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소법 계도기간 종료의 의미 [조수연의 그래픽저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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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소법 계도기간 종료의 의미 [조수연의 그래픽저널]
  • 조수연 편집위원(공정한금융투자연구소장)
  • 승인 2021.10.26 10:0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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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9월 24일은 여섯 달 전인 3월 25일 공포된 금융소비자보호법(금소법) 계도 기간이 종료한 날이다. 이 법은 정치권의 무관심(추측건대 관련 산업의 로비) 속에 약 10년간 표류를 계속해왔다. 이 법이 지난 3월 5일 국회를 통과한 계기는 2019년 DLF(해외금리연계 파생결합펀드) 사태, 지난해 발생한 라임자산운용과 옵티머스 자산운용 펀드 환매 중단으로 인한 사모펀드 부실 사태였다.

감독 당국의 관련 검사보고서에는 금소법의 규제 대상인 금융산업의 불법 행태가 담겨 있었고 정치권도 도저히 그냥 넘어갈 수 없는 것이었던 것으로 생각된다. 필자가 보기에 금융 사고와 이로 인해 제정된 금소법이 앞으로 파급할 영향력은 상당할 것으로 예상하는데, 국민은 무관심하고 언론은 금융회사의 불편함만을 기사화하는 중이다.

금소법의 발단은 2008년 금융 대위기였다. 금융 산업의 세계를 뒤흔든 이 사건은 금융회사의 탐욕이 가장 큰 원인이었고, 이후 세계 경제에 돌이킬 수 없는 악영향을 미쳤다. 이것은 이 사건의 공식적인 명칭이 ‘great financial crisis’로 명명된 것에서도 짐작할 수 있다. 이때 경제협력개발기구(OECD)는 <금융소비자 보호를 위한 10대 원칙>을 발표했고 이후 전 세계적인 금융소비자 보호 움직임이 급물살을 탔다.

금융당국은 금소법이 시행됨으로써 청약 철회권, 위법계약 해지권, 금융분쟁 조정 등 금융소비자의 권리를 강화했다고 강조한다. 그러나 금융소비자 관점에서 역시 핵심은 6대 판매규제 원칙으로 정의하는 금융회사와 금융소비자의 접점과 관련된 규제다. 6대 원칙은 ①적합성 원칙 ②적정성 원칙 ③설명의무 ④불공정 영업행위 금지 ⑤부당 권유행위 금지 ⑥허위·과장 광고 금지 등이다. 이 가운데 ④ ⑤ ⑥은 금융회사 행위에 대한 직접 규제이고, 일반 고객이 신경 써야 할 부분은 ① ② ③이다.

한편 일반 법률 용어도 그렇지만 금소법에 등장하는 용어 하나하나마다 많은 의미가 함축되어 있고, 법률상 유의미한 행위를 담고 있으므로 일반인에게 쉽지 않다. 이러한 관점에서 이름은 금융소비자보호법이지만 ‘금융소비자가 이해하기 쉽지 않은 웃지 못할 법’인 것도 사실이다. 어려운 내용이지만 그래도 금융소비자의 주의를 환기하기 위해서는 내용을 짚고는 가야 한다.

먼저 판매자, 즉 금융회사가 금융소비자에게 금융상품을 판매하는 경우 금융회사는 고객정보를 파악하고 이에 따라 부적합한 상품 판매를 금지하는 것이 적합성 원칙이다. 또한, 금융회사의 판매 권유 없이 금융소비자가 자발적으로 상품을 구매할 때 상품이 부적정하면 금융회사가 관련 사실을 알려야 하는 것이 적정성 원칙이다. 그리고 금융상품의 중요사항을 이해할 수 있도록 설명해야 하는 것이 설명의무다.

얼핏 금융회사가 금융소비자에게 상품을 판매할 때 지켜야 할 의무로 이해가 될 수 있다. 그러나 금소법이 그리 녹록하게 금융소비자만을 보호하지는 않는다는 사실도 금융소비자가 꼭 알아야 한다.

금융위원회는 금소법 시행 이후 3월 29일에는 판매자와 소비자가 알아야 할 중요사항을, 9월 23일에는 계도 기간 종료에 대한 보도자료를 제시했다. 계도란 사전적으로 남을 깨치어 이끌어 준다는 의미가 있다. 이 단어의 의미에서 추정해보면 법의 보호 대상인 국민보다는 금융산업이 대상이었을 것이다.

/일러스트=조수연 편집위원
/일러스트=조수연 편집위원

발표 내용을 보면 금융당국은 금융회사를 대상으로 활발한 홍보와 소통 활동을 벌였다고 한다. 금융당국은 광고 규제 가이드라인(6월 8일), 투자자 적합성 평가 제도 운영지침(7월 1일), 금융상품 설명의무의 합리적인 이행을 위한 가이드라인(7월 14일), 권역별 표준내부통제기준(8월 31일) 등을 마련하고, 현장과 계속 소통하며 금소법 시행 이후 늘어난 설명 시간과 금융회사 영업 제한으로 인한 금융회사의 불편 사항 해소를 위해 노력하고 있다고 한다. 금소법이 워낙 광범위한 분야의 변화가 필요하므로 당국의 노고가 적지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필자가 진행 과정을 보며 우려스러운 부분은 다음 두 가지다. 첫째, 금소법이 원래 취지와는 달리 금융소비자로부터 금융회사를 보호하는 법으로 변질하지 않기를 바란다. 필자의 경험에 의하면 과거의 금융 산업 내에 존재했던 시장이나 고객에 대한 금융회사의 의무와 관련된 법 또는 규제는 대부분 그 운영의 주체가 금융회사에 맡겨지며, 금융회사 자신을 보호하는 취지로 운영되는 경우가 많았다. 물론 형식적으로는 규제나 징계를 했지만, 대부분 감독 당국이 용인하는 범위에서 금융회사 경영진이나 영업에는 치명적이지 않도록 결론이 만들어졌다.

둘째, 법으로 금융소비자 권리와 금융회사 규제의 명시는 이를 철저하게 대비하는 금융회사 앞에서 금융 사고 발생 시 이 법에 무심한 금융소비자가 오히려 다퉈볼 여지를 잃을 가능성이 커질 수 있다.

금소법과 금융당국이 정착을 위해 노력하는 준비 내용과 과정은 더욱 정교해지고 복잡해졌다. 관련 문건들은 금융당국과 금융회사 전문 직원들의 언어로 쓰이며, 어지간한 금융회사 직원도 자세히 학습하지 않으면 이해와 숙지가 어려울 것이다.

이런 가운데 금소법 정착을 위해 금융당국이 금융소비자와 한 소통은 ‘알기 쉬운 금소법 Q&A’ 말고는 필자는 확인하기 어려웠다. 그 내용도 쉽지는 않았고 금융소비자를 확실하게 이해하려는 노력이 필자에게는 읽히지는 않았다. 과거 수십 년간 지속해온 관행대로 금융소비자는 자세히 알려고 애쓰지 말고 그저 금융당국의 보호를 당하거나 감사한 마음으로 처분을 달게 받으라는 뜻일 수 있다.

그러나 금융소비자의 상황은 심상치 않다. 3월 29일 배포한 보도자료 <… 판매자·소비자가 알아야 할 중요사항을 알려드립니다>의 내용 중에 눈에 띄는 문구들이 있었다. ‘소비자가 충분한 이해 없이 확인하려 하면 소송이나 분쟁에서 불리하게 작용할 수 있다’, ‘금융회사는 금융소비자에게 배상책임을 진다. 다만, 고의 과실이 없는 경우에는 그러하지 아니하다’.

금융소비자보호법 제8조는 금융소비자를 금융판매업자와 대등한 주체로 명시하는 한편, 금융상품을 올바르게 선택하고, 필요한 지식과 정보를 습득할 의무를 명시하고 있다. 금융상품을 이용하는 국민은 정신 바짝 차리고 법의 의무를 다하지 않으면 앞으로 벌어질 금융 사고 때 재갈이 물릴 위험도 큰 데도 이에 대해 걱정하는 목소리는 들을 수가 없다. 이제는 ‘못 들었다’ ‘몰랐다’ ‘나는 고령이다’ 등의 주장은 통하지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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