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DF’로는 생애 초장기 투자 세계에서 버겁다 [조수연의 그래픽저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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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DF’로는 생애 초장기 투자 세계에서 버겁다 [조수연의 그래픽저널]
  • 조수연 편집위원(공정한금융투자연구소장)
  • 승인 2022.07.15 07: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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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러스트=조수연 편집위원
/일러스트=조수연 편집위원

‘구밀복검’(口蜜腹劍). 양귀비에 빠진 당나라 현종을 이용해 조정을 좌지우지한 재상 이림보와 얽힌 고사성어다. 입에는 꿀을 바르고 있으나 뱃속엔 칼이 들었다는 뜻으로 이림보가 바른말 하는 충신을 호의인 척 다가가서 모조리 제거했다는 것을 풍자한다. 많은 정책이나 제도가 수혜 대상으로 명시한 국민에게 도입 취지와는 다르게 해를 끼치는 경우가 있다. 특히 산업을 주도하고 그 안에서 기업이 이익을 챙기는 금융산업은 그럴 위험이 크다고 할 수 있다. 금융산업의 구조, 상품, 제도 새로운 변화가 있을 때 구밀복검의 이면이 존재하는지 금융소비자는 신중하게 살펴야 한다. 7월 퇴직연금제도의 변화는 근로자에게 영향이 크므로 더욱 그렇다.

지난 칼럼에서 소개한 것처럼 이번 달 12일 도입한 퇴직연금 디폴트옵션과 함께 주목받는 것이 TDF다. TDF는 Target Dated Fund의 약자로 목표일펀드 또는 목표시점펀드라고 국역한다. 자본시장연구원이 2020년 12월 발표한 보고서 ‘TDF의 성장과 시사점’에 따르면 TDF는 1994년 미국 금융회사 웰스파고(Wells Fargo)가 최초로 출시했다. 근로자퇴직급여 보장법에 디폴트옵션으로 선택 가능한 운용 유형으로 TDF의 정의는 ‘투자목표시점이 사전에 결정되고, 운용 기간이 지남에 따라 투자 위험이 낮은 자산의 비중을 증가시키는 방향으로 자산 배분을 변경하거나 위험 수준을 조절하는 운용내용’이다. TDF는 나이가 들면서 금융자산을 주식에서 채권으로 이전하는 것이 최적이라는 규범적 논리가 반영되어 있다.

/자료=한국거래소
/자료=한국거래소

즉, 근로자의 은퇴 일이 가까워지면서 안전자산으로 자산 배분이 조정되어야 포트폴리오가 안전하다는 논리가 배경에 있다. 이에 따라 위 그림과 같이 위험자산 비중을 줄이고 안전자산 비중을 늘리는 방식으로 포트폴리오를 조정하는데, 시간 경과에 따른 자산 배분 변경 경로를 TDF 펀드에서 ‘글라이드 패스’(Glide path)라고 한다.

한화 arirang TDF2030 투자설명서.
한화 arirang TDF2030 투자설명서.

글라이드 패스의 적용이 TDF의 핵심인데 이것은 소득, 지출, 위험 평가 등 다양한 변수가 적용되는 모델의 차이로 TDF를 운용하는 금융회사마다 다르다. 그러나 기본적인 원리는 나이가 들면서 인적 자산, 즉 인간이 노동으로 생산하는 고정 소득이 발생하는 기간이 줄어들고, 실현수익 변화에 대응해 일을 더 할 수 있는 기회가 줄어들기 때문에 투자 위험을 줄여야 한다는 것이다. 펀드 평가회사, 모닝스타가 TDF 비교 지수를 산출하는 한화 ARIRANG TDF 액티브 ETF의 투자설명에 글라이드 패스의 자세한 설명이 들어있다. 사람들은 노동을 통해 소득을 벌고 생활을 위해 지출한 나머지를 저축하는데 이것이 인적 자산이며, 인적 자산을 누적하고 투자나 저축 등 자산관리를 통해 금융 자본을 형성할 수 있다. 보통 생애주기에 나이가 들면서 인적 자산 비중은 감소하고 금융자산 비중은 증가한다. 인적 자산과 금융자산을 합한 총자산의 자산 배분을 일정 수준(예, 채권:주식=7:3)으로 유지한다면 초기에는 금융자산의 주식 비중이 높고 시간이 지나면서 채권의 비중이 증가해야 한다. 세부적인 투자 비중 결정은 분산 투자 이론을 기반으로 산출한다.

요약해보면 TDF의 기본원리는 초기에 위험을 크게 감수하는 공격적 투자를 해야 하고 은퇴에 가까울수록 안전자산 비중을 늘려야 한다는 것이다. 이 글라이드 패스에 의한 TDF 투자의 논리는 TDF의 투자 기간 내내 수익률이 꾸준하게 증가해야 하고 특히 주식(위험자산) 수익률은 채권(안전자산)수익률보다 우위에 있어야 한다. 일견 합리적이고 이상적인 투자 모델로 보이지만, 약 30년간의 금융 현장 경험에 의하면 현실은 금융소비자가 10년 이상 수십 년 동안 투자 위험을 잊고 자산관리를 전적으로 TDF를 믿고 맡기기에는 녹록하지 않다.

먼저 수익률 안전성을 짚어볼 필요가 있다. 고용노동부 퇴직연금 적립금 통계에 따르면 퇴직연금의 최근 3년 수익률은 2019년 2.25%, 2020년 2.58년, 2021년 2%를 기록했다. 5년 평균은 1.96%, 10년 평균은 2.39%였다. 실적배당형 비중이 2017년 8.4%에서 2021년 13.6%로 증가했으니 전체적으로 원리금 보장형과 실적배당형에 9:1 비중으로 안정 투자를 해도 연 2% 이상 수익은 기대할 수 있다고 추정할 수 있다. 간편 개산(槪算)으로 72의 법칙에 따라 연 2% 투자를 하면 36년 후 100% 수익을 기대할 수 있다. 물론 퇴직연금은 매년 분할 납입하는 적금과 같으니 적금 공식으로 계산하면 3년 후 수익률은 원금 대비 35%로 추산할 수 있다. 퇴직연금이 기록한 2% 수익률은 위험을 극도로 최소화한 수익이라는데 의미가 있다. 그러나 금융회사, 금융당국을 비롯한 금융산업은 이 수익률이 낮다고 평가하고 큰일이 난 것처럼 호들갑이다. 이러한 관점에서 금융산업이 나서 새로운 금융서비스(디폴트옵션)와 금융상품(TDF)을 제공해야 한다고 애국적 캠페인을 하며 법 개정까지 밀어붙였다. 필자가 보기에는 금융 문맹 상태에서 벌어지는 걱정스러운 시대극이다.

/자료=국민연금공단
/자료=국민연금공단

그러면 금융산업에서 퇴직연금의 수익률을 걱정하는데 퇴직연금 가입자가 어느 정도 수익률이 나야 적정할까? 물론 다다익선이 미덕인 것은 말할 필요가 없겠지만 투자의 세계에 기대 수익은 위험과 비례한다. 위험을 높이지 않고 기대 수익을 높이는 것은 사기극인데도 지금은 기대 수익을 강조한다. 아무리 디폴트옵션이 좋은 제도이고 TDF가 훌륭한 상품이라고 해도 위험을 제거하고 기대 수익만 높이는 방법은 없을 것이다. 이것을 가능하게 하는 방법은 카지노에서 슬롯머신의 승률을 조작하는 방법 외에는 없다. TDF가 수익률 제고에 성공할 것이라는 주장은 초장기 투자의 경험도 이론도 없는 상황을 이용한 마케팅 촌극이며, 위험과 기대 수익의 상충에 근거한 합리적 분산 투자론을 주장하는 금융산업의 자기모순이라고도 할 수 있다.

한편 최고의 투자 전문인력이 가장 과학적인 투자 의사결정 체계에서 기금을 관리하는 국민연금공단의 운영 성과는 어떨까? 국민연금 기금 운용에는 아웃소싱을 통해 우수한 민간 운용기관도 참여한다. 명실상부하게 국내 최고의 운용 역량이 집결한 기구가 국민연금일 것이다. 국민연금공단이 발표한 성적표는 처음 보는 사람은 화려한 인프라에 비해서는 의외라고 느낄 수 있다. 2017년 이전 5년간은 평균 연수익률이 4.3%이었다. 2018년에는 마이너스 1%를 기록했고, 2019~2021년 3년간 연평균 10% 이상의 투자 성과를 보였으나 2022년은 4월까지 마이너스 4%를 기록 중이다. 9년 평균 연수익률은 5.8%였다. 퇴직연금 가입자가 아무 생각 없이 방치해도 2% 내외 수익률인데 엄청난 인프라를 갖춘 기관투자가의 비교 우위는 실망스럽지 않은가? 국민연금의 방대한 인프라 유지비용을 투자 수익에서 차감하면 운용 성적표는 더욱 참담할지 모른다. 또한 국민연금 투자 성과도 손실을 보는 경우도 이었고 변동성도 꼭 안정적이지 않았다. 특히 공시한 수익률이 연간 기준이므로 연간 수익률이 마이너스인 해는 심각한 손실 발생 구간도 포함했을 것이다. 국민연금 사례에서 가성비와 위험을 고려하면 퇴직연금의 2% 수준 수익률이 반드시 심각하다고 보기는 어렵다.

더 심각한 것은 현재 초장기 투자에 대한 금융시장의 수용성 문제다. TDF 펀드가 투자 기간을 20년, 30년 의욕적으로 설정하지만 사실 이러한 초장기 투자의 세계는 현대 금융투자론이 다루어 보지 못한 미지의 영역이다. 초장기 투자를 접하는 것은 뉴턴과 아인슈타인 물리학을 배운 학생이 양자역학을 경험하는 것만큼 이상할 수 있다. 초장기 투자 세계에서는 기존의 투자론과 자산관리 방법, 운용시스템, 경영철학 등 모두가 불확실해진다. 1998년 세계적 물리학자와 옵션을 창안한 수학자가 창립한 롱텀캐피털펀드가 철저히 파산했다. 그 원인은 장기적 예측의 불확실성 때문이었다. 한편 좀 더 현실적으로는 되새겨볼 사건은 개인연금이다. 과거 1994년 개인연금 저축이 10년 만기로 의욕적인 수익률 전망과 함께 판매되었으나 필자 경험에 4~5년 지나면서부터 펀드 운용은 엉망이었고 만기 시점에 최초 예상했던 투자 성과에 절반도 미치지 않는 경우가 허다해 가입자로부터 끝없는 원망과 질타에 시달렸던 경험이 있다. 현대 투자 이론이나 금융산업 시스템 모두 초장기 투자를 수용하기에는 한계가 있다.

초장기 투자에서 기존 투자 상식의 오류와 실패 가능성에 대한 단서는 이름도 생소한 에르고 경제학(Ergodicity economics)이 제공한다. 한마디로 얘기하면 어느 시점 100명이 10%의 투자수익률을 경험했더라도 이것은 한 명이 100번에 걸쳐 10% 수익률을 낼 수 있다는 것과는 다르다는 것이다. 물리학에서 시간적 평균과 기댓값이 같을 때 에르고성(ergodicity)이 성립한다고 하는데, 시간적 연속성에서 경제적(확률적) 현상은 에르고성이 성립하지 않는 특성이 있다. 즉 현재 예측 또는 주장하는 TDF 투자 성과가 퇴직연금 가입자가 10년 또는 20년 이상 계속 초장기 투자 시에 성립하지 않는다. 특히 무한 자금 동원이 가능한 기관투자가와 달리 개인은 특정 시점 투자 성과를 심각하게 망치면 다음 투자 기회를 상실하고 무대를 내려와야 한다. 즉 퇴직연금 가입자가 초기에 안전 투자가 아니라 공격적 투자를 하다가 실패하면 투자의 연속성을 상실하거나 은퇴 시점까지의 누적 기회손실로 비참한 노후를 맞이할 것임이 틀림없다. 초장기 투자에서 이러한 에르고성 관련 위험을 회피하는 비용이 반영되어야 한다. 즉 공격적인 초장기 투자의 수익률은 실패 위험의 기회비용을 반드시 할인해야 한다. 이것은 TDF의 글라이드 패스의 근거와 상충하며 현재의 초장기 투자 이론을 무용지물로 만든다. 현재의 2%에 불과한 퇴직연금 투자수익률에 신뢰감이 더해지는 이유다.

100세 시대에 개인이 생애 자산을 형성하고 소비하는 기간이 30년 이상 초장기가 되었다는 사실이 TDF처럼 한 번에 모든 것을 해결하는 초장기 상품이 필요하다는 사실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초장기는 장기의 연속이며 장기는 다시 단기의 연속이다. 경제학은 단순한 단기 금리와 장기 금리의 관계를 해설하는데도 불편기대이론, 유동성선호이론 등으로 설명하지만 명확하지 않다. 초장기 투자는 달도 잘 이해하지 못한 인류가 생명체가 사는, 4.2광년 떨어진 행성 프락시마b에 도착했을 때를 가정하는 만큼 불확실하다. 오히려 생애주기 초장기 투자를 위해서 필요한 것은 금융소비자가 1~3년 내외 기간으로 경제와 금융시장변화를 이해하고 대응하는 능력이다. 또한 초장기 투자상품은 운용을 맡는 금융회사의 사적이익에 금융소비자의 인생을 전적으로 맡기는 결과를 가져올 수 있다. 다양한 검토 결과 초장기 금융투자 상품은 공적 서비스의 영역이라는 생각이다. 금융회사가 친 사고를 덮는 데 급급한 금융감독 체계로는 초장기 투자가 초래할 국민 피해를 막기에는 역부족일 것이다. 이대로 TDF 등 초장기 금융상품을 방치하면 반드시 걷잡을 수 없는 큰 사고가 올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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