 진화의 최근 사례를 들려주세요.
7. 아프리카 기원론과 다지역 연계론 각각을 지지하는 증거를 소개해 보세요. 여러분 생각은 둘 중 어느 주장과 가까운가요?
8. 저자는 인류의 진화 과정은 갈라졌다 다시 만나는 숱한 물줄기로 이루어진 강이라고 말합니다. 진화를 바라보는 저자의 관점을 다윈의 ‘생명의 나무’와 비교해 보세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