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자와 투기 사이, ‘에코프로 광풍’ 합당한가 [오인경의 그·말·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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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자와 투기 사이, ‘에코프로 광풍’ 합당한가 [오인경의 그·말·이]
  • 오인경 후마니타스 이코노미스트
  • 승인 2023.04.18 0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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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이미지투데이
/사진=이미지투데이

역사상 최고의 투자가인 워런 버핏은 월가 최고의 스승을 만난 덕분에 투자를 제대로 배웠다. 투자경력이 70년이 넘었지만 흔들림이 없다. 그가 스승으로부터 배우고 지켜온 투자 원칙이야말로 숱한 위기를 헤쳐온 원동력이었다. 그는 70년대 1, 2차 석유파동 위기, 1987년의 악몽 같은 블랙 먼데이, 1997년 동아시아 외환위기, 1999년 말 광적인 IT 버블, 9·11 테러, 2008년 금융위기 등을 거치면서도 투자 원칙이 흔들린 적이 없다. 미국 중부 네브래스카에서 대학을 마치고 컬럼비아 경영 대학원에 진학한 워런 버핏은 거기서 위대한 스승 벤저민 그레이엄을 만난다. 그레이엄과 버핏은 닮은 점이 많았다. 두 사람의 가장 두드러진 공통점은 특이하게도 돈을 많이 버는 데엔 관심이 없다는 점이다. 버핏이 나중에 그레이엄의 회사에 입사한 직후 그레이엄이 그에게 한 말은 이랬다. “돈이 있다고 해서 자네나 나나 달라질 건 별로 없네. 우린 변하지 않을 거야. 다만 우리 아내들이 더 유복하게 될 테지.”

벤저민 그레이엄과 워런 버핏의 저서들. /사진=오인경 후마니타스 이코노미스트
벤저민 그레이엄과 워런 버핏의 저서들. /사진=오인경 후마니타스 이코노미스트

그레이엄은 버핏이 네 살배기 꼬맹이일 때인 1934년에 일찌감치 『증권분석』을 출간했다. 최종적으로 제5판까지 개정 출간을 거듭한 그 책은 대학원 교재에나 알맞을 만큼 몹시 두껍다. 그래서 일반 투자자들을 위해 보다 대중적으로 쓴 책이 1949년에 출간된 『현명한 투자자』라는 책이다. 버핏은 네브래스카 대학 4학년에 재학 중이던 열아홉 살 때 그 책을 읽었다. 그는 이 책을 통해 ‘1달러를 40센트에 사는’ 철학을 배웠다면서 다음과 같은 말을 덧붙였다.

“이 책을 읽기 전에 여러 가지 방법을 다 써 봤다. 차트를 모으고 기술적인 자료란 자료는 다 읽어보고 갖가지 정보에 귀를 기울여 봤다. 그러다가 그레이엄의 『현명한 투자자』를 읽었다. 그 순간 빛을 보는 것 같았다. 광신도들이나 하는 소리로 들릴지 모르지만, 나는 정말 그 책에 매료되었다.”

바로 그 책에서 그레이엄이 가장 강조한 포인트가 <투자와 투기의 구분>이었다. “투자란 철저한 분석 아래 원금의 안정성과 적절한 수익성을 보장하는 것이다. 이런 요건을 충족시키지 못하는 행동은 투기적이라 하겠다.” 그레이엄도 투기가 언제나 매력적이고 그 게임에서 앞서 있는 동안은 굉장히 재미있을 수 있다는 점을 잘 알고 있었다. 그러나 투기의 위험성에 대한 충고도 잊지 않았다. “거기에서 운을 시험해 보고 싶다면, 이 목적으로 자금의 일부를 할당하라. 이는 적을수록 좋으며 시세가 상승하고 이익이 굴러들어 온다고 해서 이 부문에 돈을 더 투입하지는 말라. 투기거래와 투자거래를 절대로 하나의 구좌 안에 섞지 말며, 거래에 대한 생각 자체도 따로따로 해야 한다.”

대중의 미망과 광기. /사진=오인경 후마니타스 이코노미스트
대중의 미망과 광기. /사진=오인경 후마니타스 이코노미스트

최근 증시의 화두는 단연 2차 전지 관련주들의 불꽃 랠리다. 그 가운데서도 에코프로 그룹주들의 주가 비상이 너무 놀랍다. 이렇게 가파르게 상승해도 아무 탈이 없을까 걱정될 정도다. 섣불리 공매도에 나섰다가 잘린 펀드매니저가 여럿이라는 소식을 듣고 탈이 났다고 말하려는 게 아니다. 불꽃처럼 하늘 높이 치솟는 주가를 보면 먼발치에서도 그 화려한 축제에 동참하려고 이성을 잃은 투자자들이 마구 뛰어들게 마련인데, 그런 광풍이 초래할 부작용을 걱정한다는 말이다. 가파른 주가 상승에 그저 어안이 벙벙했는지 지금껏 입도 벙끗 안 하던 증권사에서도 며칠 전부터 슬금슬금 매도 리포트를 내놓기 시작했다.

대중의 미망과 광기는 작동 방식이 대체로 유사하다. 뭔가 새로운 기술이나 서비스가 나타나 기존 방식을 모조리 대체할 것 같은 느낌이 드는 게 사이클의 시작이다. 90년대 중반, 삐삐가 사라지고 마침내 벽돌만 한 무선전화가 등장하자 회사명에 무슨 '통신'만 붙어도 주가가 무섭게 치솟곤 했었다. 태산처럼 무겁던 KT조차 마구 들썩였다. 유선전화는 금세 다 사라지고 세상의 모든 전화기는 전부 무선으로 바뀔 태세였다. 그로부터 30년쯤 지난 요즘은 어떤가. 사무실로 출근하면 누구나 유선전화 하나씩은 데리고 일한다. 다들 핸드폰이 있어도 그렇다. 세상의 기술 변화라는 게 모름지기 나중에 뒤돌아보면 결국 대체로 그렇게 바뀐 걸 확인하게 되지만, 세상이 완전히 바뀌기까지는 생각보다 오랜 세월이 걸리고 ‘진짜 수혜주’는 나중에 나타나는 경우도 많았다. 인터넷, 스마트폰, 인공지능(알파고), 태양광, 메타버스 등등이 세상에 처음 등장했을 때도 금세 모든 게 다 바뀔 것처럼 호들갑을 떨었지만 변화가 확연해지는 단계는 생각보다 오랜 시간 뒤에 찾아온다. 태양광, 자율주행차, 사물인터넷(IoT), 메타버스 기술 등은 등장 초기만 하더라도 대단한 기대감을 불러왔지만 아직까지도 가시적인 성과가 부족한 형편이다.

아이작 뉴턴. /사진=픽사베이
아이작 뉴턴. /사진=픽사베이

대중의 미망과 광기에 휩쓸려 투기에 가담했다가 거액의 손실을 입은 유명 인사 중에는 천재 물리학자 뉴턴도 있었다. 그는 1720년 영국을 휩쓴 남해 주식회사(South Sea Company) 투기 붐에서 큰 손해를 본 후 과연 그다운 명언을 남겼다. “천체의 운동을 계산할 수 있는 나도 인간의 광기는 도저히 계산할 수 없다.” 뉴턴은 세상 물정을 모르는 ‘순진한’ 과학자가 아니었다. 요즘으로 치자면 조폐공사 격인 왕실 주조국(Royal Mint)의 사장을 30여 년간 역임할 정도로 경제를 알던 사람이었다. 그런 그도 투기의 광풍 속에서 판단력이 흐려져 당시 중산층 가족 1년 생활비의 100배에 달하는 2만 파운드를 잃었다고 한다. 그도 처음엔 수익률 100%에 달하는 7000 파운드의 이익을 실현했다고 한다. 하지만 그 뒤 그해 봄과 여름에 세상을 휘몰아친 광기에 휩쓸려 더 많은 물량의 주식을 거의 최고점에서 매입해 거액의 손실을 입고 말았다. 그가 그레이엄의 충고를 미리 알았더라면 얼마나 좋았을까. 그는 남은 생애 내내 남해(South sea)라는 이름을 듣는 것조차 견디기 어려워했다고 한다.

미궁. /사진=픽사베이
미궁. /사진=픽사베이

급등주의 무서운 상승과 기록적인 추락 사례들을 가만 떠올려 보면 고대 그리스 신화 가운데 이카루스의 추락이 늘 겹쳐 떠오른다. 그 익숙한 이야기 속에 나오는 다이달로스의 충고는 한 번쯤 다시 새겨들을 만하다.

이카루스가 살던 시대는 트로이아 전쟁을 겪었던 미케네 문명보다 더 거슬러 올라가 크레테 문명이 번성하던 때였다. 미노스 왕이 지배하던 크레테 왕국에는 마침 죄를 짓고 도망친 아테네의 기술 장인 다이달로스도 있었다. 그는 미노스 왕으로부터 괴물 미노타우로스를 가두기 위해 미궁을 지으라는 명령을 받는다. 한번 들어가면 그 누구도 빠져나올 수 없는 완벽한 미궁을 만들되, 만약에 미궁에서 살아 나오는 자가 있으면 아들 이카루스와 함께 거기에 가두겠다는 엄명이 뒤따랐다. 바로 이 미궁 속 괴물을 해치우겠다고 자청한 젊은이가 있었으니 그가 바로 아테네의 영웅 테세우스였다. 그런데 아테네를 출발하여 에게해를 건너온 이 미남에게 첫눈에 반해버린 섬처녀가 있었으니 아리아드네 공주였다. 그녀는 테세우스에게 삼으로 만든 실타래를 건네준다. 그 덕분에 테세우스는 미노타우로스를 죽이고 무사히 그곳을 빠져나온다. 졸지에 괴물뿐만 아니라 딸까지 한꺼번에 잃은 미노스 왕은 미궁을 지은 다이달로스 부자를 바로 그곳에 가둬버린다. 다이달로스 부자가 탈출할 수 있는 유일한 통로는 하늘밖엔 없었다. 그가 아들 이카루스와 함께 만든 탈출 도구가 바로 깃털들을 모아 실로 묶고 밀랍으로 이어붙인 인공 날개였다. 다이달로스는 아들에게 날기 시범을 보여주며 이렇게 말한다.

이카루스. /사진=픽사베이
이카루스. /사진=픽사베이

“이카루스야. 내 너에게 일러두거니와, 중간을 날도록 하라.
너무 낮게 날면 네 날개가 물결에 무거워질 것이고,
너무 높이 날면 불에 타버릴 테니까.
그 둘의 중간을 날아라!!”

다이달로스는 따라오라고 아들을 격려하며 치명적인 기술을 가르쳤고, 두 사람은 날개를 퍼덕이며 하늘을 날았다. 그때 소년은 대담한 비상에 점점 매료되기 시작하여 더 높이 날아올랐다. 작열하는 태양이 그의 날개를 이어 붙인 밀랍을 무르게 만들자 더이상 공중에 떠 있을 수가 없었다. 아버지의 이름을 부르던 그의 입은 검푸른 바닷물에 삼켜졌고, 그 바닷물은 그의 이름을 따 지금도 이카리움 해로 불리고 있다.

너무 높게 날다가 추락한 신화 속 인물들 가운데 파에톤도 빼놓을 수 없다. 그는 태양신 아폴론의 아들이었는데, 아버지가 모는 황금빛 태양 마차가 너무나 멋져 보여 그걸 몰고 싶어 안달이었다. 끝내 아들의 고집을 꺾지 못한 아폴론이 그 마차를 내주며 거듭 충고한다.

“…… 그리고 하늘과 대지가 똑같이 데워지도록 마차를
너무 낮게 몰지도 말고 하늘의 꼭대기로 몰지도 마라.
너무 높게 몰면 하늘의 궁전들을 태울 것이고, 너무 낮게 몰면
대지를 태울 테니까. 중간으로 가는 것이 가장 안전하다.”

파에톤은 뜨거운 태양 마차를 몰다가 이내 아찔한 공포를 느끼며 고삐를 놓쳐버리고, 말들은 대기의 낯선 영역을 마구 질주한다. 자신들의 충동이 이끄는 대로 말들은 무턱대고 내달렸다. 태양의 열기에 놀란 대지는 쩍쩍 갈라져 터지고, 풀밭은 잿빛으로 변했다. 『변신 이야기』의 작가 오비디우스에 따르면, 에티오피아 백성들이 까맣게 된 것도, 리비아가 사막이 된 것도 그때부터라고 사람들이 믿게 되었단다. 이 험한 꼴을 보다 못한 제우스가 마침내 나서서 벼락을 던져 사나운 불로 다른 불을 껐다. 물의 요정들이 파에톤의 시신을 묻어주며 비석에 이런 문구를 새겼다.

고대 그리스 로마 신화. /사진=오인경 후마니타스 이코노미스트
고대 그리스 로마 신화. /사진=오인경 후마니타스 이코노미스트

“여기 파에톤이 잠들다. 아버지의 마차를 몰던 그는 비록
그것을 제어하지는 못했지만 큰일을 감행하다가 떨어졌도다.”

『광기, 패닉, 붕괴_금융위기의 역사』를 쓴 찰스 P. 킨들버거는 “경제학은 역사가 경제학을 필요로 하는 것보다 훨씬 더 역사를 필요로 한다”는 재미있는 말을 남겼다. 옥스퍼드 대학에서 역사학을 전공한 에드워드 챈슬러는 『금융투기의 역사』를 썼는데, 1720년의 남해 주식회사 파동뿐 아니라 1630년대 네덜란드 튤립 투기까지도 폭넓게 고찰한다. 그 책의 원제목엔 재미있는 부제가 붙어있다. Devil Take The Hindmost. ‘악마는 맨 뒤에 처진 사람을 잡아먹는다’는 뜻이다. 이 말을 조금 더 확대 해석하면 투기판에 뛰어든 사람들은 악마가 다 잡아간다고 말할 수도 있다. 불과 2∼3년 전, 가상화폐 열풍이 불었을 때 뒤늦게 뛰어든 투기꾼들 가운데 악마의 손아귀에서 벗어난 사람이 과연 몇이나 될까. “친구가 부자가 되는 모습을 지켜보는 것만큼 사람들의 안락과 판단력을 혼란스럽게 만드는 것은 없다”고 한다. “이 세상 사람 모두가 미쳤다면 어느 정도는 우리도 그들을 흉내 내야 한다”면서 남해회사의 주식을 역사적인 고가에 사들였던 어느 은행가의 행동이 투기였음은 역사가 증명한다.

『국부론』보다는 『도덕감정론』의 저자로 기억되길 바랐던 애덤 스미스는 도덕철학 교수다운 날카로운 교훈을 남겨놓았다. 광기에 가까운 투자 열기에 일찌감치 동참하지 못해 어쩔 줄 몰라하는 투자자들에게는 적잖은 위안(?)이 되는 이야기일지 모를 듯싶어 소개해 본다.

애덤 스미스의 국부론과 도덕감정론. /사진=오인경 후마니타스 이코노미스트
애덤 스미스의 국부론과 도덕감정론. /사진=오인경 후마니타스 이코노미스트

“역사의 기록들을 검토해 보고, 당신 자신이 경험한 범위 내에서 일어났던 모든 일들을 회상해 보고, 당신이 책에서 읽었거나 이야기를 들었거나 기억하고 있는 사람들로서 자신의 개인생활에서건 사회생활에서건 극히 불행했던 모든 사람들의 행위가 어떠했었는지를 주의를 기울여 고찰해 보라. 그러면 당신은 그들 중 절대다수 사람들의 불행은 그들이 자신의 한창 좋은 때가 언제인지, 조용히 앉아서 만족하고 쉬어야 할 때가 언제인지를 알지 못했기 때문에 생긴 것임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
- 애덤 스미스(Adam Smith), 『도덕감정론』(The Theory of Moral Sentiments)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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