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장기업 ‘지배구조’가 나아졌다고요? [사자경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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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장기업 ‘지배구조’가 나아졌다고요? [사자경제]
  • 이광희 기자
  • 승인 2021.10.05 16: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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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자경제] 각주구검(刻舟求劍). 강물에 빠뜨린 칼을 뱃전에 새겨 찾는다는 어리석고 융통성이 없음을 뜻하는 사자성어입니다. 경제는 타이밍입니다. 각주구검의 어리석음을 되풀이하지 않게 경제 이슈마다 네 글자로 짚어봅니다.

2017년 11월 9일 당시 최종구 금융위원장은 외국인 기관투자가들을 초청한 자리에서 우리 상장기업들의 회계 투명성을 강조했다. /자료사진=청와대 국민청원 누리집
2017년 11월 9일 당시 최종구 금융위원장은 외국인 기관투자가들을 초청한 자리에서 우리 상장기업들의 회계 투명성을 강조했다. /자료사진=청와대 국민청원 누리집

“코리아 디스카운트를 해소하기 위해서는 지배구조 개선에 속도를 내야 할 때다.”

2017년 11월 9일, BOA·BNP파리바·도이치뱅크 등 파란 눈의 기관투자가들을 초청한 금융위원장은 대한민국 주식시장의 레벨업을 약속합니다. 아울러 우리나라 상장기업에는 회계 투명성을 높일 것을 강조합니다. 그로부터 1년여 뒤인 2019년 1월 1일, 자산이 2조원이 넘는 코스피 상장기업은 지배구조보고서를 의무적으로 공시해야 합니다.

‘지배구조’. 기업 내부의 의사결정시스템, 이사회와 감사의 역할과 기능, 경영자와 주주와의 관계 등을 통틀어 일컫는 네 글자입니다. 금융회사를 제외한 주요 상장기업들의 지배구조와 관련한 공시 준수율이 크게 높아진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다만 집중투표제 등 경영권에 영향을 주는 지배구조 개선정책에 대해서는 여전히 도입을 꺼리는 기업이 많았습니다.

5일 한국거래소에 따르면 코스피 상장 175개사(비금융)의 <2021년 지배구조보고서> 점검 결과, 이사회 부문에서 경영권과 직접 관련된 항목의 준수율이 낮았습니다. 특히 집중투표제의 경우 채택률이 5.1%에 그쳐 지난해(5.8%)보다 뒷걸음질 쳤습니다. 집중투표제는 주주총회에서 다수의 이사를 뽑을 때 1주당 1표가 아니라 선임할 이사 수만큼 의결권을 주는 제도입니다.

이는 소액주주들이 선호하는 이사 후보의 선출 가능성을 막기 위해 기업들이 도입을 거부한 것으로 풀이됩니다. 이와 함께 이사회 의장과 대표이사를 분리한 기업도 열 가운데 셋(30.3%)에 불과했습니다. 또 최고경영자 승계정책을 마련한 곳은 30%도 되지 않았습니다. 내부통제정책 마련 준수율(88%) 역시 전년보다 8.3%p 감소했습니다.

자산 5조원 이상, 시가총액 1조원 이상 상장기업들이 지배구조 보고서를 가이드라인에 맞게 적었는지를 따지는 기재충실도가 올해 처음 80%를 넘어섰다.
자산 5조원 이상, 시가총액 1조원 이상 상장기업들이 지배구조 보고서를 가이드라인에 맞게 적었는지를 따지는 기재충실도가 올해 처음 80%를 넘어섰다.
주요 상장기업들의 지배구조 관련 공시 준수율이 개선됐지만 경영권에 영향을 주는 항목에서는 오히려 뒷걸음질 친 것으로 나타났다. /자료=한국거래소
주요 상장기업들의 지배구조 관련 공시 준수율이 개선됐지만 경영권에 영향을 주는 항목에서는 오히려 뒷걸음질 친 것으로 나타났다. /자료=한국거래소

반면 여성이사 선임 비율은 44.6%로 1년 사이에 20%p 상승했습니다. 지난해 자본시장법을 손질해 자산총액 2조원 이상 상장법인에 대해 여성 등기임원 선임을 의무화한 게 영향을 끼친 것으로 보입니다. 이 밖에 부적격임원 선임방지정책 수립(71.4%), 6년 이상 장기재직 사외이사 미보유(92.6%)도 전년보다 늘었습니다.

주주권리 부문에서는 배당정책 수립 준수율이 46.3%로 17.6%p 올랐습니다. 배당 예측 가능성이 높아졌다는 이야기입니다. 다만 ‘주총 4주 전 소집공고’를 지킨 기업은 늘었지만(28.6%) 여전히 낮은 수준입니다. 반면 전자투표 실시는 코로나19 영향으로 42.7%에서 72%로 크게 높아졌습니다. 상대적으로 서면투표는 11.7%에서 8.6%로 낮아졌습니다.

감사 부문을 보면, 감사위원 보수정책을 보유한 곳은 9.1%에 그쳤습니다. 내부감사기구 전담 지원조직 설치(53.7%)는 2년 전 53.4%와 견줘 제자리걸음이었습니다. 다만 법적인 규제를 받는 감사위원회 전원 사외이사 구성(84%)의 준수율은 높았습니다. 강제성 여부에 따라 상장기업들의 ‘눈치 보기’가 여전한 것으로 보입니다.

한국거래소는 “기업지배구조 22개 항목의 준수율 평균이 57.8%로 지난해(49.6%)보다 높아졌다. 기재 충실도 등 보고서의 질적 향상과 공시 의무화가 지배구조개선에 미치는 긍정적 영향이 확인된다”라고 평가했습니다. 하지만 이와 같은 준수율은 기업이 공시한 내용만을 토대로 산출한 수치로, 지배구조의 질적 수준과 직결되지 않는다는 지적도 나옵니다.

지난 6월 7일 나온 아시아기업지배구조협회(ACGA) 보고서에 따르면 우리나라 기업의 지난해 지배구조 순위는 9위로 나타났다. 인도·태국보다 낮다. /자료=ACGA
지난 6월 7일 나온 아시아기업지배구조협회(ACGA) 보고서에 따르면 우리나라 기업의 지난해 지배구조 순위는 9위로 나타났다. 인도·태국보다 낮다. /자료=ACGA

한편 지난 6월 초 나온 아시아기업지배구조협회(ACGA) 보고서에 따르면 우리나라 기업의 지배구조 순위는 9위였습니다. 인도·태국보다 낮은 데다 2010년 이후 줄곧 8~9위에 머물렀습니다. 보고서는 지난 2년 동안 문재인정부가 추진한 상법 개정과 ‘5%룰 완화’ 등을 꼽으며 개혁적인 정책을 추진했다고 밝혔습니다.

보고서는 또 2019년부터 이뤄진 상장회사 지배구조 공시, 올해 시행된 ESG(환경·사회·지배구조) 공시 의무화를 긍정적으로 평가했습니다. 다만 ‘차등의결권’ 허용은 개혁을 후퇴시키는 정책이라고 지적했습니다. 그러면서 “차등의결권 도입을 위해 회사법이 개정되고 발행 대상도 기존 상장회사로 확대되면 지배구조 순위에 부정적 영향을 미칠 수 있다”라고 경고했습니다.

ACGA는 이어 “2022년 대통령 선거가 치러지는 조건에서 정치적 영향을 받지 않고 재벌개혁이 추진될 수 있도록 ‘지배구조 로드맵’을 마련할 필요가 있다”라며 “이사후보 추천위원회의 독립성 보장을 위한 위원회 구성, 사외이사 자격요건 검토와 함께 의무공개매수제도 도입 등 소수주주의 권리를 높이는 태스크포스를 구성할 필요가 있다”라고 덧붙였습니다.

삼성준법감시위원회는 이재용 부회장이 4세 승계를 하지 않겠다고 국민 앞에서 선언을 한 뒤 남은 과제는 지배구조의 합리적 개선이라고 밝혔다. /자료사진=삼성전자
삼성준법감시위원회는 이재용 부회장이 4세 승계를 하지 않겠다고 국민 앞에서 선언을 한 뒤 남은 과제는 지배구조의 합리적 개선이라고 밝혔다. /자료사진=삼성전자

“핵심은 준법의 문화가 바뀌는 것이다”. 지난 30일 김지형 삼성준법감시위원장은 삼성의 지배구조 개선에 적극적으로 나서겠다고 밝혔습니다. 이재용 부회장이 ‘4세 승계’를 하지 않겠다고 선언한 뒤 남은 숙제입니다. 김 위원장의 이날 약속이 잘 지켜지는지는 누구보다 소액주주들의 눈이 필요합니다. ‘준법’이 지배하는 그날까지.

“세계인이 삼성이라는 브랜드에서 가장 자부심을 느끼는 가치 중 하나가 준법으로 자리 잡는 날까지, 가야 할 길을 쉼 없이 가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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