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계물리학으로 보는 ‘뇌’ [김범준의 세상물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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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계물리학으로 보는 ‘뇌’ [김범준의 세상물정]
  • 김범준 편집위원(성균관대 교수)
  • 승인 2022.10.24 14: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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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지 사진=이미지투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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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물학·심리학·의학이면 모를까, 물리학도 뇌를 다룬다고? 맞다. 뇌를 연구하는 물리학자가 많다. 특히 필자의 전공 분야인 통계물리학을 연구하는 사람 중에 뇌를 이론 물리학의 관점에서 이해하려는 이들이 있다. 모든 동물의 뇌를 구성하는 요소가 바로 신경세포다.

신경세포는 다른 신경세포와 ‘시냅스’(synapse)라 불리는 구조를 통해 서로 정보를 주고받는다. 무려 천억 개 정도의 신경세포가 무려 수백조 개의 시냅스로 연결된 것이 우리 인간의 뇌다. 수많은 신경세포가 서로 얽히고설켜 만들어낸 연결망에서 일어나는 거시적인 동역학적 패턴이 뇌의 활동이다. 상호작용하고 있는 수많은 입자가 만들어내는 거시적인 물리 현상을 연구하는 통계물리학이 뇌를 연구하는 방법으로 활용될 여지가 있는 이유다.

통계물리학의 여러 개념 중에는 뇌의 활동을 이해하기 위해 유용한 것들이 많다. 평형상태에서 일어나는 상전이에 대한 표준 이론의 몇몇 개념도 큰 도움이 된다. 온도를 올리면 자석은 자성을 잃고 액체는 기체로 변한다. 언뜻 보면 둘은 완전히 다른 물리 현상처럼 보인다. 하지만, 통계물리 학자들은 완전히 달라 보이는 두 현상의 바탕에 같은 것이 있다는 것을 밝혔다. 상전이 부근에서 자석의 자성이 어떻게 변하는지를 기술하는 함수가, 액체가 기체로 변하는 상전이 부근에서 물질의 밀도가 어떻게 변하는지를 기술하는 함수와 같은 꼴이라는 것도 알게 되었다.

이처럼 서로 다른 시스템이 같은 유형의 상전이를 보일 때, 이들 시스템이 같은 ‘보편성 부류’(universality class)에 속한다고 말한다. 필자가 통계물리학을 사랑하는 이유 중 하나가 바로 이런 관점이다. 다양성에서 찾아내는 숨겨진 동일성, 우리 눈에 달라 보이는 복잡다단한 수많은 현상을 하나로 관통해 이해하는 것은 참 멋진 일이다. 통계물리학은 다름에서 같음을 본다.

온도를 올리면서 측정하면 자석의 자성이 사라지기 시작하는 온도가 임계온도이고, 임계점(critical point)에서 일어나는 현상을 통틀어 ‘임계현상’(critical phenomena)이라고 한다. 자석의 자성이 온도에 따라서 연속적으로 변해 사라지는 연속 상전이에 대한 평형 통계물리학의 연구 결과로 오늘 소개하고 싶은 것이 있다. 바로, 상전이 임계점에서 물질이 극도로 민감해져 아주 작은 외부의 자극으로도 물질의 성질이 큰 폭의 변화를 스스로 보여줄 수 있다는 것이 하나고, 임계점에서는 물질을 구성하는 부분이 저 멀리 떨어진 다른 부분과 서로 강하게 연결되어 있다는 것이 다른 하나다.

임계점에 있는 물질은 아주 약하게 살짝만 건드려도 전체가 연결되어 크게 변한다는 뜻이다. 아직 널리 쓰이고 있는 용어는 아니지만, 임계현상을 ‘고비 성질’이라고도 부른다. 고비 성질의 ‘고비’는 우리가 “어려운 고비를 넘어갔다”라고 할 때의 바로 그 고비다. 높은 고비에 아슬아슬하게 놓인 둥근 구슬을 떠올려보자. 살짝 밀어도 구슬은 비탈길을 굴러 내려와 큰 폭으로 움직인다. 아주 약한 외부자극으로도 물질의 성질이 크게 변하는 임계현상과 비교하면, 고비 성질이라는 용어가 썩 그럴듯하게 느껴진다.

많은 통계물리 학자들은 자연과 사회에서 일어나는 여러 현상을 임계성(criticality)이라는 일관된 관점에서 통합적으로 바라보려는 성향이 있다. 여러 마리 곤충이 군집을 이루어 함께 날고 있는 것을 분석한 연구도 기억난다(DOI: 10.1103/PhysRevLett.113.238102). 이 연구에서는 우리나라에서 ‘깔따구’(midge)라고 부르는 곤충 개체 수백 마리의 위치를 추적해서 개체 사이의 상관관계가 최대가 되는 방식으로 이 곤충이 군집의 크기를 조정하는 것으로 보인다는 결과를 발표했다.

자석이 자성을 잃는 평형통계물리학의 임계현상처럼, 이 곤충 집단의 상관관계가 최대가 되어 임계점에 있을 때 군집 안의 개체들은 서로 연결되어 마치 한 몸처럼 움직일 수 있다. 하지만, 정확히 임계온도로 온도를 딱 맞춰야 볼 수 있는 자성체의 상전이와 달리, 곤충들이 집단의 크기를 스스로 바꿔가면서 저절로 임계성에 다가선다는 재밌는 차이가 있다. 이처럼 누군가 인위적으로 조절하지 않아도 구성원들이 저절로 임계점에 다가서는 현상을 저절로 짜이는 임계성, 혹은 ‘자기 조직화 임계성’(self-organized criticality, SOC)이라고 부른다.

저절로 짜이는 임계성(SOC)의 관점에서 자연과 사회에서 일어나는 여러 현상을 바라보는 것이 통계물리학계에서는 상당히 널리 퍼져있는 인기 있는 관점이기도 하다. 생명종의 멸종, 주가의 폭락, 지진과 산불의 발생 등 여러 다양한 현상을 바라보는 통계물리학의 강력한 관점이다. 깔따구 개체들도 저절로 짜이는 임계성의 상태에 있게 되면, 전체가 마치 한 몸처럼 움직일 수 있을 뿐 아니라, 아주 작은 외부의 자극에도 전체가 민감하게 반응할 수 있다는 이점이 있다. 어쩌면 이런 방식으로 집단의 크기를 스스로 조절해 임계상태에 도달하면 포식자를 피해 더 많은 개체가 생존할 수도 있다. 임계상태에 진화적 이점이 있을 수도 있다는 뜻이다.

/이미지 사진=이미지투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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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계물리학자들은 비슷한 이유로 우리 뇌의 동역학적 상태도 임계성의 관점에서 이해하고자 한다. 지금까지의 여러 연구로 뇌에서 발화하는 신경세포의 숫자, 그리고 발화하는 시간 간격의 확률 분포가 평형통계물리학의 임계상태에서 자주 관찰되는 함수 꼴을 따른다는 것이 알려졌다. 바로 멱함수의 꼴을 따르는 척도 없는(scale-free) 확률 분포다.

뇌가 임계상태에 있다면, 멀리 떨어진 여러 신경세포가 서로 강하게 연결되어 거시적인 동역학적 상태를 만들어내는 것이 가능할 뿐 아니라, 외부의 약한 자극에도 넓은 뇌 영역이 민감하게 반응할 수 있다. 뇌의 동역학적 상태가 임계점에 가까이 있는 평형통계물리 시스템이 보여주는 특성과 유사하다는 것이 알려졌지만, 아직 이해하지 못한 것이 많았다. 특히, 평형통계물리학의 표준적인 관점에 따르면 같은 종의 다른 개체의 뇌가 동일한 보편성 부류에 속할 것을 기대할 수 있지만, 실제의 여러 실험결과는 개체를 넘어서는 단일한 보편성을 확인하지 못했다.

지난해 물리학 학술지에 출판된 한 논문(DOI:10.1103/PhysRevLett.126.098101)이 바로 이 문제를 다뤘다. 논문의 결과가 자못 흥미롭다. 개체가 달라져도 뇌의 동역학은 같은 보편성 부류에 속할 것으로 믿어지지만, 실제로 현실에서 관찰되는 각각 개체의 뇌는 외부자극의 끊임없는 유입으로 말미암아 정확히 임계점에 놓이지 않고 그 근방에 놓인다는 주장이다. 그렇다고 해서 뇌가 임계상태와 상관없는 아무 상태에나 있다는 얘기는 아니다. 주어진 외부자극이라는 조건에서 가장 민감하게 반응할 수 있는 상태에 뇌가 있어서, 뇌는 정확한 임계상태(critical state)는 아니어도 준임계상태(quasicritical state)라 할 만한 상태에 있다. 아무런 외부자극이 없는 경우에 확인될 수 있는 진정한 임계상태에서는 계의 민감도가 무한대로 발산한다. 외부자극이 있는 경우에도 뇌는 민감도를 가능한 크게 하는 방식으로 준임계상태에 스스로 도달해 활동한다는 자못 흥미로운 주장이다.

뇌가 동역학적인 임계상태에 있다는 가설(critical brain hypothesis), 특히 스스로 내부의 상태를 조정하면서 저절로 임계성에 다가선다는 가설은 상당히 매력적인 주장이다. 뇌의 거시적인 상태가 한 상태에서 다른 상태로 쉽게 변환할 수 있는 이유를 정성적으로는 어느 정도 설명할 수 있기 때문이다. 뇌가 아주 작은 외부와 내부 환경의 변화에도 민감하게 반응해 큰 규모로 많은 신경세포의 활성을 변화시킬 수 있다는 것은 평형통계물리학의 임계현상과 밀접한 관련이 있을 수 있다.

오늘 소개한 논문에서는 평형통계물리학의 보편성 부류가 왜 뇌의 활동에서는 잘 관찰되지 않는지에 대해서 상당한 개연성이 있는 설명을 제시했다. 앞으로도 계속 이어질 뇌과학 분야의 연구에서도 통계물리학에서 유용성을 확인한 개념과 연구의 방법이 더 널리 활용될 여지가 있다. 많은 이들이 모여서 같은 것도 서로 다른 시각으로 함께 긴밀하게 토론하며 살피는 것이 융합 연구의 바람직한 형태다. 현미경으로 바라본 신경세포에는 생물학과 물리학의 경계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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