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직연금 더 받고 싶은데… ‘디폴트옵션’이 뭐예요 [사자경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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퇴직연금 더 받고 싶은데… ‘디폴트옵션’이 뭐예요 [사자경제]
  • 이광희 기자
  • 승인 2021.04.29 1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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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자경제] 각주구검(刻舟求劍). 강물에 빠뜨린 칼을 뱃전에 새겨 찾는다는 어리석고 융통성이 없음을 뜻하는 사자성어입니다. 경제는 타이밍입니다. 각주구검의 어리석음을 되풀이하지 않게 경제 이슈마다 네 글자로 짚어봅니다.

255조원이 쌓인 퇴직연금의 저조한 수익률을 높이기 위한 사전지정운용제(디폴트옵션) 도입이 가시화하고 있다. /사진=픽사베이
255조원이 쌓인 퇴직연금의 저조한 수익률을 높이기 위한 사전지정운용제(디폴트옵션) 도입이 가시화하고 있다. /사진=픽사베이

‘퇴직연금’. 근로자의 퇴직금을 금융회사에 맡기고, 기업 또는 근로자의 지시에 따라 운용하여 퇴직 때 일시금 또는 연금으로 지급하는 제도를 일컫는 네 글자입니다. 따라서 회사가 문을 닫는 등의 문제가 생겨도 근로자는 금융회사로부터 퇴직급여를 안정적으로 받을 수 있는 이점이 있습니다.

근로자가 재직 중에는 확정급여형(DB), 확정기여형(DC), 개인형퇴직연금(IRP) 가운데 자신에게 알맞은 유형을 고를 수 있고, 퇴직한 뒤에는 연금과 일시금 중 선택할 수 있습니다. 2015년부터 연금으로 받는 경우 일시금으로 받을 때보다 세금부담이 30% 줄어듭니다. 다만 금융회사에 따라 연금지급 기간 및 방법, 수수료 등에 차이가 있습니다.

/자료=금융감독원
/자료=금융감독원

255조원이 쌓인 퇴직연금의 저조한 수익률을 높이기 위한 사전지정운용제(디폴트옵션) 도입이 가시화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디폴트옵션 도입 방법을 놓고 은행 및 보험업계와 증권업계의 이해 다툼이 뜨거워지고 있습니다. 어제(28일) 열린 관련 간담회에서도 양쪽의 입장이 치열해 다음 달로 예정된 국회 법안심사소위원회에서 어떤 결정이 날지 관심이 모입니다.

29일 정치권과 금융권에 따르면 국회 환경노동위원회는 퇴직연금 디폴트옵션 도입 여부를 놓고 <근로자퇴직급여보장법안 관련 전문가 간담회>를 전날 열었습니다. 이 자리에는 박종원 서울시립대 경영학부 교수(전 재무학회장)와 윤석명 한국보건사회연구원 연구위원(현 연금학회장)이 발제자로 나섰습니다.

간담회 쟁점은 디폴트옵션을 도입할 경우 ‘원리금보장 상품을 포함할지 여부’였습니다. 디폴트옵션은 DC형 퇴직연금 가입자가 따로 운용지시를 하지 않을 경우, 미리 정해진 절차에 따라 퇴직연금 자산을 운용하는 제도입니다. 현재 OECD 20개 국가 가운데 디폴트옵션이 없는 나라는 우리나라와 에스토니아, 체코, 슬로바키아공화국 등 4곳입니다.

이에 윤창현 의원은 지난달 <근로자퇴직급여 보장법 일부 개정안>을 발의했습니다. 다만 개정안은 디폴트옵션을 도입하되 수익성에 집중할 경우 불안정성이 커지는 만큼, 적립금의 원리금이 보장되는 운용방법도 포함하는 내용을 담고 있습니다. 퇴직연금 수익률을 올리자는 당초 취지에 맞지 않는다는 주장이 나오는 이유입니다.

/자료=금융감독원
/자료=금융감독원

이날 간담회 첫 번째 발제자로 나선 박종원 교수는 “현재 퇴직연금의 낮은 수익률은 노후소득 재원 확충이란 제도 취지를 반감시킨다”라며 “디폴트옵션 도입 목적이 침체 상태인 현 퇴직연금시장의 수익률을 끌어올리고 전문적인 운용서비스를 제공하는 것인 만큼 디폴트옵션에서 제공하는 상품에 원리금 보장형을 포함시키는 것은 큰 의미와 실익이 없다”라고 밝혔습니다.

퇴직연금 가입자들이 명확한 운용 지시를 하지 않을 경우, 금융회사가 주식·펀드 등 실적배당형 상품에 투자해 수익률을 높여야 한다는 증권업계 주장과 결을 같이하는 것입니다. 박 교수는 그러면서 자산배분형 펀드 등 안정적인 상품으로 퇴직연금을 운영하되, 공시 시스템과 리스크 중심 감독 체계를 마련해 손실 가능성을 낮춰야 한다고 주장했습니다.

윤석명 연구위원은 이에 대해 “디폴트 옵션은 취약 계층의 경우 득보다 실이 더 많이 나타날 가능성이 높다”라며 “노후소득보장기능을 충실히 수행할 수 있는 상품이 원활하게 제공되고 가입자가 선택할 수 있도록 해야 하며, 독립적인 입장에서 사업자를 감시하는 규정과 감독 당국의 투자성과 평가 등이 함께 이뤄져야 한다”라고 강조했습니다.

윤 위원은 이어 은행 및 보험업계의 주장대로 원리금보장 상품 포함 여부를 재고해야한다고 밝혔습니다. 아울러 “독립적 입장에서 사업자를 감시하는 규정을 도입하고, 감독당국은 3년 주기로 디폴트 투자성과 전수 평가 후 공개하는 방안을 추진해야 할 것”이라고 제안했습니다. ‘디폴트옵션 도입’ 여부는 다음 달 국회 고용노동법안심사소위원회에서 최종 결정됩니다.

올해부터 퇴직연금을 운용하는 금융회사는 해마다 한 번 이상 가입자에게 운용보고서를 보내줘야 한다. 그림은 퇴직연금 운용보고서 예시. /자료=금융감독원
올해부터 퇴직연금을 운용하는 금융회사는 해마다 한 번 이상 가입자에게 운용보고서를 보내줘야 한다. 그림은 퇴직연금 운용보고서 예시. /자료=금융감독원

한편 지난해까지 모두 255조원을 쌓아둔 퇴직연금 가운데 DC형과 IRP를 합한 적립금이 처음으로 100조원을 넘었습니다. 고용노동부와 금융감독원이 이달 초 내놓은 <퇴직연금 적립금 운용현황 통계>를 보면 지난해 말 기준 퇴직연금 총 적립금은 전년 말보다 34조3000억원(15.5%) 늘어난 255조5000억원이었습니다.

유형별로 보면 DB형이 153조9000억(60.2%), DC형 67조2000억(26.3%), IRP 34조4000억원(13.5%)이었습니다. DB형은 전년보다 15조9000억원(11.5%), DC형과 기업형IRP는 9조4000억원(16.35) 늘었습니다. 개인형IRP는 9조원이 증가해 35.5%의 증가율을 기록했습니다. 연간 700만원 한도의 세액공제와 함께 증시활황에 따른 금융투자권역의 유입 영향이 컸습니다.

다만 상품유형별로는 원리금보장형이 228조1000억원으로 대부분(89.3%)을 차지했고, 나머지가 실적배당형(27조4000억원)이었습니다. 특히 DC형과 개인형IRP의 경우 실적배당형 운용 비중이 각각 16.7, 26.7%였습니다. 전체적으로 실적배당형 운용비중은 전년보다 0.3%포인트(4조4000억원) 늘어 증가추세지만 여전히 10% 안팎의 낮은 수준입니다.

올해부터 금융사에 한 번만 방문하면 퇴직연금 이전이 가능해졌다. 제출서류도 최대 7개에서 1~2개로 크게 줄어들었다. /자료=금융감독원
올해부터 금융사에 한 번만 방문하면 퇴직연금 이전이 가능해졌다. 제출서류도 최대 7개에서 1~2개로 크게 줄어들었다. /자료=금융감독원

퇴직연금 상품 가입 금융사는 ▲은행이 51% ▲생명보험 22.3% ▲금융투자 20.2% ▲손해보험 5.2% ▲근로복지공단 1.3% 순이었습니다. 은행과 금투 권역 비중이 증가하는 반면, 보험권역 비중은 감소추세로 나타났습니다. 지난해 퇴직연금을 받기 시작한 계좌는 모두 37만4357좌로 나타났습니다.

이 가운데 연금수령 비중은 3.3%에 불과했고, 대부분이 일시금 수령(96.7%)을 선택했습니다. 일시금으로 받은 계좌의 평균 수령액은 1643만원으로, 연금수령 계좌 평균 수령액(1억8998만원)의 8.7% 수준이었습니다. 중도 퇴직자가 많거나 퇴직금이 소액인 은퇴자가 그만큼 많다는 이야기입니다. 퇴직연금 시장을 놓고 금융업권끼리 이해 다툼이 무색한 현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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