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지 같은 ‘달러의 함정’을 아시나요? [조수연의 그래픽저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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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지 같은 ‘달러의 함정’을 아시나요? [조수연의 그래픽저널]
  • 조수연 편집위원(공정한금융투자연구소장)
  • 승인 2022.08.02 09: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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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러스트=조수연 편집위원
/일러스트=조수연 편집위원

지난달 27일(현지시간) 미국 연방준비제도이사회의 통화정책을 결정하는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 Federal Open Market Committee)가 6월에 이어 연속해서 정책금리 0.75%p 인상이라는 자이언트 스텝을 이어 갔다. 미국 정책금리는 2.5%까지 상승하며 코로나19 이전 수준으로 돌아갔다. 우리나라 정책금리는 지난달 인상에도 불구하고 미국 금리에 미치지 못하는 2.25%이다. GDP 규모 상위 12개 국가 중에서 우리나라보다 정책 금리가 높은 국가는 미국, 중국, 인도, 러시아 순이다.

/자료=TradingEconomics
/자료=TradingEconomics

국가 간 정책금리 차이에 주목하는 이유는 정책금리가 해당 통화를 발행하는 나라의 중앙은행이 공인한 기간 수익률이나 다름없기 때문이다. 금융 세계화가 21세기 자본주의 세계의 기본 인프라가 된 지 40년이 넘었다. 오랫동안 저금리 환경에서 이익 추구(search for yield)에 철저하게 적응한 국제적 기관투자가(펀드)는 미세한 금리 차이에도 기민하게 국경을 넘어 움직인다. 당연하게 기관투자가는 저금리 국가 금융자산에서 고금리 국가 금융자산으로 펀드 자금을 이전한다. 자금 이전 과정에서 저금리 국가의 금융자산을 매도하면서 외환시장에서 해당 국가 통화 매도가 증가하며 통화 가치가 하락한다. 이때 해당 국가는 보유 외환이 감소한다. 이탈 규모가 커져 환차손이 증가하면 해당 국가는 정상적 국가 간 결제에 대응할 수 없는 상황이 발생할 수 있고, 외환위기가 발생한다.

/자료=국제금융센터 ‘한미 정책 금리 역전 가능성 및 유출 영향’
/자료=국제금융센터 ‘한미 정책 금리 역전 가능성 및 유출 영향’

그렇다고 기관투자가가 명목금리만 보고 국경을 넘는 자금 이동을 판단하지는 않는다. 기관투자가는 2008년 금융위기 이후에는 해당 통화의 물가를 고려한 구매력은 물론 해당 국가의 ‘안정성’(safety)을 중요한 판단 근거로 삼는다. 안정성이란 해당 통화 국가의 정치, 경제적 불안정 여부로 펀드가 투자한 금융자산의 수익률의 변동성(volatility)이 아주 낮은 상태를 의미한다. 변동성은 수익률이 변동하는 폭과 빈도로 경제학에서는 분산으로 표현하고 현실 세계의 위험(risk)으로 인식한다. 이 위험을 기대 투자 수익률과 비교하는 위험 조정 수익률이 기관투자가의 중요한 판단 기준이며, 이 위험을 고려해 추가로 요구하는 기대 수익이 위험 프리미엄이다. 안정성이 높은 국가는 금리가 낮아도 불안정한 국가보다 위험 프리미엄이 낮으므로 위험 조정 수익률은 더 높을 수 있다. 미세한 명목 정책 금리 변화가 각국의 정치, 경제적 불안정성과 공명하면 경제 취약국은 유명을 달리 할 수 있다. 이러한 걱정에서 우리나라와 미국의 정책금리 역전을 걱정하는 사람이 많다. 그러나 과거 미국 연준이 금융위기 이후 2015년부터 2019년까지 정책 금리를 인상하는 과정에서 2017년부터 2019년 말까지 한미 금리는 큰 폭의 역전 상태였다. 그때 우리나라의 외환보유액은 4000억달러 수준을 안정적으로 유지했고 자금 이탈을 걱정하는 사람은 없었다. 이번 금리 역전을 당장 걱정하는 것은 기우로 보인다.

/자료=investing.com 차트 재구성
/자료=investing.com 차트 재구성

미국 정책금리 인상 의미 이해를 돕기 위해서 너무 장광설을 늘어놓았다. 사실 오늘 본론은 서론에서 얘기한 것처럼 정책 금리에 좌우되는 달러 가치에 대한 것이다. 먼저 달러 가치 동향을 요약하면, 지난해 중반 이후부터 지속해서 (주요 6개국 통화 대비 산출하는) 달러 인덱스는 상승했다. 올해는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과 3월 미국 연준 정책 금리 인상 이후, 그리고 6월 자이언트 스텝 금리 인상 이후에 급격한 달러 가치 상승이 있었다. 길게는 2008년 금융위기, 2011년 유럽 재정위기, 2015년 테이퍼 탠트럼 시기에 달러 가치는 급등했다.

미국 달러(USD)가 세계 경제 거래의 중심 통화인 기축통화로 부동의 자리를 굳힌 것은 달러는 금에 가치를 고정하고 기타 통화는 달러에 가치를 다시 고정(peg)하는 1944년 브래튼 우즈 체제 이후였다. 이때 달러를 통해 전 세계 통화는 금본위 제도로 통화 가치를 안정할 수 있었다. 그러나 베트남 전쟁 등 미국의 잘못된 세계 전략에 재정과 경상수지의 쌍둥이 적자가 누적하고 달러 가치 약세가 지속하자 달러의 금 태환 체제가 한계에 도달했다. 1971년 결국 닉슨은 금 태환을 정지하고 1973년 주요 통화가 변동환율제에 진입하면서 사실상 달러는 아무 가치 없는 지폐로 전락할 위기를 맞이했다. 물론 달러 이외의 통화도 글로벌 무대에서는 당연히 가치를 상쇄할 위기에 처했다. 전 세계의 상거래, 금융거래에 사용할 신뢰할 만한 기축통화가 없는 상황이 이어지는 것을 상상해 보라. 그 상태를 유지했으면 오늘날 같은 세계 경제의 성장은 불가능했을 것이다. 이미 달러는 세계 경제에서의 중요한 역할을 평가할 때 금수저였으며 다른 통화와는 다른 운명을 타고났다는 것을 인정할 수밖에 없다.

금 태환 정지에도 불구하고 미국 달러가 기축통화로 지위를 유지하는 계기를 제공한 것은 역설적으로 세계 경제를 궁지에 몰아넣은 중동 석유 파동이었다. 새로운 에너지원으로 석유가 주목을 받기 시작하면서 미국은 석유를 장악하려는 중동 전략 중에 달러를 석유거래의 기본 통화로 만들었고, 석유를 팔아서 벌은 오일 달러로는 미국 국채를 매입하도록 했다. 바로 헨리 키신저의 탁월한 외교 작품이다. 세계 경제 숨통을 쥔 중요한 상품의 거래 통화로 등장한 달러는 다시 기축통화로 인정받았고, 오일달러의 미국 국채 매입은 미국 자본 수지를 늘리는 한편 자본시장 거래 활성화를 통해 가치저장 수단으로도 신뢰감을 높였다. 기축통화로서 달러의 지위 재구축은 1980년대 마거릿 대처와 로널드 레이건의 경제 세계화(globalization)의 초석이 되었다.

/자료=IMF ‘The Stealth Erosion of Dollar Dominence’
/자료=IMF ‘The Stealth Erosion of Dollar Dominence’

올해 3월 IMF ‘The Stealth Erosion of Dollar Dominence’에 따르면 최근 미국이 보이는 지역화 전략, 미·중 패권 전쟁 등으로 달러에 대한 위상이 약해질 것이라는 주장이 고개를 들고 있다. 실제로 1999년 70%가 넘던 미국 달러의 글로벌 외환보유액 비중은 지난해 60%로 하락했다. 보고서는 미국 경제의 글로벌 GDP 비중도 2001년 30%를 넘었으나 지난해 25% 수준으로 하락했고, 2013년 45% 수준이던 세계 교역의 미국 비중도 35% 수준까지 주저앉았다는 데서 달러 약화의 원인을 찾고 있다. 그러나 최근 사례인 2018년 미-중 무역분쟁 격화 시기와 올해 우크라이나의 러시아 전쟁 이후 달러 가치의 급격한 강세는 경제적 이유 외에 달러 가치에서 안정성의 중요성을 부각해준다. 세계 경제가 시끄럽고 지정학적 위기가 닥치면 왜 유독 달러 가치만 상승할까? 물론 미국이 세계 최강 군사 국이며 경제 대국이라는 것은 경제를 모르는 대부분 사람이 막연하게 추측할 수 있지만, 본질에서나 현실적으로 좀 더 중요한 원인이 있다.

6월 15일 첫 번째 자이언트 스텝 금리 인상을 단행한 이틀 후 콘퍼런스에서 제롬 파월 연준 의장은 ‘미국 달러의 국제적 역할’이란 주제로 연설했다. 그에 따르면 달러의 우월성(preeminence)은 미국 금융시장의 유동성과 깊이, 미국 경제의 규모와 견고함, 무역과 자본이동의 안정성 및 개방성, 미국 금융제도와 법규에 관한 국제적 신뢰가 뒷받침하고 있어 가능하다고 주장했다. 달러의 국제적 역할로 미국 가계, 기업, 정부는 거래비용과 차입 비용을 낮추는 효과가 있고, 어디서나 접근할 가능성(ubiquity)은 가계와 기업의 불확실성과 위험 보호(hedging) 비용을 억제한다. 또한 미국 외 경제에는 폭넓은 달러의 사용으로 차입자가 광범위한 대부자와 투자자군(a pool of lenders & investors)에 접근하도록 하며, 이에 따라 자금조달과 거래비용을 낮추는 효과를 가져다준다고 파월은 주장했다. 세계의 통화를 발행하는 중앙은행 수장으로서 달러의 본질적 기능에 대한 자부심을 느낄 수 있는 연설이다.

/자료=IMF F&D ‘ENDURING PREEMINENCE’
/자료=IMF F&D ‘ENDURING PREEMINENCE’

또한 IMF도 산하 기관지 Finance & Development 6월호에 ‘ENDURING PREEMINENCE’라는 제목으로 달러의 세계 경제지배에 대한 분석을 내놓고 있다. 연준이나 IMF 모두 달러에 대해서는 ‘preeminence’라는 용어를 쓰고 있음을 주목하자. 달러가 수많은 통화 중에서 군계일학이라는 뜻으로 해석할 수 있겠다. 물론 보고서를 읽으면서 IMF가 미국의 입김이 절대적인 국제기구임도 고려할 필요가 있다.

/자료=IMF F&D ‘ENDURING PREEMINENCE’
/자료=IMF F&D ‘ENDURING PREEMINENCE’

보고서에 따르면 경제적, 지정학적, 기술적 변화의 복합적 영향으로 달러 중심의 국제적 화폐 질서가 위협을 받고 있어 글로벌 외환보유액 비중이 큰 폭 감소하고 있으나, 지난해 60%의 적지 않은 비중을 유지하고 있어 아직 달러의 영향력은 절대적이다. 외환보유액은 대외 지급에 대비하여 교환성, 유동성, 시장성이 높은 자산으로 중앙은행이 언제든지 사용 가능한 외화 금융 자산이다. 외환보유액으로서 세계 각국 중앙은행의 절대적인 지지를 얻고 있다는 것은, 즉 각국의 국제 통상을 위한 결제 수단 및 가치저장 수단으로 화폐 금융이론의 거래적 동기와 예비적 동기, 투기적 동기를 달러가 모두 충족하고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자료에 따르면 외환보유액 비중과는 달리 글로벌 결제통화, 글로벌 부채, 글로벌 대부의 달러 비중은 오히려 증가하고 있다. 세계 각국 중앙은행의 통화정책에서 통화 포트폴리오 다양화가 진행하고 있으나 실물경제와 금융시장에서 미국 영향력은 더욱 커지고 있다. 이러한 점들이 달러의 우월성을 증명하고 있다.

그러나 보고서가 지적하는 중요한 점은 가치저장 수단으로 달러는 세계 경제를 함정으로 몰아넣는다는 것이다. 즉 달러의 함정이다. 미국 국채에 대한 국제 기관투자가 보유 금액은 8조달러에 이르고 미국 이외 금융기관의 미국 채권은 53조달러로 보고서는 평가하고 있다. 만약 달러의 가치가 하락하면 미국은 상관없으나 달러와 관련한 세계 경제의 손실이 발생한다. 달러 강세는 경제 취약국 중심으로 자금 이탈 등 외환위기를 초래할 수 있으나 각국 중앙은행과 금융시스템은 달러가 하락하는 것을 원하지는 않을 것이다. 반대로 미국 투자가의 외화표시 자산은 35조달러다. 달러 약세는 미국 해외 투자가의 이익을 가져온다. 최종적으로 미국은 대외 순채무국이다. 그러므로 달러 가치 하락은 미국에 우발적 이득을 가져오고 달러 표시 자산을 보유한 미국 이외 국가에는 큰 자산손실을 가져온다. 미국에 대한 채권자가 어쩔 수 없이 아무도 달러 가치 하락을 원하지 않는 상황인 달러 함정에 빠지는 것을 자초할 수밖에 없다. 미국의 달러 인프라를 이용하는 비용일까? 세계는 미국의 막대한 재정적자, 경상수지 적자에도 달러 약세를 막기 위해 미국 부채를 분담할 수밖에 없는 운명이다. 아무리 생각해도 정말 거지 같은 함정에 세계 경제는 빠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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