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장 때와 똑같은’ 정은보 금감원장, 저축은행 사태 잊었나 [사자경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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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장 때와 똑같은’ 정은보 금감원장, 저축은행 사태 잊었나 [사자경제]
  • 이광희 기자
  • 승인 2021.12.02 16: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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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자경제] 각주구검(刻舟求劍). 강물에 빠뜨린 칼을 뱃전에 새겨 찾는다는 어리석고 융통성이 없음을 뜻하는 사자성어입니다. 경제는 타이밍입니다. 각주구검의 어리석음을 되풀이하지 않게 경제 이슈마다 네 글자로 짚어봅니다.

저축은행 CEO들을 만난 정은보 금융감독원장(맨 왼쪽)은 16년 전 재경부 과장 시절과 마찬가지로 규제 완화 입장을 피력했다. /자료사진=금융위원회
저축은행 CEO들을 만난 정은보 금융감독원장(맨 왼쪽)은 16년 전 재경부 과장 시절과 마찬가지로 규제 완화 입장을 피력했다. /자료사진=금융위원회

“건전한 저축은행은 성장할 수 있는 방향으로 규제를 완화해 나갈 계획이다.”

2005년 10월 13일, 저축은행 최고경영자(CEO)들이 모인 세미나에서 재정경제부 보험제도 과장은 입장을 밝힙니다. 부실 저축은행 퇴출과 관련, “시장에서 공정한 경쟁의 여건을 만들어주면 자연스레 정리된다”라는 것입니다. 여섯 달 전에는 “저축은행이 겸업화할 수 있는 길을 터주겠다”라고도 말했습니다. 그가 16년여 만에 저축은행 CEO들을 다시 만났습니다.

‘규제완화’. 산업 육성이나 소비자 보호 따위를 목적으로 민간의 경제활동을 해치는 규칙이나 규정 등을 풀어주는 것을 일컫는 네 글자입니다. 취임 이후 시장 친화 행보를 이어가고 있는 정은보 금융감독원장이 또 규제완화를 외쳤습니다. 저축은행 CEO들을 만난 자리에서였습니다. 이번 규제완화책은 16년 전 재경부 과장 시절 밝혔던 생각과 판박이였습니다.

2일 금융감독 당국과 저축은행업계에 따르면, 정은보 원장은 전날 저축은행 CEO들과 만나 “다른 업권과의 규제 형평성 등을 감안해 대출 컨소시엄 참여를 어렵게 하는 규제를 개선하겠다”라고 말했습니다. “변화된 금융환경에 맞춰 저축은행이 서민과 중소기업을 위한 금융기관 본연의 역할을 충실히 수행할 수 있도록 지원하겠다”라는 것입니다.

현재 저축은행은 프로젝트파이낸싱(PF) 사업자금의 20% 이상을 자기자본으로 조달하는 경우에만 대출 컨소시엄에 참여할 수 있습니다. PF 대출은 부동산 시행 및 시공사가 땅을 사거나 공사를 진행하는 데에 필요한 자금을 빌려주는 것입니다. 이른바 ‘저축은행 사태’의 주범으로 지목돼 저축은행은 그동안 엄격한 규제를 받아왔습니다. 이 규제를 풀어주겠다는 얘깁니다.

정은보 금융감독원장은 지난 1일 저축은행 CEO들을 만나 규제완화를 약속했다. 사진 왼쪽부터 박찬종 인천저축은행 대표, 오화경 하나저축은행 대표, 임진구 SBI저축은행 대표, 정 금감원장, 박재식 저축은행중앙회 회장, 박기권 진주저축은행 대표, 양순종 스타저축은행 대표, 허흥범 키움저축은행 대표. /사진=금융감독원
정은보 금융감독원장은 지난 1일 저축은행 CEO들을 만나 규제완화를 약속했다. 사진 왼쪽부터 박찬종 인천저축은행 대표, 오화경 하나저축은행 대표, 임진구 SBI저축은행 대표, 정 금감원장, 박재식 저축은행중앙회 회장, 박기권 진주저축은행 대표, 양순종 스타저축은행 대표, 허흥범 키움저축은행 대표. /사진=금융감독원

정 원장은 저축은행 CEO들과 만난 뒤 기자들에게 “(저축은행 사태 이후) 상당한 기간이 흘렀기 때문에 업권 간 형평성이 확보되지 않은 규제 부분은 정상화하는 것을 적극적으로 검토하는 게 필요하다”라고 밝혔습니다. 이 같은 소식이 전해지자 저축은행업계 일제히 환영하면서 ‘어느 정도’ 규제를 풀어줄지 기대치를 높이고 있습니다.

반면 건설업계는 저축은행 사태 후폭풍이 아직도 이어지고 있다며 제2의 부실 사태를 걱정하는 분위기입니다. 정 원장도 “저축은행 사태로 대규모 예금자 피해가 발생해 국민경제에 큰 부담을 주었고, 당시 투입한 공적자금은 아직까지 회수되지 않고 있다”라고 인정했습니다. 실제 9월 말 기준 공적자금 27조2000억원 가운데 회수금은 13조4000억원에 그칩니다.

다만, 정 원장은 부실 사태 재발을 막기 위해 ‘사전적 감독’에 더욱 방점을 두겠다는 방침입니다. “위험요인을 신속하게 감지하기 위해 위기 상황 분석을 강화하고 리스크 취약부문에 선제적 대응을 위해 저축은행별 검사 주기와 범위를 탄력적으로 운영하겠다”라는 것입니다. 정 원장은 이와 함께 자산규모에 맞는 차등화된 감독체계를 도입하겠다고 밝혔습니다.

최근 3년간 저축은행의 예대금리 차이가 시중은행의 4배에 달한다는 지적에는 “최고 금리가 하향 조정되면서 격차가 줄어들고 있다”라면서도 “제2금융권도 모니터링하고 있기 때문에 예대금리차를 줄여야 한다면 그렇게 유도할 것”이라고 덧붙였습니다. 정 원장은 그러면서 금리산정 체계 개선 및 금리인하요구권 활성화 등을 제시했습니다.

2011년 저축은행 사태의 아픈 기억이 가시지 않은 금융 소비자들은 아직도 저축은행들에 대해 곱지 않은 시선을 보내고 있다. /사진=저축은행중앙회
2011년 저축은행 사태의 아픈 기억이 가시지 않은 금융 소비자들은 아직도 저축은행들에 대해 곱지 않은 시선을 보내고 있다. /사진=저축은행중앙회

이 같은 소식이 전해지자 누리꾼들은 또 다른 ‘부실 폭탄’을 제조한다며 감독 당국 수장을 강도 높게 비난하고 있습니다. 특히 전직 저축은행 직원이라고 주장하는 이는 저축은행의 과거 행태를 적나라하게 고발하고 있습니다.

“먹고 하는 일이 공정과 금융기관의 적정 이윤 감독하는 감독원장이 잘못된 구멍을 모를 리도 없고, 왜 그렇게 그들에게만 서민들 상대로 고리대금업을 허용하도록 방치한 설명되지 않는 이유도 잘 알 것이다. 특수목적의 고리대금 허용 뒤에서 숨 쉬는 규제와 모순이 반드시 존재하지 않겠는가 생각한다” “부실 폭탄을 제조하는구나? 결국은 국민 세금으로 때우는데 풀면 안 된다” “금융위, 금감원 저X들은 국민들을 위한 인간들이 아니다. 은행, 증권사, 외국X들 위한 국민 등쳐 먹는 XX들이다”.

“2010년 수십 개의 저축은행이 PF로 문 닫았죠. 저도 거기서 예보 인수과정에서 정리되었는데 벌써 12년 전이네. 부실 대출을 대환하고 PF 마구 해대고 당기순이익은 약정수수료로 높이고 고객 예금이자율 높여서 자금 수급받고. 이렇게 자금 수혈하면서 자산 늘리고. 솔로몬 부산 전일 토마토 수두룩하네. 모두 망하기 2년 전만 해도 1등 저축은행이라고 다른 저축은행에서 견학도 하게 하고 했는데” “서민들을 위한 기관이 아님”.

국내 저축은행의 부동산PF가 급증한것으로 나타나 제2저축은행 사태가 우려된다. /출처=유동수 의원실
국내 저축은행의 부동산PF가 급증한것으로 나타나 제2저축은행 사태가 우려된다. /출처=유동수 의원실

한편 국회 정무위원회 소속 유동수 의원이 10월 국감 때 내놓은 예금보험공사 자료에 따르면, 올해 6월 말 저축은행들의 부동산PF 대출 잔액은 7조8000억원이었습니다. 반년 새 9000억원이 급증한 것으로, 2011년 저축은행 사태 직후(4조3000억원)와 견주면 2배 가까이 폭증했습니다. 언제 급락할지 모를 ‘부동산’이라는 뇌관을 장착한 시한폭탄인 셈입니다.

10년 전 2월 17일, 겨울바람을 헤치고 문을 닫은 저축은행으로 달려간 사람이 10만명에 가까웠습니다. 상당한 기간이 지났다며 PF 대출 규제를 풀려는 감독 당국 수장의 친시장 행보가 불안한 이유입니다. 규제완화의 목적에는 산업 육성과 함께 ‘소비자 보호’도 포함됩니다. 지금도 저축은행 사태 피해자의 눈물은 마르지 않았습니다.

지난 23일 취임 이후 처음으로 증권사 CEO들을 만난 자리에서도 정은보 금감원장은 ‘시장조성자 과징금 재조정’ 등 친시장 행보를 이어갔다. /사진=금융감독원
지난 23일 취임 이후 처음으로 증권사 CEO들을 만난 자리에서도 정은보 금감원장은 ‘시장조성자 과징금 재조정’ 등 친시장 행보를 이어갔다. /사진=금융감독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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