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손보험료 범인 ‘의료쇼핑 vs 과잉진료’, 아니면 보험사? [사자경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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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손보험료 범인 ‘의료쇼핑 vs 과잉진료’, 아니면 보험사? [사자경제]
  • 이광희 기자
  • 승인 2021.05.06 16: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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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자경제] 각주구검(刻舟求劍). 강물에 빠뜨린 칼을 뱃전에 새겨 찾는다는 어리석고 융통성이 없음을 뜻하는 사자성어입니다. 경제는 타이밍입니다. 각주구검의 어리석음을 되풀이하지 않게 경제 이슈마다 네 글자로 짚어봅니다.

올해 실손의료보험 보험료 부담이 4년 사이 가장 가파르게 오른 것으로 나타났다. /사진=픽사베이
올해 실손의료보험 보험료 부담이 4년 사이 가장 가파르게 오른 것으로 나타났다. /사진=픽사베이

“팔았다 하면 손해, 남는 게 없는 장사다.”

지난 2월 26일. 한 생명보험회사는 ‘이 상품’의 판매를 다음 달부터 그만둔다고 결정합니다. 2017년 77.6%였던 상품의 손해율이 지난해 100% 가까이 치솟은 게 결정타입니다. 손해율이 100%라면 받은 보험료만큼 고스란히 보험금으로 내줬다는 얘기입니다. 이로써 2011년 이후 이 상품을 팔다가 접은 생명 및 손해보험회사는 13곳이나 됩니다.

지난 4월 보험서비스료 소비자물가지수(CPI)가 181.24로 1년 만에 9.7% 올랐다.(단위 %) /자료=통계청
지난 4월 보험서비스료 소비자물가지수(CPI)가 181.24로 1년 만에 9.7% 올랐다.(단위 %) /자료=통계청

‘실손보험’. 병원과 의원 및 약국에서 실제로 지출한 의료비를 90%까지 보상하는 실손의료보험을 줄여서 일컫는 네 글자입니다. 최근 4년 사이 서비스 물가 가운데 가장 많이 올랐던 실손보험료가 또 오를 것으로 보입니다. 특히 보험료를 적게 내는 상품으로 갈아탈 경우, 보장범위가 대폭 줄어들게 돼 보험 가입자들의 불만은 폭발 직전입니다.

6일 통계청에 따르면 지난달 보험서비스료 소비자물가지수(CPI)는 181.24로 1년 만에 9.7% 올랐습니다. 4년 새 가장 가파른 상승세이자 역대 가장 높은 물가 수준입니다. 올해 실손보험료가 두 차례 오르며 가계의 부담을 10%가량 높인 때문입니다. 실손보험료는 최근 6년 동안 81% 올랐는데, 이는 정부가 집계하는 서비스 물가 가운데 가장 높은 상승률입니다.

이처럼 실손보험료가 하늘 높은 줄 모르는 데에는 의료계의 과잉진료와 함께 보험 가입자들의 도덕적 해이, ‘의료쇼핑’ 때문이라는 게 보험사들의 항변입니다.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지난해 실손보험 손실은 2조5000억원 수준입니다. 보험료 수익에서 발생손해액과 실제 사업비를 뺀 수치로, 생명보험은 1314억, 손해보험은 2조3694억원 손실이었습니다.

지난해 실손보험 손실이 2조5000억원으로 나타났다. 보험료 수익에서 발생손해액과 실제 사업비를 뺀 수치로, 생명보험이 1314억, 손해보험이 2조3694억원 손실이었다. /자료=금융감독원
지난해 실손보험 손실이 2조5000억원으로 나타났다. 보험료 수익에서 발생손해액과 실제 사업비를 뺀 수치로, 생명보험이 1314억, 손해보험이 2조3694억원 손실이었다. /자료=금융감독원

보험업계 관계자는 “병원들이 비급여 항목이 급여로 전환되면서 줄어든 수익을 보전하기 위해 새로운 비급여 항목을 만들거나 남은 비급여 진료를 많이 권하고 있다”라고 말했습니다. 그러면서 과잉진료도 문제이지만 소수의 ‘의료쇼핑족’ 탓에 선의의 가입자들의 보험료 부담도 커지고 있다고 지적합니다.

보험연구원에 따르면 실손보험 청구자 가운데 상위 10%가 전체 보험금의 56.8%를 타간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예컨대 한 60대 여성은 위염과 허리 통증, 무릎 통증 등을 호소하며 외래진료를 모두 824차례 받고 2985만원의 보험금을 받았습니다. 반면 실손 전체 가입자 가운데 1년간 보험금을 한 번도 타지 않은 비율은 65%나 됐습니다.

이에 보험사들은 최근 4년 동안 30% 넘게 올린 실손보험료를 올해 또 올리기로 했습니다. 아울러 보험료가 저렴한 새로운 상품도 내놨습니다. 다만 신상품은 도수치료나 비급여 주사 같은 혜택은 받을 수 없습니다. 치료를 받는다 해도 자기부담금 30%를 내야 합니다. 커진 손실 때문에 상품 재설계가 필요하다는 것이 보험사들의 설명입니다.

4세대 실손보험이 오는 7월부터 출시된다. /자료=금융위원회
4세대 실손보험이 오는 7월부터 출시된다. /자료=금융위원회

이 같은 소식이 전해지자 누리꾼들은 맨 처음 설계부터 잘못한 보험사들의 ‘원죄론’을 지적합니다. 올라도 너무 많이 올랐고 오른다는 불만과 함께 병원의 과잉진료에 대한 불만도 쏟아집니다.

“애초 처음부터 자기들이 잘못한 거 아닌가. 주변에 별로 아프지도 않는데 도수치료 받는다고 하는 이들도 오래전부터 많았다” “지들이 머리 써서 만들어서 가입 유도하고선 이제 와서 책임은 소비자? 화장실 드갈 때 나올 때 다르다는 말이 떠오른다, 그럼 이익 나는 상품은 소비자에게 돌려주니? 나쁜 기업들” “보험회사XXX들 죽는소리하고있네? 절대보험들지마시길 혜택볼때딴소리하고 특히OO보험들지마시길”.

“자동차보험처럼. 병원 안가면 할인해줘야지. 많이 가는 사람들은 할증 붙이고. 진짜 억울함. 일년에 두세번 병원 가도 청구할까 말까인데. 3만원 오른다는 게 말이 되나. 7만원이 10만원이 되다니” “보험사 이익 나면 소비자한테 돌려주나요? 장사가 이윤 날 때 가만히 있다가 왜 이러는지” “이번에 10년차 갱신인데 오르기도 진짜 너무 많이 올랐네요ㅠ”.

“병원도 문제다. 외과 쪽 진료 받으러 가면 진료도 받기 전에 실손 가입 여부부터 확인하는 것 자체가 문제다. 예를 들어 가벼운 증상인데도 큰 병처럼 도수치료를 해야 한다고 권하더라” “병원이 문제다. 도수치료 가격, 영양주사 가격 말이 되냐?” “쇼핑족이 문제가 아니라 병원을 잡읍시다. 병원이 선동해서 돈을 챙기려고 편법을 쓰기 때문에 선량한 고객들만 피해를 봅니다”.

녹색소비자연대·소비자와함께·금융소비자연맹 등 3개 시민단체가 의뢰해 조사한 설문 결과에 따르면, 실손보험 가입자 2명 가운데 한명은 복잡하고 불편한 청구절차로 보험금 청구를 포기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자료=금융소비자연맹
녹색소비자연대·소비자와함께·금융소비자연맹 등 3개 시민단체가 의뢰해 조사한 설문 결과에 따르면, 실손보험 가입자 2명 가운데 한명은 복잡하고 불편한 청구절차로 보험금 청구를 포기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자료=금융소비자연맹

한편 실손보험 가입자 1000명을 대상으로 보험금 청구관련 인식조사를 실시한 결과, 보험 가입자 2명 가운데 한명(47.2%)은 복잡하고 불편한 절차 때문에 보험금 청구를 포기한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최근 2년 동안 이들이 청구를 포기한 사례는 30만원 이하의 소액 청구건이 95.2%였습니다.

이들이 청구를 포기한 이유로는 ▲진료금액이 적어서(51.3%) ▲진료당일 보험사에 제출할 서류를 미처 챙기지 못했는데 다시 병원을 방문할 시간이 없어서(46.6%) ▲증빙서류를 보내는 것이 귀찮아서(23.5%) 등이었습니다. 아울러 보험금을 전산으로 쉽게 청구하는 시스템이 필요하다는 데에는 10명 가운데 8명(78.6%)이 그렇다고 답했습니다.

시민단체 대표들이 지난해 11월 18일 국회에서 실손보험 청구간소화 입법 추진을 촉구하는 성명을 발표하고 있다. /사진=소비자와함께
시민단체 대표들이 지난해 11월 18일 국회에서 실손보험 청구간소화 입법 추진을 촉구하는 성명을 발표하고 있다. /사진=소비자와함께

이 같은 여론에도 실손보험 청구전산화를 위한 보험업법 개정안은 이번 국회에서도 처리가 쉽지 않아 보입니다. 환자를 볼모로 한 의료계의 반발이 크기 때문입니다. 소비자단체들은 “21대 국회는 더 이상 의료계의 이해관계에 좌지우지되지 마라”라면서 “소비자의 권리보장을 위해 관련 법안을 국회에서 하루빨리 통과시켜야 할 것”이라고 촉구하고 있습니다.

보험사들이 맨 처음 ‘미끼상품’으로 내놓은 실손보험을 앞 다퉈 팔기 시작한 것은 2003년부터입니다. 이때부터 가입자는 빠른 속도로 늘었고, 주요 보험사들의 당시 매출도 6배가량 급증했습니다. 팔기 전과 팔고 난 뒤 마음이 같아야 하는 것이 소비자가 믿고 찾는 ‘상도의’입니다. 변함없는 착한 보험사를 찾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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