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을 수 없는 2차전지 테마주의 ‘투기적 패턴’ [오인경의 그·말·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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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을 수 없는 2차전지 테마주의 ‘투기적 패턴’ [오인경의 그·말·이]
  • 오인경 후마니타스 이코노미스트
  • 승인 2023.04.24 08: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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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이미지투데이
/사진=이미지투데이

봄이라는 계절만큼 더디 오고 빨리 가는 계절도 없는 듯하다. 봄이 다 온 듯하다가도 느닷없이 꽃샘추위가 닥치면 이내 다시 외투를 꺼내 입어야 하고, 꽃들이 한창 피어날 때조차 차가운 눈이 봄꽃을 뒤덮기도 한다. 지난주엔 조금씩 기지개를 켜던 리오프닝 주식들이 난데없는 된서리를 맞고 풀썩 주저앉았다. 이제나저제나 ‘5월이 오면’ 중국인 단체관광객이 구름떼처럼 몰려오리라 잔뜩 기대하던 차에 국가 원수의 외신 인터뷰 하나 때문에 일순 싸늘하게 식어버리고 만 것이다.

매번 더디게 왔다가 훌쩍 가버리는 너무 짧은 봄, 가벼운(?) 말 한마디,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 참을 수 없는 시세의 불확실성…. 이런 단어들을 가만 떠올려보면 작가 한 명이 스르르 떠오른다. 밀란 쿤데라. ‘농담’ 한 마디에 인생이 송두리째 뒤바뀐 남자 주인공을 그린 소설이 그의 처녀작 『농담』이었다. 체코에 찾아온 너무나 짧았던 봄을 배경으로 쓴 멋진 소설은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 그 밖에도 『불멸』, 『배신당한 유언들』과 같은 멋진 작품을 여럿 쓴 작가다. ‘프라하의 봄’ 사건 이후 반체제 인사로 내몰려 당국의 탄압을 받은 끝에 1975년 프랑스 파리로 망명한 작가이기도 하다. 『농담』에는 경직된 사회주의 체제에 대한 비판을 넘어 경멸에 가까운 조소가 담겼다. 1984년에 출간한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 또한 전체주의 사회가 개인의 삶을 얼마만큼 억압하고 뒤틀리게 만드는지를 여실히 그려냈다. 한반도에도 어김없이 봄이 찾아왔건만 뜻하지 않은(?) 일로 공산권 양대 국가와의 관계가 일순 싸늘하게 식어버리니 각국 지도자나 공산 체제나 새삼 야속하게만 느껴진다.

어렵사리 찾아온 사월이 다 지나기 전에 다시 한번 점검해 보고픈 건 2차 전지 테마주들의 시세 부침이다. 그들 종목군은 도대체 얼마만큼 올랐고, 시장 대비로는 얼마만큼이나 ‘차이 나는’ 성과를 올린 것일까. 그들이 한국 증시 시가총액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또 얼마나 될까? 최근의 신용잔고 폭증 흐름에서 그들이 차지하는 비중은? 여러모로 궁금한 게 한둘이 아니다. 어쨌든 그들의 현재 위치를 제대로 파악해야만 그들이 얼마만큼 과다한 상승을 했는지를 가늠할 수 있을 터. <네이버 증권>에서 제공하는 자료에 따르면 2차 전지 테마주로 분류된 종목은 무려 122개다. 요 며칠 사이에도 몇 십 종목이 추가되었다. 그만큼 2차 전지 테마주로 엮이고 싶은 종목이 많다는 얘기다. 아무튼, 그 종목들이 작년 10월 신용잔고가 바닥권일 때와 비교했을 때 얼마만큼 상승했는지를 일람해 보면 아래 그림과 같다.

2차 전지 테마주들의 주가 상승률. /그래픽=오인경
2차 전지 테마주들의 주가 상승률. /그래픽=오인경

시장 전체 시가총액이 최근 6개월 동안 21.1%나 올랐으니 결코 낮은 수치가 아닌데, 2차 전지 주식들의 주가 상승률은 눈부시다 못해 어안이 벙벙할 정도다. 시장 평균과 비교해 보면 ‘가까이하기엔 너무 먼 당신들’이다. 그러면 이들 종목의 시가총액은 네이버에서 제공하는 영업이익 수치와 비교해서 얼마만큼 합당한 수준에서 거래되고 있는지도 궁금하다. 종목별 시가총액이 해당 종목의 최근 영업이익 대비 몇 배수인지는 다음과 같다.

2차 전지 테마주들의 영업이익 대비 시가총액 비교. /그래픽=오인경
2차 전지 테마주들의 영업이익 대비 시가총액 비교. /그래픽=오인경

​2차 전지 테마주들의 주가 상승을 주도한 <상승률 상위 30개사>는 약 6개월 만에 시가총액이 무려 2.8배나 늘어났음을 알 수 있다.(34조3855억→95조8110억원). 네이버에서 제공하는 영업이익 수치의 30개사 합계는 2조1201억원인데, <시가총액 대비 영업이익 배수>는 무려 45.2 배다. 시장 평균이 정확히 얼마인지는 따로 조사하지 못 했지만 얼핏 보더라도 매우 고평가된 수준임을 알 수 있다. 개별종목단에서 살펴보면 그 편차는 훨씬 더 심하게 나타난다.

다음으로 2023년 4월 24일 현재 네이버에서 <2차 전지 테마주>로 분류한 122종목의 시가총액 변화를 살펴보자. 이들 종목의 시가총액 합계는 약 461조원이다. 이번 분석에서 비교 시점으로 잡은 2022년 10월과 비교하면 6개월여 만에 시가총액이 무려 141조가량 불어난 셈이며 증가율로는 44.1%에 달한다. 증시 전체 시가총액 증가율이 해당 기간 동안 21.1%였음을 감안하면 2차 전지 테마주들이 얼마만큼 뜨겁게 달아올랐는지를 다시금 확인할 수 있다.

2차 전지 테마주들의 시가총액 비중. /그래픽=오인경
2차 전지 테마주들의 시가총액 비중. /그래픽=오인경

마지막으로 살펴볼 항목은 신용융자 잔고다. 비이성적인 이상과열엔 언제나 투기적인 요소가 개입되기 마련인데, 2차 전지 테마주들 역시 ‘익숙한 패턴’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 급등이 급등을 부추기고 더 빨리 부자가 되고픈 생각에 레버리지를 극대화하는 투기적 패턴 말이다. 아래 그래프를 보면 최근 시장 전체의 신용융자 잔고가 급팽창한 주된 요인이 상당 부분 2차 전지 테마주들의 신용잔고 급증 때문이었음이 확연히 드러난다.

2차 전지 테마주들의 신용잔고 추이. /그래픽=오인경
2차 전지 테마주들의 신용잔고 추이. /그래픽=오인경

종목별로 살펴보면 이런 흐름이 더욱 극단적인 경향을 드러낸다. 2차 전지 테마주들 가운데 신용융자 잔고가 많은 상위 20개사의 신용잔고는 지난주 기준으로 2조7379억원인데, 작년 신용잔고 저점 당시(2022년 10월 13일) 1조1179억원 대비 무려 144.9%나 폭증한 수준이기 때문이다. 신용잔고 상위 20개사 가운데 작년 10월보다 잔고가 줄어든 종목은 코스모신소재가 유일했다. 이들 종목의 시가총액 증가율이 43.6%에 달했는데, 해당 기간 동안에 1조6000억원 이상 폭증한 신용융자에 힘입은 바가 컸음을 쉽게 유추할 수 있다.

2차 전지 테마주 가운데 신용잔고 상위 20종목 현황. /그래픽=오인경
2차 전지 테마주 가운데 신용잔고 상위 20종목 현황. /그래픽=오인경

고대의 철학자인 파르메니데스는 이 세상의 모든 것이 반대되는 한 쌍으로 양분되어 있으며, 가벼운 것이 긍정적이고 무거운 것이 부정적이라고 주장했다. 주가 역시 마찬가지다. 가벼워야 긍정적이다. 도대체 그걸 말이라고 하느냐고 누군가 반문할지 모르겠다. 밀란 쿤데라는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에서 그 철학자의 얘기를 소개하면서 “그의 말이 맞을까?” 하고 의문을 제기한다. 그러나 한 가지만은 분명하다고 작가는 말한다. 모든 모순 중에서 무거운 것-가벼운 것의 모순이 가장 신비롭고 가장 미묘하다고. 화창한 봄날 아지랑이 피어오르듯 금세 날아오를 것만 같던 리오프닝 주식들이 폭설 맞은 봄꽃처럼 얼어붙고, 기세등등하던 전기차 배터리 관련주들이 무겁게 가라앉는 걸 보면 참을 수 없는 주가의 변덕스러움만큼은 인정해야 옳을 듯하다. 이래저래 참 미묘한 사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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