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걀 나눠 담는 ‘유성생식’은 분산투자 [김범준의 세상물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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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걀 나눠 담는 ‘유성생식’은 분산투자 [김범준의 세상물정]
  • 김범준 성균관대 교수
  • 승인 2022.05.26 08: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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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성생식은 가지고 있는 모든 달걀(유전자)을 한 바구니에 담는 상황과 비슷하고, 유성생식의 경우는 두 사람의 투자자가 함께 두 개의 바구니를 만들고 둘이 각각 가진 달걀(유전자)을 둘로 나눠 두 바구니에 나눠 담는 분산 투자와 비슷하다. /사진=이미지투데이
무성생식은 가지고 있는 모든 달걀(유전자)을 한 바구니에 담는 상황과 비슷하고, 유성생식의 경우는 두 사람의 투자자가 함께 두 개의 바구니를 만들고 둘이 각각 가진 달걀(유전자)을 둘로 나눠 두 바구니에 나눠 담는 분산 투자와 비슷하다. /사진=이미지투데이

최근 <김범준의 세상물정> 두 글에서는 왜 성이 셋이 아닌지, 그리고 두 개의 성이 존재하는 집단에서 태어나는 암수 자손의 비율이 거의 1대 1로 같다는 피셔의 원리를 설명해보았다. 이번에는 도대체 왜 성이 존재하게 되었을지 생각해보자. 사실 암수가 따로 존재하지 않는 생명체도 많다. 성이 없이 생식을 한다는 의미에서 무성생식이라 한다. 무성생식을 하는 생명의 경우 내가 가진 유전자 중 거의 100%를 마치 붕어빵 찍어내듯 자손에게 그대로 물려줄 수 있다. 암과 수, 두 개의 성이 있어 유성생식을 하는 생명은 자손 하나가 가진 유전자 중 내가 물려준 것은 절반인 50% 정도일 뿐이다. 내 유전자를 자손에게 가능한 많이 물려주려면 당연히 무성생식이 유리하다. 그런데 왜 우리 인간을 포함한 많은 생명은 유성생식을 하게 되었을까? 무성생식의 또 다른 이점이 있다. 후손을 함께 만들 배우자 상대를 찾아 나서는 힘든 노력이 필요 없다. 그냥 혼자 살다 적당한 때에 이르러 홀로 자손을 만들어내면 된다. 현실에서도 무성생식을 하는 생명의 개체 수가 유성생식을 하는 생명보다 대개의 경우 더 빠르게 늘어난다. 그런데 왜 많은 생명은 온갖 어려움을 무릅쓰고 유성생식을 택한 것일까?

무성생식과 유성생식을 비교해보자. 만약 이들 생명이 살아가는 환경에 아무런 변화가 없고, 다른 생명과의 치열한 경쟁도 없다면 당연히 무성생식이 유리하다. 무성생식을 하는 생명 종의 개체 수가 시간이 지나면 더 빠르게 늘어나기 때문이다. 끊임없이 변화해가는 예측할 수 없는 미래에도 여전히 생존하는 생명을 만들어내는 과정이 진화다. 진화는 이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일정한 방향이 없는 마구잡이 ‘변이’를 이용한다. 변이를 가진 후손 중 일부는 운이 좋아 미래의 바뀐 환경에서도 생존할 수 있어 자신의 유전자를 후대에 물려줄 수 있지만, 대부분의 변이는 오히려 생존에 부적합한 경우가 많다. 마구잡이 변이 중 일부가 미래의 바뀐 환경에서의 생존에 더 유리할 수 있을 뿐이다. 무성생식에 비해 유성생식이 가진 유리한 점이 바로 변이의 다양성이다. 카드 게임 한판을 마치면 카드 더미를 마구잡이로 섞는다. 무성생식의 변이는 매번 카드 더미에서 아무 카드나 한 장을 골라내 다른 카드로 바꾸는 것과 비슷하다. 붉은색 뒷면을 가진 트럼프 카드 한 벌이 있다면 한 번에 딱 한 장만 다른 색 카드로 바뀌는 것이 무성생식의 변이다. 카드 한 벌이 여러 다양한 색으로 바뀌려면 오랜 시간이 필요하다. 유성생식은 두 사람이 가진 카드 더미를 왼손 오른손에 나눠 쥐고 모두 함께 한 번에 섞고 다시 두 더미로 나누는 방법과 닮았다. 한 번만 섞어도 처음 내가 처음 가지고 있던 카드 더미와 상당히 다른 카드 더미가 된다. 유성생식은 무성생식에 비해 부모와 다른 자손을 만들어낼 가능성이 더 크다.

무성생식 생명이 대개 더 빨리 개체 수가 늘어 유리하지만 문제가 있다. 무성생식으로 출현한 후손의 유전자는 서로 크게 다르지 않아, 생존에 불리한 환경으로 바뀌면 급격히 개체 수가 줄어들 위험이 있다. 세대가 한 번 지날 때 무성생식을 하는 생명의 개체수 증가율을 A, 유성생식을 하는 생명의 개체 수 증가율을 B라 하면, A의 평균값이 B의 평균값보다 더 크다. 하지만 A의 값은 세대마다 들쭉날쭉하다. 환경이 거의 바뀌지 않을 때는 그 값이 크지만 환경이 바뀌면 다음 세대에 무척 작은 값을 가질 수도 있다. 무성생식을 주식투자에 비유하자면 가지고 있는 모든 현금으로 딱 하나의 주식을 매수하는 몰빵 투자와 닮았다. 잘되면 대박, 안되면 쪽박. 반면 유성생식은 여러 회사로 나누어 분산 투자를 하는 것과 닮았다. 잘 되면 그냥저냥 크지 않은 수익을 거두지만 잘 안 되어도 모든 투자금을 한 번에 잃지는 않는다. 주식투자에 ‘달걀을 한 바구니에 모두 담지 말라’는 얘기가 있다. 무성생식은 가지고 있는 모든 달걀(유전자)을 한 바구니에 담는 상황과 비슷하고 유성생식의 경우는 두 사람의 투자자가 함께 두 개의 바구니를 만들고 둘이 각각 가진 달걀(유전자)을 둘로 나눠 두 바구니에 나눠 담는 분산 투자와 비슷하다.

현실의 주식투자에서 투자액이 크지 않다면야 몰빵 투자로 패가망신하지는 않겠지만, 생명 종이 후손을 만드는 것은 정말 다르다. 다음 세대 개체수 증가율이 오르락내리락하다 어쩌다 단 한 번이라도 0이 되면, 그다음 세대는 아무도 없어 종의 멸절로 이어지게 된다. 평균 개체 수 증가율은 무성생식이 더 크지만 개체수 증가율이 매번 오르락내리락하는 폭도 더 크다. 오르면 좋겠지만 어쩌다 증가율이 바닥을 치면, 그다음 세대는 없다. 유성생식은 진화의 과정에서 생명이 택한 현명한 위험 회피 투자 전략이다. 대박 나면 좋겠지만 그렇지 않더라도 멸종에 이를 가능성은 거의 없는 훌륭한 전략이다. 간단히 해결할 문제를 굳이 복잡하게 해결하지 않는 것이 자연이 보여주는 방식이다. 두 개의 성으로 멸종의 위험을 크게 줄일 수 있다면 굳이 둘보다 더 많은 성을 진화가 택했을 것 같지는 않다. 무성생식에 이점이 있다는 것도 중요하다. 안정적인 환경에서 더 빠르게 개체 수를 늘릴 수 있다. 지구의 다양한 생명에서 무성생식과 유성생식이 여전히 함께 병존하는 이유다.

유전자를 유성생식으로 교환하는 방법이 가진 이점이 더 있다. 바로 미래의 위험에 대비해, 지금 당장은 크게 도움이 되지 않는 유전자라도 후대에 계속 물려줄 수 있다. 유전자를 열성과 우성으로 나누기는 하지만 사실 유전자에 우와 열은 없다. 겉으로 드러나 생명체가 살아가는 데 영향을 미치는 유전자(보통 우성유전자라 부름)와 겉으로 드러나지 않아 영향이 없는 숨겨진 유전자(보통 열성유전자라 부름)가 있을 뿐이다. 드러난 유전자와 숨겨진 유전자가 함께 있다면 드러난 유전자만 개체의 생존에 영향을 준다. 유성생식은 드러나지 않아 숨겨진 유전자를 후손에게 물려줄 수 있다. 드러나지 않는 유전자는 일종의 보험이다. 환경이 바뀐 미래에 숨어있던 유전자가 발현하면 개체의 생존에 큰 도움을 줄 수도 있기 때문이다.

환경에 아무런 변화가 없다면야 무성생식이 유리하지만, 세상의 환경은 시시각각 크고 작은 변화를 계속 이어간다. 미래에 닥칠 예측할 수 없는 환경 변화에 더 효율적으로 대비하는 것이 바로 유성생식이 제공하는 유전자의 다양성이다. 둘의 유전자를 절반씩 섞는 방식으로 더 다양한 자손을 만들어낼 수 있어서, 환경이 변해도 종 전체가 멸종하지 않고 생존을 이어갈 확률이 무성생식보다 더 크다. 유성생식의 또 다른 이점은 당장은 생존에 도움이 되지 않는 드러나지 않는 유전자라도 미래 후손을 위해 보험으로 남겨줄 수 있다는 것이다. 지구 위 온갖 아름다운 생명을 만들어낸 진화에서 다양성의 가치를 본다. 우리 사회도 그렇다. 획일적인 사회는 변화에 취약하다. 다양성이 우리가 살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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