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신용등급 하락 58곳… ‘한국판 엔론’은 없을까 [사자경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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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신용등급 하락 58곳… ‘한국판 엔론’은 없을까 [사자경제]
  • 이광희 기자
  • 승인 2022.05.04 16:3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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빅3 신평사 평가 ‘투자등급 1132, 투기등급 186개사’… ‘부정적 전망’ 기업은 감소

[사자경제] 각주구검(刻舟求劍). 강물에 빠뜨린 칼을 뱃전에 새겨 찾는다는 어리석고 융통성이 없음을 뜻하는 사자성어입니다. 경제는 타이밍입니다. 각주구검의 어리석음을 되풀이하지 않게 경제 이슈마다 네 글자로 짚어봅니다.

9·11 테러의 공포에서 헤어나오지 못하던 2001년 12월 2일, 분식회계의 대명사 엔론이 파산보호를 신청했다. 신용평가 회사들은 엔론이 문을 닫기 직전까지도 ‘투자적격’ 등급을 매겼다. /사진=픽사베이
9·11 테러의 공포에서 헤어나오지 못하던 2001년 12월 2일, 분식회계의 대명사 엔론이 파산보호를 신청했다. 신용평가 회사들은 엔론이 문을 닫기 직전까지도 ‘투자적격’ 등급을 매겼다. /사진=픽사베이

“2만2000명의 노후 자금인 회사 주식이 휴짓조각이 돼버렸다.”

9·11 테러의 공포에서 헤어나오지 못하던 2001년 12월 2일, 연간 매출 1000억달러인 미국의 에너지기업이 파산보호를 신청합니다. 퇴직연금 대부분을 자사 주식에 투자한 정규직 2만2000명은 넋을 잃습니다. 회사가 문을 닫기 직전까지 신용평가 회사들이 ‘투자적격’ 등급을 매겼으니 충격은 갑절에 달합니다. 분식회계의 대명사 ‘엔론’ 이야기입니다.

지난해 회사채 발행이 증가하면서 국내 신용평가사들의 신용평가부문 매출도 늘었다. /자료=금융감독원
지난해 회사채 발행이 증가하면서 국내 신용평가사들의 신용평가부문 매출도 늘었다. /자료=금융감독원

‘신용평가’. 기업의 각종 살림살이를 바탕으로 빚 갚을 능력이 얼마나 되는지 따져보는 일을 일컫는 네 글자입니다. 기업에 돈을 빌려준 채권은행은 해마다 기업의 부실을 미리 막으려, 신용평가회사에 채무기업의 신용위험을 평가합니다. 신용평가 결과는 크게 A(정상), B(일시적 유동성 위기), C(구조적 유동성 문제가 있으나 회생 가능), D(정리대상) 등 4단계로 나뉩니다.

한국기업평가(위)와 NICE신용평가의 장기 신용등급 구성. /자료=각사 누리집
한국기업평가(위)와 NICE신용평가의 장기 신용등급 구성. /자료=각사 누리집

국내 신용평가사들의 지난해 매출이 두 자릿수로 늘었습니다. 기업들의 회사채 발행이 증가한 영향인데, 이들 기업의 신용등급은 상승보다 하락이 더 많았습니다. 4일 금융감독원이 내놓은 <2021년도 신용평가실적 분석 및 시사점>에 따르면, 4개 신용평가사의 신용평가 부문 매출은 1207억5000만원이었습니다. 전년(1095억원)보다 10.3% 증가한 수치입니다.

제3자 보증이나 물적담보 없이 신용으로 발행하는 무보증회사채 발행 기업의 신용등급을 보면, 투자등급(AAA~BBB) 업체가 1132개, 투기등급(BB~C)은 186개로 나타났다. /자료=금융감독원
제3자 보증이나 물적담보 없이 신용으로 발행하는 무보증회사채 발행 기업의 신용등급을 보면, 투자등급(AAA~BBB) 업체가 1132개, 투기등급(BB~C)은 186개로 나타났다. /자료=금융감독원

금감원은 지난해 저금리 기조에 힘입어 기업들이 미리 유동성을 확보하기 위해 회사채 발행을 늘렸기 때문이라고 설명합니다. 실제 공모 회사채 발행액은 2020년 186조3000억원에서 지난해 203조9000억원으로 9.4% 늘었습니다. 국내 신용평가 시장은 한국기업평가(시장점유율 33.5%), 한국신용평가(32.9%), 나이스신용평가(32.9%)가 균등하게 3분하고 있습니다.

4개사 중 하나인 서울신용평가는 기업어음과 전자단기사채 및 구조화 금융상품에 대한 신용평가 업무만 영위해 점유율(0.8%)이 1%에도 미치지 못하고 있습니다. 서울신용평가를 뺀 빅 3 신용평가사의 무보증회사채 등급보유 업체는 지난해 말 기준 1318개(중복 제외하면 621개)였습니다. 무보증회사채는 제3자 보증이나 물적담보 없이 신용으로 발행하는 회사채입니다.

무보증회사채 발행 기업의 신용등급을 보면, 투자등급(AAA~BBB) 업체가 1132개로 지난해 초보다 8.3%(87개) 증가했습니다. 반면 같은 기간 투기등급(BB~C)은 186개사로 4.6%(9개) 감소했습니다. 또 지난해 부도업체는 투기등급 2개(중복평가 포함하면 3건)였습니다. 이에 따라 연간부도율도 0.24%로 전년(0.27%)보다 소폭이나마 줄었습니다.

지난해도 신용등급 하향 조정 우위는 이어지고 있으나 ‘부정적’ 전망 업체가 줄어드는 등 코로나19 타격에서 회복되는 모습이다. /자료=금융감독원
지난해도 신용등급 하향 조정 우위는 이어지고 있으나 ‘부정적’ 전망 업체가 줄어드는 등 코로나19 타격에서 회복되는 모습이다. /자료=금융감독원

지난해 신용등급이 떨어진 기업은 58개로, 등급이 오른 41개보다 많았습니다. 신용등급 변동 성향은 2018년 0.6%로 소폭 플러스를 보였지만, 2019년 -1.6%로 마이너스 전환한 뒤 3년째 마이너스를 유지하고 있습니다. 지난해 신용등급 변동 성향도 -1.4%로 2020년(-2.8%)에 이어 하향 조정 기조가 이어졌습니다.

신용등급 변동 성향은 등급이 오른 곳에서 내린 곳을 뺀 뒤, 전체 신용등급 보유업체 수로 나눈 지표입니다. 지표가 마이너스이면 한 해 동안 신용등급이 떨어진 기업이 더 많다는 의미입니다. 신용등급에 대한 1~2년간 장기 전망을 의미하는 등급 전망이 부여된 153개사 가운데 긍정적인 전망은 65, 부정적 전망은 88개였습니다.

금감원 관계자는 “전년에 이어 신용등급 하향 조정 우위는 이어지고 있으나 ‘부정적’ 전망 업체가 줄어드는 등 코로나19 타격에서 회복되는 모습”이라면서도 “최근 각국의 금리 인상, 글로벌 공급망 재편, 원자재가격 변동성 증대 등 다양한 정치·경제적 위험이 신용등급에 영향을 줄 가능성은 충분하다”라고 덧붙였습니다.

신용공여 500억원 이상인 대기업과 500억원 미만인 중소기업을 대상으로 실시하는 정기 신용위험 평가는 등급(A~D)에 따라 C등급은 채권단의 워크아웃, D등급은 법정관리 등 자체 회생절차로 처리된다. /자료=금융감독원
신용공여 500억원 이상인 대기업과 500억원 미만인 중소기업을 대상으로 실시하는 정기 신용위험 평가는 등급(A~D)에 따라 C등급은 채권단의 워크아웃, D등급은 법정관리 등 자체 회생절차로 처리된다. /자료=금융감독원

‘상시적 기업구조조정을 촉진하고 국민경제의 발전에 이바지하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 <기업구조조정촉진법>은 엔론이 파산하던 해인 2001년 8월 국회에서 처음 공포되었습니다. 작지만 앞날이 밝은 기업에 대한 지원과 함께 부실기업에 대한 적극적인 구조조정도 필요합니다. 통화 긴축이 이어지는 가운데 ‘한국판 엔론’이 숨어 있지 않은지 꼼꼼히 따져봐야 할 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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